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남녀 5명에게 프러포즈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프러포즈를 한다. 극장에서, 카페에서. 때론 노래를 불러 주거나 따로 준비해 둔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사랑을 고백한다. 하다못해 ‘아침에 함께 밥 먹고 싶어’, ‘한 이불 덮고 자자’,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줘’ 등 낯간지러운 상황을 예로 들어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뻔한 프러포즈지만 여자들은 개의치 않고 받아들인다. ‘사랑하느냐’가 중요하지 프러포즈가 좀 진부하면 어떠냐는 반응이다.
어떤 이들은 마음이 중요한 건데 형식적인 프러포즈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서구문화에 뿌리를 둔 프러포즈 자체를 의아해하기도 했다. 펀드매니저 강 모 씨는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부분 남성들이 근사한 프러포즈를 하긴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왜냐면 자신은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와이프도 형식적인 것을 싫어해 예물이나 결혼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라고 웃어버렸다.
어떤 남자들의 과욕은 지나쳐 보인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강렬한 프러포즈를 기대하는 여자들도 있다.
레드카펫이 펼쳐진 대형야외정원에 풍성한 꽃이 수를 놓았다. 열린 환기통에서는 가을바람을 따라 갓 구운 흰 빵 냄새가 풍겨 왔고, 대형 스피커에서는 왈츠풍의 아름다운 음악이 흘렀다. 정원을 빙 둘러 롱핀, 할로겐, 고버플라워 등 갖가지 조명이 설치되고, 촬영용 조명도 준비에 들어갔다.
잠시 후 리무진이 도착한다. 예의 바른 운전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면 차에서 내린 여자는 레드카펫을 걸는다. 끝에는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서있다. 대형스크린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영상편지가 상영되고, 맑고 싱그러운 현악 4중주가 생음악으로 연주된다. 남자는 여자의 손가락에 천천히 반지를 낀다. 그 순간 각종 폭죽이 불꽃을 피우며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통키타 가수가 등장해 감미로운 선율로 둘만을 위한 세레나데를 부른다. 여자가 프러포즈를 승낙하면 둘은 다정하게 앉아 최고급 요리로 식사를 즐긴다. 그리고...
이런 프러포즈라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될까.
L사의 스페셜 요금을 살펴보면 기본 세팅 90만원, 전문화약 추가세팅 30만 원~200만 원, 현악 4중주 60만 원, 리무진 서비스 45만 원, 대형스크린 영상편지 25만 원, 장미 100송이 10만 원. 대략 잡아도 약 200만 원 정도가 있어야 가능하다. 평생 한 번 하는 프러포즈 치고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만한 액수다. 기본만 세팅만 주문해도 대략 30만 원에서 50만 원 선이다.
‘프러포즈 이벤트’가 대유행이다. 좀 더 색다르고 감동적인 프러포즈가 없을까 고민하는 남성들을 위한 이벤트 회사들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TV속에서도 예술과 같이 아름다운 프러포즈가 심심치 않게 방영되며, 기자들도 여자 연예인들에게 ‘어떤 프러포즈를 받았느냐’고 묻는다. 미디어마저 놀랄만한 프러포즈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케이블TV의 경우는 더하다. 청춘남녀 여러 명이 해변에 놀러 가 서로를 ‘찜’하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퇴출당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다. 이 방송에서 남자들은 여자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근사한 프러포즈를 계속해서 진행한다. 노골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하얀색 리무진은 기본이다. 주위를 밝힌 수백 개의 촛불과 화려한 꽃들. 생전 보지도 못한 음식과 축하공연, 현란한 조명과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모든 게 꿈에서나 나올만한 것들이다. 과히 케이블TV는 ‘프러포즈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인 김 모 씨는 “프러포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케이블TV에서 멋진 장면들이 나오면서부터 다들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있다”면서 “주위 친구들도 그렇게 프러포즈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그런 프러포즈를 원하는 여자들도 많다”면서 “겉치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남자들도 많다. 직장인 박 모 씨도 그중에 하나다. 박 씨는 2년 전 아내에게 장미꽃 한 다발과 목걸이를 준비해 프러포즈를 했다. 근사하면서도 부담 없는 프러포즈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름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남들 다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프러포즈가 돼버렸다. 아내의 친구들 때문이다.
그는 “일상처럼 편안하게 ‘우리 결혼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프러포즈,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물어오는 아내 친구들 때문에 부담이 됐다”면서 “누가 더 멋진 프러포즈를 했는지 서로 비교하는 여자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러포즈를 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왜 남자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면서 “사랑보다는 경제적인 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풍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자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모든 여자들이 그럴듯한 프러포즈를 기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케익 아티스트 이 모 씨는 “그렇게 돈을 많이 들여 프러포즈를 하는 배우자를 어떻게 믿고 살겠느냐”면서 “사랑도, 정성도 중요하지만 소박하고 건실한 남자가 더 믿음이 간다”고 절대 반대했다. 이 씨는 “럭셔리한 프러포즈에 감동하는 여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돈으로 환심을 사려는 남자도 못마땅하다”면서 “서로 아끼며 살자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일순간의 감동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 모씨는 “나이로 구분하는 것은 그렇지만, 보통 20대는 화려한 프러포즈를 선호하고 30대는 마음이 전해지면 그만”이라면서 “20대에는 결혼을 ‘환상’으로 생각하고 30대에는 ‘현실’로 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친구들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값비싼 이벤트를 선호하지만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 “여자의 마음은 예민해서 진심인지 거짓인지 금방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상을 손발과 마음이 아니라 눈과 입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눈으로 남의 뒤를 따라가거나 입으로 자기를 내세우기 바쁜 사람들이다. 이렇게 자신을 잃은 삶은 언제나 바쁘고 불만투성일 수밖에 없으며 타인을 사랑과 이해로 대할 수 없다. 프러포즈도 마찬가지다. 남자나 여자나 근사한 프러포즈로 사랑을 표현하고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존경과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물질이나 값비싼 겉치레가 아니다. 진실한 마음 안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고, 그 의미에서 인간의 길은 잘나든 못나든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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