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125

다이빙벨 -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의 싸움, 이상호, 안해룡 감독 2014년작

다이빙벨(Diving Bell)은 세월호 침몰의 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다이빙벨은 커다란 종모양의 구조물로, 잠수부들이 오랜 시간 바닷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이빙벨이 바다에 투입되면 내부상층에 에어포켓과 같은 공기층을 만들어져, 잠수부들은 그곳에 들어가 쉴 수 있다. 영화 은 세월호 참사 이후 다이빙벨의 투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15일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이다. 이 영화는 다이빙벨을 매개로, 이상호 기자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생존자 수색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팽목항의 진실을 서서히 드러낸다. 참사 이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감추려는 자의 싸움 또한 얼마나 첨예했는지 그려낸다. 이 영화의 메..

할리데이 - 추억 돋우는 뮤지컬 영화, 맥스 기와, 다니아 파스퀴니 감독 2014년작

추억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수많은 일들이 마음을 괴롭히고, 가끔씩 돈과 명예에 짓눌려 사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추억 때문에 지친 삶을 위로받는다. 추억은 한 송이 꽃처럼 찡그린 얼굴을 펴게도 만든다. 겉치레만 번지르르한 세상사를 이겨내는 자기 암시를 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다. 이를 테면 잠시 삶에서 삐끗했을 때 '그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성찰하면서 제자리에 돌아오도록 돕는다. 뮤지컬 영화 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인도한다. 영화 속 옛 음악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든다. 80년대를 풍미했던 팝 넘버들과 활기찬 군무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마치 청춘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에는..

메이즈 러너 - 위키드와 토마스를 주목하라, 웨스 볼 감독 2014년작

상업주의에 물든 SF오락 영화 정도로 예상했다. 독창적인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나, 뒷짐 지고 지켜볼 태세였다. 오판이었다. 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영화였다. 뛰어난 상상력과 팽팽한 긴장감은 놀랍고 흥미롭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감동이 거기에만 머무르면, 조금은 곤란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키워드는 '위키드'와 '토마스'다. '위키드'는 제약연구소다. 이곳 연구원들은 '위키드는 좋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다. 인류 멸망 이후 새로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소년의 뇌를 연구해 인류의 미래를 더 낫게 만들겠다는 대의다. 그러나 위키드는 인류에 이롭다는 명분 아래 참혹하고 잔인한 행위마저 합리화한다. 소년들을 지옥 같은 미로 속에 거대한 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다 같은 육체적 욕망, 막시밀리안 하슬버거 감독 2014년작

벌거숭이 남녀가 정사를 벌인다. 그 순간만은 거리낌도 수치심도 없다. 육체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엔진을 돌리고, 엔진이 돌아가는 시간만큼은 쾌락에 충실한다. 우리가 성욕을 해결하는 평범한 모습이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도 다르지 않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손놀림이 힘겹고,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지만 감정에 충실하길 원한다. 다큐 은 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여과 없이 그려낸다. 플레이보이 잡지에 대한 집착,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무모한 도전, 어렵고 감흥 없는 수음, 돈으로 파트너를 사는 매춘 등을 거르지 않고 보여준다. 카메라의 밀착도가 사실적이고 가까워 다소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이 다큐가 성행위 자체가 아니라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같은 인간의 이야기고,..

