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39

책 읽는 즐거움도 좋고, 사람 만나는 즐거움도 좋다

날씨가 선선하다. 가을이다. 한 해의 결실을 슬슬 마무리해 거둘 시기다. 그런데 왠지 가을이 되면 가슴에 쓸쓸함이 스며들고, 쓸쓸함은 일상의 덫이 돼 갖가지 상념을 부른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느 누구도 곁에 없는 것 같은 절망감, 무엇 하나도 해놓지 않은 것 같은 공허감,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가늠할 수 없는 꿈과 현실의 괴리감 같은 것이 울적한 심정으로 전이돼서다.그럴수록 책을 많이 읽게 된다. 기묘한 현실 앞에 자신을 추스르게 하는 매개는 책이 최고다. 책은 진지한 사유의 길로 가서 담백하게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물론 책이 너그럽지만은 않다. 좋은 책은 숯불처럼 서서히, 마음속에 지펴지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살다 보면 점점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 꼭 그것이 맞는 ..

이념 문제 아닌, 다시 망각 없는 윤석열의 ‘친일’

망각 없는 삶은 없다. 수많은 허세와 실패, 가식과 증오, 오만과 질투, 실수와 과실도 신의 은총처럼 시간이 흐르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매번 사소한 과오와 허물이 머릿속에서 되새김질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겠는가. 두통, 불면, 귀울림, 어지럼증, 과민, 손떨림증. 아마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을 매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고난과 시련이 장시간 계속되거나 똑같은 기억이 반복되면 머릿속에 각인되고 만다.박근혜 정부 때는 ‘유신’이 그랬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로 한국의 헌정이 중단되면서 1979년 10월 26일까지 유신시대가 이어졌다. 유신시대는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였다. 도덕과 이성은 마비됐고, 세상은 혼란했다. 한편에서는 유신을..

타인을 위해 조금 더 필요한 여름철 배려

여름휴가철이 끝나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산과 바다로 많이들 떠난다. 땀도 많이 나고, 짜증도 많이 나는 이 계절에는 주위 사람들을 위한 에티켓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바가지는 변함없이 기승이다. 고성방가와 무절제한 음주가 부른 추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기심이 부른 쓰레기 무단투기다. 나만 재밌고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아무 데나 쓰레기를 불법 투기해 타인의 휴가를 망치고 싶은가? 나만 편하려는 이기심부터 버려야 한다.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나 휴지, 종이, 비닐 같은 쓰레기는 꼭 챙기고 재활용이 가능한 캔,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는 분리해 버려야 한다. 여름에는 물놀이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요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이 SNS용 사진..

축제라는 단어는 일제의 잔재, ‘제’ 대신 우리말 ‘잔치’나 ‘풀이’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왔다. 전 국민이 휴가를 즐기는 7~8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들이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부산바다축제, 보령머드축제, 양평메기수염축제, 목포해양문화축제, 화천쪽배축제, 장흥물축제, 영월동강축제, 통영한산대첩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축제란 말은 원래 일본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는 엄숙하고 진중한 마음으로 치르는 행사였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제’를 시끄럽게 떠드는 형식으로 치렀다. 일본어로 제사를 뜻하는 ‘마쓰리’는 신령에게 풍악을 울리며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제’와는 매우 다른 의미다. 일제강점기 이전 한국에서는 축제를 ‘잔치’나 ‘풀이’라는 말로 썼다. 하지만 일제는 이 땅을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잔치’나 ‘풀이’를 일본식 ‘..

호국보훈의 달과 영화 ‘하이재킹’, ‘탈주’ 개봉 즈음에 문득 찾아온 우려

2024년에도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탈북민을 그린 ‘로기완’을 필두로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다룬 ‘하이재킹’이 개봉했다. 7월 3일에는 북한군 병사의 목숨을 건 탈북을 다룬 ‘탈주’가 개봉되고, 하반기에는 가짜 찬양단을 조직한 북한 장교의 이야기를 담은 ‘신의 악단’도 선보인다. 이밖에도 여러 다큐멘터리나 상업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거나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영화인들이 북한을 영화 소재로 차용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조국 분단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정서를 대변하는 소재이고 북한 이야기는 상업적으로도 보증된 재료이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강철비’, ‘베를린’, ‘공조’, ‘공작’ 등 너무나..

