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730

박인희 민족춤패 '출' 창작단장 - 통일속으로, 민중속으로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민족춤패 '출' 사무실과 단원 두 명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민족춤패 '출'의 전식렬 대표를 연행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공연사업과 국제교류사업을 이유로 일본 등을 방문한 것을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두는 것이며 이러한 사업이 통일부 또는 정부 당국의 허가 없이 진행됐을 리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조작사건이며 국면 전환용 공안사건"이라고 반발했지만 전 대표는 끝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출'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 몸으로 시를 쓰는 춤꾼들.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화산이 분출하는 것과 같이 감정의 돌파구를 향해 자신의 혼을 내던지는 일이다. 아름다운 몸짓이나 전위적인 형식에만 치우친 춤에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춤은, 춤을 추는 사람이 전달..

천공의 성 라퓨타 - 오염과 비인간화에 대한 고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2004년작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함께 살아가자. 씨와 함께 겨울을 나고 새들과 함께 봄을 노래하자.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다. 지극히 소박하고 건강한 미래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함께 공존하고 치유하며 소통해야 한다. 만일 그와 같은 요구와 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쾌락과 절망, 그리고 영원한 파멸과 죽음으로 인도될 것이다. 생명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 인간의 영혼이 아름다운 형태로 변화하는 것, 자연이 내린 축복을 따라 찬란하게 타오르는 태양의 빛과 대지의 바람을 찬미하는 것 그리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이다. 나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면서 벅찬 감동을 참을 수 없었다. 숨 죽일 틈 ..

이시우 사진작가, 평화활동가 - '순백의 평화주의자'의 뚝심

강화도 밤안개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시우 사진작가의 미소 또한 그렇다. 먼 여행과 함께 만난 사람은 마음속에 커다란 그리움의 구멍을 남긴다. 마늘장, 간장, 김치. 이시우 작가는 늦은 시간 배가 고프겠다며 밥상을 내놓았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음식이었다. 나는 배가 고픈 나머지 허겁지겁 두 공기를 비웠다. 그가 "반찬이 없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면서 한 공기를 더 얹어온 탓이다. 그는 또 식사 후 밥그릇에 따뜻한 물을 붓고 음식 찌꺼기를 씻어내는 듯 빙빙 돌려가며 물을 마셨다. 꼭 그 모습이 스님이나 수도자처럼 보여 불교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질기고 기름진 음식들은 오랫동안 씹어 맛있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나 속은 불편한 법이다. 그의 애정 어린 밥상..

엘 토포 - 자아완성을 향한 총잡이의 혈투,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1970년작

엘 토포는 컬트 영화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1970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괴한 영상과 스토리 때문에 컬트 마니아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 뮤지션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팬심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배급 판권을 모두 사버렸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컬트 영화가 그렇듯이 엘 토포를 보면서 역시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몇 번을 되돌려 보고 나서야 조금씩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짐작이 맞을 것 같다. 자막도 없는 구닥다리 테이프를 돌려보는 기분을 상상해 보면 잘 알 것이다.(이때만 해도 좋은 영화들이 하루빨리 검열에 풀려 개봉되었으면 하..

시계태엽 오렌지 - 절망과 상실의 미래, 스탠리 큐브릭 감독 1971년작

시계태엽 오렌지는 블랙코미디 컬트 영화의 걸작이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기성세대의 위선과 베이비붐 세대의 이유 없는 반항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영화적 표현에서도 부족함이 없어 컬트 영화사에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폭력과 성적 충동, 광기 어린 물질문명이 낳은 인간 사회의 병폐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아니면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고민스럽다. 강렬한 오렌지 빛을 발산하는 소품들이 끔찍하리만큼 기억 속에 각인돼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영화가 진지하게 주제의식을 쫓아가는 동안 크게 양분된 인간과 사회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주저 없이, 우열 없이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1962년 앤..

