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730

김국희 배우 - 알잖아요? 버텨야 한다는 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털털한 성격, 생글생글한 표정과 시원스러운 목소리는 누가 봐도 딱 연극배우다.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래도 배우가 천직인 듯싶다. 아니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마음이 따뜻하니, 선생님을 해도 좋았겠다. 살면서 배우 김국희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한효주 같은 외모에 신민아 같은 몸매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녀가 내로라하는 인기 배우들 틈에서도 여러 작품에 계속해서 콜을 받고 있는 이유다. 진지하고 능글맞은 그녀의 연기는 한순간에 관객을 압도할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김국희는 대학로가 공인하는 할머니다. 그녀만큼 할머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동료 배우들의 중론이다. 배우에게 이미지가 굳어지..

아메리칸 셰프 - 욕망의 한계 알면 목표도 분명해진다, 존 파브로 감독 2014년작

직장을 옮기거나 직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계기가 있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삶의 의미를 그저 돈 버는 것에서 만족하는 이유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찬물 더운물 가리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다 삶은 어느덧 종지부를 찍는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얻는 만족과 결실을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적당한 여행과 맛난 음식, 일상의 자잘한 쾌락에 몰두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살면서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고민은 적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

한성필 '지극의 상속'전 - 시간 층위서 발견한 인류 책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거대한 빙하는 수정처럼 희고 푸른 빛을 발산하고, 하얀 설산은 신이 아니면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영험한 자태로 우뚝 서 있다. 하늘은 신묘불측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처럼 청월한 빛깔에 눈부터 휘둥그레진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흙마저도 지극에서는 예사롭지 않고, 하얀 얼음 위의 연못은 말 그대로 보석처럼 빛난다.하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인간은 침범했다. 흉물스럽게 녹슨 배와 탄광,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수용소, 선혈이 낭자했던 전쟁의 흔적들이 대자연에 매몰된 채 고스란히 남아있다. 소담하게 지어진 가옥과 도로, 자동차는 대자연 앞에선 미물이다. 남극과 북극은 현대인에게 오지로 읽힌다. 영겁의 세월에 걸쳐 생성된 거대한 빙하와 극한의 추위, 희귀 동물의 서식지 정도로만 우리에게 ..

타임 패러독스 - 조작된 공포에 짓눌린 세계,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감독 2014년작

지적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은 환호할 영화다. 영화가 꽤 복잡하고 생각을 요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것 같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들어가 관람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재밌다. 잠시 '왜'라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가 바로 다. 이 영화에서 범죄예방본부는 현재 일어난 범죄를 막기 위해 과거로 수사관을 잠입시켜 악당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이 조직은 특수한 타임머신을 이용해 템퍼럴이라는 요원을 투입하고, 과거에서 범죄자를 죽이도록 한다. 하지만 이 조직은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커다란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지 않으면 해체돼야 할 운명에 놓이는 것 같다. 범죄예방본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뉴욕을 초토화시키는 폭파사건처럼 세상을 뒤흔들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조직..

상의원 - 예나 지금이나 대우 못받는 기술자들, 이원석 감독 2014년작

기대가 많았다. 옷의 정치적 의미를 신랄하게, 그것도 왕실과 사대부, 그리고 옷을 만들던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서로 얽히고설켜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극을 예상했다. 예상과 달랐다. 영화 은 코믹 요소를 가미한 스토리로 힘을 쭉 뺐다. 대중적이고 가벼운 소재로 감정을 이완시켰고, 섹시한 코드까지 접목해 시선을 자극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끔했다. 중전 박신혜와 왕 유연석의 아우라는 멋졌고, 한석규와 고수가 서로를 이해하지만 적이 되는 과정은 두 사람의 표정연기 만으로도 설명됐다. 평소 무겁고 진중한 사극이 별로인 팬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시시각각 다른 한복이 스크린에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복이 이렇게도 화려하고 다양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영화 , 처럼 정통 사극을 ..

