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124

유에 민쥔(Yue Minjun) - 냉소적 사실주의의 절정

모처럼 재밌고 맛난 그림을 봤다.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유머로 실존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작가, 유에 민쥔(Yue Minjun)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웃는 모습을 복제해서 그림의 소재로 사용한다. 정말 완벽한 웃음이다. 너무 완벽해서 뭔가에 의해 강요된 웃음처럼 느껴진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이 사람이 왜 웃고 있는지 관객들에게 묻기 위해서였다. 유에 민쥔은 세상엔 완벽한 것이 없음을,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또 이것이 인간 세계의 우울한 단면임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그냥 이 그림이 처음부터 좋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그의 그림에는 긍정과 낙관이 꽉 찬 '여유'가 있었다. 유에 민쥔은 장샤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 초현실주의로 표현한 인간의 욕망

비틀즈 음악, 영화 '매트릭스', 김영하 소설 '빛의 제국' 등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무엇일까? 답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다. 그의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분야에 인용됐으며,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그리트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이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수식어다. 르네 마그리트는 1910년 보자르 아트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지만 1920년 중반 로르조 데 키리코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

리석호 - 남북미술 평정한 몰골화의 대가

일관 리석호 화가는 남과 북이 모두 인정하는 조선화와 몰골화의 대가다. 그는 채색화 몰골법의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일제 강점기와 분단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넘어 월북을 택한 뒤 분단이라는 그늘에 가려 남쪽에서는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몰골화는 동양화에서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기법이다. 그는 북에서 몰골법을 중심으로 한 수묵담채화로 북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1952년 조선미술가 동맹 상무위원을 거쳐 1958년까지 현역 미술가로 활동했으며,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 교원 및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의 대표작 30여 점은 국보로 지정돼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리석호 화가의 작품은 강한 필력에..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 화려한 뚱보 나나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조각가는 뚱뚱한 여체 '나나'의 연작으로 유명하다. 나나는 뚱뚱한 여성을 미의 화신으로 묘사해 남성들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작품이다. 니키는 퐁피두 센터 광장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토스카나 지방에 건립한 '타로 공원'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 1960년대 프랑스 '누보 레알리슴' 미술운동에 적극 가담하면서 대중과 더 가까이 다가섰다. 누보 레알리슴(nouveau realisme)은 현대 도시인들의 삶을 작품에 형상화해 미술과 현실의 소통을 추구하는 미술활동이다. 피에르 레타니 비평가가 1960년 주창했다. 유명 작가로는 톱이나 프라이팬을 쌓아 작품을 만드는 아르망, 도료를 몸에 바른 여성을 화포 위에 굴리거나 분무기로 인체 본을 뜨는 이브..

김태진 작가, 국민대 교수 - 일상이 무대가 되는 소통

이른 아침 출근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깨끗한 거리를 거닐면서 들이키는 산뜻한 새벽 공기에 피곤에 젖은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밤새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가 어떻게 깨끗해졌는지 느끼지 못한다. 청소부들이 새벽부터 거리에 나와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지 모른다. 집안에 앉아 있으면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빛과 공기, 생활 소음이 전부다. 이 사각형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집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전부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푸른 혜성이 지나가기도 하고, 붉은 별똥별이 떨어져 불이나기도 한다. 그러나 집안의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한다. 미디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TV, 신문,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과 사실..

박진화 - 철책과 임진강 그림 여행

박진화 화가는 민중미술가이자 민통선 작가라고 불린다. 그는 철책과 분단, 인간과 통일의 문제를 심도 깊은 감성으로 탐구하고 민중의 삶과 민족의 애환을 꾸준하게 그림 속에 담아왔다. 그의 삶도 민통선이었다. 그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민통선 인근 대산리 작업실 사북헌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후 강화도에서 배로 1시간 20분 걸리는 볼음도로 작업실을 옮겼다. 볼음도는 섬 전체가 민간인통제구역이다. 박 화가는 1985년 '힘 전 사건' 때 구속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많은 화가들이 제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안국동 아랍미술관에서 '한국미술 20대 힘 전'이 열렸다. 종로경찰서는 전시장을 봉쇄하고 작품을 강제 철거했다. '힘 전' 사건은 군..

알렉산더 칼더(Calder, Alexander) - 움직이는 조각, 모빌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Calder, Alexander)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의 창시자이자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로 불린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조각의 형태에서 탈피한 작업을 했다. 공학도였던 자신의 경력을 이용해 중력이나 모터의 작동에 의해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시각적으로 매우 유기적이고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작품이었다. 또 나뭇잎, 수련, 곤충, 공룡, 새, 강아지, 치즈 등 각종 생물과 무생물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었다.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큼 대중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를 지녔다. 그의 작품은 매우 자연스럽고 재치가 넘쳐 경쾌함을 더했다. 3차원의 입체에 시간의 개념을 덧붙여 4차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서였다. 정지된 조각에 연속성을 더한 그의 ..

