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 작가는 행위예술가다. 그 연장선상에서 회화와 설치미술을 병행하며, 매체의 다양성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오브제를 해석하고 형상화한 언어들과 우발적이고 독창적인 행위예술로 풀어내는 미적 욕구는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독특하면서 따뜻하다.
2005년에 방효성 작가를 만났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쉐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소식도 들었고,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2023)’라는 퍼포먼스도 사진으로 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왕성한 활동으로 노장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방효성 작가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80년대 초반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이 시절의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시적 표현들은 ‘드로잉적 회화’라는 양식으로 변형 순화되어 왔으며, 더욱 정제된 색과 사색의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방 작가가 말하는 ‘드로잉적 회화’는 치열한 자기 성찰과 원숙미에서 우러나는 마음의 울림에 가깝기 때문에 평화로운 감흥을 일으킨다.
“저의 ‘드로잉적 회화’는 작위적이길 거부합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처럼 자연스러움 속에서 생명과 인간, 그리고 자유에 대해 최소한의 이미지로 심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절대자와 피조물로서의 인간과 그 안에 속한 모든 자연을 생명이란 주제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때론 반어법적이며, 때론 초자연적인 어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작업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의 평면 작업은 산뜻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진중하고 고요하며 질리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는 인간의 노동과 땀에 관한 정제된 메타포를 설치미술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육체적 행동과 행위로 사회적 측면의 조형을 표현하면서 원초적인 창작 욕구를 형상화하는 본격적인 시도를 했다. 이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 등의 장르나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의 설치미술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미적 욕망을 스스로 드러내고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효성 작가는 요셉 보이스를 좋아했다.
“요셉 보이스라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예술성, 실험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항상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입니다.”
요셉 보이스는 예술이 단지 예술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물질화된 대상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 구조의 짜임과 흐름 속에서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각 구성원들의 상호소통을 촉진하는 것으로 예술을 정의한 작가다. 그는 예술의 중심은 자유, 평등, 박애에 입각한 휴머니즘의 실현이라고 여겼으며, 자신의 예술적 생애를 통해 이러한 개념을 실천했던 이상적 행동주의자였다.
방효성 작가의 순한 눈매는 듬성듬성 난 턱수염과 묘하게도 잘 어울린다. 이 턱수염은 예술가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인 것 같다. 그는 또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제스처를 취하면서 부드럽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손놀림은 무척 자상하고도 거침이 없어서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바로 그려졌다. 천상 예술가다.
“행위예술은 존재하지만 잊고 사는 것, 다시 얘기하자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폭탄이 떨어져 30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어도 눈 하나 깜짝 않습니다. 사유가 자동으로 차단되기 때문이지요. 끔찍한 것, 상상하기 싫은 것,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자동 차단기를 달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회화로 이끌어내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요. 그래서 저는 몸이라는 도구를 설정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혼합된 예술 퍼포먼스 아트는 60~70년대에 기성세대의 질서나 제도적, 사회적, 정치적 억압과 압력에 저항하는 예술이었다. 사회적 욕구불만과 반작용이 퍼포먼스 아트를 태동하게 한 것이다. 그 시대에 있었던 장발이나 누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8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암울한 군부독재시대였으나 예술의 표현에 대해서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노동과 통일, 반미에 대한 표현은 금기시되어 왔으나 연극이나 무용 등 모든 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표현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해지고 넓어졌다. 거기에 빛과 소리, 테크놀로지가 결합하면서 퍼포먼스의 맥은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닭을 난도질해서 바닥에 으깹니다. 계속 문지르고 있으면 동물 학대처럼 보이겠지요. 이내 관객들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맙니다. 그러나 퍼포먼스의 마지막에 이르면 관객들은 하나의 문장을 보게 됩니다. 제가 바닥에 닭을 문지르면서 켄터키치킨을 먹어 봤느냐는 글씨를 썼거든요. 튀김으로 먹는 닭이나 제가 바닥에 난도질한 닭이나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현상만 알고 이면에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을 못합니다.”
방효성 작가에게 퍼포먼스 아트에서 이처럼 극단적인 자극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형상화하는 것이 퍼포먼스이며 자극은 행위예술의 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에 액자를 하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이러한 자극은 당위성이 있어야 합니다. 역겹다, 더럽다, 창피하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야 하지요. 이 과정에 서 관객들과 감정, 감각, 본능적인 것들이 소통되는 것이며, 이미지에 대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효성 작가는 5.18 기념공연 비망록 ‘그날 이후 꽃밭에는 패랭이꽃을 볼 수 없었다’ 퍼포먼스에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국화 꽃잎을 가위로 자르며 뿌렸다. 상처를 싸매는 것처럼 붕대를 발에 감고 먹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네발 달린 동물처럼 뒷걸음질로 걸으면서 벽에 다가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흔적을 남겼다. 과거로 돌아가기 싫지만,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역사의 현장으로 가서 붕대 감은 발로 하얀 벽에 자취를 남긴 것이다. 이는 시간여행 속에서 만난 영혼을 달래는 비망록이다.
방 작가는 한국의 쓰레기와 일본의 쓰레기를 한 박스에 넣고 석고에 버무렸다가 다시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한국과 일본의 쓰레기가 하나로 섞였다가 다시 분리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박스에 있는 껌이나 담배꽁초 등은 삶을 충족시키고 버려진 것들이기에 양국의 정 신과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질을 전시장에서 ReCycling(재활용)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한일 양국의 진정한 만남과 화해를 위해 노력하자는 뜻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설치미술에서 해체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불꽃은 타오르는 순간이 아름답습니다. 만약 불꽃놀이에서 불꽃이 터지는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다면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미술 작품이 변함없이 보존되는 것에 보편적인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미술교육의 고착화 때문입니다. 한국의 퍼포먼스는 동양에서 무척 빠른 편입니다. 행위예술은 한국과 일본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국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으나 동남아는 아직 미미합니다. ”
눈앞의 수입보다는 인간을 고찰하면서 값진 철학을 만들어가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그들의 삶은 장애물도 많고 주춧돌도 많다. 장애물은 사회적인 것이 대부분이며 주춧돌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견뎌내고자 하는 개인의 정신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이벤트나 국제행사에는 몇 백억 씩 사용합니다. 예술가들에게 단 몇 억이라도 투자를 한다면 백남준 같은 세계적인 미술가들을 길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퍼포먼스 아트가 무슨 돈이 되느냐는 자본주의적인 논리만 내세우지요. 또 환경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 만, 아직도 퍼포먼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뭔가 남아야 한다,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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