백정은 - Nocturne, 단비처럼 가슴 적시는 노래

영롱하고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바로잡는다. 뒤틀리고 불편한 세상을 살다 보면 위안을 받을 대상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술로, 스포츠로, 여행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제철 음식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어진다. 역시 음악이 좋다. 가슴을 적셔주는 음악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올해는 많은 죽음과 마주했고,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을 목도하면서 야수 같은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이었고, 오히려 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대로 눌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희망이 없다면, 채찍질을 해서라도 추슬러 기운을 차려야 한다. 백정은 피아니스트의 노래를 듣는다. 심상을 꿰뚫는 리듬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올해는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당신은 사랑이 있나요? 진모영 감독 2014년작

국화는 맑은 눈을 가진, 나이 든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76년을 부부로 살아온 두 노인은 국화꽃을 닮았다. 학식이 높고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노인은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타인을 향한 배려와 이해, 이타심이다. 행복은 어쩌면 너무 쉽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아등바등 다투며 산다. 꼭 부부의 얘기만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 서로를 깎아내리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다 보니 행복은 저만치고,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푸념만 가득하다. 두 노인의 삶은 물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굴레, 그것을 알면서도 물질을 찾아 헤매는 ‘야성의 인간상’..

일곱난쟁이 - 친구에게 이득 볼 생각인가요? 보리스 알지노빅, 하랄드 시페르만 감독 2014년작

는 누구나 다 아는 동화 를 새롭게 각색해 일곱난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백설공주는 들러리란 얘기다. 그런데 난쟁이들의 캐릭터 특성이나 유머러스한 상황, 이야기 구조가 직설적이진 않다. 초등학교 3학년은 돼야 웃고 즐길만하겠다. 는 여느 동화와 마찬가지로 선악구조다. 버림받은 왕비가 '델라모타'가 마녀가 돼 로즈 공주를 비롯해 왕국 전체를 얼려버린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로즈 공주를 향한 진실한 사랑의 키스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그 대상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다. 이러한 설정은 아이들에게 금수저 물고 태어나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귀족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을 심어주지 않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화도 여전히 현실이고 교육이다. 계급을 타파한 이 영화의 인물 설정은 아이들에게 사..

퓨리 - 뒤집어보면 전쟁광 미국이야기, 데이비드 에이어 2014년작

영화 는 패전에 몰린 독일군과 미군의 지상전을 그린다. 적군에 대한 분노와 승리에 도취돼 인간성이 말살돼 가는 현실로 전쟁의 참혹한 속성을 드러낸다. 철저하게 파괴된 도시, 팔다리를 잃고 신음하는 병사, 구멍 뚫리고 불에 타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 영화 속 전쟁터는 딱 지옥이다. 군인들은 동료애와 헌신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에만 혈안이 된 참황을 버텨내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 “닥치는 대로 다 죽여 버려. 남은 한 놈까지 다 쏴버려.” 특히 8주 동안 군생활을 해봤고, 탱크 안을 한 번도 본적 없이 전장에 투입된 신병 ‘노먼’의 갈등과 고뇌는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고,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인간이 인간을 죽이도록 강요당하는 과정은..

빅매치 - 머리 아프고 가슴 답답할 때 보는 영화, 최호 감독 2014년작

영화 를 보고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 영화를 보러 갔을까.' 지쳤나 보다. 몇 개월 동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웃음도 많이 잃었다. 어둡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분노도 겹겹이다.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는 몸도 떨려왔다. 어떤 때는 뜨겁게 데워지지 않은 마음이 부끄러워 숨어 버리고도 싶었다. 휴식이, 잠시 생각을 멈출 시간이 절실했다. '이 나라가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성공했다.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재 악당이 돈과 쾌락을 위해, 자신의 영민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 목숨을 담보로 벌인 게임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기분이 꽤 나아졌다. 가끔 피식 웃음도 나왔고, 긴장감도 스며들었다. 챔피언만을..