유희강 - 한국 전통서예의 마지막 대가

검여 유희강 서예가는 전통 서예와 동서양 미술을 가로지르는 대가다. 유희강 서예가는 오른쪽 신체가 마비돼 '검여 좌수체'로 유명하며 오서에 능통하지만 육조체 행서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또 해서, 행서, 초서 등에 개성 있고 강렬한 필력을 쏟아내 한국 서예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작품은 글씨와 그림의 장르를 넘어선다. 사군자, 문인화, 유화 같은 그림과 갑골문, 종정문, 선조추상 등의 계축묵희, 각종 제발 작품을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 검여 유희강 서예가의 작품은 '칼처럼 날카롭고, 돌처럼 단단하고, 박처럼 둥글둥글'하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생전 검여 유희강 서예가의 삶의 모토였다.

김명숙 - 선으로 만들어낸 예술혼

김명숙 화가는 모노톤의 색을 캔버스에 칠한 뒤 긁어내고 덧칠하는 방법으로 작업한다. 1986년 '시지프스의 노동'이 상징하는 의미를 성찰하기 위해 '시지프스에 관한 연구'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 계속해서 '아폴로 공부', '모네 공부'와 '밀레 공부'라는 타이틀을 붙인 작업으로 노동에 관한 연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빛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는 인간, 나무, 숲, 인물, 동물 시리즈 작품으로 노동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작가주의적인 끈기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명숙 화가는 숲, 인물, 동물 등을 주제로 표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림을 그려왔다. 마치 거대한 물체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빛처럼 예리한 질감이 특징인 작품이다. 그의 그림 속에..

오윤 - 목판화로 형상화한 민중의 아픔

오윤 화가는 비판적인 예술을 견지하고 이를 민족예술 형식으로 발전시킨 민중미술가다. 그의 초창기 시절은 독창적이고 현실 비판적인 예술의 기반을 쌓았던 시기였다. 당시 작품에는 전통 연희와 함께 세잔의 입체주의, 멕시코의 변혁적 리얼리즘 등 다양한 미술사조가 뒤엉켜 등장한다. 이 시기를 거쳐 그는 5월 광주민주항쟁, 신군부 정권의 등장 등 핍박과 항거가 거듭되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매진한다. 오 화가가 주로 사용하는 매체는 목판화다. 그는 대중매체와 원활하게 결합할 수 있는 판화로 민족 정서를 담아내면서 민중에 다가갔다. 대표작으로는 불안한 시대상황을 투쟁적인 모성을 통해 보여준 '대지' 시리즈, 노동자와 농민의 삶으로 따뜻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 '노동의 새벽' , 자본주의 ..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 - 노동과 기술, 열정의 융합

존 체임벌린(John Chamberlain)은 금속으로 된 자동차 부품과 철강을 절단하고, 휘고, 구부리고, 용접한다. 거기에 붓, 스프레이, 스텐실 등으로 금속 표면에 찬연한 컬러를 입혀 역동적인 작품을 만든다. 1960년대 잠시 플라스틱이나 우레탄, 알루미늄 호일 등의 재료를 이용해 독창적인 정크아트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다시 초창기 재료인 금속에 몰두해 유려한 작품을 발표했다. 체임벌린의 작품은 추상 표현주의와 팝 아트를 결합한 조각물이다. 금속 고유의 속성을 이용해 특유의 볼륨감을 연출하는 콜라주 작품이다. (콜라주는 여러 개의 조각을 붙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미술 기법이다. 조각은 종이, 타일, 헝겊, 금속 등 무엇이든 가능하다.) 금속에 대한 그의 애착은 1940년대 미 해군..

이동욱 - 인간의 고독과 비애

벌거벗은 사람이 굵은 밧줄에 묶여 공중에 매달려 있다. 통조림 안에서 절여져 있거나, 포장용지 안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거나, 산소조차 남아있지 않는 병 속에서 고통을 겪으며 신음하고 있다. 또 식육점의 고기처럼 갈고리에 걸려 있거나, 사탕이 되어 벌레에게 갉아 먹히거나, 쇠똥구리의 장난감이 되거나, 실지렁이 소굴에 갇혀 사색에 잠겨 있다. 이동욱 조각가는 기이하고 괴상한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기형 생명체,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변종의 인물, 거기에다 특정한 상품광고나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들을 인체와 결합해 작품을 만든다. 그는 왜 이런 흉측한 조형물을 만드는 것일까? 언짢고, 불쾌하고, 치가 떨리고, 어찌 보면 부패하고 쉰 음식처럼 자연스럽게 이맛살부터 찡그..

