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객석과 무대

[음악극] 햄릿 아바따 - 욕망에는 대가 따르고, 혁신에는 희생 필요하다

이동권 2022. 10. 27. 22:19

햄릿 아바따


묘무였다. 춤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대를 휘어잡고 관객을 압도하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인도 무용수 ‘아스타드데부’의 춤과 안무는 현란과 절제의 줄을 타며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무척 정갈했다. 붉은 꽃잎이 활짝 벌어지는 순간처럼, 생명력이 넘쳤다. 특히 무거운 정적에 현란한 춤이 곁들여질 때는 인간의 번뇌와 해탈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 같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을 흠뻑 빨아들이는 듯 신성했다. 

‘파르바디바울.’ 청아한 목소리로 혼을 빼앗았다. 인도 최고의 가수라는 소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연 첫 시작부터 전율을 일으켰다.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맑고 고요했다. 

그녀의 노래는 극적인 순간마다 무대에 흘러나와 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현실을 정화했다. 혼탁하고 추잡한 세상에 저항하다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 같았고, 더러운 구덩이에 갇힌 청정한 육신을 현실로 소환해 치유하는 구음 같았다. 

인도와 햄릿이 만났다. 임형택 연출가는 이 두 가지 재료를 배우의 삶과 중첩시키고, 어긋난 현실을 은유해 음악극 <햄릿 아바따>로 형상화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임 연출가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고전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들의 굴레겠다. 햄릿이라는 극을 고증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야 하는 부담감, 내용에 따라서는 형식적인 혁신과 실험도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무대에서는 인도와 햄릿, 연극과 무용 등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스레 결부시켜 균형을 맞추는 감각도 요구된다. 

어쨌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만들어줬던 그 열정과 노력에는 크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달궈진 무쇠 솥에서 흐르는 기름처럼 매끄럽고 유연한 무대였다. 

한 동안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몸태와 얼굴을 번갈아가며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들은 한순간의 작은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가끔 눈요깃감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를 굴리고, 벗겨 점수 좀 따 보려는 연극도 가끔씩 보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부지고 깊은 이해, 배우로서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연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출연 배우들 모두 손색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김충근과 이미숙의 열연은 가슴 깊게 각인됐다. 

메시지는 무척 선동적이다. 현실의 고민을 담아내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역력하다. 임형택 연출가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고, 욕망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숨김없이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우리 사회의 이기주의와 물질주의가 부른 도덕불감증과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암시였다. 아울러 임 연출가는 현실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물으며, 직접 답을 구하라고 주문했다. 휘몰아치는 북풍에 가로수가 울음을 울듯, 한바탕 호된 성찰의 시간이었다. 

<햄릿 아바따>는 봐서 좋을 연극이다. 장엄하고 웅장한 액션도 그대로, 원시적이고 노골적인 묘사도 그대로, 우아하고 고상한 기품 또한 그대로 풀어내 완성도가 높다. 무엇보다 노래와 음악, 춤과 연기, 대사와 영상 모두 한 무대에서 병치된 듯 잘 어울렸다. 하지만 딱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감동’이다. 다시 말하면 연출가가 대중성에 대한 염두보다 작품에 더욱 욕심을 낸 것 같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열정을 바쳐 준비한 무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것이 다소 부족해 보여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늘 말을 아낀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예술은 세 가지를 갖춰질 때 강한 파급력이 있다. 하나는 구비성이다. 춤, 노래, 연기 등 무대를 꾸미는 모든 요소들이 각자 제 역할을 잘해야 한다. 또 하나는 조화다. 춤도 좋고, 노래도 좋고, 연기가 좋은데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가 내려지지 않는다. 마지막 하나는 ‘스플렌도어(splendor)’ 즉 광희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든지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가끔 그것을 잘못 풀어내 신파라는 얘기를 듣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요소는 꼭 필요하다. 

<햄릿 아바따>는 잘 만들어졌고, 구성 또한 돋보였다. 그런데 이 광희가 미치질 못했다. 매력적이고 고급스러운 무대를 보는 동안 계속해서 탄성을 질렀지만 크게 웃음 한 번, 눈물 한 번 내지 못했다. 조금 더 쉽고 친절하게 형상화했더라면 더욱 편안한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수준이 너무 높고 신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