혼스 - 당신의 속마음은 무엇인가요?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2013년작

찬찬히 들여다보면 꽤 흥미로운 영화다. 는 우리 사회가 내세우는 종교, 도덕, 철학, 윤리 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의식적으로 올바르고, 선량하고, 어질고, 마땅한 언행을 요구하고, 가르치며, 따라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불신, 혹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색을 그대로 내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주인공 이그는 삶에서 감정과 본능의 힘을 중요시했다. 첫사랑 여인 메린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다. 하지만 이그는 메린이 살해를 당한 뒤,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의심과 경멸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망가뜨린다. 모든 사람이 이그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지만 친구인 변호사 리 만큼은 그의 무죄를..

헝거게임: 모킹제이 - 민중이여 단결하라,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2014년작

영화 시리즈에 푹 빠진 '헝거족'들이 많다. 한 가닥 희망조차 없는 민중의 삶에 동화되고, 비인간적인 착취와 학대를 자행하는 지배계급에 분노해서다. 특히 스스로 살점을 떼어낼 정도로 처절한 살인게임은 영화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은 삶의 희원을 충족시키는 매개였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력이 주는 환희였다. 그러나 3편 는 1편 , 2편 와 사뭇 달랐다. 1, 2편은 게임이라는 형식의 유희와 환락에 치중한 반면, 3편은 전쟁이라는 폭력과 고통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 한층 더 내러티브에 집중했고, 진중했으며, 연기, 음악, 배경, 상황 등 모두 요소를 혁명이라는 화두로 결집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야기 전개는 직관적이었다. 큰 고민 없이 묵직한 주제..

김지운 감독 - 조선적 입국 국가가 책임져야

다큐멘터리 는 재일동포 연극인 김철의를 좇는다. 가 뒤좇는 것은 '연극인' 김철의가 아니다. 연극인으로 보자면 김철의는 종횡무진이었다. 그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8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2010년에는 일본에서 젊은 연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다큐가 따라잡는 것은 '재일동포' 김철의다. 김철의는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조선적'이다. 김철의의 꿈은 조부모의 고향인 제주에서 자신의 작품 '하늘 가는 물고기, 바다 나는 새'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국 방문은 번번이 무산됐다. 잠시 조선적에 대해 알아보자. 1947년 일본 정부는 외국인 등록령을 발효하고, 재일동포 60여 만 명의 국적을 조선으로 표시했다. 이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노현희 배우 - 꽃 대신 라면이 좋아

노현희가 SBS 드라마 에서 마동희로 분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눈치 없고, 현실 감각 부족한 모태솔로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역시 배우였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감칠맛 나는 노처녀 연기였다. 시작부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노현희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이다. 노현희 배우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비롯해 드라마,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랫동안 배우로서 보여준 행적보다 성형과 이혼이라는 키워드에 저당 잡히고 말았다. 는 노현희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작품이다. 이후 노현희는 ‘성형 아이콘’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에 당당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따로 운동하거나 건강..

액트 오브 킬링 -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죽여라, 조슈아 오펜하이머2012년작

따가운 햇빛에 말라 절명한 것 같았다. 한없이 입을 벌린 검은빛의 물고기가 너무나 슬퍼 보여 눈물이 났다. 저들은 사람을 죽여 강에 던졌다. 땅에 묻은 시체들은 부패하고 분해돼 강으로 스며들었다. 강은 죽은 이들의 영혼이 모이는 곳이 됐고, 죽은 이들은 물고기로 환생했다. 영화 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기가 막힌 상황극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살인마의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는지 몰랐고,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짐승을 인간으로 구환한다. 꾸민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논픽션 다큐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65년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노조원, 지식인, 화교 등 100만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였다. 잡아다가 죄를 시인할 때까지 고문했고, 죄가 없어..