이흥덕 - 저항의 암시적 풍경

이흥덕 화가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진지하게 해부한다. 일상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사건들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비틀어 표현한다. 그는 내가 2009년 낸 책 '밥줄이야기'의 표지 그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화가의 작품은 거실에 걸어두는 풍경화와 달리 가볍지 않다. 그는 직설적이고 거칠게 현실에 개입한다.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무덤덤하게 리얼리티를 살리지만 구성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자연스레 그림 속을 살펴보게 만든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술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갈림길에 섰을 때 깨어나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인생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와도 그들은 그것을 알아..

전국광 - 덩어리와 그 내면의 형태

전국광 조각가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굴곡에 강직한 운동성을 담아낸 작품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국현대조각사에서 1950년대 추상조각의 거장 김종영 작가의 뒤를 이어 디딤돌과 같은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조각가는 조각의 재료가 가지는 성질인 매스(mass)에 천착했다. 재료를 모으고 쌓는 '적(積)' 시리즈와 쌓여 올려지는 덩어리 자체를 탐구한 '매스의 내면' 시리즈로 물질의 덩어리와 그 안에 내재한 구조에 관심을 쏟았고, 이 덩어리를 재구조화해 작품을 제작했다. 표현법은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니즘이었다. 1970년대는 미니멀한 경향의 모더니즘 조각이 유행이었다. 회화에서도 단색화가 주류였고 조각에서도 추상조각이 성행했다. 이 시기에 전 조각가는 매스를 출렁거리는 수면이나 완만한 ..

송계일 - 산수화의 혁명가

벽경 송계일 작가는 기존의 보수적인 화풍에 새로운 실험을 계속 시도하면서 독자적인 회화성을 창출했다. 뿐만 아니라 백양회 최고상과 국무총리상까지 받았던 화력에 비해 소박하고 수수한 성품을 가졌고, 틈만 나면 북과 장구를 두드리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는데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업적을 평가하는데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송계일 작가는 고전적인 산수화의 정형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이를 변형하면서 현대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산수화의 영역에서 볼 때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고, 결국 산수의 개념마저 바꿔버리는 '산수화의 혁명'을 이뤄냈다. 송 작가는 가까운 풍경을 거침없이..

앨리슨 래터(Alison Lapper) - 미와 육체적 정상성이란 무엇인가?

앨리슨 래터(Alison Lapper)는 1965년 영국에서 팔다리가 기형인 질병(선천성 희귀 염색체 이상)을 안고 태어나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성장했다. 한때 사람들은 래퍼의 과감한 작품을 보면서 '흉측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래퍼는 주위의 거친 시선과 손가락질을 모두 이겨내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장애인'을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회적 편견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도전장'을 내밀었다. 앨리슨 래퍼는 팔 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기형'이라고 여기는 사회를 고발하고, 진정한 '육체적 정상성'과 '미의 개념'이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기 위해 사진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장애를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우리 시대의 삐뚤어진 미의 개념을..

고영훈 - 사물이 가지고 있는 허구 드러내는 극사실주의

한국 화단에서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고영훈이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집요하게 '돌'에 매달려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공적으로 그려낸 돌이지만,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진짜 돌로 보이게 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남겼다. 고영훈 작가는 1970년대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운 돌을 허공에 띄웠다. 이후 80년대에는 펼쳐진 책을 캔버스에 가득 채우고 신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돌을 오브제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돌 대신에 깃털, 도자기, 꽃, 날개, 사진 등의 오브제를 나열하면서, 각각의 오브제들을 돌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는 시도를 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오브제들을 서로 경쟁을 시키듯이 더욱 리얼하게 배치하거나, 작품에 직접 오브..

켄타로 코부케(Kentaro Kobuke) - 괴기스럽고 우울한 일러스트

켄타로 코부케(Kentaro Kobuke) 작가는 현대인들의 흉측한 내면세계를 기형의 자화상으로 고발한다. 코부케의 작품은 누구나 한번 보면 절대로 잊지 않을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으며, 매끈하고 상업적인 네오 팝 경향의 작품과 달리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감성을 잘 대변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켄타로 코부케의 주요 작업도구는 색연필이다. 그는 쓱쓱 그려낸 듯, 단순한 선과 면으로 스케치된 캔버스에 알록달록한 색이나 자연의 무늬, 파스텔 톤의 색을 적절하게 섞어 미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색에는 달콤한 색과 새콤한 색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는 달콤새콤한 미각이 살아 숨 쉰다. 코부케가 만들어내는 인물은 비례가 맞지 않고 원근감도 무시돼 있다. 여려 겹으로 된 큰 눈망울..