이레이저헤드 - 아버지가 된다는 공포, 데이비드 린치 감독 1977년작

이레이저헤드는 책임감에 짓눌린 헨리 스펜서(주인공)의 고립된 상황으로 관객들을 유인한다. 각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편안한 시간을 선사하는 수면 같은 상황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환각의 세계로 음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헨리는 아이를 죽이고 자살했을까, 아니면 그저 공포에 휩싸여 환상을 겪었을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원치 않은 여자 친구의 임신과 갑자기 아버지가 된 공포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침통하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기괴한 인물과 행위를 창조한다. 예를 들면 헨리는 첫 장면에서 우주을 떠돌아다니는 행성을 상상한다. 그 행성 내부에는 이상한 생명체가 있다. 이 생명체는 쾌락의 배설물을 상징한다...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 진실한 사랑의 서사시, 울리 에델 감독 1989년작

비상구, 우리 인생의 비상구는 무엇일까?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인간에게 마지막 비상구는 어떤 의미일까? 영화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보면 그 해답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빠져나가야 할 문이 어디인지, 아니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을 치유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관계는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고민을 만들고 괴로움을 양산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자괴심까지 들게 한다. 되레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아픔을 겪는다. 삶이 이렇게 모순 덩어리라면 우리는 어떻게 오늘을 헤쳐나가는 힘을 얻어야 할까?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 우리 삶을 바꾸는 무기, 피터 그러너웨이 감독 1989년작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전위적인 영상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감독 피터 그러너웨이는 1989년, 이 영화로 처음 미국에 진출하여 "NC-17"이라는 새로운 예술영화 등급을 만들어냈고,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자칫 영화의 셋트나 구성 등이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데 지루함을 줄 수 있겠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30여분이 흐르자 그런 걱정은 사라지면서 이 영화만이 가진 독특한 영상미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요리사와 주방을 울리는 성스러운 음악, 권력을 가진 자와 폭력, 그리고 그의 아내와 지적인 남자의 사랑, 또 시종일관 밤을 연출하는 어둡고 침울한 배경. 성과 음식과 권력과 인간 욕망의 함수관계를 조명..

임옥상 - 끈질긴 현실인식과 민중미학의 수용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봤던 작품의 작가는 아마 임옥상 화백일 것이다. 시대가 원하고, 사회가 조명하길 바랐던 곳엔 늘 임옥상 화백의 작품과 메시지가 있었다. 임옥상 화백의 붓은 동양화가 모태다. 부감법이나 준법을 이용해 사실성과 깊이를 더하며 번짐의 농도와 형태를 이용한 파묵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어떤 재료나 형식을 이용하더라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의 그림 속에는 화가 임옥상만의 독특한 표현방법과 날카로운 주제의식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보여준다. 특히 전쟁과 폭력, 이질적인 문화의 경계속에서 추락해가는 인간들의 자화상, 못 가진 이들의 삶과 고통,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들춰내는 현실 등은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임옥상 화백은 미술..

차례로 익사시키기 - 퍼즐게임 속의 아이러니, 피터 그러너웨이 감독 1989년작

'차례로 익사시키기'를 본 후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도시 골목을 종단하는 스산한 바람이 음산한 소리로 나뭇가지를 흔들며 쓸데없는 공상을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긴 흰털을 휘날리는 여우들에게 쫓겨 허겁지겁 도망가는 공상에 빠지는 것 같았고, 머릿속이 미세한 장막 안에 갇혀 질식당하는 공포도 느꼈다. 너무도 차갑고 냉정한 피터 그러너웨이 식의 지적 유희에 질식할 것 같았다. 사람마다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숨겨 놓고 보여주면서 남자를 죽이는 무의미한 게임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일반적인 극영화와 다른 구성, 화면, 스토리 전개가 무지 지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감독이 아무 생각 없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여태까지 본 영화와 다른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사..

