이야기 730

그들과 저들에게 우리는, 이송희 시인『대명사들』

이송희 시인의 사설시조집 『대명사들』이 출간됐다. 2020년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가 나온지 4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대명사들』은 12년 전 『아포리아의 숲』으로 이송희 시인과 인터뷰했을 때 가졌던 시상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시인은 강렬하지만 거부감 없는 언어로 정치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증언하고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고통을 안아 태운다.[인터뷰] 아포리아의 숲, 이송희 시인 읽어보기이송희 시인은 『대명사들』에서 그들과 저들(권력을 가진 자)에게 대명사를 불리는 ‘우리’를 단단한 시어로 새긴다.개돼지로 불리면서 때 되면 밥 먹여주니 웅크리고 입 다물라 떠도는 유언비어 속 현행범이 되었다가 천하디천한 우리는 말 한 마리 값도 안 되고...... / 이름을 잃은 우리는 대명사로 불..

냉면이 서민 음식? 메밀 도매 원가 올랐다지만 너무 비싼 냉면

깔끔한 맛으로 먹던 을지면옥 물냉면이 15,000원으로 올랐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들렀다가 깜짝 놀라 혀를 내둘렀다.  을지면옥은 재개발로 문을 닫았다가 낙원동에서 영업을 재개하면서 냉면 가격을 기존 13,000원에서 2,000원을 인상했다. 술안주로 곁들이던 수육도 30,000원에서 35,000원으로 올렸다. 평양냉면 맛집으로 소문난 냉면집들도 미쳤다. 염리동의 을밀대, 필동의 필동면옥, 충무로 봉피양도 가격을 인상했다. 평양냉면을 한 그릇 먹으려면 을밀대는 16,000원, 필동면옥은 14,000원, 봉피양은 16,000원을 내야 한다.  나는 사실 진한 육수의 평양냉면(물냉면)과 걸쭉한 비빔장의 함흥냉면(비빔냉면)을 좋아하지만 을지면옥은 요즘 음식처럼 새콤달콤하지 않고 슴슴한 육수와 개운한 비빔..

6월 2일은 시사만화의 날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 중앙에 한국 최초로 이도영(李道榮·1884~1933) 화백의 삽화가 게재됐다. 전국시사만화협회는 6월 2일을 시사만화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대한민보 옛터(서울시 종로구 삼봉로 71)에서 기념식을 연다. ‘시사만화의 날’ 기념식은 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시사만화의 중요성과 사회적 역할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또 매년 우리 사회에 울림을 주고 변혁에 기여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해 ‘올해의 시사만화상’을 시상한다. 2024년부터는 ‘올해의 시사만화상’을 ‘이도영 시사만화상’으로 이름을 바꿨다. 올해 수상자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해 왔던 최민(민중의소리) 만평가가 선정됐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권범철(한겨레신문)이 받았다. ‘이도영 시사만화상’..

조선 지식인들의 말하는 독서와 읽은 책

조선 지식인들은 무슨 책을 읽고, 독서에 관해 어떤 조언들을 했을까?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공경스런 자세로 책을 대해야 할 것(이이)학자가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사색을 해야 한다(윤휴)어머니는 하루 세 번씩 아이에게 책 읽기를 권하라(송시열)독서하면서 의심 나면 반드시 질문한다(허목 등) 조선 지식인들은 엄숙한 자세로 뜻을 새겨가며 정독, 숙독하거나 수많은 책을 여러 번 다독해 섭렵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했다. 애독서로는 사서오경과 '소학', '근사록', '주자대전' 등의 성리서, '고려사', '사기' 등의 역사서, 후기에는 '반계수록', '성호사설' 등의 실학서 등이 있다. 조선 지식인들은 인재양성을 위해 조선 지식인들에게 휴가를 줘 독서를 하게 했던 교육제도로 '..

