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 여행이 요구될 때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다. 위만 바라보고, 갈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생활에 얽매이고,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놓지 못해서다. 게다가 이런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떠나는 ‘관광’과 성격이 다르다. 야자수와 산호초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파타야 해변이나 설산과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 바이칼 호 같은 명소로 떠나는 눈요기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거리에서 전혀 다른 삶과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정이며 준비할 것, 따질 것 없이 그대로 떠나는, 고단하고 궁핍한 생활 또한 각오해야 하는 모험에 가깝다.
어떤 이들은 이런 여행을 일탈로 간주한다. 풍요와 안정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듯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젊었을 때 한 번 하는 ‘객기’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기쁨만 추구하는 여행은 즐거움 외에 남는 게 없다. 생활에서도 변화에 주저하거나 안락에 저당 잡혀 항상 그 자리에 연연하게 만들고, 심한 경우에는 지속성이 없는 의지, 무기력하고 나태한 생활 속에서 현실을 부정적으로만 보게 한다. 나아가 그런 생활에 지나치게 빠지면 평생 자기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생각의 외연을 조금만 확장하면 삶은 달라진다. 더 많이 행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배우며, 새로운 지평을 다진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다.
최근 두 젊은이가 세계 곳곳을 누비고 왔다. 장우석(29), 박승현(25) 씨가 그 주인공. 장우석 씨는 세계여행이라는 꿈을 위해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아일랜드로 떠났고, 박승현 씨는 국가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다 해병대 전역 후 편도 티켓을 한 장 들고 무작정 아일랜드로 떠났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우연한 기회에 만나 의기투합했고 ‘철가방 들고 세계로’라는 여행을 기획했다.
기획서의 분량은 어마어마했다. 무려 A4용지 100여 장에 달했다. 두 젊은이가 좋은 뜻으로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쉽게 돈을 내어줄 기업은 많지 않다.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문서를 준비하다보니 논문 같은 기획서가 완성됐다. 이들은 기획서를 들고 삼백여 개 기업에 후원을 요청했다. 다행스럽게도 5개 기업의 후원이 성사돼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정은 열악했다. 장우석 군이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과 기업에서 후원한 자금이 세계여행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였다. 참으로 ‘지지리 궁상’ 같은 외출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그토록 떠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우석 씨는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잘 모르거나 미심쩍은 부분은 직접 보고,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가장 빨리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세계 여행은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요? 저 역시 어릴 적에 작성한 버킷리스트 1번이 ‘오토바이 세계일주’였고요. 저도 남들처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소대장으로 전역 후 직장생활을 했지만, 무작정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쫓아가다 보니 삶의 의미를 잃은 기분이었어요. 뭔가 삶의 활력소가 필요한 시점이었죠. 전 30대가 지나기 전에 이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고, 이 여행을 통해 우리보다 잘 산다고 알고 있는 유럽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박승현 씨는 습관적인 삶과 수동적인 의식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막연할 수밖에 없는 오늘과 내일에 투정만은 부릴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보통 대학생이에요. 그렇게 대학교를 다니고, 군대를 갔죠. 그런데 그때 우연한 기회를 통해 ‘26유로’라는 책을 접하게 됐어요. 류시형 씨라는 분이 유럽을 무전여행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책을 보고 제가 가진 고정관념들이 다 깨졌죠. 여행은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마음속에 젊은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것이라는 걸 느꼈죠. 그렇게 저는 아일랜드 편도 비행기에 특별한 계획 없이 몸을 실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제 꿈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125CC 중고 오토바이 한 대에 함께 타고 총 31개국을 일주했다. 중고 오토바이, 그것도 한 대밖에 구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하지만 두 청춘의 애를 더 말린 것은 떠나기 전이 아니라 후였다. 주야 없이 달리는 중고 오토바이가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낑낑대면서 동분서주, 배줄배줄하며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찔끔거린다.
