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숙 - 죽음의 무게를 보여주는 ‘늙은 여자의 뒷모습’

종로 3가 한복판. 머리를 산발한 채 길거리에 엎드려 누워 있는 맨발의 늙은 여자를 봤다. 한 겹 두 겹 덧칠하듯이 얼굴을 뒤덮은 거무스름한 검버섯과 축 늘어지다 못해 겹겹이 엉겨 붙은 목주름,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말라 금이 간 발바닥이 그녀의 고단한 일상을 그대로 투영했다.  사람들은 늙은 여자가 불쌍했을까?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그녀 앞에 붕어빵을 놓아두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는 불같이 분노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발끈 화를 내며 붕어빵을 그 사람에게 던졌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절규하는 듯했다. 장숙 작가의 ‘늙은 여자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늙은 여성의 몸을 사유하듯이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운명의 끝..

미술과 인물 2024.04.24 0

이영 - 다종다양한 생물과 사물이 상호 연결된 인드라망

동심원은 다채로운 색채가 변주하고, 올록볼록한 형태미를 발산한다. 원형이 반짝이고, 원형 구조가 어우러지고 확장하면서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다양한 원형의 색채와 조형, 찬란한 빛의 음영과 볼륨으로 색다른 공명을 전한다. 고도로 세련된 도안적 구성은 강렬한 생동감과 밀도 높은 침성(묵직하게 가라앉는 성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허공에 겹쳐 놓은 것 같은 수많은 원형 이미지를 창조하고, 조화롭게 병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실험을 했을까? 이영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얼마나 많은 생물과 사물이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살면서 진화하고 윤회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불교 철학에서는 이를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인드라망은 에 나오는 말로, 서로 연결돼 있고 서로에..

미술과 인물 2024.04.21 0

장 자크 상페(Jean-Jacques Sempé) - 지금도 사랑받는 꼬마 니콜라와 좀머 씨

장 자크 상페는 삽화가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호소하며 호두나무 지팡이를 쥐고 어디론가 계속 걸어가던 좀머 씨의 모습을 그린 만화가다. 끝내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좀머 씨의 마지막 모습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보다 그의 그림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다. 인간의 원초적 욕구와 외로움,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그의 마지막 절규는 잔잔한 그림 하나로 충분히 전달됐다. 장 자크 상페는 1932년 프랑스 페삭에서 태어났다. 군 제대 후 신문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르네 고시니와 함께 만들어낸 동화 ‘꼬마 니콜라’가 신문에 연재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는 1959년 첫 발표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스테디 설러이자 어린이를 위한..

미술과 인물 2024.04.17 0

이생강 - 듣는 이들의 마음 사로잡는 피리소리와 대금산조, 퉁소가락

대금, 단소, 태평소는 알아도 피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다. 피리는 잘 알려진 악기 같지만 실제로 본 사람도,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드물다. 피리는 소리 자체가 요괴스럽다. 여릿하게 불면 정신을 나긋하게 만든다. 힘을 아주 빼고 불면 구슬프고, 힘 있게 내불면 가슴이 대차게 두드리며, 흥을 실으면 애간장을 녹인다. 죽향 이생강 선생의 피리소리는 듣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한밤중에 바람 소리처럼 평화롭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청아하다. 피리의 미세한 음 처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교 때문이다. 이생강 선생은 곧고 청아한 ‘대금’ 연주로 잘 알려진 명인이다. 하지만 피리, 쌍피리, 단소, 소금, 퉁소, 태평소 등 모든 관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타고난 예인이자 전설적인 연..

이 음악 좋다 2024.04.17 13

문화예술연예뉴스 동동

[행사] 가정의 달에는 시민청으로...뮤지컬과 샌드아트, 캐릭터 미술 체험 무료 진행

5월 가정의 달의 맞아 서울시청 지하 1, 2층에 위치한 시민청에서 다양한 행사가 무료로 열린다.  가족 뮤지컬 ‘사슴 코딱코의 재판’은 5월 9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 2층 바스락홀에서 열린다. 이 뮤지컬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각색한 작품으로 젊은 창작자들의 모임 ‘엠제이플래닛’이 무대에 오른다. 예매는 네이버 온라인 예매와 당일 현장 방문으로 진행된다. 휠체어 이용객은 휠체어석을 별도로 예매할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샌드아트 프로그램은 5월 15일 오후 2시와 오후 4시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 2층 태평홀에서 열린다. 이 프로그램은 샌드아트로 부모와 자녀 간의 소통과 추억을 선사하는 체험행사다. 참여 신청은 5월 2일 오후 2시부터 네이버 예약으로만 진행된다. 시민청 전시 연계..