이은봉 시인 - 삶의 질 높이고 민족통일에 기여하겠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민중문학의 위상을 높이려고 ‘민중문학상’이 제정됐다.  이은봉 시인은 2012년 제1회 민중문학상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당시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었다. 나는 민중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상냥했지만 내강의 태도를 견지한 시인이었다. 이은봉 시인은 “민중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세계적인 위상을 강화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과 민족통일에 기여하는 일에 적극 나설 작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민중문학상은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보된 뒤 아직까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은봉 시인은 광주대에서 퇴임하고 대전문학관 관장으로 4년을 역임한 뒤 세종에서 창작활동을..

더위에 특히 조심해야 할 사람 누구?

사람마다 면역력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더위에도 강하고 약한 사람이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발생하는 일사병과 열사병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한 사람은 일사병과 열사병에 강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당뇨를 앓거나 심장이 약한 사람에게 위험하다. 날씨가 더우면 심박수가 증가하고 체내 조절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같은 일을 해도 피로가 금방 쌓인다. 당뇨를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 특히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더운 열기에 취약하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면 곧바로 그늘에 가서 쉬어야 한다.몸에 열이 많은 알코올중독자들도 일사병과 열사병을 조심해야 한다. 더운 여름에 술을 많이 마시면 몸에 열이 오르고 심장박동이 빨라져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

최영일 시사평론가 - 신중하고 유머러스한 ‘티빠(티파니광팬)’

나는 최영일 시사평론가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부고를 받자마자 생각했다. 부고를 자세하게 읽어보지 않고 ‘아버님이 돌아가셨구나. 가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워낙 바쁜 분이라 만나기도 힘들었고, 만난 지도 좀 됐는데 어쩌지?’라고 고민했다. 출판업계에 종사하던 최 평론가의 동생 분과도 술 한잔 마신 적 있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시간이나 일 모든 게 더는 관계를 잇지 못한 상황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 어색하기도 했다.며칠 후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시사평론가 최영일 씨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 아뿔싸였다. 나는 최 평론가가 임종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최영일 평론가가 보낸 문자는 그의 가족이 보낸 것이었고, 부고는 최영일 평론가의 아버..

재럴딘 하비엘(Geraldine Javier) - 인간의 삶과 관련된 영적, 정신적인 이야기

재럴딘 하비엘(Geraldine Javier)의 작품은 매우 어둡고 불안하다. 시골 생활과 자연의 이미지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그곳에는 안식처가 있다. 삶에 지친 우리가 쉴 곳이 있다. 그의 작품을 천천히 관조하듯 바라보면 한데 어우러지면서 직조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70년 필리핀에서 태어났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미술 재능을 깨닫고 미술학교에 진학했다. 2003년 필리핀 문화 센터가 선정한 13인의 주요 아티스트에 선정됐으며, 그의 작품이 2010년  홍콩 크리스티 옥션에서 예상가의 7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되는 등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제럴딘 하비엘은 나무나 새 같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자연의 이미지로 종교나 신..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 추상과 구상의 모호한 혼재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은 YBA(Young British Artists, 브릿 아트)가 주창하는 젊은 미술의 개념적 성향에 반항해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종류의 YBA의 선두주자가 됐다. 젊은 작가들과 화단이 새로운 것을 열망할 때 반대로 고전으로 돌아가서 구상과 추상을 모두 포용하는 회화의 길을 개척했다. 세실리 브라운은 윌렘 드 쿠닝, 조안 미첼, 니콜라스 푸생, 루벤스 등의 거장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추상과 구상을 결합을 추구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구분이 모호하도록 대상의 명백한 묘사를 거부했다.     초기에 세실리 브라운은 그렇지 않았다. 토끼의 성교, 날개가 달린 남근의 형상과 같은 노골적인 성교 장면을 그렸다. 그의 도발적인 작품들은 화단과 상업미술계에 크나..

