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길들여진 귀가 쫄깃해진다. 부드러운 불어 목소리에 살짝 주눅이 든다. 우리나라가 영미 문화권도 아닌데, 그동안 너무 영어에 절어 살았다. 속이 메슥거린다. 오늘만은 ‘아이 러브 유’보다 ‘쥬 뗌므’가 낫겠다.
요즘 세상에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미녀다. 반했다. 혈기 방장한 남성들은 색탐 좀 들겠다.
미녀의 이름은 벨. 시원한 이목구비에 희고 고운 피부, 웃는 모습이 천사 같은 희세의 미녀다. 하지만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아름다워서 그녀를 미녀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녀는 지극한 효녀에, 털털하고 소박하다. 약속과 신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의리는 강직하며, 마음속 진심을 들여다볼 줄 아는 고운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그녀는 미녀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다. 내용도 원작과 많이 달라 계속 가슴을 조이며 봤다. 인간의 야수적 일면과 신성한 일면을 대조시켜 전개되는 이야기는 흡인력이 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관객들에게 먹힐 영화다. 특히 한여름 더위를 없애기엔 그만이다. 하얀 눈, 그 거세고 아름다운 눈을 보고 있으면 진절머리가 날 만큼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졌다. ‘나도 사랑하고 싶다’ 같은 종류의 자조와 자책이 아니다. 사랑, 신물 나는 미녀와 재물만 좇는 이 세상이 지긋지긋해져서다.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외모의 야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여리고 자상했지만 탐욕에 찌들어 영혼마저 팔아버린 인간은 오히려 야수처럼 추악했다.
화면은 무섭고 아름답다. 야수가 사는 성, 들판 가득한 꽃, 수령을 헤아릴 수 없는 나무, 아찔한 절벽, 비스듬히 흐르는 강물 등 모든 요소들이 상서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이곳에 홀로 야수가 산다. 표범처럼 나무를 타고, 날카로운 울음으로 밤공기를 찢고, 거대한 산짐승의 살점을 떼어 삼키는 야수가, 외로운 승방이나 다름 아닌 곳에 미녀를 끌어들인다.
보통 야수라고 하면 사랑도 없이 몸만 빼앗는 사람이 떠오른다. 회를 뜨듯, 천진한 여성의 순정을 짓밟고, 야욕을 채운 뒤에는 미련 없이 돌아서는 남자. 이 영화에서도 야수는 미녀에게 그렇게 보인다. 흉측한 외모는 역겨움을 준다. 특히 야수가 예리한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성을 보일 때는 기겁을 한다.
동시에 야수는 비할 나위 없이 가련하게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사랑을 구걸하는 야수, 어쩔 수 없이 인간을 믿어야만 하는 야수, 진실로 사랑했던 옛사랑을 죽음으로 몰고 가야 했던 야수, 옛사랑을 끝내 잊지 못하고 슬프게 우는 야수. 미녀는 과연 야수의 마음을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순수한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순수한 사랑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다 아는 얘기니까 들려주겠다. 미녀는 야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야수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렇게 되는 과정이 우리가 아는 내용과는 너무 다르다. 아마도 호기심을 확 끌어당길 것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영상미와 마음을 울리는 영화음악, 섬세한 구성을 자랑한다.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와 맞물려 진행되는 이야기와 결말은 아이디어부터 신선한다. 서사적이고 교조적인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 편의 시처럼 서정미가 넘친다. 또 섹시한 가슴선과 무성한 털, 농염한 눈빛은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울만 하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프랑스 감독이 만들고, 프랑스 배우들이 출연하며, 프랑스인의 정서가 녹아든 작품이다. 그런데, 더빙 판으로 보면 영락없이 디즈니 영화라 하겠다.
정말 예쁘게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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