봄 - 그토록 엄숙하고 고결한 사랑이여, 조근현 감독 2014년작

생각과 달랐다.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일 줄 알았다. 목탄을 드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깊은 유명 조각가와 아이 없는 조각가의 아내, 가난하고 순진한 누드모델과 날마다 그녀를 폭행하는 누드모델의 남편. 줄거리만 보면 딱, 돈 좀 있는 부잣집에서 펼쳐지는 '욕정의 거사'였다. 부끄러웠다. 왜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이 영화에 접근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세상은 더럽고, 추하고, 차갑고, 냉정한 곳이라고 단정 지으며 살지 않았는지 성찰이 필요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다소 선입견의 원인을 제공했다. 1960년대는 가난이 일상이었고, 하얀 쌀밥과 고깃국이 흠모의 대상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부자에 대한 질투와 욕망이 더욱 처절하고 직선적으로 표출되곤 했었다. 영화 은 정곡을 찔렀다. 종내 그..

박스트롤 - 희망 없는 현실 까대는 애니, 그레이엄 애나블, 안소니 스타치 감독 2014년작

등장인물부터 보자. 박스트롤. 몸집이 작고 생김새가 귀여우며, 치즈 마을 지하에서 발가벗은 채 박스를 쓰고 다니는 몬스터들이다. 반대로 악당의 두목은 어마어마하게 육중하다. 그의 부하들은 멍청하기 그지없다. 악당은 치즈를 먹을 때마다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 장면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되겠다고 느낄 정도로 징그럽게 묘사된다. 몬스터들은 너무도 순진해 저항할 줄 모른다. 악당에게 끌려가 노예로 일해도 찍 소리 한 번 내지 못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지하의 유일한 인간 '에그'가 나선다. 에그를 돕는 건 당차고 똘똘한 소녀 '위니'다. 에그가 지하에서 몬스터들과 살게 된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다. 에그는 잡혀간 몬스터를 구출하기 위해 지상에 올라온다. 하지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끔찍했다. 에그는 ..

나를 찾아줘 - 농간과 기만의 결혼생활,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작

섬뜩했다. 무서웠다. 으스스한 오한이 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은 그렇게 끔찍한 위선 덩어리였다. 오랜만에 작은 탄성을 지르며 스크린에서 빠져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게 됐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사랑하고, 아껴주며, 항상 옆에 서 있는 배우자의 진심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영화 는 겉으로 보이는 부부의 모습과 진실이 완벽하게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 관계는 늘 달콤하고 감동적인 시간만을 주지 않는다. 한때는 수정처럼 순수한 빛으로 타오르기도 하지만 갑자기 화산재로 돌변해 평화로운 숲을 덮치기도 한다.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다. 환희나 행복, 꿈이나 눈물, 아니 인간적이라고 불리는 모..

[음악극] 햄릿 아바따 - 욕망에는 대가 따르고, 혁신에는 희생 필요하다

묘무였다. 춤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대를 휘어잡고 관객을 압도하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인도 무용수 ‘아스타드데부’의 춤과 안무는 현란과 절제의 줄을 타며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무척 정갈했다. 붉은 꽃잎이 활짝 벌어지는 순간처럼, 생명력이 넘쳤다. 특히 무거운 정적에 현란한 춤이 곁들여질 때는 인간의 번뇌와 해탈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 같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을 흠뻑 빨아들이는 듯 신성했다. ‘파르바디바울.’ 청아한 목소리로 혼을 빼앗았다. 인도 최고의 가수라는 소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연 첫 시작부터 전율을 일으켰다.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맑고 고요했다. 그녀의 노래는 극적인 순간마다 무대에 흘러나와 영적인 분위..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 드라큘라와 수니파의 시원, 개리 쇼어 감독 2014년작

무료한 일상을 흥미롭게 바꿔주는 자극제로 충분했다. 대담한 선과 훈훈한 액션, 감동적인 스토리에 매료됐다.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바닥으로 내리 꽂히고, 그 충격에 수많은 병사들이 나자빠지는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영화 은 드라큘라의 시원을 밝힌다. 좋은 가문에 덕망 높고 용맹했던 그가 왜 사람의 피를 빨게 됐고, 태양과 십자가에 민감해졌는지, 이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중세는 사회적으론 봉건제도가, 사상적으론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과학 이론마저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당하던 시절이다.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잣대로 선과 악을 판가름한다. 그 어떤 선의도 교회의 뜻과 다르면 무시해 버린다. 드라큘라가 ..

