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미술과 인물

A.R. 펭크(A.R. Penck) - 역사와 인간의 모순 담은 세계회화

이동권 2022. 8. 31. 16:55

배밸과 잉그리트, 1977-1978, 캔버스 위 아크릴, 285X285cm ⓒA.R. 펭크

 

A.R. 펭크는 독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의 선두주자다. 그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정보화 사회에 어울리는 표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창작뿐만 아니라 이론에서도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기호언어'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현대 사회의 우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동서독의 대립을 주제로 한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도 비슷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기호언어는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에 그림과 형상으로 의사소통을 했던 기호체계를 말한다.

A.R. 펭크는 1939년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동독의 작가이자 감독인 위르겐 뵈트커에게 회화와 소묘를 사사했으며, 드레스덴의 미술아카데미에 여러 차례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독학으로 회화, 조각, 영화, 문학, 음악 등을 공부했다. 수학 시절엔 러시아 사실주의, 세잔느와 반 고흐, 피카소의 작품으로부터 영향받았으며, 서독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과 교류했다.

펭크는 1960년대 초 바젤리츠 등의 영향 하에 대가 추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주장'으로서 미술을 추구했다. 또 분단으로 인한 독일의 역사문제를 그림 속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과제를 떠안고 끊임없이 고민했으며, 동서독 분단 이전의 정치적 문화적 유산에 항거했다. 이후에는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의 추이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연구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모습을 담는 이른바 '세계회화'를 발전시켰다. 단순한 구성과 몇 개의 가느다란 선들로 이루어진 이들 그림들은 강압과 갈등으로 점철된 냉전 시절의 역사적 모순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펭크는 정보사회에 적합한 조형의 방법도 찾고자 했으며, 미술을 통해 주관적인 상태를 극복하고 보편적인 소통을 위한 '기호언어'를 개발하고자 노력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미술작품을 일종의 기호체계로 파악하는 '슈탄다르트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붉은 쉬탄다르트 십자가, 1969-1970, 섬유판 위 분산기술, 124X121.5cm ⓒA.R. 펭크

 

정물과 발트라우트, 1974, 캔버스 위 아크릴, 150X150cm ⓒA.R. 펭크

 

폴란드 기사, 1983, 캔버스 위 분산기술, 200X280cm ⓒA.R. 펭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