이성근 통일광장 장기수 - 신념 지키는 비결은 운동과 배움의 자세

사사로운 탐욕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 커다란 지혜와 원숙한 정신세계로 스스로를 인도한다. 이는 현실적인 유혹과도 당당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며 타인에게는 자비롭고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선사한다. 이성근 선생. 그의 정신 안에는 이런 용기와 힘이 켜켜이 쌓인 듯하다. 미국에 대해 물었다. 이성근 선생은 돌연 강렬한 투사의 눈빛이 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분단 이데올로기를 깨야 민족이 삽니다. 숭미사대주의는 민족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마비시킵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미제를 몰아내는 방법은 민중의 현장투쟁밖에 없습니다. 숭미사대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데, 민중들이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스스로 만든 족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단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

김인국 신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통일위원장 - 복음과 인간화가 하나가 된 세상을 꿈꾸다

김인국 신부는 충북 진천에서 나고 자랐다. 광주에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그는 석사 학위를 딴 뒤 이후 대구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저희 동네에 충혼탑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신사가 있었던 곳이죠. 어릴 때 아버지는 신사에 참배했고 저는 현충일 기념일에 참가했습니다. 말만 다르지 그 특성은 똑같은 것 아닌가요? 저는 어렸을 때 성당 마당에서 놀았습니다. 그때는 민청학련 사건이 있었고, 정의구현사제단이 태동했던 때지요. 성당 신부님이 사제단에서 나온 성명서를 붙여놓곤 해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대자보를 읽고 자랐습니다. 또 미사 때는 복사(미사 때 신부의 시중을 드는 사람)를 맡기도 했죠. 이렇게 본당 신부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유로 신부가 됐고 사제단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김영승 소년빨치산, 통일광장 대표 - 윤기 흐르는 '나'에 갇혀 살고 있을까?

라일락 담배, 보청기, 두꺼운 안경... 김영승 선생의 첫인상은 나이 든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여느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적당한 키에 약간 마른 얼굴, 검은빛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머리카락, 두 볼은 세월의 깊이만큼 주름이 서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강렬한 의지로 타오르는 검은 눈빛과 야무진 표정이었다. 붉은 꽃이 뿌려진 작은 화단을 끼고 좁게 난 골목을 따라 조그마한 문패 하나 없는 통일광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은근한 향을 내뿜는 국화꽃처럼 정성스럽게 일행을 반긴다. 친히 커피를 타면서 '도란스(변압기) 두 개가 달린 집'도 못 찾는 젊은이를 한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병자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손길 같다. 손자뻘이 되는 나에게 담배를 꺼내 '함..

정상덕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총장 -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자주통일의 열쇠

"통일을 바란다면 자기 재산의 반절을 내야 합니다.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남녘 형제들이 반절을 내서 북녘 동포들의 생존권을 책임져야 합니다. 돈을 벌거나 안 벌거나 기회가 온다면 꼭 내야 합니다. 동권 씨도 내야지요?" '동권 씨'라는 말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처럼 맑고 강렬하다. 소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껄끄러운 마음은 포근한 솜털처럼 수그러들고 만다. 성직자를 대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 혹은 선입견이 컸던 탓이다. 그러나 정상덕 사무총장에게서는 고상한 성품이나 엄숙함에서 흘러나오는 전형적인 성직자의 모습보다는 친형님을 대하는..

난타 USA - 유쾌통쾌하게 말하는 반미

난타 USA, 반미는 민중미술의 예술 행위에서 아주 상투적이고 오래된 이슈다. 예술적 주제로 다루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정치적 슬로건인 셈. 그들은 왜 반미를 끄집어내 전시 주제로 선택한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해묵은 주제의식이라는 관념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보자는 미술적 자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면서 미제국주의의 횡포, 전쟁과 폭력이 남긴 상처, 이질적인 문화의 경계 속에서 추락해가는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발언해 보자는 것이다. 난타 USA는 미술이 갖는 고상한 추론에서 벗어나 대중 미학의 아름다움을 수용하고 반미의식을 분출함으로써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자 한다. 이것은 바로 흉측한 미국의 모습을 들춰내려는 미술적 힘이며 끈질긴 현실인식에서 비롯한 감각적인 저항과 전투다. 프로젝트 그룹'..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최우선 역할은 무엇일까?