장우석 씨는 “아무리 돈 때문이라곤 하지만 125CC 배달용 오토바이 하나로 여행을 한다는 건 정말 미친 발상이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도로에서는 저희보다 느린 차량이 한 대도 없더라고요. 체코에선 유럽여행 중인 영국 라이더 커플을 만났어요. 그 커플과 프라하에서 만나기로 하고 분명 저희가 먼저 출발했는데 저흰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고, 그 라이더 커플은 1시간도 안 걸렸다 더라고요. 정말 허탈했어요. 체인도 교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두 사람에 짐까지 실은 탓에 하루 못 가서 체인이 늘어나 버리니 속도가 나올 턱이 없었어요.”
박승현 씨도 오토바이 얘기를 꺼내자마자 “하하” 웃어버렸다. “오토바이가 정말 고장이 안 난 부위가 없었던 것 같네요. 애초에 그 오토바이 가게에서 제일 싼 중고 오토바이 한 대로 시작했고, 그 위에 짐에, 성인 남자 두 명에, 정말 오토바이가 버텨준 게 기적과 같은 일이네요. 체인도 갈기만 하면 바로 늘어나 버려 몇 번이고 끊어졌고, 저희가 전문적인 지식도 없어서 막무가내로 고치다가 일을 더 키워 몇 시간 동안 맥가이버 칼 하나로 체인을 절단해서 간 적도 있었네요. 속도계, 브레이크, 브레이크 등, 사이드미러, 엔진 소리 이상, 체인, 연료고갈, 사이드백과 짐 탈착 등등 셀 수가 없어요.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둘의 힘과 현지인들 도움으로 결국 여행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었어요.”
이들은 자신들의 오토바이 여행을 쿠바 혁명의 주인공 체 게바라의 여행과 견준다. 체 게바라는 24살 때 친한 형 알베르토 군과 함께 오토바이 한 대로 남미대륙 종단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이후 쿠바혁명의 정신적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이들도 또한 체 게바라와 같은 또래에 여행을 떠났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중국집 철가방을 들고 각국의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물었다. 이들은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느낀 것은 무엇일까. 체 게바라의 ‘혁명’은 아니더라도, 어떤 생각,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깨달은 게 많았을 듯싶다.
장우석 씨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꿈을 공유했다. 서로 꿈에 취하고 꿈을 심어줬다. 장 씨는 앞으로도 청춘들과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주는 것이 꿈이다. “좀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여행 후반에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피곤해서, 힘들어서가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다른 꿈이 생겼거든요. 오토바이 세계 여행이 제 평생의 꿈이었는데, 이 꿈을 좇으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꿈이 생긴 것 같아요. 저희가 만난 학생들 중 저희 덕분에 꿈을 찾게 되었다며 감사의 글을 남긴 친구들도 있었어요. 저희의 여행이 뭇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더라고요. 물론 새로운 꿈을 향해 쫓아가겠지만, 그와 더불어 꿈을 잃은 청년들의 힘이 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박승현 씨는 세계여행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현실을 개척해나가고 싶다. “꿈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나름대로의 꿈의 의미를 찾아 돌아온 것이 기뻐요. 정말 귀한 경험들이었고, 그 경험들이 앞으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젊음의 1년이란 시간을 여행하며 꿈을 찾는 일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값진 경험들을 샀어요. 이 정도면 남는 장사 아닌가요? 이제 제 나름의 꿈을 가지고, 그것에 대한 이유가 생겼으니 더욱 제 현실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비록 힘든 현실이지만 지금 하루하루가 모아 꿈(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그것)의 과정이잖아요. 그것을 생각하면 어떠한 힘든 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우석 박승현 씨의 여행에는 갖가지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얘기만 들어도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삶에 희열을 불어넣는 용기와 투지, 힘겨움을 즐거움으로 변용하는 지혜, 가슴에 평화와 부드러움을 채우는 사랑이 한바탕 되살아난다.