북풍 말고 정책으로, 국민 모두가 흑금성이자 성숙한 유권자

1997년 대선 때였다. 안기부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려고 북풍공작을 벌였다. 북한의 대남도발을 역이용한 선거전략을 펼쳤고 김대중 후보의 북한자금 수수, 국민회의의 연방제 수용과 80억 원 지원 제의 같은 갖가지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며 빨갱이 논쟁을 유발했다. 정당은 자기 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끌어가려고 프레임을 띄운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정해서 국민들이 그 틀을 따라 시각을 정립하고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주길 원한다. 정당이 제시하는 프레임은 흔히 수구, 보수, 중도, 진보라고 하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양하고, 매우 첨예하게 격돌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당 간에 공방을 벌이는 사안이 많아지고, 끊임없이 네거티브 비방 전략이 펼쳐지면서 프레임의 스펙트럼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경우가..

왜 한강에 가셨어요? 세상과 단절 선택하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

새벽 1시. 폐 한쪽을 들어낸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숨 가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불빛이 전혀 없는 밤하늘처럼 짙고 검은 먼지가 내려앉은 한강대교 위를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걱정해야 했다. ‘혹시’가 부른 불안감이었다. 셔츠 위에 까만 조끼를 입고, 까만 모자를 손에 든 한 중년 남자가 교각 이음새 부근에 앉아 '깡'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지만 시종일관 시선은 강물에 고정돼 있었다. 술 취한 젊은이들의 고함 소리에도, 연인들의 낯 뜨거운 애정행각에도,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배기통 소음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빛은 강 끝을 응시할 때 매우 애달프게 보였다. 뭔가 커다란 고통에 직면한 듯싶었..

‘문화가 있는 날’을 평일 아닌 주말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가까이에 있다. 점심 먹고 산책 겸 둘러보기 좋은 장소다. 호젓하고 넓은 마당과 시원시원한 건물들, 상쾌한 날씨를 한가롭게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문화가 있는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관람료마저 무료라 웬만하면 이날은 꼭 찾으려고 노력한다.  평일 ‘문화가 있는 날’을 찾아 먹는 즐거움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거주하는 자의 특권이다. 평일에, 그것도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각자 생업에 있고,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문화가 있는 날’ 미술관 무료 관람은 그림의 떡이다.  여전히 미술관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술관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기에는 ‘마음의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의 다양성 보장은 갤러리 순기능을 되살리는 것부터가 시작

매일매일 작가나 갤러리로부터 수십 통의 메일이 온다. 회화, 조각, 공예, 사진, 팝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 소식을 알리는 메일이다. 작품들은 대단히 아름답고, 멋지며, 기발한데 다소 회화에 ‘쏠림현상’이 심하다. 조각이나 판화 등 소외 장르의 전시 소식은 매우 뜸하다. 전시되는 작품의 주제는 비슷비슷하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나 자연, 정물 등을 담아낸 풍경화가 많다. 우리 사회의 현상을 포착하거나 정치, 역사, 남북, 빈곤, 환경 등 여러 분야의 고민거리를 던지는 작품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점도 일종의 ‘쏠림현상’이다. 갤러리는 유명한 작가나 보기 좋은 회화 작품, 팔릴 만한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데 치중한다. 돈 때문이다. 갤러리가 전시를 열려면 보통 홍보비와 부대비용으로 한 전시 당 약..

이념을 떠나 다시 평가받아 마땅한 이름 ‘정율성’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을 방문한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음악가 ‘정율성’을 한중관계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았다. 정율성은 전남 광주 태생으로 1930년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을 전개하며 중국공산당에 몸담았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혁명 근거지였던 연안을 찾아가 ‘팔로군 행진곡’, ‘연안송’ 등 많은 곡을 남겼고, 신중국 성립 이후엔 건국에 공헌한 100명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은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의 공식 군가다. 시진핑 주석의 말처럼 정율성이 중국 건국에 기여했으니 그는 한중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가 중국 군가뿐만 아니라 북한 군가를 작곡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 시절 중국공산당에 참여했으니 매우 당..

