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누가 대결의 악순환을 막나, 브라이언 싱어 감독 2014년작

2022. 10. 25. 23:08이야기/그래 그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X-Men: Days of Future Pas), 브라이언 싱어(Bryan Singer) 감독 2014년작


인간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을 보면 불안을 느낀다. 해를 끼치지도 않았지만, 무시하듯 곁눈질로 바라보며 위험한 사람이라고 규정짓는다. 정도가 심해지면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거나 제거하려고 한다. 행여 그들이 저항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불안을 복수의 감정으로 바꾸고,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종북이나 빨갱이 논란도 모두 거기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혜를 합치면 좋겠지만, 더 많은 부와 명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앙심을 짓씹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면서 사상이 다른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살기충천한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이야기도 ‘차이’에서 출발한다. 엑스맨은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다. 불도 되고, 얼음도 되고, 공간이동도 하고, 상처도 기가 막히게 빨리 회복된다. 인류는 그들의 힘이 두렵다. 위협을 당한 것도 없으면서 위험하다고 시부렁대기 바쁘다. 인류는 엑스맨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세포 구조를 연구해, 그들을 제압하려고 한다. 

엑스맨들은 하나둘씩 죽어 간다. 연구실 실험대에 올라 고통을 겪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과 주위의 돌연변이를 지키기 위해 저항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 엑스맨은 인류의 적이 되고, 인류는 엑스맨의 힘을 제압할 로봇을 개발해 그들을 모두 죽인다. 

미래의 엑스맨들은 종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과거로 울버린을 보낸다. 그의 임무는 엑스맨을 인류의 적으로 만든 계기가 된 살인사건을 막는 것이다. 설정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잘못은 인류가 했으면서, 오히려 죄는 엑스맨들이 덮어쓴 꼴이다. 이 영화 너무 얄밉다.  

인류는 엑스맨을 흉측하게 여기고, 배척하면서 상처를 준다. 그런데 왜 엑스맨만 참고 또 참아야만 하나. 아비가 죽고 가족이 죽으면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엑스맨을 행복한 노예와 잔인한 악마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싸움을 붙인다. 

엑스맨 같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한 판 시원시원하게 싸우길 원한다.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당하고, 아주 먼 곳에 내동댕이쳐지고, 물속에 빠져 질식에 이르는 위급한 순간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복수의 일격을 날리는 액션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싸움을 말리는 것이 일이다. 살기가 쭉 내솟을만 하면 어디선가 엑스맨이 끼어든다. 종말과 파괴의 미래로 치닫는 현실을 막기 위해서는 인내와 관용이 답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갈등과 대결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누가 제동을 걸어야 하나. 가진 자의 아량일까, 가지지 못한 자의 인내일까. 엑스맨은 품위 있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비열하고 야만적인 것들이 일순간 정지되고 완벽하게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단 한 번의 선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살의를 모두 없앤다. 영화니까 가능한 완결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발표됐던 엑스맨 연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짜깁기 되듯 맞춰진다. 한 번이라도 엑스맨은 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게 볼 영화다. 또 무작정 깨고 부수는 액션이 아니며, 개인의 오해나 복수 같은 진부한 스토리텔링에서도 벗어난다. 이 영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함께 삶에 대한 고뇌와 성찰, 평화와 공존에 대한 담론 등을 진중하게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