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들여다보면 꽤 흥미로운 영화다.
<혼스>는 우리 사회가 내세우는 종교, 도덕, 철학, 윤리 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의식적으로 올바르고, 선량하고, 어질고, 마땅한 언행을 요구하고, 가르치며, 따라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불신, 혹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색을 그대로 내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주인공 이그는 삶에서 감정과 본능의 힘을 중요시했다. 첫사랑 여인 메린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다. 하지만 이그는 메린이 살해를 당한 뒤,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의심과 경멸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망가뜨린다.
모든 사람이 이그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지만 친구인 변호사 리 만큼은 그의 무죄를 확신한다. 확신의 근거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리의 모습으로 암시된다. 뿔은 악마의 표식이지만 트럼펫을 의미하는 속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악마의 무기와 천사의 악기가 공존한다. '악마로 태어나는 이는 없다. 악마도 실은 타락한 천사였다.'
우리 사회에서 선과 악, 죄와 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섞여 있다. 사회가 높이 평가하거나 반대로 배척하는 현상이나 행위를 선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지배하고 착취하고 부자인 계급과 지배당하고 착취당하고 가난한 계급은 각각 평가 기준이 다르고, 그래서 충돌과 대립은 발생해 왔다. '
결백한 이그에게 학대 본능이 솟구친다.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그는 감정과 본능의 힘에 충실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학대 본능은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외부의 강압에서 비롯됐다.
이그는 억울한 감정을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자 온갖 난행을 저지르고, 결국 관자놀이에 큰 뿔이 자라게 된다. '이 정신 나간 세상에서 난 벌을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날 악마로 보았고, 나도 사람들을 악마로 봤다. 이젠 그것을 구분해서 봐야 했다.' 그러나 뿔에는 기이한 힘이 있다. 사람들 마음속의 악을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가장 추악한 욕망을 드러내게도 했다. 사람들은 마치 이그가 악마의 사제나 되는 것처럼 그 앞에서 변했다. 의사, 성직자, 기자, 가족들까지 앞다투어 이그 앞에서는 욕망을 고백하고 그 자리에서 욕구를 해결했다. 심지어 싸우고, 성기를 보여주고, 불을 지르고, 성욕을 해결한다. 술에 만취해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상태, 그 이상이다.
이그는 뿔의 힘을 빌어 진범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이 배신과 침묵으로 자신을 대하고, 자신에게 죄를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사회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사랑과 선의 의미를 미움과 악으로 냉철하게 일깨우는 순간이다. '결국 난 뿔을 받아들였다. 땅에 떨어진 천사가 그랬듯이 결국 악마가 됐다.'
이 영화는 삶의 의지가 꼭 자기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말은 좋지 않게 귀결된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그 의지는 꼭 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의식할 수 없는 원초적인 감정, 본능에서 우러나야 의지는 힘을 갖는다. 마음과 다른 언행은 어느 정도 진실도 감추고 힘도 발휘할 수 있지만 진심이 갖는 힘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다. 아울러 기존의 체계나 관념, 도덕이나 정의에서 자유스러워져야 한다. 자신을 속박하거나 남들을 따라서 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은 자연스레 찾아온다. 다시 말하면 행복은 좇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쫓아오는 것이다.
영화 <혼스>는 주인공 이그의 독백을 주의 깊게 곱씹으면 색다르게 다가온다. 오랜만에 진중하고 자극적인 영화를 본 것 같다. 봐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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