김주옥 - 다시 살아난 ‘김주옥의 제주도 민요-마파람’

음반 ‘김주옥의 제주도 민요-마파람’은 故 김주옥 명창이 되살려낸 제주도 민요다. 이 음반에 실린 제주도 민요는 제주도 사람들이 부르는 노동요이자 생활가요다. 포근하고 구수한 음색과 선율이 마음을 청정히 하고, 노동의 피로를 덜어주기도 하지만 노랫말에는 고달픈 삶의 애환이 담겨 있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이 음반은 1983년 테이프로 제작된 ‘제주도민속민요모음집’을 음원보정을 통해 복원한 것으로, 제주도 민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 음반에는 제주도 민요 12곡이 수록돼 있다. 故 김주옥 명창은 1925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제주도 민요와 함께했으며, 제주도민의 삶과 애환을 노래로 승화시켜 왔다.     김주옥 (金住玉 1925. 4. 3 ~ 2001. 1. 13) 故 김주옥 ..

김종학 - 추상에 기초한 새로운 구상 회화

온갖 현란한 이미지들이 조화를 부린다. 투박하고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한결같이 남성적인 색채의 천태만상으로 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을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고갱에게 타히티, 앤젤 아담스에게 요세미티가 있다면 김종학에게는 설악산이 있다. 김종학 작가는 해방 후 현대미술의 도입되고 정착되는 시기에 설악산으로 들어가서, 설악산을 사랑하는 최고의 로맨시스트가 됐다. 그가 설악산으로 간 이유는 새로운 화풍에 대한 탐색이었다.김종학 작가의 설악산은 1979년부터 시작됐다. 김 작가는 그 당시 한국 화단의 전위성, 실험성, 추상성 열풍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꽃과 풀, 산과 달, 바람과 물 같은 소재로 추상에 기초한 새로운 구상 회화를 선보였다. 김종학 작가는 나약하고 여성적인 꽃도 선이 굵은 남성적 풍경으로 변모시킨다..

정선아 - 산뜻하고 발랄한 상상력 자극하는 풍경

정선아 작가는 그림 그리는 행위에 커다란 행복을 부여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뇌리쬐는 연둣빛 잎사귀와 시원스러운 바람에 움지적거리는 푸릇푸릇한 풀숲에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염원이 느껴진다.  그림의 소재는 초현실적이지 않다. 초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바깥세상의 풍경을 그림의 소재로 끌어들인다.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과 관점에서 본 풍경을 어느 누구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화젯거리로 던진다.  아마도 정 작가는 그림 그리는 행위의 결과물이 자기애에 함몰되거나 자기만족에만 그치길 바라지 않는 듯하다. 마음의 담장을 허물고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를 원한다. 풍경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거부감 없이 교류될 수 있는 미적 주제이지 않은가. 정선아 작가의 작품을 보니 모처럼..

최민화 화가 - 리얼리티를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민화 작가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 인터뷰 약속이 잡힌 날도 과음해 불그레한 얼굴로 나타났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술 취해 돌아다니면 노숙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술에 취하면 다 잃어버리기 때문에 핸드폰도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며 웃어버렸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다.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려면 어느 정도의 그늘은 드리워져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늘의 양이 상당했다. 그늘의 정체는 1980년대를 겪었던 시대의식과 앞으로 그려 낼 작품에 대한 소명의식이었다.   최민화 작가의 본명은 최철환(崔哲煥)이다. ‘민화’라는 이름은 ‘들꽃’ 혹은 ‘민중은 꽃’이라는 의미로 지은 예명이다.   최 작가는 민족미술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1987년 이..

이흥덕 - 평생 각성된 눈으로 그려 온 인간 사회 ‘이흥덕의 극장-사람·사물·사건’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고, 속이 드글드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작품 속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는 듯해서 잔뜩 궁금증이 인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흥덕 작가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작품에 표현했던 주제와 대상은 언제나 강자와 약자였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즉 강자의 폭압성으로 약자의 위기와 고통을 그려 왔다. 평생 정물화만 그려 세계적인 거장이 된 조르조 모란디 같은 작가도 있지만 평생 각성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흥덕 작가도 있다. 이흥덕 작가는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욕망을 캔버스에 채운다. 째려보고, 시기하고, 흥분하고, 다투고, 욕설하고, 때리고, 불 지르고, 멍 때리는..

