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나라는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다. 여러 장르의 예술 가운데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분야는 음악극이다. 여태까지 그가 쏟은 열정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그를 얘기하지 않고서는 음악극을 논할 수 없다. 유럽에서 음악극은 지명도가 꽤 높지만 한국에서는 토대가 거의 없는 편이다.
“음악극은 대사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더해 대사를 음향으로 생각한다. 목소리를 하나의 소리로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발음할 때 이 발음이 어떻게 울리고 멜로디는 어떠한지, 소리에 반응하고 자극받고, 에너지를 교류하는 것이 음악극이다. 음악극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갈린다.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신기해서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신나라. 본명이다. 신나라가 작곡을 공부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그의 어머니는 클래식을 매우 좋아했다. 공부만 강조하는 보통 어머니들과 달리 아들이 음악을 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았다. 신나라는 중학교 때까지는 교내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취미 삼아 음악을 시작했다. 동요 짓기 같은 작곡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정도였다. 신나라가 음악가를 꿈꾸고,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 때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작곡을 업으로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맞벌이하시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내 성격이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뒤에서 만들어내고 도와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연주가가 아니라 작곡가로 진로를 잡았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악기 연주 못지않게 작곡 공부도 어렵다. 공부가 어렵다기보다는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은 피를 말린다. 그는 개인적인 성격을 이유로 연주 대신 작곡을 선택했지만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을 떠안아야 했다. 창작에 대한 고통이다.
“매 순간마다 고민이고 도전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작곡하다 막힐 때면 습관적으로 해왔던 방식으로 멜로디를 변화, 발전시키게 된다.(웃음) 작곡을 위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 새로운 요소들, 음악 외적인 것들을 주의 깊게 살핀다. 이를 테면 순간적으로 종소리를 들었는데 잔향에서 느끼는 경험이나 자극을 응용해 본다.”
신나라는 창작의 고통을 즐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은 소리를 구체화시킨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작곡에 매료됐고, 마치 정해진 숙명처럼 작곡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그는 20여 년간 단 한 번도 곁눈질을 하지 않고 현대음악의 외길을 걸었다.
“클래식을 하고 싶었고, 현재 하고 있는 현대음악을 좋아한다.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이면서도 동시대의 새로운 음악이다. 클래식처럼 정해진 규칙이나 이론이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내가 풀어내고 싶은 감성을 그대로 풀어내면 된다.”
신나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홀연 독일 유학을 떠난다. 그는 작곡을 공부하다 막연하게 독일유학을 꿈꿨다. 그러다 우연히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음악을 듣고 림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독일 칼스루헤 국립대학으로 떠나야겠다고 결정했다. 림 교수가 운명의 신처럼 그의 미래를 정해준 것과 다르지 않다.
“독일은 작곡 전통이 강한 나라다. 본고장에 가서 제대로 경험하고 싶었다. 음악은 단순한 테크닉을 배우는 게 아니라 문화멘털을 배우는 것, 서양음악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곳에 가봐야 했다. 독일어 문법만 공부하고 무작정 유학을 갔다. 회화는 몸으로 배웠다. 상당히 힘들었다. 시간이 흐르니 고민한 만큼 해결되더라. 1년 동안 실기시험과 어학을 준비한 뒤 입학했다.”
신나라는 학교에 가서 모든 음악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음악 안에는 여러 가지 경향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공부에 집중했다. 다르게 얘기하면 음악 자제를 배우는 것보다 자신의 음악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익히고 선택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대학은 기본기가 탄탄하더라. 포괄적으로 음악연주만이 아니라 교양과 상식을 가르치며, 엄격하게 관리한다. 또 학비가 없다. 학생회비와 실비만 내고 다녔다. 그 점이 아주 좋았다. 내가 다닐 때와는 달리 지금은 조금이라도 학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나라는 독일에 있는 동안 음악극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졌다. 오페라와는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신나라는 설치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칼스루에라는 도시에 있는 매체예술연구센터(ZKM)에 전시된 새로운 형식의 매체예술 작품, 영상과 설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작업에 매료돼 그곳을 자주 들렸다. 그러던 중 음악극을 알게 됐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그의 말로 대신하자면 “흥분”이었다.
그는 청각에 의존하는 음악을 시각적으로 전이시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에 고무됐고. 그때부터 자신의 음악으로 체화시켰다. 그리고 그는 10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신나라표’ 음악극을 무대에 올렸다. 자신의 감성과 음악성을 총동원하고, 자신의 ‘첫 경험’을 되살려 관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는 스스로 작곡가로서 잠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로 치면 매우 잠이 없는 편이지만) 그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음악에 올인한다.
신나라는 음악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음악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졌다. 연륜이 쌓이다 보니 자신만의 스타일도 생겼고, 풍부한 경험은 음악적 혜안도 갖게 했다.
음악극은 말 그대로 연극, 음악, 무용이 하나로 결합된 연주형태의 하나다. 하지만 음악극이라고 해서 딱 ‘이것’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단, 음악극은 고전 시극이 태동하게 된 정신, 즉 파괴와 실험, 진보성이 깃든 무대예술의 한 형태라고는 얘기할 수 있겠다.
시극은 19세기 바그너가 오페라의 형식에 반대해 선보인 악극이다. 오페라는 성악 위주로 진행돼 성악가가 부르는 아리아를 가장 중요시했고, 관현악은 반주 역할만 했다. 하지만 시극이 만들어지면서 극의 줄거리와 음악이 강조되고, 성악과 관현악이 모두 중요하게 됐다. 이후 음악극은 1960년대 유럽의 학생운동 시기에 기존의 오페라에 비판적이었던 작곡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음악에 다른 장르의 예술을 결합시켜 새로운 무대예술을 창조한 것이다.
그가 음악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열린 마음’이다. ‘음악극을 하는 예술가들은 마음이 늘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음악극은 열려 있어야 한다. 음악을 이해하고, 다른 장르의 예술과 열린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스텝들 간의 소통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낸다.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작업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해야 가능하다.”
음악이 없는 공연은 상상할 수 없다. 극을 살려주고, 감정을 극대화시키기에 음악만 한 요소가 없다. 생각해 보자. 한 여배우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극도의 슬픔에 빠져있다. 이때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아니 애절한 음악에 맞춰 여배우가 노래를 부른다면 관객들의 마음을 더욱 뒤흔들 수 있지 않을까. 서울시극단이 준비한 연극 나비잠은 신나라 작곡가의 음악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공연에서 음악은 그 이상의 의미로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신나라는 서울시예술단의 공연 ‘나비잠’의 매인음악과 자장가 7곡을 작곡했다. 나비잠은 미술과 음악, 연극과 문학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시극이다.
“나비잠은 시극이다. 고도의 은유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나름 재밌었다. 조금 더 연극적인, 시적인 관점에서 작업에 참여하면서 다른 도전, 만족감을 얻었다. 나의 세계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연출방향에 맞게 작업을 했다. 서로 설득하고, 소통하고, 타협하고, 이해하면서 작업이 이뤄졌다.”
앞으로도 신나라의 일상은 변함없다. 음악극을 준비하면서 아이디어 수집을 계속하고, 알찬 강의는 물론 여러 작곡 작업에도 혼신의 힘을 쏟을 계획이다.
요즘은 그의 활동이 뜸한 듯싶다. 그가 참여하는 작품이 발표되면 꼭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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