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261

신나라 작곡가 - 무대예술 신기원 여는 음악극

신나라는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다. 여러 장르의 예술 가운데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분야는 음악극이다. 여태까지 그가 쏟은 열정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그를 얘기하지 않고서는 음악극을 논할 수 없다. 유럽에서 음악극은 지명도가 꽤 높지만 한국에서는 토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음악극은 대사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더해 대사를 음향으로 생각한다. 목소리를 하나의 소리로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발음할 때 이 발음이 어떻게 울리고 멜로디는 어떠한지, 소리에 반응하고 자극받고, 에너지를 교류하는 것이 음악극이다. 음악극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린다.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신기해서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신나라. 본명이다. 신나라가 작곡을 공부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우사랑 시민청 홍보 담당관 - 서울시민이 주인인 공간...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서울시가 문턱 높고 왠지 가기 꺼려지는 관공서를 시민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서울시민이 서울시의 ‘주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곳 ‘시민청’이다. 시민청은 공연, 전시, 휴식 공간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공간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4년 시민청을 철거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미래의 서울, 한강 모습을 보고 체험하는 전시장 ‘서울갤러리’를 개장한다.  서울시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있다. 인근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이 있고, 그곳들에서 실제 민족주의를 고취하거나 대한민국, 서울, 한강을 주제로 한 전시도 많이 열렸다. 그런데 서울시는 또 시민청을 없애고 서울시를 홍보하는 전시장을 연다..

김성평 연기트레이너 - 배우 조련하는 ‘마이다스의 손’

현대사회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시각적인 자극을 요구한다.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배우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예인도 직업이다. 자신만의 재능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힘들다. 쉽게 얘기하면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하고, 배우는 연기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자극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개성도 매우 중요하다. 예쁜 얼굴만 믿고 연기를 시작했다가 ‘발연기’로 혹평을 받은 스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김성평 연기트레이닝센터 원장은 외모보다는 ‘자세’과 ‘매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인의 목표가 중요하다. 배우를 왜 하려고 하는지, 배우를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지. 배우에 대한 만족도가 없으면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5~10년을 해도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준비가 ..

현정환 리디북스 콘텐츠팀장 - 까다로운 잡지시장 공략

리디북스가 국내 최초로 잡지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시작할 때 현정환 리디북스 콘텐츠팀장을 만났다. 그는 리디북스 창업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 당시 국내 전자책 시장에는 시나 소설, 만화만 나왔을 뿐, 잡지가 전자책으로 출시된 적은 없었다. 잡지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잡지사들은 돈도 안 되는 데 자칫 잘못하다 매체 이미지만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해득실을 따졌다. 하지만 잡지사들의 더 큰 고민은 시장을 넓히는 것이었다. 잡지사들은 오프라인 잡지 시장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고품질의 전자책 서비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또 잡지의 독창적인 편집과 디자인을 유지하는 리디북스의 플랫폼은 물론 그동안 전자책 업계에서 쌓아온 이들의 관록도 무시할 수 없었다. 리디북스 콘..

이민혁 화가 - 도시문명의 슬픈 스크래치

이민혁 화가의 마음속에 흐르는 서글픈 기억들이 스스로를 강인하게 이끌고 있다고 직감했다. 낙천적인 감정만으로는 그의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즐거워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기 내부에 선천적인 특질로 스며들었고,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풀어내는 원동력으로 변용됐다. 그의 작품은 가슴에 스크래치를 낸다. 미친 듯이 앞을 다투며 뛰어가는 도시문명과 그 속에 휩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슬픈 잔상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뜨거운 빛과 먼지가 띠를 만들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다. 이민혁 화가는 서울의 일상적인 단면을 현란한 색채들이 난무하는 선으로 형상화한다. ‘사회적 갈등, 익명성과 존재,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경제개발과 상업주의..

조성하 배우 - 착한 신스틸러에게 세 가지를 배우다

조성하 배우가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에 출연할 때였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와중에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오래 기다려야 해요, 현실적으로 서면 인터뷰가 좋습니다.” 그 당시 조성하 배우는 영화, 드라마, 시사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서면 인터뷰로 방향을 틀었다.  조성하 배우는 스크린에서 절제된 카리스마로 주목을 받았다. 중저음의 목소리와 촬영장을 압도하는 무게감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깊이를 한층 더 높였다. 하지만 그의 카리스마를 최고조로 업그레이드하는 건 역시 ‘선한 인상’. 그의 엇구수하고 눅지근한 인상은 시쳇말로 ‘모든 걸 용서하게 만든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세 가지를 배웠다. ‘유머 감각을 갖고 현실에 ..

