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럴딘 하비엘(Geraldine Javier)의 작품은 매우 어둡고 불안하다. 시골 생활과 자연의 이미지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복잡하고 역동적인 그곳에는 안식처가 있다. 삶에 지친 우리가 쉴 곳이 있다. 그의 작품을 천천히 관조하듯 바라보면 한데 어우러지면서 직조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70년 필리핀에서 태어났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미술 재능을 깨닫고 미술학교에 진학했다. 2003년 필리핀 문화 센터가 선정한 13인의 주요 아티스트에 선정됐으며, 그의 작품이 2010년 홍콩 크리스티 옥션에서 예상가의 7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되는 등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제럴딘 하비엘은 나무나 새 같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자연의 이미지로 종교나 신, 죽음처럼 인간의 삶과 관련된 영적, 정신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다. 전통적인 회화에 형형색색의 자수나 레이스를 덧붙이거나 자수가 들어 있는 유리액자를 화면에 삽입한다. 마치 기도하듯 자수를 놓기 때문에 필리핀의 가톨릭 전통 디자인이라고 표현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또 작품의 서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종종 내러티브 아티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제럴딘 하비엘은 실물에 가까운 리얼리티보다 단순하고 힘찬 붓질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예를 들면 나무를 가시덩굴이나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지니지만 때로는 고딕적으로 표현해 그림 전체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 새집을 그려 넣어 선과 악의 각축장처럼 보이는 위태로운 나무 사이에서 성스럽고 연약한 존재로 보이는 새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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