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희정 작가 - 애착을 잃지 않고 사는 삶들을 존경하는 사람

이동권 2024. 6. 6. 16:40

희정 작가

책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출간을 준비할 때였다.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저자들과 만나 회의를 했다. 저자들 중 아주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희정 작가다. (이 책은 쿠팡의 피해실태를 중심으로 서비스산업 전반에 고착화된 노동착취와 고강도 야간노동의 문제를 공론화하는 저작이다.)

희정 작가와의 첫 만남은 2012년이었다. 그의 단편 소설 <지구 멸망 하루 전>이 민중문학상 신인상 우수작으로 선정돼 인터뷰했다. (그 당시 나는 <민중의소리> 문화부장이었고, 한국작가회의 선생님들과 함께 민중문학상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희정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상상력과 조어력이었다. 문학상 출품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 즉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소재를 일상으로 끌어들여 설득력 있게 풀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러한 결과는 희정 작가가 여러 매체에 르포르타주를 발표한 경험들이 한몫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룬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을 비롯해 사회성 짙은 글을 써오면서 쌓였던 진보적 감성과 필력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했다.

희정 작가는 여러 현장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주로 사실적인 글을 써 왔다. 그런데 뜻밖에 민중문학상에 소설을 응모해 다소 놀랐다.

“원래 글쓰기를 소설로 시작했다. 노동소설을 써보겠다고 이곳저곳을 찾았는데, 당장 급한 것은 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해 주는 글이었다. 급한 대로 르포르타주라는 기록문학의 형태를 빌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르포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기록 작업을 통해 청소노동자들도 만나고,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도 만나고 반올림(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도 만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소설 쓰는 것은 뒤로 밀리더라.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이 말하는 방식이 내게 더 맞기도 하다. 그래서 틈틈이 썼고, 민중문학상이라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누구에게나 글을 쓰는 이유는 있다. 희정 작가에게 있어 문학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글이란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힘이다. 쓸데없이 거창하다. 민망하다.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때였다. 해보고 싶던 일을 한 번쯤은 해보자 했다.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문화센터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었다. 처음 소설을 썼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소설을 쓰다가 시간이 늦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내가 혹시 길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안 되는데. 건강하게 잘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때 지쳐 있었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다시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진다. 소설이 나를 살게 해주는 힘이라면,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르포는 나를 혼자가 아닌 우리로 살게 해주는 힘이다. 두 가지 장르 모두 사랑한다.”

여전히 바빴지만 이후에도 바쁠 것 같았다. 워낙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정 작가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을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늘 감탄한다. 남의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자신이 당한 억울함이나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훨씬 힘들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권리를 찾고, 삶의 조건들을 개선시키고,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옆에서 본다. 보고 배우려 한다. 잘 보고 배워 나도 저들처럼 이 세상을 잘 버티고, 잘 싸우고, 잘 견디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그들의 처지와 목소리를 이야기로 전하는 내 일은 수업료다.”

 

희정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너무 반가웠고, 그가 낸 책들을 읽으면서 무척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