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민혁 화가 - 도시문명의 슬픈 스크래치

이동권 2024. 6. 27. 21:38

이민혁 화가

이민혁 화가의 마음속에 흐르는 서글픈 기억들이 스스로를 강인하게 이끌고 있다고 직감했다. 낙천적인 감정만으로는 그의 마음이 가벼워지거나 즐거워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기 내부에 선천적인 특질로 스며들었고,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풀어내는 원동력으로 변용됐다.

그의 작품은 가슴에 스크래치를 낸다. 미친 듯이 앞을 다투며 뛰어가는 도시문명과 그 속에 휩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슬픈 잔상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뜨거운 빛과 먼지가 띠를 만들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다.

이민혁 화가는 서울의 일상적인 단면을 현란한 색채들이 난무하는 선으로 형상화한다. ‘사회적 갈등, 익명성과 존재,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경제개발과 상업주의의 팽배, 홈리스와 부랑자, 자살, 폭력, 그리고 유흥과 섹스에 탐닉하는 군중 속의 고독’ 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도시의 속도감”으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자신을 대입한다.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만 멈춰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선을 긋고 있는 순간에도 소외감을 느꼈다”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분리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민혁 화가는 특유의 풍자와 역설, 유머로 현대의 모습을 그려냈다. 바쁘게 지나가는 세상과 사람들을 형상화하면서 거기에 따라가려고 애쓰거나 쫓아가지 못한 자신과 현대인들을 위로했다. 

 

 

보수동 사람들1, 캔버스에 유채, 116.7×91cm, 2013


이민혁 화가는 고흐와 뭉크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전체적인 색감이 어둡고 뜨겁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인데도 어두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 수채화를 할 때도 맑고 투명한 게 아니라 묵직한 수채화를 했거든요. 아마도 유전적이거나 환경의 영향일지 몰라요. 할머니, 어머니의 삶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가끔 밤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 그림이 내가 그리는 그림인지 의문이 들은 적도 있었어요.”

그는 그림을 선으로 그린다. 그 선들은 큰 흐름 속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그가 그림을 선으로 그린 이유는 판화의 질감을 선호해서다.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목판화를 많이 했다”면서 “선을 따라서 파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라고 말했다.

이민혁 화가는 올빼미다.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그림을 그린다. 이 시간에 가장 집중이 잘되고 감성적인 부분을 끌어내기가 쉽다는 이유다. 그는 또 작품을 하나씩 완성하지 않는다. 여러 개의 작품을 한꺼번에 그린다. 보통 10개에서 20개 정도다.

 

 

탱고의심장,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