카를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 - 수만 마리의 검은 나비로 연출하는 초현실적 분위기

매년 봄, 전라남도 함평에서 나비축제가 펼쳐질 때마다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검은 나비로 전시장 전체를 뒤덮어버리는 작가 카를로스 아모랄레스(Carlos Amorales)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의 작품 ‘Black Cloud’는 종이로 만든 다양한 크기의 나비 2만5천 마리로 전시장 벽과 천장에 설치한다. 작품 설치에는 14명으로 구성된 팀이 5일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한다. 그 결과물은 대단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나비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쌓여 있어서 놀랍고, 나비들이 쌓임으로써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초현실적이다.   카를로스 아모랄레스는 멕시코 현대 문화와 이슈들을 소재로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

장숙 - 죽음의 무게를 보여주는 ‘늙은 여자의 뒷모습’

종로 3가 한복판. 머리를 산발한 채 길거리에 엎드려 누워 있는 맨발의 늙은 여자를 봤다. 한 겹 두 겹 덧칠하듯이 얼굴을 뒤덮은 거무스름한 검버섯과 축 늘어지다 못해 겹겹이 엉겨 붙은 목주름,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말라 금이 간 발바닥이 그녀의 고단한 일상을 그대로 투영했다.  사람들은 늙은 여자가 불쌍했을까?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그녀 앞에 붕어빵을 놓아두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는 불같이 분노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발끈 화를 내며 붕어빵을 그 사람에게 던졌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절규하는 듯했다. 장숙 작가의 ‘늙은 여자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늙은 여성의 몸을 사유하듯이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운명의 끝..

이영 - 다종다양한 생물과 사물이 상호 연결된 인드라망

동심원은 다채로운 색채가 변주하고, 올록볼록한 형태미를 발산한다. 원형이 반짝이고, 원형 구조가 어우러지고 확장하면서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다양한 원형의 색채와 조형, 찬란한 빛의 음영과 볼륨으로 색다른 공명을 전한다. 고도로 세련된 도안적 구성은 강렬한 생동감과 밀도 높은 침성(묵직하게 가라앉는 성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허공에 겹쳐 놓은 것 같은 수많은 원형 이미지를 창조하고, 조화롭게 병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실험을 했을까? 이영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얼마나 많은 생물과 사물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살면서 진화하고 윤회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를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인드라망은 에 나오는 말로,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에..

장 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 - 지금도 사랑받는 꼬마 니콜라와 좀머 씨

장 자크 상페는 삽화가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호소하며 호두나무 지팡이를 쥐고 어디론가 계속 걸어가던 좀머 씨의 모습을 그린 만화가다. 끝내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좀머 씨의 마지막 모습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보다 그의 그림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외로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그의 마지막 절규는 잔잔한 그림 하나로 충분히 전달됐다. 장 자크 상페는 1932년 프랑스 페삭에서 태어났다. 군 제대 후 신문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르네 고시니와 함께 만들어낸 동화 ‘꼬마 니콜라’가 신문에 연재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1959년 첫 발표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스테디 설러이자 어린이를 위한..

이생강 - 듣는 이들의 마음 사로잡는 피리소리와 대금산조, 퉁소가락

대금, 단소, 태평소는 알아도 피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다. 피리는 잘 알려진 악기 같지만 실제로 본 사람도,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드물다. 피리는 소리 자체가 요괴스럽다. 여릿하게 불면 정신을 나긋하게 만든다. 힘을 아주 빼고 불면 구슬프고, 힘 있게 내불면 가슴이 대차게 두드리며, 흥을 실으면 애간장을 녹인다. 죽향 이생강 선생의 피리소리는 듣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한밤중에 바람 소리처럼 평화롭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청아하다. 피리의 미세한 음 처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교 때문이다. 이생강 선생은 곧고 청아한 ‘대금’ 연주로 잘 알려진 명인이다. 하지만 피리, 쌍피리, 단소, 소금, 퉁소, 태평소 등 모든 관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타고난 예인이자 전설적인 연..

