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상의원 - 예나 지금이나 대우 못받는 기술자들, 이원석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23:41

상의원, 이원석 감독 2014년작


기대가 많았다. 옷의 정치적 의미를 신랄하게, 그것도 왕실과 사대부, 그리고 옷을 만들던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서로 얽히고설켜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극을 예상했다. 

예상과 달랐다. 영화 <상의원>은 코믹 요소를 가미한 스토리로 힘을 쭉 뺐다. 대중적이고 가벼운 소재로 감정을 이완시켰고, 섹시한 코드까지 접목해 시선을 자극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끔했다. 중전 박신혜와 왕 유연석의 아우라는 멋졌고, 한석규와 고수가 서로를 이해하지만 적이 되는 과정은 두 사람의 표정연기 만으로도 설명됐다. 

평소 무겁고 진중한 사극이 별로인 팬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시시각각 다른 한복이 스크린에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복이 이렇게도 화려하고 다양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영화 <군도>, <역린>처럼 정통 사극을 염원했던 팬들에게는 다소 부족감이 있겠다.

<상의원>은 팽팽한 긴장감이나 정교한 플롯과는 조금 어긋났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은 청승맞고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어 깊은 감화가 어려웠다. 조선은 예법을 중시하는 나라였다. 가슴선이 보이고, 종아리가 드러나고, 겨드랑이가 파이고, 허리가 잘록한 한복을 궁궐에서 입는다는 생각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아울러 연기파 배우 마동석, 배성우, 조달환의 연기는 돋보였다. 그러나 웃음을 의식한 이들의 제스처는 영화를 한결 가볍게 하는 대신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웃음 코드를 장착한 사극 영화 <관상>, <광해>, <해적>과도 사뭇 결이 달랐다.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담박하고 잔잔하게 상황을 전개하는 플롯 때문이다. 그래서 빠르고 자극적인 영화, 반전과 지적 유희에 익숙한 영화팬들을 100%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이러한 점은 <상의원>만이 가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걸을 때마다 보사삭거리는 한복처럼 상황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건 좀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좋았던 것은 가슴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러브스토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런 얘기가 결부됐다면 상업성을 너무 의식한 듯 보여, 절대로 추천하지 못했을 것 같다.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옷을 만들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옷을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실은 어떻게 뽑고, 염색은 어떻게 하고, 바느질은 어떻게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상의원이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의복의 계급성이나 가치, 한복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기는 하지만 옷보다는 옷을 만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치중한다.  

이 영화를 정치 이야기라고 특별하게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왕실 최고의 어침장 돌석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디자이너 공진이 왕실과 교류하면서 발생하는 사사로운 이야기, 옷과 중전 자리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그린 퓨전 사극 정도가 맞겠다. 

이 영화에서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난 왕의 신세타령과 중전이 되고 싶은 후궁의 치정이 추악하게 그려진다. 결국 치정의 결과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상의원은 옷 만드는 일 이외에는 내내 무사분주하다 정적을 제거하는 무기로 이용되고 만다.  

다만 이 영화가 정확하게 알려준 것은 어느 시대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인정을 받았지만 그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라 같은 바느질도 다르게 평가됐다. 양반이 하느냐, 중인이 하느냐, 천민이 하느냐에 따라 바느질의 품격은 차이가 있었고, 양반의 바느질은 노동이 아니라 주로 수를 놓는 용도로 이용됐다. 

조선시대는 민중의 시대도 아니었고, 민중이 없는 제도와 허상으로 점철돼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상은 현대에서도 유효하다. 우리 사회는 신분과 서열, 갖가지 외피에 의해 사람의 가치까지 결정한다. 국가가 돌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의 노고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지만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끔찍하게 서열화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