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이흥덕 - 평생 각성된 눈으로 그려 온 인간 사회 ‘이흥덕의 극장-사람·사물·사건’

이동권 2024. 5. 5. 20:45

붉은 머리의 남자 290.9 X 181.8cm 캔버스에 유채 2022년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고, 속이 드글드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작품 속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는 듯해서 잔뜩 궁금증이 인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흥덕 작가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부터 작품에 표현했던 주제와 대상은 언제나 강자와 약자였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즉 강자의 폭압성으로 약자의 위기와 고통을 그려 왔다.

평생 정물화만 그려 세계적인 거장이 된 조르조 모란디 같은 작가도 있지만 평생 각성된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흥덕 작가도 있다.

이흥덕 작가는 인간 군상들의 갈등과 욕망을 캔버스에 채운다. 째려보고, 시기하고, 흥분하고, 다투고, 욕설하고, 때리고, 불 지르고, 멍 때리는 결점투성이 인간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해 한국 사회의 일면을 포착한다. 멜랑콜리한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으로 부조리와 부정이 대물림되는 자본주의의 유습을 우스꽝스럽게 비꼰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중미술과 유다르다. 목적의식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의식화거나 직설적으로 의제를 던져 사회 변혁적 담론을 형성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고뇌로 계급적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정치사회적 투쟁 의식을 고취하지도 않는다.

이흥덕 작가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얘기보다는 어지럽고 혼란한 한국 사회를 함께 바라보고 느끼길 바란다. 분단된 민족,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집착적 배금주의와 감각적 향락주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부른 공동체 해체와 인간성 상실, 물욕적 양극화로 속물화된 현대인들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따뜻하게 감싸 안으려고 노력한다.

“한국 사회가 왜 이런 거야? 우리 함께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어려운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 주면서 살면 좋잖아?”

자본주의의 병폐는 돈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인간의 삶을 쥐락펴락하면서 발생한다. 이 흉측한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인간성을 도륙하는 갖가지 병리현상을 낳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흥덕 작가가 평생 각성된 눈으로 그려 왔던 인간 사회다.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지하철(인목대비). 775.60 X 259.1  캔버스에 유채. 2024년

 

2024년작 지하철(인목대비)을 보고 달가웠다. 누가 봐도 이흥덕표 작품이었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과거의 화풍을 잇고,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 줘서 즐거웠다.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것처럼 나무화랑 김진하 선생의 미술평론도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이흥덕 작가의 유려한 색채감은 자유로운 구상력과 어우러지며 긴장감을 촉발한다. 정치, 사회, 생태, 문화, 전쟁, 분단 등의 소재를 이리저리 얽은 스토리텔링에 좀처럼 보기 드물고 다채로운 컬러를 입혀 서정적, 서사적 이미지를 동시에 형상화한다.

‘이흥덕의 극장-사람·사물·사건’전은 5월 1일부터 28일까지 나무화랑에서, 5월 1일부터 6월 1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열린다. 두 곳에서 각각 다른 작품이 전시되니 꼭 함께 둘러보길 바란다.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관훈갤러리 전시장 전경

 

나무화랑 전시장 전경

 

나무화랑 전시장 전경

 

나무화랑 전시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