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730

그때 그 사람들 - 전대미문 역사의 밋밋한 재조명, 임상수 감독 2005년작

2005년에 쓴 리뷰다. 나이 어린 티가 난다. 그렇게 많은 리뷰를 써왔지만,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감정에 메몰 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는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하는 게 싫고, 한나라당이 꽤 마땅치 않았나 보다. 어쩌면 임상수 감독에게 그걸 바랐는지 모르겠다. 나 대신 실컷 저들을 욕을 해달라고. 옛 리뷰를 다시 정리해 소개한다. - 2022년 7월 31일 이동권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의 황제로 등극하는 어두운 밤, 많은 사람의 뜨거운 기대와 억측을 안고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날 밤의 황제로 군림했던 한 인간의 비극적 종말을 통해 유신시대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민주화의 의미를 새롭게 재조명해 보고자 모인 자리였고, 그것은 마치 민중이 새로운 황제로 등..

최병수 현장미술가 - 한열이를 살려내라 주인공, 민중의 의식전환 필요하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을 부축하는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로 87년 6월 항쟁의 뜨거운 불씨를 지폈던 현장미술가 최병수. 2005년 1월 그는 위암 수술 후 요양을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가평군 금대리 비룡대마을에서 다시 전선에 나갈 날을 꼽으며 심신을 다지고 있었다. 최병수는 2004년 북한산 터널 건립반대,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 미군 평택기지이전 반대 등을 외치며 들녘에 망루를 세우고 솟대와 장승을 꼽다,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주위를 안타깝게 한 바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통일이여 오라 '장산곶 매', 새만금 갯벌 살리기 장승벌 '하늘마음 자연마음', 미군의 폭격으로 숨진 어린 손자를 품은 할아버지를 묘사한 '너의 몸이 꽃이 되어', 두 눈을 가린 채 ..

전희구 노원구청 생활복지국장 - 아버지 의문사 책으로 펴내다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은 선명하고 붉은 핏방울을 남긴다. 뜨거운 빛으로 반짝이는 이 선혈은 무소불위한 권력의 칼날에 맞선 한 시대의 진실과 양심이 되어 꽃을 피운다. 깊은 상처를 잠재우고 민중의 들꽃으로 피어나 아름답게 타오른다. 등을 떠미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제법 따사로운 겨울 햇볕을 껴안고 찾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의문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낸 전희구 국장의 마음도 이러할 터. 정년을 앞둔 전희구 노원구청 생활복지국장은 마음속에 간직했던 질곡의 가족사를 한 권의 책 『피어오를 새날』에 옮겼다. 이 책은 한국전쟁시 문화공작단 사건으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던 아버지를 37년 동안 추적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2005년 1월 전희구 국장을 만났다.) 단아한 ..

이경순 감독 -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내민 도전장

2004년 12월 7일. 국회의사당에서 이경순 감독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국회 대회의실에서 상영되는 날이었다. 이날 행사는 이영순 의원실과 계승연대 의문사건 특위에서 주관했다. 이 영화는 의문사 유가족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제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위원회의 활동을 담은 필름으로 은폐된 죽음의 기록, 뒤틀린 권력의 실체, 진상위원회의 미비한 권한, 높은 대의 앞에 고개를 떨구는 운동가로서의 성찰, 죽은 자들의 동지였던 민간조사관들과 군·검·경·기무사·국정원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의 첨예한 갈등을 담았다. 영화 상영은 의문의 죽음을 위로하는 묵념처럼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종영이 가까워지면서 고 김성수 학생의 어머니 전영희(66세)씨의 흐느낌이 거세어지자 가..

저출산, 육아는 누구의 몫일까?

대기업에 근무하는 33살 김모씨는 적잖은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이다. 그럼에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둘째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심 중이다. 독하게 마음먹고 아내를 설득해봐도, 아내는 육아 및 탁아시설 부족, 과중한 양육비와 교육비가 부담스럽다고 결정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27살 이모씨는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했지만 구조조정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녀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임신, 출산으로 인해 인사고과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서 현재 복직투쟁을 벌였다. 홍보, 마케팅 일을 해온 36살 홍모씨는 아이를 낳고 15년간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이들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아페림! - 당신은 노예인가요?, 라드 주드 감독 2015년작

