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 -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문화

이동권 2022. 8. 4. 22:13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총장


요즘 문화연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 나도 늙긴 늙었나 보다. 잘은 모르지만 20년과는 단체 성격도 좀 바뀐 듯싶다. 이 또한 세월이 변한 탓이렸다. 그 당시에는 아스팔트에서 팔뚝질도 하고,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통일행사도 준비하고, 토론회니 포럼이니 여러 군데 일이 많았었다. 그때 문화연대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가 지금종 사무총장이었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정치경제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면서 문화생활에서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자 계급을 논하면서 가부장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문화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사회과학, 문화 서적과 선전물, 손때 묻은 책상과 의자, 그 위에서 나뒹구는 종이컵. 문화연대를 끌어가는 많은 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토론했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 창문 쪽에 임옥상 화백의 필체가 남아있는 선전물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한지를 자유롭게 찢어 붙인 콜라주 형식의 홍보물이었는데, 문화교육과 개혁에 대한 의지를 굵직한 공간감과 자유분방한 형식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회의가 많아서 바쁩니다. 사회포럼에도 참가해야 하고, 일이 일인지라 사람 만나기도 바쁘지요. 일러도 밤 9시는 돼야 퇴근하고 보통은 11시~12시 정도 집에 들어갑니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빨리 걷는 습관을 들이면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죠. 매주 1회는 러닝머신이나 자전거가 있는 찜질방에 가서 운동도 하고 그럽니다."

지금종 사무총장이 강건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동력은 무엇일까?

"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가끔은 습관처럼 일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기계처럼. 하지만, 약자들이 보이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원인을 알고 있기에 외면하면서 산다는 건, 더욱 힘든 일입니다."

나는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인지 다시 물었다.

"'아는 게 병'이라는 생각은 치기 어린 말입니다. 알게 된 것이 다행이죠. 세상을 자기 의지대로 살 수 없다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습니다. 때때로 고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 삶을 자주적으로 결정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지 사무총장은 자신이 학창 시절에 우울한 학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학교가 자신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아서다. 나이가 들어 바라보는 학교는 더욱 마음에 안 든다. 물질만능주의와 입시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교육 현실이 못마땅하다. 교육이 출세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요즘 학생들은 잘못된 시스템에 적응하도록 훈육당하는 느낌이라는 것.

"아이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겠지만 자신만의 꿈을 키워가는 교육은 부족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숨도 못 쉬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꿈과 희망, 생각하는 힘을 키워줘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출세를 위해서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요. 저는 80년대 말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았습니다. 살다 보니까, 교육을 잘할 자신도 없었고요. 우리 사회는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사회적 시스템 구축이 미약하고, 각 개인이나 가족 등 사적 체제에 지나치게 부담시키고 있어 문젭니다. 내 핏줄이 아니어도 잘 키우겠다는 사회적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양육할만한 조건이 된다면 입양도 고려해 보고 있습니다."

그는 양육이라는 것이 부모 자식의 관계보다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책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빈부의 격차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보육에 대한 걱정으로 출산을 미루거나 양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양육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취업을 걱정한다. 한편으론 자유를 가장해 무분별한 성문화를 탐닉하고 도박과 컴퓨터 게임을 즐긴다. 어학연수는 기본이 됐고, 얼마 전엔 모 대학 교수가 아들에게 시험답안을 유출한 사건도 있었다. 학벌 지상주의가 낳은 가슴 아픈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취업과 환락으로 내몰린 대학문화, 지 사무총장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학생들이 나이트클럽을 간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책임의식이 바탕이 된다면 성관계를 금기시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나 섹스나 돈에 대한 욕망이 과도하게 추구되고 표출된다면 문제가 큽니다. 그것 말고도 삶에 중요한 가치들이 크기 때문이죠. 따라서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오히려 사회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지혜를 찾아냄으로써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욕망의 흐름이 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과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개인에게 책임도 있지만, 사회적 책임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야 하는 시스템부터가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갑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서구화의 물결, 경쟁에 치우치고 자기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활문화에도 깊게 뿌리 박혀 있다.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의 교육적인 측면이 요구되며, 형식보다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본다. 생활문화의 진보를 위해 현장에서 파고드는 일, 지금종 사무총장은 공유와 소통을 강조했다.

"문화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많습니다. 문화를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죠. 예술적인 형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문화라고 하면 노래, 풍물, 미술 같은 것으로 정형화시키는데,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사실 옛날에는 도구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집회에서 분위기 띄우는 기능이 있었죠. 그러나 문화는 도구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문화가 현장에서 갖는 역할, 어디에서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문화라는 것은 다양한 생활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화장실 문화, 도로교통문화, 음식문화 등등 아주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시민들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설을 늘리는 것도 문화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매체문화 운동, 미군기지를 시민들에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건축문화 운동 등등 다양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각 사회부문의 운동세력들이 소통해야 합니다. 각개약진보다는 함께 모여 새로운 운동을 모색할 시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