마다가스카르의 삶 - 편안한 것만 추구하는 이들에게, 난테나이나 로바 감독 2014년작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속담이 있다. 거친 음식을 먹어 똥구멍이 찢어진다, 먹은 게 없어 똥이 나올 리 없는데, 굶주린 배가 아파 힘을 주니 똥구멍이 말라 찢어지고 만다는 의미다. 마다가스카르에 살고 있는 빈민의 삶이 그러하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는 집에서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다. 여벌의 소반 하나가 없고, 옷차림새는 항상 가년스럽다.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들면 마음이 궁색해진다. 자기 삶이 어려우니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생계조차 잇지 못할 정도가 되면 가난은 공포가 되고, 사람을 짐승으로 변하게 만든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인 빈민은 당당하고 억척스럽게 가난을 이겨낸다. 평화롭게 삶을 구가한다. 구김새도 없고, 원망도 없다. 구걸하는 이도 없다, 가난하지만 미천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 무기를 들어라, 정성복 감독 2014년작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일까 저어했다. 로맨스가 섞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상업 뮤지컬의 한계겠다. 아니었다. 뮤지컬 은 프랑스혁명의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계급투쟁, 더 나아가 시민혁명의 가치를 옹골차게 그려냈다. 내용도 섬세했다. 혁명 조직 안의 다툼까지 밖으로 꺼내놓으며 프랑스혁명의 의미를 진중하게 되살렸다. 예를 들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과 집안 좋은 부르주아 대학생의 갈등에서 '혁명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을 강조하며 어려움을 이겨내는 식이다. 은 뮤지컬 공연 실황을 녹화한 3D영화다. 세계 최정상의 유럽 뮤지컬을 극장에서 싼 가격으로 본다는 생각.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무대 위 현장감과 감동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이 돼서다.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원판과 ..

내 마음의 고향 - 자비인가? 욕망인가?, 박영철 감독 2014년작

느리다. 굼벵이처럼 우둔해서도, 베짱이처럼 태평해서도 아니다. 의도적으로 속도감을 줄인 것 같다. 느린 장단의 가락을 잡아주는 둔중한 징소리를 닮았다고나 할까. 찰가당 적막을 깨뜨리는 건, 엄마에게 털 부채를 만들어주기 위해 아이가 죽인 비둘기 한 마리.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찾겠다고, 산사를 떠나는 12살 아이에게 온갖 연민이 솟는다. 무겁게 눈이 감긴다. 영화 은 깨끗하다. 산사(山寺) 분위기에 젖어 한없이 고요해진다. 누구한테 들킬세라 모든 게 조용히 꿈틀거린다. 줄거리는 짐짓 위태롭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슬랑 아슬랑하다. 수로를 따라 떨어지는 물소리, 바람을 타고 뒹구는 낙엽. 소나기 한 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멋없고 꽉 막힌 상황에서 찾아오는 근사한 평화. 이 영화가 주는 전반적..

루시 - 속되고 더러운 미래를 봤다, 뤽 베송 감독 2014년작

육체가 어떤 과잉 상태에 이르면 철저히 파괴될 것이라고 우리는 예측한다. 영화 는 이 예측을 완벽하게 뒤엎는다. 루시의 몸 속에 퍼진 합성약물은 체내의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 그녀를 인간 병기로 만든다. 심지어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모든 상황을 제어하며, 타인의 행동까지 마음대로 부리게 된다. 루시의 활약은 뤽베송 감독의 영화 를 떠올리게 한다. 순수하고 치명적인 킬러 '니키다'가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루시'로 변한 셈이다. 끝내 루시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100%까지 쓸 수 있게 된다. 신의 권능과 맞먹는 지혜와 능력을 갖게 된다. 엄청난 설정이다. (인간은 뇌의 능력을 평생동안 5%밖에 사용하지 못하며,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도 10%밖에 활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체에 다다른 루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오버 없이 훈훈한 마블 영웅물, 제임스 건 감독 2014년작

는 '미국 만세'를 외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무조건 터부시하는 영화팬만 아니라면 즐겁게 볼만하겠다. 호불호가 갈릴 영화가 아니다. 누구나 정서적으로 통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누가 알아주지 않고,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목숨을 걸만큼 위험천만한 일이라도 결정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대부분 시간 아깝고, 손해 보기 싫고, 사랑마저도 없다고 쩔쩔매다 뒤로 물러설 것이다. 하지만 엉뚱하고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악당들이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뭉친다.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사납게 욕설을 내뱉고 멱살을 잡던 이들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순한 양처럼 어진 얼굴로 정의를 외치더니 ..

