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다 그쳤다. 상큼하고 할가운 바람이 불어와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무겁게 대면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조금은 가볍게 마주하며 낯선 음악에 귀 기울인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무심히 쓰디쓴 인생을 핥는다. 문득 내 건너편에 앉은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
"이 세상에서 네가 진정 쉴 곳은 어디야?"
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걸 몰라서 물어?"
현실에서 쉴 곳은 없다. 생명의 숨결이 타오르는 자연에도, 연정이 흘러넘치는 사랑에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투쟁의 현장에도 쉴 곳은 없다. 그런 곳을 찾으려고 할수록 삶에 대한 애착은 더욱 반짝이고, 고뇌는 쌓인다.
그곳은 오로지 마음속 자기만의 공간에 있다. 이를 테면 음악이 친구인 사람에게는 음악만이 쉴 곳이다. 노래가 멈추지 않고, 음곡이 연주되는 곳에서는 진정으로 마음을 내놓을 여유가 생기고, 냉혹한 현실과 싸울 힘도 얻는다. 판에 박힌 일상을 보내는 사람일수록 더하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마음이 몹시 우울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할퀴는 상처에 마모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게도 된다. 그럴 때 음악은 치유제다. 음악은 무엇에 관계없이 인생을 더욱 활기차고 따뜻하고 정겹게 하는 묘약이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기쁨을 말해주지 않는다. 인생의 기쁨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속절없이 가는 세월과 무거운 현실의 짐은 누구나 지고 간다. 다만 어느 누구는 날카롭고 언짢은 얼굴로 그 길을 가지만 어느 누구는 평화롭고 온화한 얼굴로 간다. 평화롭고 온화한 얼굴로 가는 사람의 곁엔 돈이나 권력, 명예 같은 현실적인 열락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쉴 곳이 있다. 당신에게는 쉴 곳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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