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 -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지, 노아 바움백 감독 2012년작

2022. 10. 27. 18:54이야기/그래 그 영화

프란시스 하(Frances Ha),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감독 2012년작


여자 이야기다. 남자의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여자 관객은 공감이 가겠다. 너무 ‘재밌다’고 팔짝 뛰겠다. 하지만 남자 관객에게는 의문이다. 둔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영화 속 남자 배우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남자가 보기에는 살짝 사사로운 영화 <프란시스 하>다.

그렇다고 남자가 좋아하는 주제가 별다른 건 아니다. 전쟁, 격투, 범죄 같은 영화는 취향 문제고, 섬세한 멜로나 다큐만 골라보는 남자도 있다. 중요한 것은 프란시스가 겪는 고민의 질이다.

27살 여자, 프란시스의 고민과 방황을 쪼개 보면 일부분 동의가 간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부족한 주머니 사정, 폭주 뒤에 남은 카드빚, 우정을 위한 몸부림, 취직을 위한 발버둥 같은 갈등은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는 레퍼토리다. 게다가 프란시스는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2011년 9월 뉴욕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와 ‘월가를 점령하라’고 외쳤다. 적체된 젊은이들의 불만이었다. ‘개념녀’가 되려면 ‘자신’ 이외에 정치, 사회, 경제 같은 문제에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뉴스조차 보지 않는 프란시스가 영 섭섭하다.

남자 친구와의 잦은 잠자리를 대화로만 풀어낸 것도 너무 아쉽다. 영화는 왜 보러 간다고 생각하나. 알몸이나 성교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것을 즐기는 관음증 환자라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영화에 기대하는 건 주인공에 관한 모든 것이다. 

반면 청춘의 고민을 비범하고 유별나게 그리지 않은 점은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일 수 있겠다. 무난하고, 평평하고, 예사로운 젊은이의 걱정거리가 더러는 더욱 큰 동감과 동정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차라리 그런 의도를 부각시키려고 했다면, 다큐 형식으로 풀어내도 좋았겠다. 인생의 쓴맛이 더 절절하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다. 재치 있고 아름다운 영화다. 노상 우울한 청춘에겐 고맙기 짝이 없는 주인공들이다. 혼자만 힘들지 않다. 세상은 원래 더럽다. 그걸 알면 고통도 줄어든다. 이 영화는 만 가지 번뇌가 다 스러지면서, 나부터라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하게 만들 것이다.

이 영화는 나이 든 관객에게 자신의 청춘을 회상하게 만들겠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충만감에 빠진다. 그것은 열정이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리고,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의 이미지와도 많이 닮았다. 또 다양한 빛깔을 뽐내며 정원을 가득 채운 꽃과도 비슷하다.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만하다. 

청춘은 어지러운 세상을 부정하고, 진실한 사랑에 눈이 멀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게 한다. 때론 너무나 진지하고 때론 경계심이 많아 포용력도 부족해지고, 때론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섣부른 결단을 내린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시절을 거치며 성장한다. 관망하며 늙어가고, 배우며 살아야만 탁월한 삶의 기교와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모든 인생사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진지한 것과 멀어지게 된다. 꿈, 이상, 희망 같은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온전하게 발산할 수 있었던, 유난히 맑고 경건하며 엄숙했던, 그리고 멋지고 화려하며 강렬했던 그 시절은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흑백 영화다. 낯설다. 온통 컬러 천지인 세상을 듀오톤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 대사를 살려내는 장치, 아련한 추억으로의 초대로는 좋다.

마지막에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프란시스 하>가 됐는지 알려준다. 좀 더 성숙해진 프란시스. 감독 센스 있다. 그녀의 이름은 ‘프란시스 할러데이’다. 그런데 왜 ‘프란시스 하’가 됐을까.

<프란시스 하>는 프란시스의 일상을 추적하는 영화다.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자의 이야기. 하지만 프란시스는 너무나 밝고, 순박하며, 솔직한 매력의 소유자다. 이 영화, 픽션이지만, 프란시스의 미래가 잘 풀리길 자연스레 응원하면서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프란시스와 청춘에게 핑크 플로이드의 ‘Breathe’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가 마음을 평평하게 다졌던 것처럼, 프란시스 이하 뉴욕의 젊은이들, ‘힘내라’고 말이다.

Look around and chose your own ground. For long you live and high you fly. And smiles you'll give and tears you'll cry. And all you touch and all you see. Is all your life will ever be.

주위를 둘러보고, 너의 땅을 선택해. 오래 살기위해, 높이 날기위해. 미소가 너를 주고, 눈물이 너를 울리고. 네가 만진 모든 것, 네가 본 모든 것. 모두 네 인생이 되는 거야.

- 핑크 플로이드 노래 'Breathe(숨 쉬어)'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