장우석 씨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겪었던 반정부 시위 얘기를 꺼냈다. “저희가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교를 갔는데 학생들이 학교를 점령한 상태였어요. 저희는 그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반정부 시위 중인 학생들과 접촉을 시도했어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부패한 정부와 열악한 교육정책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의 월급 100만 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우받지 못한 탓에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먹었어요. 정부에서는 우수 인재들을 해외에서 공부를 시키지만, 정작 그 학생들은 자신이 불가리아 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해외에서만 활약 중이래요. 이어 말하길 그런 인재들이 돌아와서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 뻔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국민은 교육열과 애국심, 단합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금 모으기로 IMF사태를 극복한 사례를 알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대한민국도 90년대에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불가리아도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그렇게 불가리아 여행을 마치고 그리스의 아테네 대학교를 갔는데, 이번에는 전 교직원이 파업 중이라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고 있더라고요. 전 세계는 파업 중인가요?”
박승현 씨는 벨기에에서 캠퍼스를 지키는 학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벨기에에서 만난 그 친구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이상한 옷차림(망원경, 사진기, 등산용 백팩)으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관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 학생은 맞느냐, 이렇게 물어봤었죠.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자신의 캠퍼스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학생이었어요. 그 학교의 토지 일부가 부동산 업자들에게 넘어가 개발이 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곳에 사는 동식물들이었죠. 상상을 초월하는 게 캠퍼스 안에 각종 희귀 동식물이 있고 심지어 여우까지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그곳의 아름다운 환경과 학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어요. 얼마 후면 자신의 고국인 레바논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자신의 모교를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있었죠.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취업에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그러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부끄럽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자기 집에 선뜻 초대도 해주어 그곳 대학생들과 같이 밥도 먹으며 이야기하고, 그곳에서 따뜻하게 잤던 추억은 덤으로 가져갔답니다.”
두 사람이 31개국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은 이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상당히 끼쳤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당장은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 숙식만 해도 밭에서도 자고, 화장실에서도 자고, 처음 보는 현지인들의 집에 초청받아 자기도 했다. 이뿐인가. 두 사람은 사회문화, 환경의 차이로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림푸스산에서는 수십 마리의 들개 떼들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 지나고 나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장우석 씨는 추위가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적은 없었는데, 겨울이라 추위가 가장 문제였어요. 저희가 세르비아를 떠나기 전에 새벽 2시까지 숙소를 찾지 못한 채 한 마을을 방황하고 있었어요. 너무 추워서 더는 못 움직이겠는데 텐트를 치고 잘만한 곳조차 보이지 않더라고요. 때마침 생일파티 중인 학생의 무리를 만났어요. 그중 한 명이 추위에 떠는 저희를 보고 자신의 집에 기꺼이 초대를 해주더라고요. 저희는 생일축하노래를 한국어로 불러주고, 60도가 넘는 ‘라키아’라는 전통술도 마시면서 따뜻한 저녁을 보냈답니다. 다음날 아침 그 가족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저희를 위해서 만찬을 준비해 주셨더라고요. 식사가 마치고 저희는 감사의 표시로 ‘아리랑’, ‘강남스타일’ 등 한국음악을 단소와 여행용 기타로 연주를 해주었어요. 그러자 그 가족도 감사의 표시로 답가를 불러주었는데, 아버지의 선창에 나머지 가족들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더라고요. 서로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 가족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떠나기 전 선물로 홈 메이드 ‘라키아’를 받았거든요. 저희가 밖에서 잘 때마다 한잔씩 했는데 몸이 확 데워지는 게 최고더라고요.”
박승현 씨는 들짐승이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저희 여행은 거의 들짐승들과의 싸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동유럽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유기견들이 길거리에 넘쳐났고, 그 들개들은 항상 우리 오토바이만 보면 신나서 물려고 쫓아왔어요. 알프스 산맥에서 캠핑을 하는데 정체모를 들짐승(?)이 우리 텐트를 건들어서 덜덜 떨며 밤을 보낸 적도 있었고요. 올림푸스산에서는 캠핑을 하러 올라가는데, 인적이 드문 산길이 되자, 들개떼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더군요, 한 무리 겨우 재끼면 다음 무리가 또 기다리고 있고... 그러다가 저 멀리 인가가 보여 살려달라고 들어가려 했더니, 개들이 점령한 흉가였어요. 그때 막 미친 듯이 도망쳤던 기억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랍니다. 그나저나 -곰 출몰지역. -늑대 출몰지역. 이런 간판이 붙어있는 산속을 우리 혼자 달릴 때는 얼마나 무섭던지요.”