어떤 만남 - 제어하지 못한 사랑은 광란, 리사 아주엘로스 감독 2014년작

소피마르소. 절세미인이다. 콧날이 서고, 살결이 곱고, 눈두덩이 쑥 들어간 옴팡눈을 가진 서양미인. 중년이지만 아직도 수려하기 그지없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나 환경,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소피마르소는 예외다. 반하지 않을 남자는 없다. 도회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장미꽃처럼 탐스러운 여자를 보면 몸에 전기가 찌르르하고 돌게 된다. 탐스럽다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피마르소가 그렇다. 역시 그녀를 보고 한 남자가 첫눈에 반한다. 첫눈에 반하는 건 대부분 성적인 매력 때문. 하지만 그는 쾌활하고, 솔직하고, 지적인 그녀에게 마음까지 빼앗긴다. 소피마르소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 배우 프랑수아 클루제다. 그는 미남이라기보다는 착하게 생겼다. 천연덕스럽게 연기도 잘한다. 두 사람에게서는 프랑스인의 기질..

논픽션 다이어리 - 왜 나만 유죄냐, 정윤석 감독 2014년작

부끄럽고 창피하다. 가슴이 와들와들 떨린다. 우습게도 울고도 싶어졌다. 다큐 때문만은 아니다. 그 당시보다 나아지지 않은 현실, 아니 더욱더 나빠진 우리 사회가 보여서다. 이 다큐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가감 없이 그대로 투영해낸다. 그리고 그 자화상을 현실로 급하게 소환한다. 부자와 빈자의 분화를 촉매하고, 인간보다 물질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를 예의 주시하자는 일종의 ‘경고’겠다. 세간의 감탄사와 다르게, 다큐 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 젊은 시절을 보낸 연배라면 비슷하겠다. 3당 합당과 분신정국 투쟁을 지나 문민정부와 오렌지족 등장,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를 지켜봤던 청춘에게 지존파 사건은 끔찍했지만 우리 사회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1990년 노태우, 김종필, 김..

프란시스 하 -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지, 노아 바움백 감독 2012년작

여자 이야기다. 남자의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여자 관객은 공감이 가겠다. 너무 ‘재밌다’고 팔짝 뛰겠다. 하지만 남자 관객에게는 의문이다. 둔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영화 속 남자 배우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남자가 보기에는 살짝 사사로운 영화 다. 그렇다고 남자가 좋아하는 주제가 별다른 건 아니다. 전쟁, 격투, 범죄 같은 영화는 취향 문제고, 섬세한 멜로나 다큐만 골라보는 남자도 있다. 중요한 것은 프란시스가 겪는 고민의 질이다. 27살 여자, 프란시스의 고민과 방황을 쪼개 보면 일부분 동의가 간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부족한 주머니 사정, 폭주 뒤에 남은 카드빚, 우정을 위한 몸부림, 취직을 위한 발버둥 같은 갈등은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는 레퍼토리다. 게다가 프란시스는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나쁜 이웃들 - 소심한 이웃에 주는 카타르시스, 니콜라스 스톨러 감독 2014년작

별의별 문제로 이웃 간에 다툼이 일어난다. 흡연. 층간소음. 애완동물. 쓰레기. 갈등의 원인은 소소해 보이지만 양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위아래도 없다. 성별도 없다. 말싸움으로 시작하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삿대질에 욕설, 폭행, 상해로 이어진다. 실제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다투다 흉기를 휘두른 일이 적잖게 뉴스에 오르내렸다. 영화 은 성인 코미디물이다. 이 영화가 배꼽을 빼게 하는 와중에도 가끔씩 울컥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웃 간의 불화를 소재로 다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웃 간의 갈등을 유머러스한 복수혈전으로 희화시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결론 또한 훈훈한 화해로 유도한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살벌하기 그지없다. 미국에서는 이웃 간에 다투다 총을 쏘는 일도 많다고 하니, 미..

