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시적인 소리였다. 경쟁과 질투가 가르쳐주는 세속적인 지혜와는 다르게 근원적인 야만성을 품은 울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도시의 공포감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같은 전율이었다.
강렬한 북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슴을 조여 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려는 듯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간과 공간을 끊어내며 심장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나는 연습실 한편에서 몸을 쑥 내밀고 북을 치는 광경을 지켜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은 별 얘기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떠한 얘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열정과 노력이 보이느냐고 대답하는 듯했다.
“나이 마흔이 되니까 느끼는 게 달라요. 예전에는 올라서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평지로 보이네요. 너무도 할 일이 많아졌어요.”
(문근성 예술감독을 만날 때만 해도 젊었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첫 만남의 감정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문 예술감독은 바쁜 듯싶다. 인터넷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서 활동 흔적이 선명하다.)
문근성 감독은 금산농고 재학시절 풍물을 시작해 민속촌 농악단에서 활동했다. 군에 다녀와 무용을 전공한 그는 한 예술 단체의 단원으로 활동하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싶다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공연도 하고, 강의도 다니고, 지금처럼 경제적으로도 어렵지 않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어요. 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민 끝에 그는 안락한 생활을 마다하고 미련 없이 무용단에서 나와 고르예술단을 창단했다. 하지만 예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순탄치 않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수월하지 않았어요. 제 성격에 모가 좀 있거든요. 완벽주의 같은 거요. 연습하기 전에는 상의해도 일단 시작하면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단 한 번 북을 치더라도 소리를 제대로 내고 싶거든요. 이런 점 때문에 단원들도 힘들어할 거예요."
문 감독은 작품과 관계된 것이라면 지극히 자질구레한 것까지 애정을 퍼붓는 성격이다. 때론 완벽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욕심이 지나쳐 푸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만족할만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집념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울에 온 뒤 이사를 삼사십 번은 갔어요. 보따리 싸들고 선배, 후배 집을 전전했죠. 뿌리패 단장으로 있은 후배에게는 정말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는 잠시 가슴속에 뜨거운 기운이 가득 차올라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이 시절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공연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거든요. 공연이 많은 봄, 가을은 괜찮은 편인데 여름과 겨울에는 더욱 어려워요. 리어카를 끌고 배추를 팔아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도 해요.”
그럴수록 그는 단단한 쇠붙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담금질처럼 점점 강해지고 있다.
“난타, 두드라기 같은 퍼포먼스보다 우리 민족 전통의 소리를 내고 싶어요. 예술을 상품화해서 장사하는 것이 제일 싫거든요. 우리 예술단도 그랬다면 벌써 도구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을 거예요.”
수수께끼와 같은 그의 눈동자엔 뭔가가 감춰진 듯했다.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작품을 언젠가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고집 같은 것이었다. 작품에 대한 열의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공연도 많다.
그는 “2002년 월드컵 개막식 공연과 러시아 볼쇼이 무대에 섰을 때,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와 티베트 탱화봉안식에 참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기억으로는 공연 중에 갑자기 단원 한 명이 없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액션을 취하는 동작이었는데 퇴장하는 동작인 줄 알고 무대에서 나가버린 것이다.
“엊그제는 다른 공연단의 이름으로 공연해 달라고 해서 그만뒀어요. 가끔 상식에 어긋나는 일도 벌어집니다. 모두가 예술인들을 무시하는 풍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만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북소리는 여러 가지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가끔 밤의 적막함을 더욱 고조시켜 시적인 분위기에 빠지게 하고 울적하거나 들뜬 마음을 극대화시킨다. 또 혁명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거나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 서는 전위적인 감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때문에 북소리는 용기와 의지를 심어주는 삶의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앵앵거리는 도시의 소음이 마치 빈 양철통을 울리는 것처럼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오후다. 이런 날에는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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