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벨(Diving Bell)은 세월호 침몰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다이빙벨은 커다란 종모양의 구조물로, 잠수부들이 오랜 시간 바닷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이빙벨이 바다에 투입되면 내부상층에 에어포켓과 같은 공기층을 만들어져, 잠수부들은 그곳에 들어가 쉴 수 있다.
영화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다이빙벨의 투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15일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다.
이 영화는 다이빙벨을 매개로,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생존자 수색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팽목항의 진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참사 이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감추려는 자의 싸움 또한 얼마나 첨예했는지 그려낸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이빙벨 투입과 관련된 일지를 한 번 훑어보고 가면 좋겠다. 인터뷰와 설명만으로도 어처구니 없었던 15일이 파악되겠지만,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사색할 만한 여유가 다소 부족할 것이다. 또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사색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2014년 4월 16일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 하지만 구조당국의 대응이 총제적으로 혼선을 빚으면서 구조는 난항의 난항을 거듭했다.
구조당국은 사고 첫 날 구조자와 실종자 숫자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3일이 지난 후에도 선내 진입조차 번번히 실패해 실종자들의 생존률을 낮췄다. 이유는 유속과 시야확보의 어려움이라고 했다. 그러자 민간 잠수사들 사이에서 구조 활동이 효율적이 않고, 해경과 민간의 공조가 아쉽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도 정부의 제한적 구조활동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적의 장비로 최선의 구조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유속과 시야확보의 어려움은 다이빙벨(잠수종)로 해결될 수 있다며, 다이빙벨 투입을 적극 권유했다. 이 대표는 30년 경력의 해난구조전문가다. 하지만 다이빙벨은 접근은 즉각 허용되지 않았고, 이종인 대표는 21일, 배가 침몰된지 5일이 지나서야 해군 측의 허용으로 다이빙벨과 촬영용 CCTV를 들고 침몰 장소로 출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날 밤 회항했다. 해경이 기존 작업을 진행 중인 바지선 등과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다이빙벨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해경이 몰래 대학에서 다이빙벨을 빌려 투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것도 이 대표의 다이빙벨보다 작고, 감압 기능이 없는 일본식 다이빙벨이었다. 나중에 해경은 새로운 바지선이 들어오면서 민간업체 장비가 실려 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종자 구조에 절실한 마음이 없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처사였다.
화난 유가족들은 구조당국에 다이빙벨 투입을 재차 요구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이종인 대표는 다이빙벨을 싣고 다시 세월호 침몰 해역으로 향했다. 사고가 난지 10일째가 되던 날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UMI·Undine Marine Industries) 측과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다이빙벨을 바다에 내리지 못했다.
이종인 대표는 29일 다시 세월호 침몰 해역으로 향했다. 실종자 수색이 점점 어려워지자 다이빙벨 투입이 전격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 50분경 다이빙벨이 오르내릴 수 있는 선체 버팀줄이 설치됐고, 새벽 3시 45분경 다이버를 투입해 4층 선미 출입구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파고가 잦아들지 않아 가이드라인을 묶는 데는 실패했다.
가이드라인 연결작업은 30일 오후 3시경 완료됐고, 다음날 새벽 3시 30분경 잠수 요원 3명이 다이빙벨을 타고 수림 23m로 내려가 가장 수색하기 어려운 구간으로 알려진 세월호 선미 쪽 4층 객실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작업팀이 설치해 뒀던 가이드라인이 얽혀 있어 이를 제거하는 작업에 시간을 소비했다.
이 대표는 이날 갑자기 다이빙벨 철수를 결정했다. 다이빙벨의 실효성은 입증됐지만 자원봉사 잠수사의 생업관계로 수색할 잠수부가 없어서다. 또 이 대표는 '우리가 공을 세웠을 때 기존에 수색하던 사람들의 사기가 저하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고, 다이빙벨 투입이 성공하면 해경에서도 인력투입을 약속했으니, 더 많은 다이버들이 다이빙벨을 이용하면 되겠다고 여겼다.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 철수를 결정하면서 다이빙벨과 관련한 논란은 사라졌고, 역시 단 한 명도 살아서 되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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