님포매니악 볼륨 1 - 경직된 사회에 경종 울리는 영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13년작

님포매니악. 제대로 발음하면 ‘님포마니아크’다. 님포매니악은 섹스로 얻는 쾌감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를 칭하는 단어로, 우리 사회는 이들을 ‘색전증 환자’라고 부른다. 은 이 색전증 환자의 도발적인 행각을 들려주는 영화다. 그런데 왜 님포매니악은 환자일까. 횟수가 많아서? 탐닉해서? 상스러워서? 섹스에 열중하면 몸이나 정신 건강에 해롭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니, 일단 그렇다고 닥치겠다. 영화 .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자극적인 단어들이 나열되고, 끝장나는 영상미로 거침없는 욕정을 뿜어낸다. 성기 노출, 실제 정사 장면, 상상할 수 없는 텍스트, 예상치 못한 줄거리에 잠시 민망해질 때쯤, 주인공의 감정에 그대로 이입되면서 화면 속에 벌거벗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이브 생 로랑 - 천재의 이면에 감춰진 고뇌와 아픔, 자릴 레스페르 감독 2014년작

놀랐다.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이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천재로 불리는 한 인간의 이면에 그토록 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었는지 몰랐다. ‘옷’ 하나만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것도 부러웠다. 우리는 태어나서 한 가지 일을 죽도록 해본 적이 있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소릴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영화 은 우리나라 관객이 보기에 다소 수위가 높다. 파격적인 정사신이나 폭력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다. 이브 생 로랑은 우리 사회가 금기라고 부르는 것들의 전부다. 이브 생 로랑의 삶은 담배, 마약, 술, 성교 등 방탕과 환락으로 점철돼 있었다. 게다가 동성애, 그것도 아주 문란하게 사랑과 쾌락을 추구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이브 생 로랑을 정확하게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 지인, 동료 등의..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 풍비박산 현장에서 건진 의리, 마이클 베이 감독 2014년작

와장창한다. 시종일관 깨지고, 부서지고, 절단 난다.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빌딩은 허물어지고, 유리창은 박살나며, 사람은 도망가기 바쁘다. 순간순간이 살얼음을 밟듯 위태롭다. 영화 는 한마디로 ‘풍비박산의 현장’이다. 시리즈의 ‘매력’은 멋진 변신과 적의 넘치는 스토리, 선과 악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이 범주에서 네 번째 트랜스포머 역시 변함은 없다. 보는 내내 속은 시원하고, 눈은 즐거우며, 귀는 얼얼하다. 문제는 스토리다. 전편에서 악의 상징인 디셉티콘의 보스 메가트론이 죽었다. 그래서 그의 부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유심히 지켜봤다. 억지는 아니었다. 백악기 시대와 현재를 연결해 풀어낸 내러티브는 설득력이 있었다. 예상이 빗나가진 않았지만 중반 넘어서까지 메가트론의 존재를 숨긴 점도 흥미를 ..

블랙딜 -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마저 내팽개칠 '민영화', 이훈규 감독 2014년작

두려움이 앞섰다. 초조와 공포가 엇갈렸다. 공공재가 하나둘씩 민영화된 나라는 피폐와 몰락을 거듭했고, 그 나라의 국민은 하루하루 퍽퍽한 삶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마치 갈 길마저 잃어버린 나그네 같았다. 가장 비참한 나라는 아르헨티나였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심한 교통정체로 악명 높다. 이곳은 민간 기업이 전기를 공급한다. 하지만 이윤에만 치중한 나머지 투자와 관리에 소홀해 국지적 단전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5일 이상 단전되면, 시민은 거리에 나와 집회를 한다. 이런 집회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다 보니, 이곳에는 교통정체가 만성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단전 문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기업의 배만 불리는 상하수도,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고 있는 철도 등 민영화가 부른 갖가지 고통이 이 나라에..

