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날이 밝아왔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바람이 잠잠해졌다. 이른 아침 잠시 산책에 나섰다. 물폭탄과 우레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던 어젯밤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길을 재촉했다. 네온사인과 자동차가 우글거리는 도심을 한 걸음 한 걸음, 큰 걸음으로 지나쳤다. 자연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사람처럼, 아니 어머니의 품으로 가는 아들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길게 뻗은 인도를 따라 걷다 연꽃이 무성하게 자란 조계사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꽃잎이 비에 두들겨 맞아 너덜너덜했다. 나는 마음이 아렸지만 곧바로 불편한 마음을 버렸다. 연꽃은 모진 고초마저 끌어안고 또다시 아름다운 꽃송이를 살포시 내밀고 있었다. 빗물과 습기가 엉겨 붙어 있는 앙상한 꽃잎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일주일 내내 무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