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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박정민 사진가 - 4대강 기록하다

박정민 사진가


인간이 바꾼 지구 환경의 대표적인 예는 강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댐을 만들고, 보를 만들고, 물길을 새로 뚫었다. 강을 바꾸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늘 생겨, 처음 생각했던 예산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바뀐 강은 한 나라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 특히 환경파괴는 심각했다. 강과 강 주위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이 죽음 직전에 내몰렸다. 녹조가 일어난 지역의 물속 생태계는 거의 몰살당했다. 또 보의 상하류 흙은 파였고, 지형도 변해 생태계는 교란됐다. 한마디로 한 나라의 공적자금을 탕진했지만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많은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은 불도저식이었다. 공사 길이 634km에 이르는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넉 달 만에 마쳤고, 22조 원이 넘는 국책 사업을 2년 만에 완성하겠다고 공헌했다. 금빛모래와 여울을 없앴고, 강바닥을 파냈다.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운 자연을 갈아엎어 자전거도로를 만들었고, 물을 가둬 오염시켰다. 4대강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전 방위적인 토목공사가 벌어졌다. 운하(경인아라뱃길)도 뚫었고,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같은 공간도 새롭게 조성했다. 하지만 하천 유역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와 분석, 관리 계획이 부실한 상태에서 개발이 진행돼 막대한 피해를 낳았다.

강을 바꾸는 공사는 인간과 자연에게 상상할 수 없는 논쟁과 비극을 불렀다. 이 비극의 현장을 4년간 묵묵히 쫓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한 작가가 있다. 4대강 관련 작업을 모아 전시 <다운 바이 더 리버(Down by the River)>전을 연 박정민 작가다.

“4대강은 공사현장도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문제도 얽혀있다. 여주 이포보에서 점거농성을 할 때였다. 지역민들이 달려와서 우리 일에 왜 외부에서 끼어드느냐고 실력을 행사했다. 멱살 잡히고, 뒤집어엎고, 깨지고 그랬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민주당 당론에도 불구하고 영산강 사업은 찬성했다. 4대강은 이런 식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었다. 수경 스님은 4대강 문제가 ‘우리 모두의 거울’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물질적인 욕망과 자연파괴 문제는 계속해서 부딪칠 것이다. 이 문제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돼오고 있다. 걱정거리다.”

낙동강 강변에서 포클레인이 벌건 모래를 퍼 올린다. 여주 남한강에 날아온 새는 쓰레기가 쌓인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부여 금강은 푸릇한 잔디처럼 녹조가 들어찼고, 공주 곰나루를 감싸고도는 모래톱은 유실되기 시작했다. 잔잔하지만 깊은 애환이 사무치는 작품들이다.

 


전문가들은 강을 바꾸고, 개발하는 것보다 자연과 인간의 안식처로서의 강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댐과 보를 철거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강 살리기’ 운동에 나서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강을 바꾸는 대규모 공사가 여러 가지 골칫거리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150년이나 앞서 강을 수로로 정비한 독일과 스위스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다시 강 살리기를 하고 있다.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다.

개발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에 서로 유익하다면 얼마든지 고쳐 쓰면 된다. 하지만 바꾼 강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탐욕은 재앙을 부르고, 재앙이 쌓이다 보면 지구는 파멸로 이어진다. 정작 우리에게 그토록 깨끗한 강이 필요할 때, 절대로 강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러한 무서운 작가적 상상력이 그를 4대강으로 이끌었다. 

“환경문제에 원래 관심이 많았다. 2006년 전업 작가가 된 것도 환경문제를 제대로 다뤄보자는 각오였다. 4대강은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4대강 주변은 모두 유명한 도시들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수천 년, 수만 년 강에 의지하고, 이용하고, 피해도 보면서 살았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도시의 역사가 바뀌게 됐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민 작가는 4대강 사업 초기인 2010년 봄부터 완공 이후인 2013년 가을까지 40여 차례에 강을 찾았다. 그리고 그동안 여정의 결과물은 두 번에 걸쳐 소개했다. 지난 2011년 첫 개인전 ‘인터스케이프(Interscape)’전과 2013년 두 번째 개인전 ‘4대강, 4년간’전이다. 

최근 카페 갤러리 One에서 열리는 <다운 바이 더 리버(Down by the River) >전은 세 번째 기획전. 이번 전시에는 이전에 소개된 작품 10여 점을 포함해 총 20여 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앞서 열린 두 번의 전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경인아라뱃길 조성 사업에 대한 박정민 작가의 시각적 성찰이다. 

“사진의 역할이 기록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억이다. 사람들 머릿속에 4대강 문제가 계속 기억되고, 기억돼야만 반성과 성찰로 이어진다. 사진이 이슈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떴다가 가라앉고, 떴다가 가라앉고 그렇게 된다. 4대강에서 강정마을로, 강정마을에서 밀양송전탑으로……. 이슈가 터지면 휩쓸려 버린다. 연속성을 생각하고 계속 같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반복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전시를 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이 사진을 고르는 일이다. 나는 내 사진을 계속 본다. 수십 번 여러 달에, 여러 해에 걸쳐 보면서 질리는 사진을 뺀다. 오랫동안 쳐다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사진, 오래 기억되는 사진을 고르려고 한다.” 

박 작가의 작품을 보면 2011년 4대강 준공식을 기준점으로 조금은 다르다. 2011년까지는 4대강 공사 장면이, 2012년 이후부터는 공사가 끝난 이후의 모습이 주다. 이를 테면 2013년 사진 중 폐준설선들이 어디로 가지 못하게만 묶여 방치된 낙동강 사진이 있다. 박 작가는 “기름이 유출되는 준설선도 있다”며 “기막힌 완공”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막연하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나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른다. 4대강 사업명이 세 번이나 바뀐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처음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였고, 그다음은 ‘4대강 정비사업’, 그다음은 ‘4대강 살리기’였다. 

모두 정부가 기만적으로 4대강을 홍보하면서 진실을 감춰온 탓이다. 언론 또한 적확한 사실을 보도하기보다는 정부 관계자의 입을 빌어 4대강을 설명하기 바빴다. 그러니, 그렇게 돈이 낭비되고, 자연이 파괴돼도 무조건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 작가는 찬성과 반대 입장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아무 고민 없이 중립을 유지하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대신 그는 사진을 통해 물음을 던졌다. 환경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과 성찰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다. 

“4대강 사업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비판적이지만 과장하거나 설득하려고 애를 써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가급적 몇 발짝 물러서서 응시하려고 했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최대한 성찰을 유도하려는 의도다. 자극적으로 접근하면 ‘정말 나쁘다’는 말로 끝나고 만다. 돌아서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런 문제들이 반복된다. 사진가로서 문제제기에 충실한 게 본연의 역할이다. 해결 방법은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