건장한 사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누구나 안기고 싶은 넓은 어깨, 두둑하고 튼실한 아랫도리를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없었다. 은화 몇 푼에 사고 팔리는 노예였다. 지주의 아내는 그가 탐났다. 남편이 채워 주지 못한 쾌락을 완벽하게 느끼고 싶었다. 마님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마굿간에서 일하는 그를 찾아가 추파를 던졌다. 자신의 엉덩이를 노예의 앞섶에 문지르며 짐승이 돼 달라고 구걸했다. 노예는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계급장 떼고 한바탕 인간의 동물성에 몸을 맡겼다.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들의 행각은 곧바로 들통났다. 노예는 죽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 사이 마님은 남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감금됐다. 이 나라 법에 따르면 남편은 아내..

페트릭 쁠랑 프랑스 유기농 기업 마리노에 사장 - 인간의 위험한 욕망에 대한 사색

화학비료와 농약에서 벗어나려는 프랑스인들, GMO는 완전금지 인상 좋은 프랑스 남자다. 이름은 페트릭 쁠랑. ‘마리노에’라는 유기농 기업의 사장이다. 페트릭 쁠랑은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아주 유명한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29살 때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이렇게 살다가는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늙어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다. 페트릭은 퇴직 후 무작정 북쪽 바닷가 지역 ‘부르따뉴’로 떠났다. 거기에서 아내를 만났고, 해초 연구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삶을 일상의 안주가 아니라 창의와 정성, 보람에서 찾은 것이다. 페트릭의 해초 연구는 불모지에서 꽃을 찾는 것과 비슷했다. 한국은 산이 많고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해초를 식량으로 삼았다. 반면 프랑스는 산이 없고 ..

마띠아 바자르(Matia Bazar) - Cavallo Bianco, 인상파 아티스트

마띠아 바자르(Matia Bazar)는 감미롭지만 격정적인 마력이 숨 쉬는 인상파 밴드다. 언젠가 오래된 그림 속의 길을 보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그 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마띠아 바자르의 음악이 바로 그런 경험을 유도하는 아티스트다. 사람의 혼을 잠시 흔들어놓는 음악이라고 해야할까. 1974년 앨범 한 장을 발표하고 사라진 이탈리아 프로그래시브 락밴드 J.E.T는 역시 1973년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해산한 뮤제오 로젠바하 (Museo Rosenbach)의 쟌카르로 골지(Giancarlo Golzi-드럼)를 영입해 마띠아 바자르를 결성했다. 마띠아 바자르는 이탈리아 아트락 계보의 선두에서 탄탄한 연주와 대중성 있는 작곡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아트락 애호가들의 가슴을 ..

갱도에 새겨진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 '광명가학광산동굴'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가학광산동굴’을 찾았다. 학계는 물론 기업들까지 나서서 이 동굴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현재 광명시는 가학광산동굴을 세계적인 동굴명소로 개발했다. 40년 동안 금속폐광산이던 가학광산동굴이 개발되기 시작한 이유는 광명시가 43억여 원에 사들이면서다. 광명시는 이곳을 광산의 특성을 살린 문화체험 관광지로 활용해 지역문화산업을 발전시킬 계획을 세웠다. 특히 KTX고속철도 광명역과 10분 거리인데다 지역 주변 시설이나 관광지와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 기대감이 높았다. 가학광산동굴은 점점 시민들에게 인기 관광코스로 인정받고 있다. 하루 40~50명 수준이던 것이 요즘엔 700~800명에 이르는 수준까지 왔다하니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온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변모한 한강 노들섬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야심 찬 노들섬 프로젝트,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무산됐다. 대신 노들섬에는 서울 시민들을 위한 텃밭이 새롭게 조성됐다. 노들섬은 강남과 강북의 중간지점에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접근성이 좋은 이곳에 6,735억 원을 들여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을 만들려고 했다. 과연 오세훈 전 시장이 오페라하우스를 노들섬에 건립하는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것이 옳았을까, 아니면 여태까지 소요된 경비를 포기하고서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옳았을까. 직접 노들섬에 찾아가 보았다. 2021년 3월 6일부터 유람선을 타고 노들섬에 갈 수 있게 됐다. 매주 수 ~ 일요일 하루 1회 노들섬으로 가는 뱃길이 약 50년 만에 다시 열렸다. 서울시는 그간 노들섬을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