종교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영적인 역할을 중시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종교는 사회변혁운동으로부터 멀리 있었고, 사회 전반에 대한 진보적인 인식도 부족해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경향마저 있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종교 간의 대립이 심하고 다른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편협하기도 하다. 기독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쓰나미라는 재앙이 찾아왔다는 한 목사의 설교는 타 종교와의 마찰과 견해를 포용하려는 관용의 미덕에서 무지에 가까워 보인다.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개인의 복덕과 영적 구원에 집착하거나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부재한 것은 종교의 과도한 부작용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는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올바른 과거청산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

스승은 의심이나 비난의 말을 하지 않고 정다운 미소와 끊임없는 지원으로 후학들을 대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차갑고 비열한 것들로부터 스스로 방어막이 되길 자처하며 진실로부터 얻는 평화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인고의 세상에 섞이는 순간에도 일신을 위해 주판알을 튕기는 법이 없으며, 그럴수록 더욱 자신의 일에 묵묵하게 매진하는 심성을 꺾지 않는다. 스승에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삶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독특한 힘이 있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리하여 인간 본연의 정서로 만나 서로 껴안을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정신적인 윤택함으로 세월을 익히고 하루하루 성숙한 빛으로 물들며 선명함을 더해주는 스승, 나날이 푸름을 더하는 봄의 색조를 감상하면서 스승의 넓은 마음에 존경의 그림을 그려본다. 우리 ..

조은영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대표 - "청소년 토론하는 장 만들고 싶어"

청(靑)소년, 소년기를 지났으나 성년의 무르익음이 채워지지 않은 젊은이. 푸를 청(靑) 자가 붙어 다니는 시절의 사람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푸르디푸른 풋사과처럼 마냥 싱그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시디 신 새콤함까지 곁들여져 있어 생기로운 맛도 느껴진다. 오래된 색채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영혼을 압도하는 세월의 무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법이지만 시간의 먼지가 내려앉지 않은 총천연색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도취되어 그 속에 빨려 들고 만다. 이처럼 청소년이라는 시절은 원숙함보다는 신비로움을 발산하는 매력에 순식간에 취해버리는 강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은영 인터넷 뉴스 바이러스 대표에게도 그러할까?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 조은영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대..

무등산 - 빛과 소리의 연금술사

무등산이 도립공원에서 대한민국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무등산 국립공원은 수십 개의 능선과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군부대 때문에 통행이 제한돼 등산객들은 이 멋진 풍광을 먼발치에서만 볼 수 있었다. 국립공원 승격으로 정상 개방이 간헐적으로나마 적극 추진된다. 무등산 국립공원은 가벼운 마음으로 ‘워킹’하면서 자연의 오묘한 정취를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산이다. 자연을 벗 삼아 사박사박 걸으면 무등산 산장에서 정상까지 3시간, 증심사에서 정상까지 4시간이 소요된다. 따사로운 태양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동안 산마루 넘어가는 흰 구름을 쫓아 마음을 움직인다. 좁거나 굴곡진 산길을 따라 올라서면서 밝은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다짐의 시간도 갖는다. 그럴수록 무등산은 더욱 넓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 글 쓰는 일은 민중에 대한 애정의 열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주노동당 강북을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했을 때 그를 만났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왔다 갔다 하며 자주 얼굴을 봤지만 마주 앉아 얘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를 만난 이유는 박 의원의 글쓰기 때문이었다. SNS가 활성화되기 전, 중요한 쟁점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개인 블로그에서 열심히 글을 쓰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글 쓰는 일은 민중에 대한 애정의 열매'라고 말했다. 그 당시 그의 근황을 들어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요즘, 동네를 많이 돌아다닙니다. 하루 평균 40~50명 정도를 만나지요. 지역에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지역사회의 고민을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서울시학..

