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사회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다. 학교 다닐 때는 데모도 많이 했다. 그런 사상은 그림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비틀어 풍자하고,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표현한다.
친구는 술 한잔 들어가자 예쁜 그림, 돈만 되는 작품을 찾는 우리 시대의 콜렉터들에게 쓴소리를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그림은 잘 안 팔린다고. 나는 친구에게 충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그림을 누가 집에 걸어 놓겠냐?"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그림을 건다. 좋은 작품을 살 형편이 안 되면 프린팅된 그림이라도 사서 걸어놓는다. 예쁜 그림이 주는 화사함 때문이 아니다. 예쁜 그림은 집안 분위기를 바꿔줄 뿐더러 은연중에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예쁜 그림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다. 어떤 이들은 그림을 재산으로 생각하는 속물로 보일까 싶어 부끄럽게도 여긴다. 일종의 '엄숙주의'다.
그럴 필요가 없다. 예술을 과도하게 사회문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병이다. 그림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는다. 삶을 더욱 단단하게 은유하고 치유하는 매개다. 그림은 인생의 목적지를 잃어버렸다고 느꼈을 때 삶의 의미와 방향을 음미하도록 돕는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은 것과 비슷하다. 그런 감동을 모른다면 진심으로 그림을 느끼지 못한다.
어지러운 세상은 끊임없이 웃음을 옥죈다. 그런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희망적인 도구 역시 필요하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보면서 '멋지다'고 환희하며 일상의 어려움을 변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요구된다. 예쁜 그림은 우리의 삶을 더욱 감동시키고, 모순된 우리 사회를 반추하는 역할을 한다. 힘든 세상이기에 더욱 찬연하고 고매하게 다가온다. 자기만 알고, 자기 자신만 위해 사는 사람에게 예쁜 그림의 가치는 무용하다. 세상이 따뜻하게 바뀌길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발견할 수 없는 유희다.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이라면 당당하게 즐기고 만끽하자.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삶에 스며드는 비극에 기꺼이 고개를 숙일 수 있다. 굴욕을 만회하려고 기를 쓰고, 초조와 걱정에 위축되기보다 인간과 한 번뿐인 삶의 본질적인 지혜에 접근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고, 작은 밀알이 되길 원한다. 모든 예술은 그런 열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위해 미술도 추동한다. 사회 변혁을 위해 부정을 비판하는 예리함도 중요하지만 낙천적인 믿음이 갖는 힘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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