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27. 18:27ㆍ이야기/그래 그 영화

놀랐다.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이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천재로 불리는 한 인간의 이면에 그토록 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었는지 몰랐다. ‘옷’ 하나만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것도 부러웠다. 우리는 태어나서 한 가지 일을 죽도록 해본 적이 있었을까. 최선을 다했다는 소릴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은 우리나라 관객이 보기에 다소 수위가 높다. 파격적인 정사신이나 폭력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다. 이브 생 로랑은 우리 사회가 금기라고 부르는 것들의 전부다. 이브 생 로랑의 삶은 담배, 마약, 술, 성교 등 방탕과 환락으로 점철돼 있었다. 게다가 동성애, 그것도 아주 문란하게 사랑과 쾌락을 추구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이브 생 로랑을 정확하게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 지인, 동료 등의 입을 통해 알려지고, 얘기되고, 평가되는 일면을 보여준 것이겠다.
이 영화를 보면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그의 삶에 더욱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미는 없다. 그가 보여준 옷에 대한 열정은 그 무엇도 깎아내릴 수 없다. 자기 삶은 오직 자신만이 해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 입는 고급 기성복, 이브 생 로랑(YSL). 이 브랜드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이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브 생 로랑의 삶을 조금은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브 생 로랑은 21살에 프랑스 최고의 의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다. 크리스찬 디올이 죽으면서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이브 생 로랑에게 맡겼다. 이후 그는 정신병 이력을 이유로 강제 해고됐지만, 옷에 대한 열정 하나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해 전 세계 오뜨 꾸뛰르와 기성복 시장을 휘어잡는다. 이브 생 로랑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아직까지도 살아 숨 쉰다.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패션 혁명가’, ‘시대를 견인한 천재 아티스트’.
이브 생 로랑은 품위가 넘쳤다. 어렸을 때부터 창작열을 불태울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성숙했다. 또 자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와 순수함, 아이디어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은 시절에 여성을 위한 정장을 개발하고, 패션쇼 무대에 최초로 음악을 사용하는 등 컬렉션을 발표할 때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무르고 약한 사내였다. 억압과 규율은 그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가장 가혹한 고문이었고, 소심하고 섬세한 성품은 결국 그를 군대 대신 정신병원으로 인도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기대, 비판에 대한 책임을 몹시 힘겨워했고, 현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과 마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 영화는 이브 생 로랑의 강렬한 사랑과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 키포인트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이 최고의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애인이자 동료였던 ‘피에르 베르제’의 도움 때문이었다. 피에르 베르제가 없었다면 아마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온전한 삶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호방한 남자였다. 훌륭한 사업가이자 타고난 야망가였고, 자신이 내뱉은 말은 꼭 지키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과 함께 있을 때는 순한 사자가 됐다. 언제나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고 보호했으며, 그림자처럼 그를 도왔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만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함께 살면서 서로 가장 많이 아꼈고, 서로 가장 많은 상처를 줬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에르 베르제를 통해 주위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모든 일을 잘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도움과 희생 없이는 홀로 오롯이 서지 못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 잘난 줄 안다. 그러다 교만하고 아집에 빠져 말년을 외롭게 보내는 이들이 많다. 이브 생 로랑과 함께 그를 주목해서 살펴보면 더욱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겠다. 아울러 이 영화는 어둡고 우울한 이브 생 로랑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다. 소심한 성격과 특유의 유머 감각,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았던 자유로운 일상을 가감 없이 재현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영화적 흥미를 떠나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그의 동료 피에르 베르제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것에 목적을 두면 좋겠다.
물론 영화적으로 봐도 이 영화는 훌륭하다. 놀랍도록 재밌고, 자극적이며, 눈을 황홀하게 한다. 또 50~60년 전 핵심 컬렉션을 재현한 장면이나 77벌의 오리지널 의상, 이브 생 로랑의 작업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 충만이다. 스크린 곳곳에 짬짬이 등장하는 크리스찬 디올, 칼 라거펠트, 앤디 워홀, 헬레나 루빈스타인, 엘리자베스 아덴, 장 콕토 같은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도 새삼스럽다.
이브 생 로랑은 파리국립극단 출신 피에르 니네이가, 피에르 베르제는 프랑스 국민배우 기욤 갈리엔이 맡았다. 두 사람의 연기는 누가 더 잘한다고 평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빛을 발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기풍과 정서가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프랑스가 개인의 다양한 삶을 존중하고, 무엇보다 재능을 아끼는 나라라는 점은 무척 욕심이 났다. 또 현재 우리나라보다 더욱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며,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과거의 프랑스는 무엇보다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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