권태균 사진작가 - 1980년대 기억나세요?

인생이 무상하다. 내가 권태균 작가를 만났을 때, 그는 1980년대 이후 201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2010년대가 무척이나 기대됐다. 그때와는 매우 다른 옷, 다른 머리스타일, 다른 풍경, 다른 가옥 등을 포착한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2015년 1월 첫 번째 사진집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럽게 타계하고 말았다.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버스 안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가족, 군기가 바짝 든 군인과 그 옆에서 머리카락을 빗고 있는 숙녀, 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인사하는 노인들, ‘몸빼’를 입고 곡식 포태와 함께 경운기에 실려 가는 아낙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을숙도의 노인들 등 하나 같이 정겹고 아스라한 흑백사진이었다. 하지..

이서준 배우 -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SBS ‘아름다운 그대에게’

이서준 배우를 만났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변요한의 조카 와키자카 사헤에로 분한 이서준이 아니다. 꽃미남천국이라고 불린 SBS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에 출연한 배우 이서준이었다.  이서준은 드라마에서 뚜렷한 이목구비와 서글서글한 인상, 따뜻한 성품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소식이 뜸하다. 2021년 ‘너라는 별’과 ‘오늘 달이 참 예쁘다고’로 잠시 가수로 활동하긴 했는데, 지금은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영화배우 소피아로렌은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아름다움은 마음으로 느껴지고 눈빛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서준에게는 그것이 느껴졌다. 훤칠한 외모, 소위 ‘조각미남’ 계보를 잇..

희정 작가 - 애착을 잃지 않고 사는 삶들을 존경하는 사람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출간을 준비할 때였다.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저자들과 만나 회의를 했다. 저자들 중 아주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희정 작가다. (이 책은 쿠팡의 피해실태를 중심으로 서비스산업 전반에 고착화된 노동착취와 고강도 야간노동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저작이다.) 희정 작가와의 첫 만남은 2012년이었다. 그의 단편 소설 이 민중문학상 신인상 우수작으로 선정돼 인터뷰했다. (그 당시 나는 문화부장이었고, 한국작가회의 선생님들과 함께 민중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희정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상상력과 조어력이었다. 문학상 출품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즉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소재를 일상으로 끌어들여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에서 높은..

이은봉 시인 - 삶의 질 높이고 민족통일에 기여하겠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 민중문학의 위상을 높이려고 ‘민중문학상’이 제정됐다.  이은봉 시인은 2012년 제1회 민중문학상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당시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었다. 나는 민중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상냥했지만 내강의 태도를 견지한 시인이었다. 이은봉 시인은 “민중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세계적인 위상을 강화시켜 나갈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과 민족통일에 기여하는 일에 적극 나설 작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민중문학상은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유보된 뒤 아직까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은봉 시인은 광주대에서 퇴임하고 대전문학관 관장으로 4년을 역임한 뒤 세종에서 창작활동을..

최영일 시사평론가 - 신중하고 유머러스한 ‘티빠(티파니광팬)’

나는 최영일 시사평론가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부고를 받자마자 생각했다. 부고를 자세하게 읽어보지 않고 ‘아버님이 돌아가셨구나. 가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워낙 바쁜 분이라 만나기도 힘들었고, 만난 지도 좀 됐는데 어쩌지?’라고 고민했다. 출판업계에 종사하던 최 평론가의 동생 분과도 술 한잔 마신 적 있어서 더욱 망설여졌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시간이나 일 모든 게 더는 관계를 잇지 못한 상황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 어색하기도 했다.며칠 후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시사평론가 최영일 씨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 아뿔싸였다. 나는 최 평론가가 임종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최영일 평론가가 보낸 문자는 그의 가족이 보낸 것이었고, 부고는 최영일 평론가의 아버..

최민화 화가 - 리얼리티를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민화 작가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 인터뷰 약속이 잡힌 날도 과음해 불그레한 얼굴로 나타났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는 “술 취해 돌아다니면 노숙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술에 취하면 다 잃어버리기 때문에 핸드폰도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며 웃어버렸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다.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려면 어느 정도의 그늘은 드리워져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늘의 양이 상당했다. 그늘의 정체는 1980년대를 겪었던 시대의식과 앞으로 그려 낼 작품에 대한 소명의식이었다.   최민화 작가의 본명은 최철환(崔哲煥)이다. ‘민화’라는 이름은 ‘들꽃’ 혹은 ‘민중은 꽃’이라는 의미로 지은 예명이다.   최 작가는 민족미술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1987년 이..

