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미술의 다양성 보장은 갤러리 순기능을 되살리는 것부터가 시작

이동권 2023. 8. 24. 15:50

김인배 작가의 점선면을 제거하라 전시 전경


매일매일 작가나 갤러리로부터 수십 통의 메일이 온다. 회화, 조각, 공예, 사진, 팝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 소식을 알리는 메일이다. 작품들은 대단히 아름답고, 멋지며, 기발한데 다소 회화에 ‘쏠림현상’이 심하다. 조각이나 판화 등 소외 장르의 전시 소식은 매우 뜸하다.

전시되는 작품의 주제는 비슷비슷하다. 작가의 소소한 일상이나 자연, 정물 등을 담아낸 풍경화가 많다. 우리 사회의 현상을 포착하거나 정치, 역사, 남북, 빈곤, 환경 등 여러 분야의 고민거리를 던지는 작품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러한 점도 일종의 ‘쏠림현상’이다.

갤러리는 유명한 작가나 보기 좋은 회화 작품, 팔릴 만한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데 치중한다. 돈 때문이다. 갤러리가 전시를 열려면 보통 홍보비와 부대비용으로 한 전시 당 약 1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 장소 대여비를 받지 않으면 몇 작품이라도 팔아야 갤러리 운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쏠림현상’을 갤러리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무리다.

갤러리들이 팔리는 회화 작품만 선호하다 보니, 작가들도 전체적으로 따라가는 분위기다. 물론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하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 미술시장에서 먹힐 만한 그림을 그린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들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면 ‘어쩔 수 없다’는 한숨만 되돌아온다. 예술 이전에 생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는 미협에 등록된 회원만 3만여 명이다. 미협뿐만 아니라 민미협, 해외나 지방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들까지 모두 합하면 최소 1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석 달에 최소 1점씩만 작품을 생산해도 작품 4십만 점이 한 해에 발표된다.

반면 갤러리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의 군소 갤러리까지 합쳐봐야 5백여 개도 되지 않는다. 1개 갤러리가 매월 2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면 한 해에 몇 점이나 소개할 수 있을까? 많이 잡아봐야 연간 240점이다. 500개 갤러리가 풀가동되더라도 한 해 생산되는 작품의 70%는 작업실에 묵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지형에서 미술의 다양성을 지켜내기란 매우 어렵다. 국가의 지원 없이 소외된 분야의 작가와 다양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발굴하고 기획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술의 다양성은 갤러리의 순기능을 되살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건강한 갤러리가 만들어져야 작가도 먹고 살 수 있고, 미술의 다양성도 보장된다. 그렇지 않으면 미술 작품의 쏠림현상과 시장의 불균형은 계속될 것이다.

침체된 미술계를 살리고 미술의 다양성을 보장하려면 신진작가 지원과 기획 전시에 힘쓰는 갤러리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는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