미녀와 야수 - 신물 나는 미녀 얘기와 달라, 크리스토프 강스 감독 2014년작

영어에 길들여진 귀가 쫄깃해진다. 부드러운 불어 목소리에 살짝 주눅이 든다. 우리나라가 영미 문화권도 아닌데, 그동안 너무 영어에 절어 살았다. 속이 메슥거린다. 오늘만은 ‘아이 러브 유’보다 ‘쥬 뗌므’가 낫겠다. 요즘 세상에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미녀다. 반했다. 혈기 방장한 남성들은 색탐 좀 들겠다. 미녀의 이름은 벨. 시원한 이목구비에 희고 고운 피부, 웃는 모습이 천사 같은 희세의 미녀다. 하지만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아름다워서 그녀를 미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녀는 지극한 효녀에, 털털하고 소박하다. 약속과 신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의리는 강직하며, 마음속 진심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고운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그녀는 미녀다. 영화 는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다. 내용도 원작과 많이 달..

엣지 오브 투모로우 - 지적 활동이 만들어낸 승리, 더그 라이만 감독 2014년작

예측은 빗나갔다. 총과 수류탄을 움켜쥐고 민첩하게 돌진해 흉측한 외계 생물체를 몰살하는 전쟁 영화 정도로 생각했다. 아니면 시꺼먼 포연이 피어오르는 전장의 참혹한 풍경과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영웅의 활약상을 교차시킨 SF 서사물이라 여겼다. 아니었다. 시산혈해를 이루는 전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맞았다. 하지만 예견할 수 없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새로운 SF물의 양상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비상식량과 탄알이 계속해서 보급되는 것처럼,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하루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동'이 그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영화 가 단박에 전해주는 메시지다. 비록 그것이 '시간이동'이라는 영화적 요소로 마모되긴 했지만 이 영화는 승리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는 남자 - 액션은 후끈한데 눈물은 왜 그렁그렁?

첫 장면은 강렬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총질에 가슴이 구멍 났다. ‘저건 킬러가 아니라 살인마야.’ 하지만 이 남자, 한 여자 아이의 죽음에 엄청 집착한다. ‘살인마가 설마?’ 하지만 그때부터 멋진 장동건이 좀 이상해진다.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왜지?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인생도, 사랑도 그렇지만 개연성 없는 애착은 과수를 두게 만들고, 사고를 잃은 집념은 인생을 망친다. 영화 . 액션 영화 팬이라면 봐도 후회는 없겠다. 피가 낭자한 칼부림과 사무실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물론 가짜 피고, 가짜로 죽는 것이니 그렇다. 보편적으로 사람 죽이는 거 보고 웃을 사람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아깝다. 화려한 액션이 한바탕 끝난 뒤 가슴에 남겨지는 ‘잔상’이 부족하다. 진부한 신파와 느낌 없는 편집증, 유년..

일대일 - 탐욕 앞에 사악한 인간, 김기덕 감독 2014년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없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대답을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지, 얼마나 탐욕적인지,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천박한지. 그 지독한 성찰을 견뎌내는 일이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남자 :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여자 :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면 어떻게 해. 나쁜 일일 수도 있잖아 남자 : 나빠도 해야지. 하라는데. 지시한 사람이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여자 : 공범이지. 남자 : 내가 왜 공범이야. 시키는 대로 한 건데. 여자 : 그래도 신념이 있어야지. 사람이. 남자 : 그래서 거부하라고. 어떻게 들어간 조직인데. 내 평생 밥줄인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여자 : 근데 무슨 일 하는데. 남자 : 어. ..