이흥덕 화가 - 미술 고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

수척해진 마음을 어루만지며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아옹다옹 다투며 공멸해 가는 인간 군상을 목격한 까닭이다. 몇 번이나 농담을 늘어놓으며 헐벗은 마음을 중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왼쪽으로 눈동자를 돌린 한 소녀의 ‘잔상’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숲 속에서 벗어나려고 종일토록 걸어 다녀도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으스스한 소리로 되돌아오는 산울림처럼.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터널을 지나 넓고 밝은 곳으로 나왔다. 하지만 쉽사리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비스듬하게 뻗은 도로 사이에 펼쳐진 배추밭 가로줄 이랑이 정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 -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사람

원시적인 소리였다. 경쟁과 질투가 가르쳐주는 세속적인 지혜와는 다르게 근원적인 야만성을 품은 울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도시의 공포감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같은 전율이었다. 강렬한 북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슴을 조여 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려는 듯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간과 공간을 끊어내며 심장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나는 연습실 한편에서 몸을 쑥 내밀고 북을 치는 광경을 지켜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은 별 얘기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떠한 얘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열정과 노력이 보이느냐..

방효성 작가 - 사유하는 몸으로서의 행위예술가

방효성 작가는 행위예술가다. 그 연장선상에서 회화와 설치미술을 병행하며, 매체의 다양성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오브제를 해석하고 형상화한 언어들과 우발적이고 독창적인 행위예술로 풀어내는 미적 욕구는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독특하면서 따뜻하다. 2005년에 방효성 작가를 만났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쉐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소식도 들었고,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2023)’라는 퍼포먼스도 사진으로 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왕성한 활동으로 노장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방효성 작가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80년대 초반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이 시절의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시적 표현들은 ‘드로잉..

문경식 정광훈추모사업회장 - 운동가는 그래야 해

정광훈. 고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두툼하게 열린 가슴’이다. 피 터지는 시위 현장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와 위트로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도대체 저분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늘 궁금했었다. 문경식 추모사업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넉넉하고 낙관적인 분이다. 안된다고 타박하지 않았고, 실망하는 법도 없었다. 힘든 상황이 닥칠 때도 ‘쉬운 일이면 우리에게 오겠냐. 어려우니까 온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를 북돋아줬다. 기술이 좋은 분이셨다. 1970년대 티브이가 보급될 당시 못 고칠 가전제품이 없을 정도로 재주가 좋았다. 돈을 엄청 벌었지만 농민운동한다고 다 접었다. 보통사람들처럼 돈을 벌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

최대선 작가 - 세상의 아름다움을 희구하다 미술가가 되다

원색적인 팝아트에 익숙해져서일까? 순간적으로 매료시키는 구상 미술에만 현혹돼 왔을까? 전시장에 가득 찬 고요한 열정이 어색하지만 흥미롭게 마음을 뒤흔든다. 분명한 것은 위대한 화가의 미술만 주류를 구성하는 것도,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미술사적 해석의 틀로만 작품을 이해하려는 것도 우매한 감상법이다. 정확한 데생력과 색채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미술도 있지만 마음속에 색다른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미술도 존재한다. 최대선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그는 유다른 표현력과 예사롭지 않은 인내심으로 작품에 묵직한 기품을 담아낸다. 자신만의 독특한 비구상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면서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통찰하려고 애쓴다. 그가 비구상 작품을 시작한 이유도 오랜 연습과 통찰의 과정 중에 발현됐다. ‘..

지형범 영재로드맵컨설팅 대표 -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정말 비정상일까?

‘영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진 않았다. 목표를 성취하는 데 아이큐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대부분 영재의 천재성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뤄졌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영재든, 영재가 아니든 누구나 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며, 영재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그에 알맞은 교육과 사회적 환경이 요구된다. 지형범 영재로드맵컨설팅 대표도 상위 2%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 모두 뛰어난 성과를 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능이 높아도 스스로 계발하지 않거나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남다른 두각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명문대학에 다니거나 의대, 치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멘사 회원 중에 10~15% 정도다. 비율로 보면 80~90%..