재능기부 강요하는 사회

남자는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이다.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곳곳에서 “행사비도 부족하고… 좋은 일이니 재능기부로 해달라”고 요구한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행사란다. 거절하자니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이는 것 같다. 자신보다 훌륭한 ‘대가’들, 경제적 상황이 좋은 예술가들이 허다하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하면서 공짜를 요구하는 행사 기획자들이 얄밉다. 그래서 넌지시 그런 사람들한테 연락해보라고 꽁무니를 뺀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바빠서 못 온다”는 사정이 뒤따른다. 남자는 할 수 없이 재능기부를 한다. 재능기부, 남자는 즐겁지 않다. 막일이라도 해야 입에 풀칠할 판이다. 자연스레 행사는 무기력하고 퇴영적으로 흐른다.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집에 가는 길. 과일 한 봉지 사들고 갈 돈도 없다. 어찌..

낙천적 믿음이 갖는 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사회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다. 학교 다닐 때는 데모도 많이 했다. 그런 사상은 그림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비틀어 풍자하고,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표현한다. 친구는 술 한잔 들어가자 예쁜 그림, 돈만 되는 작품을 찾는 우리 시대의 콜렉터들에게 쓴소리를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그림은 잘 안 팔린다고. 나는 친구에게 충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그림을 누가 집에 걸어 놓겠냐?"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그림을 건다. 좋은 작품을 살 형편이 안 되면 프린팅된 그림이라도 사서 걸어놓는다. 예쁜 그림이 주는 화사함 때문이 아니다. 예쁜 그림은 집안 분위기를 바꿔줄 뿐더러 은연중에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그..

윤석열 대통령, 아나바다?...6개월 아이, 얼마나 좋은 개그 소재냐

미니스커트는 경제가 나빠질수록 유행한다. 의류 회사들은 소비자의 눈에 잘 띄도록, 소비자들은 스스로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자극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옷을 선호한다. 코미디도 그렇다. 시청자들은 정치 사회가 혼란할수록 개그 프로그램을 더욱 찾는다. 불만과 근심, 찡찡하고 우울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개그를 보게 되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시사 개그는 혼란한 민심과 경제위기, 미증유의 음모와 정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상파의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케이블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시사 개그가 빠지면서 속 시원한 웃음도, 가슴에 남는 카타르시스도 부재한 상태다. 개그의 소재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협소한 데다 19금 개그, 폭력과 무시, 상대에 대한 조롱으로 일관..

삼성과 전두환이 같지만 다른 점

1995년 전위예술단체인 플럭서스의 일원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작가 요셉 보이스의 '조지 마치우나스를 위한 수사슴 기념비'가 국제갤러리에 전시됐다. 이 작품은 홍라희 삼성 리움 관장이 직접 전시 오프닝 행사까지 참여해 관람하고, 결국 구입했다. 당시 이 작품의 가격은 수십억에 달했다. 재벌이 아니라면 쉽게 사들일 수 없는 작품이다. 보통 미술관의 권위는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연구와 기획으로 전시를 여는지로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삼성 리움은 요셉 보이스의 작품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재벌들의 재산을 불리는 치부의 수단이라고 해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재벌들은 비자금을 마련하거나, 재산을 불리거나, 자식들에게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미술품..