정광태 가수, 독도명예군수 - "남북 통일된다면 아무도 못 건드려"

2005년 3월 16일, 정광태 씨를 만났다. 이날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이 통과된 날이다. 정 씨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으로 시작되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른 가수다. 그는 독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공로로 독도 명예군수가 됐다. "여기 영토를 잃고 잃어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 정착한 민족이 있습니다. 그 민족의 선조들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이었습니다. 오늘 그 기마민족이 주인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훗날 그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를 가졌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자존심, 대..

민정연 꽃다지 대표 - 흩어지면 보잘 것 없지만 뭉치면 아름다운 꽃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단결투쟁가. 꽃다지 1집 에 수록된 노래다. 투쟁 현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이마에 맺힌 땀과 체류탄으로 뒤범벅된 어깨를 추스를 수 있었다. 투쟁의 선봉에 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따뜻한 손길로 동지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날의 감동을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쏟아내던 꽃다지의 음성을 기억해 낼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서도 '단결투쟁가'의 가락에 맞춰 노동자들의 팔뚝 질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꽃다지는 1988년 구로 지역에서 노동가요를 창작 보급해온 노동자노래단과 1989년 대학 노래패 출신들이 조직한 예울림이 통합해 1992년 창립했다. ..

한라산 - 제주의 하늘과 까마귀를 만나다

제주도는 모든 것이 이국적이고 새롭다. 정교하게 제 풀잎을 잘라 거리를 수놓은 야자수 잎도 그러하고,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을 깎아 만든 돌하르방도 그러하며, 아름다운 빛깔로 넘실대는 초원의 조랑말도 그러하다. 제주도는 울창한 자연림과 청명한 바다가 있어 산 생명들을 먹여 살린다. 자기만 알고 사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자연의 은덕을 알게 한다. 풍요와 자비의 이름으로 펼쳐진 성스러움으로 일상의 고단한 마음을 달래준다. 나는 자연만이 물질문명의 유일한 치유책이자 희망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자연만이 인간이 살길이다. 제주도 중앙에는 하늘이 지척에 가깝고 신령스러운 기운과 광대한 초원이 아우러진 곳, 옛날부터 삼신산으로 불릴 만큼 신묘한 명산으로 알려진 한라산이 있다. 제주 중앙을 막고 서서 흐르는 바람을 고..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 -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문화

요즘 문화연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 나도 늙긴 늙었나 보다. 잘은 모르지만 20년과는 단체 성격도 좀 바뀐 듯싶다. 이 또한 세월이 변한 탓이렸다. 그 당시에는 아스팔트에서 팔뚝질도 하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통일행사도 준비하고, 토론회니 포럼이니 여러 군데 일이 많았었다. 그때 문화연대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가 지금종 사무총장이었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정치경제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면서 문화생활에서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자 계급을 논하면서 가부장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문화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사회과학, 문화 서적과 선전물, 손때..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이완 사무국장 - 복지보다 구조적 문제 바꾸는 운동 절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가 2021년 12월 31일 '후원금 모금을 중단합니다'라는 공지를 올렸다. '우리 기운이 낡고 무뎌짐을 아프게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활동을 멈추겠다고 밝혔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이들의 한국 사회의 적응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온 단체다. 이제 활동을 접는다고 하니 참으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란주 대표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과거에 나눈 이야기지만 여전히 유의미하고 유효한 말이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정부의 제도 개선와 세계화 저지에 대한 디딤돌 역할을 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곳입니다. 이 바닥에서 운동을 해오면서 어떤 단체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허황된 구호나 외치고, 건강한 비판보다는 인신공격으로 흐르고 마는 경우를 보..

