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젊은 예술가 4명이 뭉쳤다. 사회적 예술가 집단을 표방하고 나선 ‘아트사우루스’다. 아트사우루스는 보영사우루스(미술), 바니사우루스(미술), 유현사우루스(미술), 이음사우루스(글)로 구성돼 있다. 이 이름은 본명 뒤에 ‘사우루스’를 붙인 것이다.
아트사우루스는 스스로 “유명하지도, 이력이 화려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만큼은 뚜렷하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사회 인식에서 비롯한 주견이다. 이들은 ‘지금’을 논하지 않는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고민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장미를 찾습니다>라는 이름의 퍼포먼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장미를 찾습니다>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이름으로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다. 과도한 자본주의가 낳은 갖가지 병폐. 돈 앞에서는 고귀한 인간성마저 외면당하고, 도구화되는 현실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시도겠다.
아트사우루스는 “어른들은 ‘야근’을 아이들은 ‘야자’를 그마저도 하지 ‘못’하는 이들은 건강, 안전, 시간 등을 팔아야만 힘겹게 겨우 생존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우리 삶에) 식탁 위에 올릴 음식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꽃다발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비유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식탁 위에 꽃다발을 올리는 여유는커녕 도태와 소외, 낙오의 불안감에 질식돼 살아간다는 우려다.
건강하고 아리따운 젊은 아티스트들이 리어카를 끌고 광화문과 시청 일대를 쏘다녔다. 리어카에 실린 물건은 <장미를 찾습니다>라고 쓰인 작은 패널 하나. 이 패널에는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장미를 잃어버렸다 해서 먹고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나, 먹고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찾으시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장미를 찾습니다. 짐짓 불분명해보는 요구다. 하지만 이 리어카에는 젊은이들의 울분과 상흔이 가득 실렸다. 꼼꼼하게 꿰매지 않으면 부르터 올라 곪을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그러나 꿰매는 행위는 일종의 단기 치료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째든, 자르든, 붙이든, 지지든, 썩은 물이 괴는 상처에서 썩은 물을 빼내는 일, 즉 상처의 뿌리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치유다.
<장미를 찾습니다> 퍼포먼스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영사우루스=딱히 ‘예술을 해야지!’라든지, ‘퍼포먼스를 해야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네요. 처음부터 ‘장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다 같이 모여서 시끄럽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쏟고, 그냥 사는 얘기를 했어요. 그때 저는 살던 집에서 갑자기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해도 결국은 ‘집’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집이라는 게 사람에게 이렇게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고, 집이 없으면 한 사람의 세계가 이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데 왜 모든 사람에게 집을 가질 권리를 주지 않는 걸까.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분명 있고, 그것을 꼭 가져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야만 제 집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불만을 가지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해요. 노숙인 분들이 집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보이면 ‘감히’라든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게 정말로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인데도 말이에요. 다른 사우루스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의 ‘장미’는 앞에서 말한 생각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니사우루스=사실 이전의 아트사우루스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제가 기획자로 프로젝트를 구상하면 다 같이 만들어 내는 편이었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며, 일단 리더나 기획자, 에디터 같은 것이 없는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우리 집단이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면 좋을지’, ‘어떤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 볼 것인지’ 모두 함께 기획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절절히 공감하고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주제어가 ‘노동’이었어요. 그로부터 <장미를 찾습니다>의 베이스가 생성되면서 가장 효과적인 표현방식으로 선택된 것이 리어카를 이용한 작품 제작이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또 퍼포먼스라는 방법으로 연결되었지요.
유현사우루스=개인적으로 미술가들에게 주어진 ‘전시공간’이라는 곳이 현재를 이야기하는 작업들을 고인 물로 만드는 ‘정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멤버들 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물처럼 흘러서 ‘장미를 찾습니다’라는 행위까지 닿았고, 그렇게 ‘일상생활 공간과 우리 행동의 만남’ 자체가 작업 이 되는 것에 아주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음사우루스=무엇보다도 진실로 제가 장미를 찾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각자에게 장미는 다른 의미일 수 있으나 저에게는 ‘인간성’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파국을 향해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므로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에게 ‘너의 인간성은 온전한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인격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질문이 비단 저뿐 아니라 기실 '지금, 여기'를 사는 모두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가로서 뜨겁게 질문하길 원했습니다. 뜨거운 질문엔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뜨거운 답이 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술은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매개다. 거기에는 미를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적 운동성’이 뒤따른다. 국민의 행복과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한 책무가 예술가에게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예술도 돈이 되면 그만. 국민의 삶과 문화의 경계를 없애고, 노동자·농민·서민의 삶을 살찌우고, 깨끗하고 건강한 사회에 일조하는 예술은 덧거리가 되고 말았다.
아트사우루스는 ‘사회적 운동성’을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젊은 예술가들은 현실을 진단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작게나마 사회 진보에 도움이 되고자 단체를 구성했다.
아트사우루스를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보영사우루스=사실 저는 초기 멤버는 아니지만, ‘연대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말이 종종 생각나요.
바니사우루스=미대 졸업 후 계속 그림을 그리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뭐 그런 환경이나 여건이 되지 않았어요. 바로 취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미술 근처에라도 붙어 있고 싶어서 큐레이터 일을 하다 도저히 그림을 그릴 여건은커녕 80만 원 월급으로는 먹고살기도 빠듯하니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괴로워하다가 잠시 대출 상담일을 했어요. 뭐라도 좋으니 그리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히 몇몇 지인들을 모아 아주 작은 전시회를 만들었어요. 의미는 없는 그냥 예쁜 전시회였지만 이제야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있다가 2012년에 ‘안아줘’라는 극지방생태계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론 그것이 아트사우루스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여기를 살며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작품은 죽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는,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것이 개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연대를 하면 더욱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의 아트사우루스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뿐만이 아닌 춤을 추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 등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견고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4명의 공룡들이 모여 있네요.
유현사우루스=저는 ‘아트사우루스’라는 이름의 모임을 작년 Step4Green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어요. 아주 솔깃했던 용어, ‘사회적 예술’을 말하는 바니사우루스와 연락을 유지하다 연초에 ‘아트사우루스’ 멤버가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혼자만을 위한 작업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작업, 이음사우루스가 말하는 ‘지금, 여기’를 말하는 작업을 이런 동반자들과 함께라면 더 큰 힘을 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사우루스=전신은 바니사우루스가 만든 다른 아티스트 집단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같은 이름을 썼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트사우루스는 이전의 집단과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 방향성, 실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넷은 모두 유희와 심미만이 성행하는 현대예술 풍토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지금의 아트사우루스가 만들어진 것은 저희 네 사람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이 좀 모호한가요. 어떻게 구체적으로 만났고 의견을 함께 했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사실 그 표면적인 사실 중심적 설명만으로는 지금의 아트사우루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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