성소수자들이 다니는 술집도 일반 술집과 똑같다

편견이었다. 타락과 쾌락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억울했다. 오해의 이유는 분명했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 젠더, 바이 섹슈얼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원초적인 편견은 이들이 하는 모든 것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증적으로 얘기해보자. 성소수자들이 가는 업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게 맞을까. 수치화된 자료도, 객관적인 자료도 없는데 말이다. 싫어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공격은 안 된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게 높고 고상한 인격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욕설을 퍼부어서야 되겠는가. 성소수자들이 다니는 업소를 찾았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이들이 다니는 업소..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불효자는 웁니다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세월은 대부분 기쁨도 없이, 엄격한 감정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먹고사는 일에 얽매이며 보내온 나날이었지요. 늘 고독하게 앉아 아치형 창문 밑에서 졸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선량하고 억척스럽게, 마치 꿈을 꾸듯이 자식들의 안녕을 기원해 주셨던 어머니. 지난밤의 꿈처럼 흐리멍텅하고 부족한 아들을, 자기주장만 옳다고 우기며 투정 부리는 아들을 이제는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께서는 늘 베풀기만 하셨습니다. 풍요로움과 거기서부터 얻어지는 수확, 그것의 나눔 그리고 다시 영원한 수수께끼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씨앗, 이것이 바로 어머니이며 당신의 사랑이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눈길로 자식들을 바라보셨고, 가장 빛나는 손으로 어루만져 주셨..

윤석열차와 표현의 자유

문체부가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윤석열차'에 상을 주고 이를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 경고했다. 우리만화연대와 한국카툰협회 등 만화 관련 단체들은 윤석열 정부가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의 협박성 조치가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와 판박이라며 규탄했다. '윤석열차'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해 사퇴당한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을 닭으로 묘사해 광주비엔날레에 전시장에서 철거당한 홍성담 화백의 그림 '세월오월'을 떠올리게 했다. 또 검찰의 종복몰이 표적 수사로 아수라장이 된 신은미, 황선 씨의 '통일콘서트'와 주류 지배층의 억압에 저항해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철학자 스피노자도 생각나게 했다. 스피노..

플래시몹은 왜 할까? 인간은 단결하고 협력할 때 큰 행복 느낀다

사람들이 졸고 있다.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멍하니 앞을 주시한다. 평범한 지하철 안 풍경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적막을 깨는 순간 사람들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뭐지?”, “누구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위를 살핀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켠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잇따라 가방에서 악기를 꺼내 연주에 동참한다. 지하철 안은 오케스트라 공연장으로 변하고, 어느새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웃음꽃이 핀다. 서로를 아는 듯 눈인사를 한다. 고개를 흔들며 음악을 타는 사람까지 있다. 10분도 채 되지 않은 ‘플래시몹’(flash mob)이 사람들을 기쁨의 도가니에 밀어 넣었다. 무기력한 사람들을 세상 걱정을 모르는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도록 만들어버렸다. ..

미국에서 병나면 한국에 와서 고치는 재미교포들

돈 많은 사람들이 의료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 의료 수준이 좋지 않고 첨단 의료기들도 도입되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최근에는 교포들이 한국을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다. 미국에 비해 의료 기술도 떨어지지 않는 데다 비용이 저렴해서다. 직장인 박 모(51세) 씨는 아들 둘을 미국에 유학을 보낸 기러기 아빠다. 일 년 전부터 둘째 아들이 사랑니 때문에 고통을 호소해왔던 터라 겨울방학 기간에 아들을 불러들였다. 미국은 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과는 학생보험이나 일반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보험을 따로 들어야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박 씨는 “학비로 들어가는 비용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사랑니 하나에 50만 원”이라..

우리 동네 복지회관 노인들의 황혼이혼 이야기

“할멈은 영감하고 정이 좋았나 보네.” 정 할머니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 나이에 이혼해서 뭐해”라는 한 할머니의 핀잔 때문이다. “살아도 사는 게 아녀. 평생 두들겨 맞고 살아봐. 그런 소리 나오나. 문소리만 나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술이라도 먹고 들어와 봐. 집안 살림 남아나는 게 있나. 다 때려 갈아엎지.” 옆에 앉아있던 김 할머니는 “스무 살 때 시집와서 종년처럼 살았다”며 “젊었을 때 이혼하지 못해 한이 된다”고 거들었다. 자식들 걱정 때문에 영감이 평생 술 먹고 계집질해도 꾹 참고 살아왔다는 것. 남 할머니도 “참혹한 인생이었지만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봐 이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동병상련했다. 삼십 년 전에 혼자가 된 이 할머니는 “호강에 겨운 소리”라고 되받아쳤다. “돈 벌어다..