한도숙 시인 - 그것은 모두 투쟁의 불씨

비애를 맛봤다. 농민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아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한도숙 시인(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계급보다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 더욱 밀착했다. 아무래도 시인이 농민이어서 그럴 테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밥쌀 수입은 안된다’고 외치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끌어안으면서 강요된 농정과 예속을 과감히 거부하라고 부르짖고 말았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가슴에 진 시퍼런 멍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은 모두가 투쟁의 불씨가 된다.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저는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거로 생각됩니다. (웃음) 고맙고요. 우선 백남기 회장님의 쾌유를 빕니다. 또한 가족들에게도..

나운하 가수 - 갑질, 이해는 하는데 ‘야’, ‘너’는 못 참겠더라

글을 쓰는 재주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글을 잘 쓴다고 모두에게 감흥을 주는 건 아니다. 마음 없이 머리로만 써서 그렇다. 사람을 움직이는 글은 역시 마음에서 우러난 글이다. 노래도 똑같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목소리에 마음을 담아내지 않으면 감흥을 주지 못한다. 감동적인 무대는 진심 어린 마음과 노래 부르는 재주가 합쳐져야 만들어진다. 가수 나운하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노래를 들려준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심각하면 심각한 대로, 곡의 분위기에 맞게 감정을 담아낸다. 어떤 노래라도 열심히, 주의 깊게 하려는 그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털털한 외모와 다르게 천성이 곱고 정이 많은 성격이 자연스레 작용했다. “오랫동안 부르다 보니 노래의 맛을 알게 됐다...

김국희 배우 - 알잖아요? 버텨야 한다는 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털털한 성격, 생글생글한 표정과 시원스러운 목소리는 누가 봐도 딱 연극배우다.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래도 배우가 천직인 듯싶다. 아니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마음이 따뜻하니, 선생님을 해도 좋았겠다. 살면서 배우 김국희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한효주 같은 외모에 신민아 같은 몸매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녀가 내로라하는 인기 배우들 틈에서도 여러 작품에 계속해서 콜을 받고 있는 이유다. 진지하고 능글맞은 그녀의 연기는 한순간에 관객을 압도할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김국희는 대학로가 공인하는 할머니다. 그녀만큼 할머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동료 배우들의 중론이다. 배우에게 이미지가 굳어지..

김지운 감독 - 조선적 입국 국가가 책임져야

다큐멘터리 는 재일동포 연극인 김철의를 좇는다. 가 뒤좇는 것은 '연극인' 김철의가 아니다. 연극인으로 보자면 김철의는 종횡무진이었다. 그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8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2010년에는 일본에서 젊은 연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다큐가 따라잡는 것은 '재일동포' 김철의다. 김철의는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조선적'이다. 김철의의 꿈은 조부모의 고향인 제주에서 자신의 작품 '하늘 가는 물고기, 바다 나는 새'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국 방문은 번번이 무산됐다. 잠시 조선적에 대해 알아보자. 1947년 일본 정부는 외국인 등록령을 발효하고, 재일동포 60여 만 명의 국적을 조선으로 표시했다. 이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노현희 배우 - 꽃 대신 라면이 좋아

노현희가 SBS 드라마 에서 마동희로 분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눈치 없고, 현실 감각 부족한 모태솔로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역시 배우였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감칠맛 나는 노처녀 연기였다. 시작부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노현희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이다. 노현희 배우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비롯해 드라마,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랫동안 배우로서 보여준 행적보다 성형과 이혼이라는 키워드에 저당 잡히고 말았다. 는 노현희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작품이다. 이후 노현희는 ‘성형 아이콘’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에 당당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따로 운동하거나 건강..

안대천, 김서진 연희집단 The광대 - 밀당이 뭔지 아는 정말 광대

일품이다. 참으로 볼만하다. 몸도 날렵하고, 기예도 출중하며, 감성도 풍부하다. 영상만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보면 감동의 도가니겠다. ‘연희집단 The광대’는 이름 그대로 전통예술을 우쭐우쭐 제 몸처럼 부려재낀다. 재인들이 다 모였다. 정말 광대다. 기성을 터뜨리고, 흥을 돋우며 훌떡훌떡 판을 휘젓고 다닌다. 이 맛에 연희극을 즐긴다. 아직도 우리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옛날엔 세상에 버려진 살덩이로 태어나 광대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재기와 솜씨, 기교의 영역을 넘어 우리 전통을 지키는 책무를 스스로 인지해야만 가능하다. 연희집단 The광대, 안대천 대표와 김서진 연출가가 연희에 몸을 담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안대천 대표의 뜻은 소박했다. “연희가 좋은..