그럼에도 이들이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88만 원 세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20대들에게 꿈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20대 젊은이들을 ‘철가방’으로 대변하고, 이들을 대신해 우편배달부 노릇을 한 격이다. 두 사람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장우석 씨는 “‘당신은 꿈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도 꿈이 없었지만 어릴 적의 ‘무모해 보이는 꿈’을 좇으면서 또 다른 꿈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한국에 와서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봤어요. 가난, 취업난, 시간 부족 등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꿈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거나, ‘돈’과 직결된 직업을 꿈으로 착각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인생은 장기 레이스라고 하잖아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만 바라보고 ‘목표’를 ‘꿈’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끝내 본래 가진 꿈을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닌지. 저희가 배달한 꿈들을 통해 ‘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박승현 씨도 마찬가지였다. “저희가 철가방을 든 이유는 바로 대학생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서입니다. 흔히들 88만원 세대라 자신을 부르며 높은 등록금, 취업난에 허덕이는 게 현실이죠. 주변에 흔히 보는 자장면 배달부도 그런 평번한 대한민국 젊은이 들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지금 타고 있는 그 오토바이가 세계를 누비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자장면이 들어있는 철가방, 여러분이 지금 배달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 대한 좌절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입니다. 힘들더라도 항상 꿈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세계 젊은이들의 다양한 꿈을 철가방에 담아 한국에 들어왔다. 별 탈 없이 고국에 돌아온 감회가 궁금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장우석 씨는 고맙고 뿌듯해했다. 삶의 용기도 충전했다. “우선 다치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에 정말 감사하죠. 운 좋게도 오토바이는 엔진을 제외하고는 큰 고장도 한 번도 안 났고, 사고도 나지 않았어요. 게다가 ‘125CC 중고 배달용 오토바이 한 대로 과연 16000km에 달하는 유럽 일주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계속 얻어맞다가 한방에 K.O. 펀치를 날린 느낌이에요. 막상 제 버킷리스트 1번을 성취하고 나니 다른 것들도 이루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 있죠. 제가 좀 더 나이가 들면, 이 여행기를 미래의 자식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마 평생의 이야깃거리가 되겠죠?"
박승현 씨는 행복의 의미를 다시 물었다. “저는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와 보니 찾게 된 것은 꿈 자체라기보다는 ‘꿈의 의미’였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다주신 그 작은 음식 하나에도 행복해하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하지만 점점 커가며 그때의 기억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져만 갔죠. 대학에 입학하고 현실에 쫓기며 내가 무엇에 행복한지에 대한 생각은 사치에 불과할 뿐.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 대한 두근거림이 있었고, 그 두근거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어요. 저는 그때 그 두근거림을 꿈이라 보아요. 가슴속에 두근거림이 있기에 행복하고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어떤’, ‘거창한’ 꿈이 있는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단지 가슴속에 ‘꿈’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었죠. 가슴에 살아있는 꿈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이랍니다. 그렇게 지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수많은 꿈들이 내 가슴속에서 두근거리고 있으니까.”
장우석, 박승현 씨는 정말 대책 없이 무작정 떠났다. 새로운 자극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철가방을 들고, 중고 오토바이를 몰며 종횡무진 달렸다. 낙관적인 사람들조차 ‘왜’라고 질문을 던질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이들에게 엄청난 삶의 ‘활력소’가 됐다. 잠시 인생의 진로에서 빗겨나 눈물, 콧물을 빼고 왔지만, 힘든 만큼 알게 모르게 이들의 밑바닥에 스며든 용기와 의지는 상당해 보인다.
이들의 세계여행은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가소롭게 한다. 모두 이유는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들의 여정은 그 자체로 젊은이들에게 깨닫게 하는 바가 크다. 돈이 만능인 것처럼 얘기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여행 소식은 얼굴이 화끈해질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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