안건모 월간 작은책 편집장 - 아름다운 독자가 만드는 아름다운 책

1995년 5월 1일 창간한 월간 작은책.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지 30여 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람을 받으며 출간되고 있다. 참 대단한 일이다. 이러한 작은책의 족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안건모 작은책 고문이다. (내가 만날 당시에는 작은책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안건모 편집장은 오랫동안 성실하게 작은책을 가꿔왔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이나 인생 여로를 듣다 보면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작은책 얘기부터 들어보자. "한마디로 작은책을 말하기는 힘듭니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주부, 농민 등 일하는 사람들이 보는 책이지요. 작은책에는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답답한 이야기나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잡이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

최성기 재일조선인 교환학생 - 나는 남북 아닌, 조선사람

앙상한 목련이 작은 속살을 내보였다. 따뜻한 순풍이 늘어지게 겨울잠을 즐기는 꽃봉오리를 깨우며 봄을 알렸다. 그렇다면,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녹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의 순풍이고 희망이며, 인간에게 다사로운 꽃향기를 물어다 주는 것은 인간의 신념과 의지다. 남북교류가 한창이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 최성기 씨를 만났다. 최 씨의 국적은 조선적이다. 조선적은 한국인도, 북한인도, 일본인도 아니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 조국, 조선이 바로 이들의 나라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 민족의 일원이긴 하지만 법적으로는 무국적자다. 조선적 학생이 어학연수로 한국에 왔던 경우는 있었지만 교환학생으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팔공산 - 자연의 온기를 팔고 사는 세상

대자연으로 가는 길에서는 항상 마음이 숙연해진다. 혼탁한 일상을 모두 떨쳐내고, 곪아 터진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일 테다. 나는 오늘도 머릿속에서 부서지는 수많은 사유를 떠올리고, 속절없는 세상의 꿈을 조심스럽게 베어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이곳도 역시 각종 편의시설과 위락시설이 나를 가장 먼저 반긴다. 산을 유유자적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암벽을 타거나 야영하면서 산에 푹 안긴다. 산이 좋고,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딜 가나 돈 냄새가 풀풀 풍긴다. 산도 마찬가지다. 유원지가 들어서고, 유흥업소가 세워지고, 거기서 떠들썩하게 놀기 바쁜 사람들이 돈 냄새를 풍기며 산을 찾는다.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런들 어떠하랴. 산이 모두 보..

도박 권하는 사회, 돈만 벌면 된다는 빈곤한 철학

가정집에서 판돈 3천여만 원을 걸고 도박판을 벌인 혐의로 6명이 구속됐다. 경남 하동에서는 화투 도박을 하다 돈을 잃은 것에 앙심을 품고 불을 질러 일반건조물방화 협의로 구속되는가 하면, 한 타에 최고 1천만 원을 걸고 억대 내기 골프를 한 사람들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수백억대 해외 원정도박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도 있었고, 도박에 빠져 쪽박을 찬 유명 연예인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도박 병리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해줬다. 인터넷 도박의 폐해도 속출했다. 인터넷 도박에 빠진 한 주부가 전세금, 적금, 자녀 양육비 등을 모두 탕진하기도 했고, 인터넷 도박을 벌이다 적발된 사람은 교수, 의사, 대학생, 교사 등의 여러 부류를 넘나들었다. 뿐만 아니라 명절에 벌인 소소한 도박판에서 점점 많은 ..

경제적 빈곤과 고독에 몸부침치는 노인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핵가족의 확산, 산업의 발달과 서구 중심의 사상이 원인 "외롭지. 찾아오는 자식들도 없고, 경로당에서 친구들하고 10원짜리 화투나 치는 게 더 재밌어. 영감도 없는데 집구석에서 혼자 있어봤자 뭐해." 경로당의 오후 풍경이다. 자원봉사자들이 끓여준 잔치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할아버지들은 내기 윷놀이로, 할머니들은 10원짜리 고스톱으로 명절을 보냈다. 그러나 작년, 재작년에 이어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코로나19의 침습으로 노인들의 건강이 더욱 악화됐을 뿐만 아니라 외로움도 늘었으며, 우울증이 앓는 노인도 상당수다. 그 중심에는 핵가족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옛날에는 자식이 결혼하면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게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