김애리 작가 - 3년 정도만 ‘뻔뻔함의 아이콘’으로

당찬 여자다. 통번역회사와 스토리텔링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는 CEO. 삶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밥벌이는 열심히 하니, 이것만으로는 당차다고 할 수 없다. 김애리 작가가 당찬 이유는 따로 있다. 김 작가는 퇴근 후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책을 읽고 쓰는 일을 20대 내내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30살이 되기 전에 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크고 작은 공모전에 도전해 당선된 이유다. 여전히 그녀는 해마다 평균 100여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다. 그녀의 꿈은 어릴 적부터 줄곧 ‘책과 함께 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쨌든 어린 시절 꿈은 이뤘다. 어른이 된 뒤에는 어떤 직장이나 어떤 조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자유와 행복을..

정해영 심리치료사 - 세월호 유가족 분통 트이도록 도와야

혼란의 시대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우리나라호’는 목적지 없는 항해 중이다. 애초부터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발 빠른 대책 수립, 철저한 진상규명이 뒤따랐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무능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정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아픈 마음조차 위로해주지 못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가는 곳마다 ‘멘붕’이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넋두리는 보통. 이제는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묻는 시민을 연행하고, 해경 해체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정부를 보면서 희망 없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또 어렵게 세운 민주주의도 훼손됐다며 두려움까지 표현한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언론통제, 친기업 정책, 권력기관 강화, 복지정책 후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

아트사우루스 - 리어카 끌고 도심 싸대는 여자들 왜?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젊은 예술가 4명이 뭉쳤다. 사회적 예술가 집단을 표방하고 나선 ‘아트사우루스’다. 아트사우루스는 보영사우루스(미술), 바니사우루스(미술), 유현사우루스(미술), 이음사우루스(글)로 구성돼 있다. 이 이름은 본명 뒤에 ‘사우루스’를 붙인 것이다. 아트사우루스는 스스로 “유명하지도, 이력이 화려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만큼은 뚜렷하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사회 인식에서 비롯한 주견이다. 이들은 ‘지금’을 논하지 않는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고민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라는 이름의 퍼포먼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이름으로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장우석 박승현 - 철가방 들고, 중고 오토바이 타고 31개국 누빈 청년

삶에 여행이 요구될 때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다. 위만 바라보고, 갈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생활에 얽매이고,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놓지 못해서다. 게다가 이런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떠나는 ‘관광’과 성격이 다르다. 야자수와 산호초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파타야 해변이나 설산과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 바이칼 호 같은 명소로 떠나는 눈요기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거리에서 전혀 다른 삶과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정이며 준비할 것, 따질 것 없이 그대로 떠나는, 고단하고 궁핍한 생활 또한 각오해야 하는 모험에 가깝다. 어떤 이들은 이런 여행을 일탈로 간주한다. 풍요와 안정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자신을..

이승연, 알렉산더 어거스투스 작가 - 두려운 도심의 수많은 십자가들

붉은 십자가. 정교한 패턴과 영기로운 옷매무새. 엄숙하고 성스럽다.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해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청량감이 밀려온다. 은유의 미학이랄까.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진다. 숭고한 종교 윤리와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 돈의 권능, 생활과 동떨어진 예술 앞에 많은 민중은 무력감을 느껴오지 않았나. 이승연, 알렉산더 어거스투스(Alexander Augustus) 작가는 ‘한국의 종교와 미래’를 주제로 2100년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 혹은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할 수 있는 아트 오브젝을 선보였다. 작품은 종교를 대변하지만 계율을 강제하거나 청교도적이지 않다. 금기 혹은 절대 선을 향한 강요도 없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인용한 성경구절을 엮어 기독교의 현실적인 도구와 수행 과정을 형상화했다. 수많은..

박정민 사진가 - 4대강 기록하다

인간이 바꾼 지구 환경의 대표적인 예는 강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댐을 만들고, 보를 만들고, 물길을 새로 뚫었다. 강을 바꾸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늘 생겨, 처음 생각했던 예산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바뀐 강은 한 나라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 특히 환경파괴는 심각했다. 강과 강 주위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이 죽음 직전에 내몰렸다. 녹조가 일어난 지역의 물속 생태계는 거의 몰살당했다. 또 보의 상하류 흙은 파였고, 지형도 변해 생태계는 교란됐다. 한마디로 한 나라의 공적자금을 탕진했지만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많은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은 불도저식이었다. 공사 길이 634km에 이르는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넉 달 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