제보자 -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한다, 임순례 감독 2014년작

줄기세포란 무엇일까? 단지 난치병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과학기술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다. 줄기세포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상품이자 국력을 상징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미국이 그랬고, 소련이 그랬듯이 우수한 과학기술은 돈을 벌게 했고,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렸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건도 일어났다.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제3의 만능세포'로 알려진 STAP 줄기세포의 존재를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해 화제가 됐지만, 논문의 데이터가 부정확하고 결함이 있어, 논문은 철회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AV영화 제작사가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오보카타에게 19억 원의 출연료를 제시한 것을 계기..

카트 -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부지영 감독 2014년작

영화적으로 평가하면 혼내주고 싶다. 영상은 이렇고, 플롯은 저렇고, 연기는 어떻고, 음악은 그랬고 등으로 평가는 할 수 있지만 영화 는 진심, 감독과 배우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배울 게 있어 좋은 영화다. 우리 주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 영화가 알려 줄 것이다. 물론 잘 만들었다. 감동은 기본이고 몰입도도 있다. 무거운 주제를 위트 있는 대사와 상황으로 가볍게 풀어낸 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영화다. 영화 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그렸다. 고객은 청결하고 말끔한 곳만 드나드니,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생활하..

옥수수섬 - 어쩔 수 없는 미물, 게오르게 오바슈빌리 감독 2014년작

영화 은 융통성이 없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영상은 지난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수양을 쌓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 크다. 마음속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온한 안식을 준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느끼게 한다. 이 영화 감명 깊다. 짱짱한 내러티브와 긴장감으로 무장한 영화만 재밌는 건 아니다. 덧없다. 의지할 곳이 없다. 태양은 뜨겁게 타오르고, 생의 열정은 흘러넘쳐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상하게도 진정 마음을 놓고 쉴 곳이 없다. 어렸을 때 꿈꿨던 따뜻하고 정겨운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술꾼이 되고, 방랑자가 된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하거나 아니면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마음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삶의 기쁨을..

부재하는 사람들 - 부재에서 비롯된 비참한 삶, 니콜라스 페레다 감독 2014년작

그들은 없었다.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잊힌 사람이었다. 부재한 그들은 분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기대하지 않았다. 부자들에게 천대 받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외롭고 처연한 삶이지만 누군가에게 지배되거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살았다.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역사는 부재가 아니라 과잉에서 나왔다. 그들의 부재도 역시 자본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됐다. 영화 은 자본주의가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통렬한 상처다. 그들은 폐가와 다름 없는 오두막에서 산다. 그 집은 재개발로 곧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곳에 갈 곳 없는 노인이 들어와 살았고, 어느 날 젊은 청년도 그 곳에 들어온다. 풍경은 느리고 고요하다. 다큐멘터리처럼 사..

다이빙벨 -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의 싸움, 이상호, 안해룡 감독 2014년작

다이빙벨(Diving Bell)은 세월호 침몰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다이빙벨은 커다란 종모양의 구조물로, 잠수부들이 오랜 시간 바닷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이빙벨이 바다에 투입되면 내부상층에 에어포켓과 같은 공기층을 만들어져, 잠수부들은 그곳에 들어가 쉴 수 있다. 영화 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다이빙벨의 투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15일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다. 이 영화는 다이빙벨을 매개로,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생존자 수색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팽목항의 진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참사 이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감추려는 자의 싸움 또한 얼마나 첨예했는지 그려낸다. 이 영화의 메..