단두대가 만들어낸 희대의 예술, 밀랍인형

인도인 사업가 스리니바스 무르티는 2018년 자신의 집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내 마다비의 밀랍인형을 설치해 전 세계에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아내 마다비의 밀랍인형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보다 더욱 감정선이 살아있는 얼굴과 정교한 머리카락, 피부 주름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압권이었다. 2021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 설치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부부의 밀랍인형은 실제와 너무 닮지 않아 철거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의 밀랍인형은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사업비 4,400만원을 들여 제작했다. 하지만 기념관 담당 직원이 가짜 계약서를 쓰고 밀랍인형 제작업체가 아니라 실리콘 제작업체에 작품 제작을 의뢰하는 비위를 저질렀다. 실리콘은 ..

소지(所志)를 아시나요?

조선 시대에 억울한 사연이 있는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관청에 ‘소지(所志)’를 올렸다. 관청에서는 ‘소지’를 보고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제음’ 또는 ‘제사’라고 한다. 관청은 소지를 올릴 때 자신의 신분과 관청의 등급에 따라 적합한 문서 양식을 선택해 사용하도록 했고, 소지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돕기 위해 각 상황별로 적합한 문서 양식을 제시한 지침서 『유서필지(儒胥必知)』가 19세기 초에 등장했다. 소지의 내용에는 소송, 민원, 진정, 납세, 충·효·열에 대한 포상, 입안 등이 있었으며, 소송은 묘지와 관련된 다툼, 즉 산송(山訟)에 관한 진정서가 가장 많았다. 소지는 현존하는 고문서 중에서 토지 문서 다음으로 양이 많다. 소지를 올린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문제라서 해당..

만 레이(Man Ray) - 사진을 찍는다가 아니라 그린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사진작가가 있다. 미국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 1890∼1976)다. 그 당시 경매가가 어마어마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만 레이의 작품 '르 비올롱 댕그르(Le Violon d' Ingres)'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2022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1천240만달러(약 159억2천78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르 비올롱 댕그르'는 나체 여성의 사진 위에 바이올린 에프홀을 그려 넣고 다시 사진을 찍어 인화한 작품이다. 사진 속 여성은 만 레이의 애인이자 모델, 화가 등으로 활동했던 알리스프랭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을 오마주했다. 만 레이는 사진을 찍는다가 아니라 사진을 그린다는 개..

홍효 - 강렬한 꽃의 생명력으로 투영한 나

정형화된 스타일이 파괴된 이미지에서 까닭 모를 희열이 진득이 밀려온다.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활짝 핀 꽃들이 전위적으로 어우러지며 찬란한 생의 의욕을 고취한다. 홍효 작가는 자유분방한 색채와 붓터치로 형상화한 꽃의 강렬한 생명력에 희망이나 행복 같은 감정들을 투영한다.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게 변형하고 휘갈기면서 강조한 이미지로 대상의 실제성을 더욱 부각한다. 인간의 희망이나 행복도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고 홍효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면 감동은 배가 된다. 홍효 작가의 ‘문득’전은 4월 16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더플럭스 더플로우에서 열린다. 전시장 전경 작품 사진

북풍 말고 정책으로, 국민 모두가 흑금성이자 성숙한 유권자

1997년 대선 때였다.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려고 북풍공작을 벌였다. 북한의 대남도발을 역이용한 선거전략을 펼쳤고 김대중 후보의 북한자금 수수, 국민회의의 연방제 수용과 80억 원 지원 제의 같은 갖가지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며 빨갱이 논쟁을 유발했다. 정당은 자기 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끌어가려고 프레임을 띄운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정해서 국민들이 그 틀을 따라 시각을 정립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주길 원한다. 정당이 제시하는 프레임은 흔히 수구, 보수, 중도, 진보라고 하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하고, 매우 첨예하게 격돌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당 간에 공방을 벌이는 사안이 많아지고, 끊임없이 네거티브 비방 전략이 펼쳐지면서 프레임의 스펙트럼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공성훈 - 인간사 통찰하는 풍경화