말레피센트 - 과한 욕심은 불행을 부르고, 로버트 스트롬버그 감독 2014년작

삶은 한이 없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뿐더러, 생명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영화 는 말한다. 삶은 자기완성이 아니라 자기해체라고, 산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하나씩 비우는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욕망을 놓지 않은 삶은 불행만 초래한다. 행복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영혼을 다스리고, 현실적인 관념을 이겨내는 것에 달렸다. 말레피센트. 우리에게 사악한 악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고전명작 에서 공주의 아름다움을 시샘해 치명적인 저주를 내리는 사악한 마녀로 등장한다. 하지만 원래 그녀는 추악하지 않았다. 저주의 빛이 가득 서린 얼굴로 사나운 말로 으르대고, 한없는 증오의 칼날을 휘두르는 마녀가 아니었다. 말레피센트의 큰 눈은 깊고, 목소리는 맑았으며, 난폭한 구..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누가 대결의 악순환을 막나, 브라이언 싱어 감독 2014년작

인간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을 보면 불안을 느낀다. 해를 끼치지도 않았지만, 무시하듯 곁눈질로 바라보며 위험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정도가 심해지면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거나 제거하려고 한다. 행여 그들이 저항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불안을 복수의 감정으로 바꾸고,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종북이나 빨갱이 논란도 모두 거기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혜를 합치면 좋겠지만, 더 많은 부와 명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앙심을 짓씹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면서 사상이 다른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살기충천한다. 의 이야기도 ‘차이’에서 출발한다. 엑스맨은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다. 불도 되고, 얼음도 되고, 공간이동도 하고, 상..

끝까지 간다 - 못되고 닳아빠진 경찰들, 김성훈 감독 2013년작

영화를 보는 재미보다 내용이나 관점이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영화 가 그런 영화다. 이 영화는 동시대 경찰의 모습을 감독의 시선으로 투영한다. 충분히 비난하며 즐기면 좋겠다. 연민이나 응원도 필요 없다. 현실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기에 영화를 보면서 참는 것이다. 는 자신의 죄를 수사 과정에서 숨길 수 있는 경찰의 악랄한 행위를 그린다. 스릴러건, 액션이건, 형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뇌물수수는 기본. 뺑소니 사고를 은폐하고, 돈을 위해서는 사람도 죽이는, 못되고 닳아빠진 경찰 이야기가 고갱이다. 범죄 영화는 선악을 대립시켜 감동을 극대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못된 놈도 부족해 못된 놈을 이용하려는 더 못된 놈이 나온다. 그런데 그 놈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

역린 - 사생결단 엇갈린 정조의 24시간, 이재규 감독 2014년작

영화 은 정조의 모질고 모진 운명의 24시간을 그린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세 편으로 갈릴 듯싶다. 현빈이냐, 진지함이냐, 오락이냐. 현빈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무조건 ‘오케이’고, 진지한 역사물을 선호한다면 ‘괜찮은’데, 적절한 유머와 자극을 기대했다면 ‘별로’라고 고개를 가로젓겠다. 영화 내용은 양쪽으로 갈려 사생결단이다. 이 영화의 표제어도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다. 거기에 하나를 더 붙여 ‘살려야 하는 자’도 넣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이고,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는 중립도, 알쏭달쏭한 사실도 없다. 확실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누구 편에 서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정조를 암살하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여라”와 “죽이면 안 된다”가 엇갈린다. 이 영..

저 하늘에도 슬픔이 - 가난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영화, 김수용 감독 1965년작

가난한 삶은 가치가 있다.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병들고, 배고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삶이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배곯아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단순히 빈곤이나 결핍의 상황이 아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가난은 생과 사의 문제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 산다고 떵떵거리지만 50년 전만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젖배를 곯아 죽은 아이들이 많았다. 곯은 배를 참지 못하고 꺼멓게 썩은 고목 등걸에서 자란 독버섯을 먹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도 풍족한 세상에 살다 보니 거짓말로 들리는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실재 아무런 힘도, 지식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살았다. 현대인들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

러브 인 비즈니스클래스 -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라, 알렉상드르 카스타그네티 감독 2013년작

