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옮기거나 직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계기가 있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삶의 의미를 그저 돈 버는 것에서 만족하는 이유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찬물 더운물 가리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다 삶은 어느덧 종지부를 찍는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얻는 만족과 결실을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적당한 여행과 맛난 음식, 일상의 자잘한 쾌락에 몰두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살면서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고민은 적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고, 그래야 성공한다'고 말하지만 생각처럼 밀고 나가지 못한다. 아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 역시 돈에 함몰되는 경우도 많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 칼 캐스퍼는 우여곡절 끝에 삶의 해답을 찾는다. 픽션이다 보니 희화되고 과장스러운 측면도 있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심지 하나만큼은 굳건하다.
<아메리칸 셰프>가 던지는 화두는 고민, 준비 그리고 용기다.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면 일단 고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막연하게 뭔가가 좋겠다고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충분히 고민해야 하고, 거기에 시대를 간파하는 현명함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그다음은 준비부족, 용기부족을 극복하는 일이다.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예열이 필요하고, 요령이나 수완보다 삶을 열정과 환희로 채워야 한다.
일본의 저명한 철학박사 야시다 코야타는 '사회라는 가상 무대에 자신을 올려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을 권한 바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아무리 잘됐다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보면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게 된다는 고언이다. 그는 또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지'를 충분히 고민해보라고 충고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딱 이거다.
<아메리칸 셰프>의 메시지가 여기에서 끝난다면 매우 서운하다. 이 영화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면서 동시에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고 일러준다. 사람의 욕망은 끝없고, 끝없는 욕망은 없느니만 못하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욕망의 한계를 갖게 되면 자기 목표도 분명히 가지게 된다는 뜻이다.
톨스토이의 책 <인생의 길>을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기의 욕망을 누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세프 칼 캐스퍼도 요리사로 사는 것에 진정 행복을 느꼈다면 가족과 동료, 손님보다 음식 평론가를 더욱 만족시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물론 이 영화도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주방에 형광등이 켜지고, 여러 모양의 식도가 주방에 펼쳐진다. 커다란 가스레인지에 불이 점화되면, 갖가지 식재료들이 혼합돼 익어간다. 셰프 칼 캐스퍼의 칼을 다루는 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재료를 손질하는 속도와 노하우는 눈부터 즐겁다.
잠시 후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주방에 들어온다. 칼 캐스퍼는 머리, 등심, 족, 사태, 갈비, 등심, 안심, 삼겹살 부위별로 잘게 나눈다. 숙련된 셰프가 아니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내공이 고기를 다루는 놀림에서 느껴진다. 첫 장면부터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 난리는 모두 유명 음식평론가 때문이다. 칼 캐스퍼는 지역에서 꽤나 알아주는 일류 레스토랑에서 10여 명의 어시스턴트를 밑에 두고 일하는 셰프다. 하지만 요리사를 천직으로 사는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 사장이 원하는 메뉴, 그러니까 손님들이 꾸준히 먹었던 요리만 반복해서 만들 뿐이다.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온다. 저명한 음식평론가가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스케줄이 잡힌다. 칼 캐스퍼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과 마주한 것처럼 식재료를 챙기고 메뉴를 결정한다. 실력을 발휘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동안 레스토랑에 팔지 않았던 창의적인 음식을 준비하지만, 사장은 허용하지 않는다.
칼 캐스퍼가 우려했던 것과 같이 평론은 혐오스러울 정도의 혹평과 비아냥으로 채워진다. 그는 자존심에 심한 타격을 받지만, 다시 한번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장의 반대로 자신의 요리를 끝내 만들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사장과 싸운 뒤 레스토랑을 뛰쳐나온다. 또 칼 캐스퍼가 평론가에게 욕설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유튜브와 트위터로 퍼지면서 다른 레스토랑에도 취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그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자신이 평소에 맛있게 먹었던 길거리 음식을 파는 것이다. 그의 도전은 과연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아메리칸 세프>에는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아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존 파브로, 소피아 베르가라, 존 레귀자모, 올리버 플랫 등 연기파 스타들이 총출동해 보는 즐거움도 있다. 감독은 칼 캐스퍼 역을 맡은 존 파브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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