공성훈 작가는 자연과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풍경화로 그려내면서 인간사를 통찰했다. 인간사는 모두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일부분이고, 모두 인과 법칙에 따라 아랑곳없이 흐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공 작가는 전반기에 멀티슬라이드 프로젝션 설치 같은 실험적인 작업에 전념했다. 이후 1998년을 기점으로 회화 작업에 집중해 도시와 자연을 밀도 높은 풍경으로 담아냈다. 그는 2021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2018년 19회 이인성 미술상을 받았다. 공성훈 작가의 ‘바다와 남자’전이 4월 2일부터 6월 1일까지 선광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의 고향인 인천이 그의 작업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공 작가의 작품은 그가 직접 현장에 보고 체험한 기록을 ..

이흥덕 화가 - 미술 고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

수척해진 마음을 어루만지며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아옹다옹 다투며 공멸해 가는 인간 군상을 목격한 까닭이다. 몇 번이나 농담을 늘어놓으며 헐벗은 마음을 중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왼쪽으로 눈동자를 돌린 한 소녀의 ‘잔상’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숲 속에서 벗어나려고 종일토록 걸어 다녀도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으스스한 소리로 되돌아오는 산울림처럼.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터널을 지나 넓고 밝은 곳으로 나왔다. 하지만 쉽사리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비스듬하게 뻗은 도로 사이에 펼쳐진 배추밭 가로줄 이랑이 정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왜 한강에 가셨어요? 세상과 단절 선택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새벽 1시. 폐 한쪽을 들어낸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숨 가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불빛이 전혀 없는 밤하늘처럼 짙고 검은 먼지가 내려앉은 한강대교 위를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걱정해야 했다. ‘혹시’가 부른 불안감이었다. 셔츠 위에 까만 조끼를 입고, 까만 모자를 손에 든 한 중년 남자가 교각 이음새 부근에 앉아 '깡'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지만 시종일관 시선은 강물에 고정돼 있었다. 술 취한 젊은이들의 고함 소리에도, 연인들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에도,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배기통 소음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은 강 끝을 응시할 때 매우 애달프게 보였다. 뭔가 커다란 고통에 직면한 듯싶었..

부모님 생각하며 듣는 노래

부모님의 말씀처럼 세상은 시끄럽고 불만에 가득 차 잔인합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예측할 수 없고,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하고 창백한 곳입니다. 온통 내일이란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두렵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뜻을 깊이 받들어 올바르고 당당하게 헤쳐 나아가겠습니다.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숨을 쉬고, 가슴속에 남긴 모든 것들을 선명한 빛으로 떠올리겠습니다. 굳센 팔로 세상을 포옹하고, 어둠 속에서도 맑고 온화한 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이 되겠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부모님.  부모님이 생각나는 노래 - 1부  김영임 - 부모은중경(부모님의 은혜) 억조창생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 -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사람

원시적인 소리였다. 경쟁과 질투가 가르쳐주는 세속적인 지혜와는 다르게 근원적인 야만성을 품은 울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도시의 공포감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같은 전율이었다. 강렬한 북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슴을 조여 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려는 듯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간과 공간을 끊어내며 심장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나는 연습실 한편에서 몸을 쑥 내밀고 북을 치는 광경을 지켜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은 별 얘기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떠한 얘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열정과 노력이 보이느냐..

방효성 작가 - 사유하는 몸으로서의 행위예술가

방효성 작가는 행위예술가다. 그 연장선상에서 회화와 설치미술을 병행하며, 매체의 다양성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오브제를 해석하고 형상화한 언어들과 우발적이고 독창적인 행위예술로 풀어내는 미적 욕구는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독특하면서 따뜻하다. 2005년에 방효성 작가를 만났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쉐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소식도 들었고,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2023)’라는 퍼포먼스도 사진으로 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왕성한 활동으로 노장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방효성 작가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80년대 초반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이 시절의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시적 표현들은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