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3가 한복판. 머리를 산발한 채 길거리에 엎드려 누워 있는 맨발의 늙은 여자를 봤다. 한 겹 두 겹 덧칠하듯이 얼굴을 뒤덮은 거무스름한 검버섯과 축 늘어지다 못해 겹겹이 엉겨 붙은 목주름,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말라 금이 간 발바닥이 그녀의 고단한 일상을 그대로 투영했다.
사람들은 늙은 여자가 불쌍했을까?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그녀 앞에 붕어빵을 놓아두고 빠르게 걸어갔다. 그녀는 불같이 분노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발끈 화를 내며 붕어빵을 그 사람에게 던졌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나는 노숙자가 아니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고 절규하는 듯했다.
장숙 작가의 ‘늙은 여자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늙은 여성의 몸을 사유하듯이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운명의 끝에 닿았을 때, 인간은 가장 순수한 자신과 만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은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늙은 여자의 몸은 쭈글쭈글했다. 오랜 시간과 세월의 무게를 짓눌려 마모됐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무겁거나 수척해 보이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게 통찰하는 듯 자혜롭고 평화로웠다. 아니, 모든 욕망을 놓아버린 것 같은 ‘순수함’ 마저 느끼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몸은 육체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된 모습이지만 강하고, 의연해 보였다.
젊은이들은 축 늘어진 할머니의 몸을 보면 낙담할지 모른다. 사랑도, 인정도, 우리의 삶을 보다 깊고 섬세한 것으로 채워줬던 모든 것을 두고 홀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슬퍼할 것이다. 죽음이란 어쩌면 알 수 없는 절망과 어둠이 서려 있고, 끝을 알 수 없는 고독과 슬픔이 스며들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사유의 폭을 넓혀 본다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이라는 강렬한 바람에 밀리다가 언젠가는 죽음의 세계 위에 서게 된다. 인간은 죽음을 느끼면서 더욱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타락과 소멸을 순수와 재생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 전력을 다한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며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회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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