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섬 - 어쩔 수 없는 미물, 게오르게 오바슈빌리 감독 2014년작

2022. 10. 27. 21:06이야기/그래 그 영화

옥수수섬(Simindis kundzuli), 게오르게 오바슈빌리(George Ovashvili) 감독 2014년작


영화 <옥수수섬>은 융통성이 없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영상은 지난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수양을 쌓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 크다. 마음속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온한 안식을 준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느끼게 한다.

 

이 영화 감명 깊다. 짱짱한 내러티브와 긴장감으로 무장한 영화만 재밌는 건 아니다.

덧없다. 의지할 곳이 없다. 태양은 뜨겁게 타오르고, 생의 열정은 흘러넘쳐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상하게도 진정 마음을 놓고 쉴 곳이 없다. 어렸을 때 꿈꿨던 따뜻하고 정겨운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술꾼이 되고, 방랑자가 된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하거나 아니면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마음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삶의 기쁨을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고통이고, 젊음은 속절없이 가버린다. 

영화 <옥수수섬>의 주인공, 노인은 현실의 짐을 놓고 작은 섬으로 들어간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하면서, 완벽하게 고립된 생활을 선택한다. 그러나 노인의 삶은 그에게 고립이 아닐 것이다. 주위에 인간이 없을 뿐, 손을 내밀면 만져지는 자연이 있고, 보살펴야 할 손녀도 있다. 

현대인들은 연약한 감상이나 자족에 불과하다고 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인은 그것에 노력하고 만족하며 산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말미에 나온다. 

정말 축복의 땅이다. 그림 같은 구름이 하늘에 펼쳐지고, 두 갈래의 강은 은빛으로 반짝인다. 노인은 땅을 경작하고,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한데 어울리면서 욕심 없이 산다. 

영화는 그렇게 20분 동안 정적이다. 아무 말도 없이 노인과 십 대 손녀의 행동을 추적한다. 그리고 물, 바람, 새, 안개, 하늘 등 장대한 자연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한 번도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던 자연의 장엄함에 잠시 놀라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이다. 침묵은 난잡함보다 더욱 참기 힘든 고행이다. 영화 속 노인도, 영화 밖 관객도 별 수 없이 모두 깊은 명상의 시간이다. 어렵게 발화된 노인과 손녀의 대화조차 너무도 짧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잠을 자는 사람은 없다. 신묘한 매력에 이끌려 끝까지 영화를 보게 된다. 

명상을 깨는 것은 국경을 지키는 군인이다. 노인이 사는 곳은 조지아와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인 아브하지아의 국경. 두 나라는 내전으로 서로 총을 겨누며 살고 있다. 

군인은 노인을 찾아와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하라고 일러주곤 떠난다. 노인을 핍박하거나 그의 삶을 간섭하지 않지만 완벽한 평화가 있었던 이곳에 알 수 없는 불안을 경고한다.

몇 시간 뒤 총에 맞은 군인이 물살에 휩쓸려 노인 앞에 나타난다. 군인이 등장하면서 노인이 사는 작은 섬은 정치적이고 성적인 장으로 변한다. 손녀는 젊은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고, 양쪽 군인들의 출입은 점점 잦아진다.

이 영화의 압권은 다음이다. 군인의 등장으로 한바탕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던 이곳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에 물이 불어 노인의 터전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집도, 옥수수밭도, 인간의 첨예한 갈등마저도 모두 없애버린다.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하늘을 응시한다. 대자연 앞에서는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미물, 산다는 것이 그렇게 덧없고 무상한데 왜들 그렇게 서로 총을 겨누고 사느냐고 돌려 얘기하는 것 같다.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고, 나무의 푸르름을 느끼고, 새의 종알거림에 놀란 지 오래다. 노여워하고, 불안에 떨고, 힘껏 맞서고, 서로 죽이며 돌아가는 뉴스에 귀가 아플 정도다. 그래도 사람들은 애써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는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아름답다고 부추긴다.

아니다.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안아주고,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서 희망은 잉태된다. 

노인이 사는 섬에 비가 멈추고 바람이 잦아들고 새벽녘이 찾아온다. 강물은 다시 유유자적 흐르고, 물안개가 고요히 퍼진다. 고해의 땅에서 벗어나 침묵이 드넓게 자리 잡은 세상, 노인은 애써 시련을 감춘다. 고적한 비애를 가슴에 묻으며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 영화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