파울 클레(Paul Klee) - 생각하게 하는 미술

파울 클레(Paul Klee)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인 예술가이면서 다양한 주제의 작품세계를 펼쳐왔던 음악가이자 화가이며, 미술평론가다. 그는 세련된 색채와 숙련된 선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이뤄냈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상징과 형태를 섬세한 드로잉으로 재현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매우 재치 있고 독창적이며 섬세한 감수성과 색채로 넘친다. 파울 클레는 차별화된 상징과 형태를 창조하며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시나 음악처럼 눈으로 보는 예술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는 미술에 가깝다. 무려 9,100여 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은 '꿈'의 완결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면적인 ..

카라 주데아 알헤디프(Cara Judea Alhadeff) - 동질성 갈라놓는 인간의 본질 탐구

카라 주데아 알헤디프(Cara Judea Alhadeff)는 시인, 조각가, 음악가, 건축가, 무용가 등 수많은 예술인들과 함께 사진작업을 해왔다. 그녀는 시적인 이미지 연출로 '사진계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알헤디프는 실내와 실외, 자연적이거나 혹은 인공적인 장소에서 관능적인 포즈를 취한 모델의 연출로 전체의 윤곽을 자연스럽게 흐트려버린다. 몽환적인 경계와 모호한 야생성, 모든 것이 혼재된 그녀의 사진은 모순된 인간 사회의 내러티브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녀는 또 다양한 형체의 몸과 모델들의 접촉으로 일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익숙함과 낯설음, 신체와 공간의 충돌과 조화 등을 연출한다. 낯설음 속에서 익숙함을 찾고자 하는 순간의 열망, 다른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공유의 감정, 그럼에도 ..

조안 미첼(Joan Mitchell) - 거침없는 붓과 컬러의 위력

20세기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조안 미첼(1925~1992)은 프랑스에서 예술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사랑,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 나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강렬한 붓과 색채로 표현했다. 조안 미첼은 추상표현주의의 2세대이지만,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수립하고, 추상표현주의를 20세기의 중요한 예술사조로 발전시킨 1세대 대가 윌렘 드 쿠닝, 헨렌 플란켄텔러, 필립 거스통과 함께 동시대를 살면서 추상표현주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쉽게 말해서 점, 선, 면 등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물체나 상황, 생각이나 이념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초등학교 때 배웠던 '마블링'이나 '스크레치' 등이 가장 기초적이다. 보통 추상표현주의 ..

A.R. 펭크(A.R. Penck) - 역사와 인간의 모순 담은 세계회화

A.R. 펭크는 독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의 선두주자다. 그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정보화 사회에 어울리는 표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창작뿐만 아니라 이론에서도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기호언어'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우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동서독의 대립을 주제로 한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도 비슷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호언어는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에 그림과 형상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기호체계를 말한다. A.R. 펭크는 1939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동독의 작가이자 감독인 위르겐 뵈트커에게 회화와 소묘를 사사했으며, 드레스덴의 미술아카데미에 여러 차례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독학으로 회화, 조각, 영..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 가장 선명한 흐릿함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맥을 이끌어온 작가다. 회화의 종말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예술가이기도 하다. 세련된 감각과 풍부한 표현 방법으로 이룩한 그의 독보적인 화법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실험 미술가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극적인 명암대비로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19세기 고전주의 화가 폴 들라포슈는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의 종말'을 선언했다.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그려왔던 그였기에 사진이 보여주는 사실감은 충격에 가까웠다. 1918년 모스크바 국립응용미술학교 카지미르 세베리노비치 말레비치 교수는 하얀 벽면 위에 하얀 캔버스를 걸면서 회화의 진보는 더이상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

칠레 현대미술 - 초현실주의 대가 '로베르토 마타'에서 '막시모 코르바란'까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현실은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국제무대에서 현대미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품도 서구 선진국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며, 우리가 주로 관람하거나 알고 있는 작품도 이들 나라의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칠레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살짝'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로베르토 마타(Roberto Matta)를 비롯해 1950년대 유명한 작품들과 1990년대 이후 발표된 비디오, 설치, 사진 등의 작품들이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칠레의 현대미술은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칠레 미술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자국의 정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독특..

