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 실버 바리스타들이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커피숍이 있었다.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위해 서울 노인복지센터에서 마련한 사회적 기업 ‘삼가연정’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성남 중원도서관 내 삼가연정은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영업을 재개했다. 중원도서관에 가면 잠시 들러보길 바란다.
할머니들이 커피 향이 스며든 찻집에 하나둘씩 모였다. 곗날인 듯했다.
“할멈은 영감하고 사이가 좋나 봐. 얼굴이 좋네.”
“뭔 소리야. 남사스럽게. 얼른 곗돈이나 내.”
“바깥양반 건강은 어때?”
“수술한 뒤로 많이 좋아졌어.”
“다행이구먼. 누워 있어 봐. 살아있을 때 걸어 다니는 게 복이여.”
다른 테이블에는 배우자와 사별한 것으로 보이는 두 분이 데이트 중이었다. 젊은 연인들 못지않게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잡고 웃었다. 따뜻한 음성,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순수한 사랑은 나이가 들어도 똑같았다. 나이가 들면 사랑은 어려워진다는 말은 아직 늙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 옆 할머니는 혼자 책을 봤고, 할아버지는 친구를 만나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삼가연정의 분위기는 여느 커피숍 못지않게 세련되고 아늑했다. 따뜻한 조명에도 세심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파는 사이드 메뉴는 일반 커피숍과 조금 달랐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연양갱이나 입맛에 따라 즐기는 케이크, 찹쌀가루로 만든 브라우니 등을 판매한다는 사실. 또 어르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커피 가격도 착하고, 혼자 와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책도 많이 마련돼 있었다.
재밌는 것은,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커피를 받을 때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직원과 손님의 관계 이전에 어르신이 주는 것이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듯싶었다.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어떤 공간, 어떤 환경에서도 간직해야 할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어르신들이 하얀 백발을 쓰다듬으며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들의 얼굴은 은퇴 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나이가 든다고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그에 맞게 또 살면 됐다.
'이야기 > 포토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편히 놓을 수 있는 곳에서 깨닫는 평화의 소중함 (0) | 2024.07.19 |
---|---|
당신의 쉴 곳 (0) | 2024.06.26 |
6월 2일은 시사만화의 날 (1) | 2024.06.02 |
오필리아(Ophelia) (0) | 2022.09.22 |
늙어지면 못노나니 (0) | 2022.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