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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도 슬픔이 - 가난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영화, 김수용 감독 1965년작

이동권 2022. 10. 13. 22:58

저 하늘에도 슬픔이, 김수용 감독 1965년작


가난한 삶은 가치가 있다. 자발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것을 병들고, 배고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삶이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배곯아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단순히 빈곤이나 결핍의 상황이 아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가난은 생과 사의 문제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 산다고 떵떵거리지만 50년 전만 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젖배를 곯아 죽은 아이들이 많았다. 곯은 배를 참지 못하고 꺼멓게 썩은 고목 등걸에서 자란 독버섯을 먹고 죽은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도 풍족한 세상에 살다 보니 거짓말로 들리는 젊은이들도 있겠지만, 실재 아무런 힘도, 지식도, 배경도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살았다. 

현대인들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난리다. 많이 소유하지 못해 애걸복걸하며 괴로워한다. 삶보다 돈이 먼저인 냥 산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능력을 오직 소유하는 것을 위해 쓴다. 물론 열심히 일해서 잘 사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소유의 개념을 조금만 바꿔도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 가난을 고통이 아니라 존엄으로 여기는 삶이다.  

물질의 굴레에 둘러싸여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볼 것을 권한다.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그들과 나누며 살지 못하는 것이 소유하지 못한 것보다 더욱 괴로운 일이다. 성찰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부정과 불의에 희생당한 가난한 이들을 도울 용기도 요구된다.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가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1960년대만 해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재도 유효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하다. 하우스푸어, 실버푸어, 렌트푸어 등 신빈곤층이 생겨났다. 가난의 대물림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깊어지고, 생계형 범죄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안정망 없이 거리로 쫓겨나고, 노점상과 철거민, 노숙인의 숫자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전세대란, 임대주택 감소 같은 얘기도 남의 일이 아니며, 따뜻한 인간의 정마저 메말라 가는 중이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다.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동네. 하루에 세 끼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주인공 윤복의 집은 더욱 심하다. 밥 먹듯이 끼니를 거를 정도다. 윤복의 집은 설날, 집세를 내지 못해 시외의 움막집으로 이사 간다. 어머니는 없는 집안에 시집와서 가난에 터덕대고, 남편에게 얻어맞으며 살다 집을 나갔다. 여동생 순나는 다방을 돌아다니며 껌을 판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윤복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쓴다. 힘겹고 아픈 마음,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달래는 방법은 하루를 정리하면서 쓰는 일기밖에 없다. 윤복의 담임선생님은 가슴 절절하게 써 내려간 윤복의 일기를 읽고 눈시울을 적신다. 선생님은 윤복의 일기를 출판사에 보내 책을 내고, 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아들의 일기는 아버지를 노름에서 벗어나게 하고, 어머니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며, 집안 살림까지 펴게 한다. 

이 영화는 1965년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며 최고 흥행작이 됐다. 하지만 필름이 유실돼 그동안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영화필름 보존에 대한 인식이 미약했던 당시 환경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대만에 수출된 사실이 밝혀져 원본 필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1960년대 우리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점이다. 이 영화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생활상을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사료적 가치는 높다 하겠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은 늘 있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굶주리는 십억 명의 이웃이 있다. 반면 누군가는 그들을 알게 모르게 착취하며 매우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엄청난 부를 쌓았어도 뒤돌아볼 줄 모르고, 더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 애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영화가 가슴 뜨겁게 던진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