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 - 탐욕 앞에 사악한 인간, 김기덕 감독 2014년작

2022. 10. 25. 23:25이야기/그래 그 영화

일대일, 김기덕 감독 2014년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없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대답을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지, 얼마나 탐욕적인지,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천박한지. 그 지독한 성찰을 견뎌내는 일이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남자 :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여자 :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면 어떻게 해. 나쁜 일일 수도 있잖아
남자 : 나빠도 해야지. 하라는데. 지시한 사람이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
여자 : 공범이지.
남자 : 내가 왜 공범이야. 시키는 대로 한 건데.
여자 : 그래도 신념이 있어야지. 사람이.
남자 : 그래서 거부하라고. 어떻게 들어간 조직인데. 내 평생 밥줄인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여자 : 근데 무슨 일 하는데.
남자 : 어. 그런 게 있어. 무역.
여자 : 좀 더 자세하게.
남자 : 재미 없다. 딴 얘기하자.

연인의 대화다. 영화<일대일>의 시작인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영화 첫 시작부터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는 이 남자. 딱 봐도 어마어마한 권력자의 지시에 따르는 사람이다. 국정원 냄새가 풀풀 난다. 

남자는 윗 사람으로부터 한 여고생 '오민주'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실행한다. 그리고 1년여 뒤 '공수부대원'으로 변장한 7명의 사람들(그림자)에게 끌려와 강제로 자백서를 쓴다. 남자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그림자들은 봐주는 것이 없다. 이들은 고구마 뿌리처럼, 영혼과 양심을 저버린 이 남자의 내면에 영근 탐욕을 향해 여지없이 주먹을 날린다. 

'오민주'를 살해한 죄를 참회하고 싶은 또 다른 남자. 이 남자는 '조직폭력배'에게 잡혀간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자백서를 쓴다. 그러나 이 남자는 괴로움을 참지 못해 권총자살을 한다. 계속해서 '오민주'를 살해한 여러 남자들은 경찰특공대, 미 특수부대, 보안사, 국정원 등 다양한 권력으로 위장한 그림자들에게 잡혀와 자백을 강요당한다.

마지막으로 오민주 살해를 사주한 변호구가 잡혀온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알아서 했다고 떵떵거리면서, 오히려 그림자들을 협박한다. 구역질 나는 탐욕이 그에게서 서슴없이 터져 나온다. 

그림자들은 우리 시대의 아픈 단면을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인물이다. '소중한 이를 잃은 남자, 손님에게 하대 당하기 일쑤인 카페 종업원, 사장에게 인격 모독을 받는 자동차 정비사, 일 자리를 구하지 못한 미국 명문대 졸업생, 연애 폭력을 참고 사는 여자,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실업자, 생활고에 찌든 영세 자영업자'. 이들은 오민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심으로 이 일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갈등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고 그른지, 폭력의 수위가 높고 낮은지' 같은 문제로 옥신각신한다. 이러한 대립은 마치 그림자들이 관람객에게 당신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돌려 묻는 것 같다. 당신도 오민주를 살해한 이들을 처단하는데 동참할 것이냐고.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를 "민주주의를 훼손한 한 사건을 모티브 삼아 여고생의 죽음을 비유해 만든 작품"이라며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고백이자 자백"이라고 밝혔다. 이어 "자백은 그분의 큰 뜻을 실천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분을 외롭게 떠나보낸 국민으로서의 죄책감"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말에서 유추해 보면 여고생 '오민주'는 '노무현' 혹은 '민주주의'로 해석되며, 오민주를 죽인 사람은 살해를 사주하고, 시키는 대로 살인을 저지른 국가권력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횡포에 무관심했던 국민도 공범으로 간주된다. 마지막에 그림자 중 한 명이 첫 번째 자백서를 쓴 남자에게 맞아 죽는 장면이 이를 암시한다. 오민주를 죽였던 비겁하고 추악한 권력,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권력과 오민주의 죽음을 방관했던 당신이 다른 게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영화 <일대일>이 <피에타>이후 다시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이 영화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단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라서가 아니다. 이 영화가 내포한 패러독스가 진정한 울림이 있기 때문. 영화적으로 봐도 현장감과 사실감이 뛰어나고 몰입도도 '짱'이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그토록 한국 관객들에게 외면받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웃음과 희망, 행복을 그리지 않아서일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토록 아름답고 낙관적일까. <일대일>은 우리의 내면에 감춰진 흉측한 이면을 드러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영화다. 썩을 대로 썩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내는 형벌 같은 작품이다.

과연 이 영화를 보면서 자유로울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