할리데이 - 추억 돋우는 뮤지컬 영화, 맥스 기와, 다니아 파스퀴니 감독 2014년작

추억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수많은 일들이 마음을 괴롭히고, 가끔씩 돈과 명예에 짓눌려 사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추억 때문에 지친 삶을 위로받는다. 추억은 한 송이 꽃처럼 찡그린 얼굴을 펴게도 만든다.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세상사를 이겨내는 자기 암시를 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다. 이를 테면 잠시 삶에서 삐끗했을 때 '그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성찰하면서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돕는다. 뮤지컬 영화 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인도한다. 영화 속 옛 음악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든다. 80년대를 풍미했던 팝 넘버들과 활기찬 군무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마치 청춘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에는..

메이즈 러너 - 위키드와 토마스를 주목하라, 웨스 볼 감독 2014년작

상업주의에 물든 SF오락 영화 정도로 예상했다. 독창적인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나, 뒷짐 지고 지켜볼 태세였다. 오판이었다. 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영화였다. 뛰어난 상상력과 팽팽한 긴장감은 놀랍고 흥미롭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감동이 거기에만 머무르면, 조금은 곤란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키워드는 '위키드'와 '토마스'다. '위키드'는 제약연구소다. 이곳 연구원들은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다. 인류 멸망 이후 새로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소년의 뇌를 연구해 인류의 미래를 더 낫게 만들겠다는 대의다. 그러나 위키드는 인류에 이롭다는 명분 아래 참혹하고 잔인한 행위마저 합리화한다. 소년들을 지옥 같은 미로 속에 거대한 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다 같은 육체적 욕망, 막시밀리안 하슬버거 감독 2014년작

벌거숭이 남녀가 정사를 벌인다. 그 순간만은 거리낌도 수치심도 없다. 육체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엔진을 돌리고, 엔진이 돌아가는 시간만큼은 쾌락에 충실한다. 우리가 성욕을 해결하는 평범한 모습이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도 다르지 않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손놀림이 힘겹고,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지만 감정에 충실하길 원한다. 다큐 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여과 없이 그려낸다. 플레이보이 잡지에 대한 집착,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무모한 도전, 어렵고 감흥 없는 수음, 돈으로 파트너를 사는 매춘 등을 거르지 않고 보여준다. 카메라의 밀착도가 사실적이고 가까워 다소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이 다큐가 성행위 자체가 아니라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같은 인간의 이야기고,..

마다가스카르의 삶 - 편안한 것만 추구하는 이들에게, 난테나이나 로바 감독 2014년작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속담이 있다. 거친 음식을 먹어 똥구멍이 찢어진다, 먹은 게 없어 똥이 나올 리 없는데, 굶주린 배가 아파 힘을 주니 똥구멍이 말라 찢어지고 만다는 의미다. 마다가스카르에 살고 있는 빈민의 삶이 그러하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는 집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다. 여벌의 소반 하나가 없고, 옷차림새는 항상 가년스럽다.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들면 마음이 궁색해진다. 자기 삶이 어려우니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생계조차 잇지 못할 정도가 되면 가난은 공포가 되고, 사람을 짐승으로 변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인 빈민은 당당하고 억척스럽게 가난을 이겨낸다. 평화롭게 삶을 구가한다. 구김새도 없고, 원망도 없다. 구걸하는 이도 없다, 가난하지만 미천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 무기를 들어라, 정성복 감독 2014년작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일까 저어했다. 로맨스가 섞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상업 뮤지컬의 한계겠다. 아니었다. 뮤지컬 은 프랑스혁명의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계급투쟁, 더 나아가 시민혁명의 가치를 옹골차게 그려냈다. 내용도 섬세했다. 혁명 조직 안의 다툼까지 밖으로 꺼내놓으며 프랑스혁명의 의미를 진중하게 되살렸다. 예를 들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과 집안 좋은 부르주아 대학생의 갈등에서 '혁명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을 강조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식이다. 은 뮤지컬 공연 실황을 녹화한 3D영화다. 세계 최정상의 유럽 뮤지컬을 극장에서 싼 가격으로 본다는 생각.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무대 위 현장감과 감동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다.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원판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