겉치레 사랑고백은 이제 그만

청춘 남녀 5명에게 프러포즈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프러포즈를 한다. 극장에서, 카페에서. 때론 노래를 불러 주거나 따로 준비해 둔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사랑을 고백한다. 하다못해 ‘아침에 함께 밥 먹고 싶어’, ‘한 이불 덮고 자자’,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줘’ 등 낯간지러운 상황을 예로 들어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뻔한 프러포즈지만 여자들은 개의치 않고 받아들인다.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지 프러포즈가 좀 진부하면 어떠냐는 반응이다. 어떤 이들은 마음이 중요한 건데 형식적인 프러포즈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서구문화에 뿌리를 둔 프러포즈 자체를 의아해하기도 했다. 펀드매니저 강 모 씨는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부분 남성들이 근사한 프러포즈를 하긴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왜냐면 자신은 프러..

보험설계사 구인난, 보험설계사는 합법적인 다단계 판매원일까?

(좀 옛날 얘기고,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을 테지만) 어느 매체에서도 말하지 않는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험설계사’의 세계다. 억대 연봉을 받는 보험맨들은 뉴스에 종종 등장해 잘 알겠지만 ‘피고름’을 짜내는 그 바닥 이야기는 무척 생소할 듯싶다. 보험의 꽃은 ‘보험설계사’이다. 이들은 보험업계가 단순한 보장성 보험을 뛰어넘어 첨단 종합금융 산업으로 발전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숨은 공신’이다. 보험설계사들은 오늘도 발바닥이 닳도록 현장을 누비며 ‘억대 연봉’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설계사 가운데 ‘억대 연봉 클럽’에 가입돼 있는 사람은 5천6백여 명에 이른다. 최근 대졸 남성들이 보험업계에 몰리고 있다. 각종 금융상품을 결합한 보험을 판매하려는 고학력 전문가들의 입성이 활발하다. ‘..

컴퓨터 디자이너는 창의적인 직업 NO! 노가다 YES!

컴퓨터 디자인이 잠재력 있는 일자리로 인정받는 시기는 마지막으로 접어들었다. 디자이너들은 누구나 그것을 화제 삼아 얘기했으며, 이제는 엄동을 대비해 땔감(다른 직업)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고 꼬집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는 이들에게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 인생의 막차를 타고 있다’라고 말했던 디자이너가 경력 10년 차의 베테랑이라는 사실이다. 디자이너들은 하루하루 창의적인 사고가 마비된 상태에서 과중한 업무에 매달리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생명인 이들에게는 ‘가사상태’나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실감은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꿈꿨던 ‘추측’들이 ‘현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시작됐다. 마치 미지의 것에 직면한 어린아이가 꼼짝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는 모습 ..

어느 대중선동가의 부탁, "저를 찾아주세요"

저는 저널리스트이자 매혹적인 말솜씨와 심오한 지식을 겸비한 대중 선동가입니다. 가끔은 억제할 수 없는 도취에 빠지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을 격분하게도 만듭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박한 지식과 알찬 정보를 제공하는 저는 민중의 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시대의 고난을 대변했습니다. 혼자 판단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루기도 했지만 언제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깊은 통찰과 진실의 힘으로 맞서 왔습니다. 또 혁신적인 사상을 전파하는 데 전념했고, 이 책무를 기꺼이 나눴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누구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저는 야심가도, 음모가도 아닙니다. 지도자도, 정치가도 아니며 더군다나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목숨을 바치는 박애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까맣게 숨겨져..

지속가능한 미래, 재활용에서 찾다

지구가 몸부림치고 있다. 과도한 생산과 소비로 자원이 바닥나고, 수많은 환경오염 물질이 하늘과 땅, 물과 나무를 파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요지부동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닥쳐올 위협을 생각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고 있다. 마치 명멸하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에만 도취돼 있는 모습이다. 인류의 목숨을 스스로 갉아먹는 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세계는 그 해답을 재활용에서 찾고 있다. 환경을 규제하는 방어적인 대응을 넘어서 좀 더 효율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의도다. 특히 재활용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욱 의미 있는 방법이며, 전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에 ..