[행사] 5월 5일 경복궁에서 인형 탈을 쓴 수문장과 수문군 파수 의식...4대 궁 무료입장

어린이날인 5월 5일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와 함께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조선왕릉, 세종대왕릉을 찾는 보호자 2명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경복궁 광화문에서는 5월 5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는 인형 탈을 쓴 수문장과 수문군이 광화문 파수 의식을 거행한다. 4일부터 6일에는 조선시대 중앙군의 정예 병사였던 갑사(甲士)를 선발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축제] 세상에서 가장 이색적인 동물원 ‘DDP 봄축제: 디자인동물원’ 개장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DDP 봄축제: 디자인동물원’이 5월 3일부터 6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어울림 광장에 조성된다. 디자인동물원에는 실제 동물은 없지만 동물디자인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놀이터를 비롯해 캐릭터 퍼레이드, 잔디언덕콘서트, 동물가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DDP 봄축제: 디자인동물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DP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 - 전문 읽기

밥줄이야기 -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우리는 왜 인생의 마지막에 도달하기 전까지 주의 깊고 진지하게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해 생각하지 못할까. 이제는 삶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불가해하게 뻗쳐 있던 길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리라. 이 책은 소와 돼지를 잡는 도부를 비롯해 때밀이, 누드모델, 바텐더, 무명가수, 로프공, 트럭노점상, 교도관, 우편배달부, 밴드 마스터, 산불감시원, 무당(무속인) 등 우리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낸 이유는 불현듯 삶이 괴롭고, 산다는 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 우리 이웃의 삶을 둘러보면서 힘을 내기를 원해서였다. 또 사람들의 모진 곁눈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재조명해보고도 싶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

밥줄이야기 2021.04.03 0

칼로 새긴 장준하 - 2019년 세종도서

「칼로 새긴 장준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적시해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도록 도왔다. 다소 무겁고 재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사색할 수 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해 다큐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칼로 새긴 장준하」에서 장준하 일대기 부분은 장준하 선생이 직접 쓴 「돌베개」를 참조했다. 그러나 모든 감정 표현과 상황 설명, 일부 등장인물 또한 창작해 반영한 허구임을 밝힌다. 이 책이 만약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돌베개」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은 눈곱만큼도 「돌베개」를 따라갈 수 없으며 전혀 다른 이야기다. 「칼로 새긴 장준하」에 실린 판화는 「돌베개」의 내용을 100% 재현한 진실이다. 장준하 선생의 6천리 항일대장정을 따라가며 한 땀 한 땀 ..

주피터 프롤로그

조지프 니덤은 휠체어에서 눈을 떴다. 오한과 통증이 잠을 깨웠다. 연이어 구역증이 치밀었다. 진통제 과다 복용이 부른 후유증이었다. ‘인생 말기는 끔찍한 형극이야.’ 선잠을 길게 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구부정한 허리를 쭉 폈다. 찌릿한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니덤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허벅다리를 내리쳤다. 피부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부스럼이 진물을 쭉 내뱉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프기보다는 시원한 표정이었다. 딱지가 엉겨 붙을 때까지 가려움을 참았던 분풀이었다. 채광창으로 햇빛이 내리비쳤다. 눈이 몹시 부셨다. 니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탁상 위에 18세기 중국 청나라풍 소반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늙은 중국인 가정부가..

주피터 2022.07.28 0

개망나니의 사색 - 크로키와 함께 떠나는 바다 여행

바다로 떠난 여행은 나와 영원히 나눠야 할 대화로 채워졌다. 영혼의 부르짖음이나 자기반성도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저질렀거나 목도했던 고통, 횡포, 슬픔 같은 것, 사회의 부조리가 양산하는 것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먼저 살폈다. 육체는 어딘가에 벗어 놓고 정신만 돌아다닌 여행,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과의 싸움이 바로 바다로의 여행, 개망나니의 사색이었다. 연평도는 천혜의 자연이 서로 몸 부대끼며 특유의 정취를 연출했다. 넘치지 않았지만 부족한 것이 없는 곳, 여행지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편하게 위로받고 휴식할 수 있는 곳, 온정이 넘치지만 각박한 삶 또한 엿보이는 곳, 특별히 무엇이 아름다운지 얘기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는 곳이었다. 연평도는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

개망나니의 사색 2021.04.04 0

강경대 평전 - 1991년 5월 투쟁의 꽃

故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도중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사복 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아 심장막 내출혈로 숨을 거뒀다. 열사의 주검은 노태우 독재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히는 계기가 됐으며, 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운동, ‘5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나는 이 책을 고리타분하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책이란 쓰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보다 읽는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이 책을 ‘부드러운 평전’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나는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으며, 비록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풀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

강경대 평전 2021.04.0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