스콧 스니브(Scott Snibbe) - 존재와의 치열한 교전

스콧 스니브는 디지털 아티스트이자 설치미술가다. 그는 놀란 만한 아이디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와! 신기하다"라는 탄성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게 만드는 작품으로 나를 설레게 했다. 스콧은 우리가 매우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분리한다. 환경과 현상 그리고 상호의존적으로 얽힌 부분들을 끄집어내 나와 개인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교류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작가와 관객들이 구조적으로 얽힌다. 관객들도 작품 안에서 상호작용하며 예술적 체험을 경험한다. 그의 작품이 '구경꾼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스콧의 작품은 이미지의 움직임에 기조를 두고 있다. 아주 복잡한 아이디어로 제작한 작품도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은 미니멀하다. 난해한 이미지보다는 ..

제라르 프로망제(Gerard Fromanger) - 권위에 반기든 혁명예술가

제라르 프로망제는 신구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프랑스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화가다. 그는 역사적인 사건이나 당대의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을 예술의 주제로 다루며, 꼴라주, 영화, 매스 미디어, 광고, 만화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를 구성한다. 프로망제는 1968년 5월 프랑스 문화혁명 이후, 독립적인 정치적 저항 노선을 지켜온 신념가이며, 자국의 이라크전 파병 반대 여론을 이끌어온 지도자다. 그는 '서로 몸을 맞대고...오렌지' 등 전쟁 시리즈 작품을 통해 평화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반미반전 기조를 세계적으로 표방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정치와 전쟁, 현대인의 욕망과 삶 등이 사진적 리포트 방식으로 기록돼 있어, 파란만장했던 현대사를 ..

아니쉬 카푸어(Anish Kappor) - 반사된 우리 사회의 잔혹한 자화상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를 꼽으라면 단연 아니쉬 카푸어다. 그는 미술 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현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니쉬 카푸어는 존재와 부재, 유(有)와 무(無), 실체와 비실체, 장소와 비장소성 등 형이상학적인 양극화에 중심을 두고 작품을 만든다. 인간의 삶과 현실성을 한 차원 뛰어넘어 생명과 자연인으로서의 본질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그가 만들어낸 반사적인 이미지와 원형적인 구도는 치열하게 삶을 되돌아보며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도도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순환의 인생사를 추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작품 재료는 브론즈, 돌, 석판, 유리섬유 등 다양하다. 합성수지로 투명성을 높이거나 설화석..

베라 클레멘트(Vera Klement) - 추상과 구상의 공존

베라 클레멘트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화풍으로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예술가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현대미술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녀의 패인팅 작품은 선보다 색채를 강조한다. 미묘한 차이가 돋보이는 음영(빛깔의 엷고 짙음)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또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물의 추상을 유추해내고 그것을 화폭에 옮긴다. 기존의 추상 기법과는 많이 다른 표현법이다. 패인팅 작업은 우선 물감을 덧칠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표면을 만든다. 그리고 강렬하고 힘찬 페인팅과 반투명의 은은한 코팅으로 마무리된다. 그림은 정형화되거나 기하학적인 것을 거부하고 추상과 구상에 대한 의미를 동시에 부여한다. 베라 클레멘트의 구성 작품은 작품 재료로 전형적이고 영구적인 사물, 즉 널리 알려진 물체(물통..

에바 헤세(Eva Hesse) - 선과 단색조의 구조적인 드로잉

미니멀 아티스트의 대가, 34살의 나이에 요절했던 천재 화가, 에바 헤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녀는 유리 섬유, 플라스틱과 같은 재료로 구상적인 회화나 드로잉에서 벗어난 꼴라쥬 형식의 조각을 지향했다. 기계적이고 유기적인 요소들을 반복적으로 적용하거나 구조적인 드로잉으로 거친 화면을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평면과 공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난센스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에바 헤세는 예술에 대한 칼날 같은 성찰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통찰력으로 3차원 오브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60년대 포스트 미술 운동을 주도한 작가 중 한 명이며,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독일 출신의 미국 작가다. 그녀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을..

리차드 롱(Richard Long) - 자연주의 예술, 형체 그 자체로의 미

리처드 롱(Richard Long)은 영국의 대표적인 대지미술가이자 자연주의자다. 그는 찰나의 느낌이나 기억, 치유하고자 하는 정신 같은 것을 자연이라는 자궁 속에 잉태시킨다. 이 의식은 매우 자유분방하고 무정부적인 성향으로 나열돼 있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과 닿아 있다. 이미지의 단순화로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리처드 롱의 작업 주제는 자연이다. 또 자연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며, 자신의 숨결이나 걸음걸이, 움직임 하나까지 모두 자연과 일치시킨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거기에서 물리적, 역동적인 방향성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매우 솔직하고 담백하며, 자연 속에서 직접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가적 신념은 퍼포먼스를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