귀엽다. 재치 있는 입담에 껄껄 웃었다. 예상치 못한 코믹 코드가 장면마다 펼쳐진다. 박장대소는 아니다. 영화 가 ‘개그콘서트’는 아니니, 그 정도의 위트만으로도 고맙다. 재밌게 봤다. 현실적이지 않아 공감이 떨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충분히 영화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헤어진 연인을 비행기 안에서, 그것도 옆자리에서 만난다? 가능한 일이다. 상황 자체가 유쾌하다. 그와 그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남긴 연인이라면 애초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쌩까기’ 모드였겠다. 하지만 세월도 흘렀고, 악감정도 없다. 다시 시작해볼 마음의 여백도 충분하다. 이런 마음은 그와 그녀의 당황한 표정, 행동, 갖가지 에피소드로 연출된다. 관객들에게 영화의 결말을 납득시키는 중요한 기제다. 사랑이..

300: 제국의 부활 - 갑빠보다 완벽한 예술작품, 노암 머로 감독 2014년작

흥미로웠다. 숨죽여 보며 놀랐다. 눈요기가 되는 남자들의 몸도, 머리와 몸뚱이가 동강 나는 칼싸움도, 사고의 폭을 팽창시키는 특수효과도, 사내구실을 못해 안달 내는 욕정도, 신전만큼이나 드높은 남자들의 의기도 아니다. 영화 의 가장 큰 감동은 바로 예술작품이다. 스토리에 집중한 나머지 놓치는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눈을 감동시키는 예술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고대 그리스는 미술과 건축의 전성기였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다. 몸. 좋았다. 사람의 몸인가 싶다. 얼마나 단련했는지 울퉁불퉁 반지랍다. 탄력 넘치는 힘줄, 살갗에서는 기름기도 뚝뚝 떨어진다. 저 정도라면 몇 날 며칠을 싸워도 힘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 죽음 이외에 피로도 없다. 고통도 없다. ..

탐욕의 제국 - 젊음 짓밟은 삼성, 홍리경 감독 2013년작

삼성은 죄인이다. 언젠가 죗값을 받을 것이다. 카르마(선악의 결과)다. 끝없는 탐욕은 괴로움을 잉태한다. 하지만 탐욕은 혼자만의 괴로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탐욕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망친다. 그래서 탐욕은 죄고, 삼성은 죄인이다. 탐욕은 사람을 성공으로도 이끌지만 실패로도 인도한다. 스스로 탐욕을 조정하느냐, 탐욕에 조정 당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다큐 을 보면 삼성은 영락없이 탐욕에 조정 당한다. 인간이 없다. 박애가 없다. 평화가 없다. 과연 삼성은 무엇을, 얼마나 채우려고 하는 것일까. 은 삼성의 탐욕 때문에 망가지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로테스크한 반도체 공정 라인. 하루 일과가 빼곡히 적힌 노트. 뭔가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걸로 담갔다 뺐다, 담갔다 ..

노예 12년 -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어, 스티브 맥퀸 감독 2013년작

미국의 슈베르트로 칭송받는 스티븐 콜린스 포스터(Stephen Collins Foster)가 작곡한 ‘올드 블랙 조(Old Black Joe)’.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 노래를 들으면 슬픔이 들불처럼 번진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나의 기쁨과 젊음의 나날은 지나가 버렸네. 목화밭에서 일하던 내 친구도 없어졌네. 이 세상을 떠나 좋은 나라로 간 것을 나는 알고 있네. 그들이 부르고 있는 소리가 들리네. 올드 블랙 조라고. 나도 가리라. 곧 가리라. 그들의 상냥한 부름 소리가 들리네. 올드 블랙 조라고….” 포스터는 늙은 흑인노예 조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노래를 작곡했다. 하지만 슬픔의 지점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진정 슬픈 것은 ‘조의 죽음’이 아니다. 평생 노예로 살았던 ‘조의 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