재테크 원하는 소비자 마음을 훔친 기업의 아트 마케팅

상품보다 이미지를 파는 시대가 도래했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아트 마케팅’이 급부상했다. 불꽃을 점화하자마자 활화산처럼 순식간에 폭발할 지경이다. 제품, 가격, 유통, 촉진 등을 일관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다는 마케팅의 정석 ‘마케팅믹스 4P전략’도 과거에나 ‘먹히는’ 단어다. 최근 기업들은 상품의 기능보다 영화, 음악, 게임, 전시 등 문화예술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판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사용자들의 증가로 소비자들의 글이 브랜드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며,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업들은 명화를 이용한 ‘미술 마케팅’에 유독 관심이 많다. 한 백화점은 350억 원을 들여 국내외 ..

부드럽고 푹 익힌 라면이 좋다

어렸을 때 TV에서 '힘들지, 맛있는 S라면이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같은 라면광고를 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원초적이고 유치한 광고다. 눈깔사탕 한 봉지가 100원하던 시절에 조금만 돈을 보태면 라면을 먹을 수 있었으니, TV광고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촌스런 주황색 봉지 뒷면에는 라면을 맛있게 끓여먹는 조리법이 있었다. 어른이 된 뒤에는 대충 끓여 먹지만 그때는 고지식하게도 물 양을 맞춰 끓인 뒤 면과 수프를 넣고 3분이 지나야만 먹었다. 그 당시에 왜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라면을 끓여 먹었는지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나는 라면 면발이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 쫄깃한 것보다는 푹 끓여서 적당히 익혀 먹는 것을 선호한다. 다른 첨가물은 넣지 않지만 ..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간절함

명절이 되니 참 생각도 많다.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그림을 그리고, 머릿속 상상력에 휩쓸려 글을 쓰고, 알 수 없는 불안과 기대감으로 사람들을 만나왔다. 요즘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챙길 일들이 너무 많고, 짊어질 일들도 산더미 같아 머릿속에 상념이 끊이질 않는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겠지만 올 명절에는 유난스럽게 돋보이는 창백한 얼굴들이 거울 속에 많다. 남루한 의자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누렇게 바랜 동양화에 공허한 시선을 던지며, 이유도 모를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산산이 부서진 메아리로 되돌아와 흩어지고 전율한다. 쓸쓸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아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몸에서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태반을 가진 한 그루 나무..

예술가의 실체, 생각한다 그리고 싸운다

내가 글을 쓰는 곳은 거실과 연결된 격자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하얀 책상이다. 책상 앞에는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어쩌면 유흥가와 직접 연결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창이 있고 그 창 아래로는 외풍을 막기 위해 좁게 문을 낸, 마치 사계절의 모습을 탐스럽게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창문이 있다. 이 창문은 겨울이 지나는 2월 가장 꽁꽁 얼어붙어 있고 초여름부터 9월까지는 항상 열려 있다. 도시의 풍객(風客)들이 보이는 아주 작은 방, 그곳에서 화초를 키우고 창문에 매달려 밖을 내다본다. 먼 여행에서 돌아와 편안한 휴식과 안정을 선사하는 내 방에 늘 고마움을 느끼고, 다시 이곳을 기점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상상의 좌표를 설정하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다. 내가 사는 곳이 화려한 장식과 멋..

무분별한 살충제 남용은 그만, 곤충을 살리자

곤충이 살지 못하는 곳에 인류도 살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곤충들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지키는 일과 같다. 곤충은 인류에게 해로운 병을 옮기거나 농작물을 망쳐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과 뗄 수 없는 자연의 구성체이며,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귀중한 생명체다. 우리는 모기나 파리, 진딧물, 벼멸구 등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들을 박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의식 부재로 살충제를 남용하면서 서식지 환경을 파괴했고, 인류에게 이로운 곤충들을 덩달아 죽이고 말았다. 예를 들면 흙에 함유돼 있는 질소의 순환을 촉진하는 쇠똥구리, 농작물에 붙어있는 진딧물을 잡아먹는 무당벌레, 단백질 공급원이자 섬유의 원료로 쓰이는 굼벵이 등이 유해곤충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