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드디어 파면! 윤석열 그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샤르트르들을 위한 위로

이동권 2025. 4. 3. 21:54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한다. 윤석열 탄핵은 분명 8대 0으로 인용될 것이고, 60일이 지나면 새 대통령이 취임할 것이다. (4일 대통령 윤석열은 파면됐다.)

12.3 계엄 이후 우리나라는 파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게다가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국민들은 심각한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혔다. ‘이러다가 탄핵 안 되는 거 아냐? 나도 그랬다. 늦어도 3월 안에 선고기일이 잡힐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애써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무형의 쇠사슬로 가슴을 옥죄는 불안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급기야 일주일 전에는 현기증이 일면서 머리가  돌며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바닥에 부딪힌 무릎과 허리, 왼쪽 어깨와 이마가 너무 아파 책상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오늘이 3일이니까 내일이다. 헌재가 이제라도 선고기일을 정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친 계엄이 없었다면 또다시 2년 넘게 윤석열 정권의 야수적 패악질을 목도하면서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래도 멍청한(?) 대통령 윤석열이 미친 계엄을 선포하면서 그 자를 일찍 끌어내릴 수 있게 됐으니, 그걸로라도 위안을 삼는다.

윤석열 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문화 분야 또한 그야말로 무개념, 무사려, 무비전의 극치를 보여 줬다. ‘모두를 위한 문화, 세계를 잇는 문화강국’이라는 비전 아래 5대 핵심 과제를 천명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들여다보면 권위적인 독선과 반동적인 쇼비니즘에 치우쳤다. 예를 들면 김건희 관심 분야인 청와대 복합문화공간화나 콘텐츠 사업 말고는 국민들이 주체가 돼 스스로 즐기고 향유하는 정책은 실종했다. 총선 때는 문체부를 국정홍보처 정도로 인식하면서 관권선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나 패러디 영상 등에 비이성적으로 대처했고, 문화정책의 전 영역에 애매모호한 K컬처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해 문화예술계 생태계의 불균형을 야기했다.

윤석열 정권의 문화정책 중 가장 중요한 실정은 재정긴축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점이다. 그마저 줄어든 예산을 관광과 콘텐츠 등 일부 사업에 집중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생존의 위기에 봉착한 문화예술인의 창작 의지를 짓밟았다. 

 

윤석열 정부가 부르짖던 ‘모두를 위한 문화, 세계를 잇는 문화강국’을 실현하려면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투자가 활성화돼야 문화산업도 발전하고, 국민의 행복 지수도 올릴 수 있다.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문화강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도둑놈 심보다. 아주 양심이 불량한 거다. (윤석열 정부는 겉으론 과학기술 지원을 외치면서 R&D 예산을 역사상 처음으로 대폭 삭감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배고픈 자에게 빵 한 조각 줄 수 없는 예술’의 무력함을 개탄했지만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예술가들을 위로했다. 예술이 빵을 만들지 못하지만 예술가가 짊어진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슈킨은 눈먼 걸인과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시를 썼다.

 

눈먼 걸인이 모스크바 광장에서 손을 내밀며 “한 푼 줍쇼라고 구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걸인을 차갑게 외면하며 지나쳤다. 가난한 형편에 돈이 없었던 푸슈킨은 돈 대신 글을 쓴 종이를 그의 몸에 붙여 주면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걸인의 몸에 붙은 종이의 글귀를 읽고 흔쾌히 적선했다.

 

푸슈킨이 종이에 쓴 글은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였다. 

 

수많은 샤르트르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말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창작을 할 수 있는 지원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수많은 샤르트르들이 푸슈킨이 말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이 제약되면 우리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노래로, 그림으로, 시와 소설로 정치를 비틀고, 역사를 비판하고, 개인사를 추적하는 그들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게 되면 다양성과 개방성이 저해되고 보편성과 획일성이 득세하면서 우리 사회의 어떠한 변화나 변혁,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윤석열 그다음 대통령은 기존의 정치적 구습과 사회 부조리 타파, 균형 있는 경제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의 창작도 적극 지원해주길 바란다. 민중과 문화예술의 사이를 좁히고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를 늘려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