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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 프롤로그

이동권 2022. 7. 28. 15:48

 

조지프 니덤은 휠체어에서 눈을 떴다.


오한과 통증이 잠을 깨웠다. 연이어 구역증이 치밀었다. 진통제 과다 복용이 부른 후유증이었다.


‘인생 말기는 끔찍한 형극이야.’


선잠을 길게 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구부정한 허리를 쭉 폈다. 찌릿한 통증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니덤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허벅다리를 내리쳤다. 피부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부스럼이 진물을 쭉 내뱉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프기보다는 시원한 표정이었다. 딱지가 엉겨 붙을 때까지 가려움을 참았던 분풀이었다. 


채광창으로 햇빛이 내리비쳤다. 눈이 몹시 부셨다. 니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탁상 위에 18세기 중국 청나라풍 소반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안일을 돌봐주는 늙은 중국인 가정부가 갖다 놓은 것이었다. 소반 위에는 말린 과일을 넣고 보름달 모양으로 둥글게 빚어 구운 월병이 놓여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소반 옆에 노끈으로 꼭꼭 동여맨 페덱스 상자가 눈에 띄었다. 니덤은 상자 겉면에 붙은 송장을 확인했다. 한국 신문사에서 보낸 소포였다. 머릿속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작년 중국과학사 학회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기자가 생각났다. 


중국 관료와 기자들이 모인 학회에서 의기양양하게 발표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국 기자 한 명이 따라붙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니덤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 의사를 표했다. 


기자는 의기 충만한 열혈남아였다. 막무가내로 앞길을 가로막고 니덤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소리치듯 말했다.  


“증명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나요?”


니덤은 학회에서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중국이 만들어 조선에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그 주장의 근거를 거친 어투로 캐물었다. 인터뷰를 빙자해 니덤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힐난했다.


니덤은 아무런 대꾸 없이 휙 돌아서서 웃어버렸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기자의 얘기가 맞았다. 앙부일구는 가마솥처럼 오목한 시계판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양의 해시계였다. 세종 16년 장영실이 이천, 김조 등과 함께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니덤에게는 학자의 양심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중국 정부가 사회과학원 종신 명예교수로 자신을 추대한 것에 대한 보은이었다. 


조지프 니덤은 영국의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난 금수저였다. 13살 때 아버지와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철도 기관사들이 사는 오두막에 머물다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노동계급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프레더릭 홉킨스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아닌 생화학자의 길을 걸었고, 사회주의자로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중국과는 영국왕립학회 대표로 중국사회과학원 강의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세균폭탄 투하를 폭로한 ‘니덤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미국은 니덤보고서를 중국의 증거조작, 프로파간다에 의한 정보로 결론짓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매도했다. 심지어 미국 CIA는 그를 블랙리스트로 올려 비자조차 발급하지 않았다. 니덤은 케임브리지 자연과학부 교수와 인문학계의 최고 영예인 영국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지만 매카시즘에 질려 말년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개자식.’


니덤은 부지중에 한숨을 내쉬었다. 드라큘라처럼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넘긴 사내가 생각나 머리를 흔들었다. 자신과 이름이 같아 더 재수 없었던 조지프 매카시였다. 매카시는 1951년 5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니덤을 공산주의자, 중국 스파이라고 지껄였다. 니덤은 끝내 강경 기독교 보수주의 세력에 이적행위 혐의로 기소돼 추방됐고, 다시는 미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휠체어 바퀴를 손으로 밀어 탁상 앞으로 다가갔다. 탁상 상판이 햇볕에 반사되면서 뻔득 빛났다.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존중의 증표로 선물한 가구였다. 니덤은 오늘따라 유난히 탁상이 마음에 들어 검지로 모서리를 스쳤다. 손끝에 번질번질 윤을 내는 옻칠의 질감이 전해졌다. 탁상은 신와저리로 불리는 가구였다. 신와저리는 견고한 구조와 화려한 장식, 미려한 외관으로 가구가 아니라 예술품 취급을 받았다. 겉모양은 루이 15세 시대의 디자인이었지만 상판은 중국화와 칠기로 치장됐다. 


니덤은 탁상 위에 놓인 라디오 전원 스위치를 켰다. 아나운서가 방금 들어온 한국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이 중국에 무역사무소를 개소합니다…….’


아나운서는 동북아 지역 냉전의 벽을 허물고 한국과 소련이 수교한 동정을 전하면서 한국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잇따라 수교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니덤은 벽에 걸린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거대한 중국 대륙을 장류하는 양쯔강 그림을 배경으로 만든 달력이었다.

 
‘1990년 9월 30일이라. 나흘 후면…….’


니덤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독일은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나흘 후면 동독의 다섯 주가 서독에 편입돼 하나의 나라로 통일됐다. 반대로 한반도는 남북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변화의 바람은 고사하고 이념 분열의 시대로 퇴행한 듯했다. 빨갱이 망령이 떠돌고 간첩 조작이 기승이었다. 


며칠 전 휴먼라이츠가드 한국 서울 지부에서 편지가 왔다. 재일 공작지도원의 지시를 받고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옥에 갇힌 김양기 씨의 가석방을 위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이었다. 김 씨는 검찰에 송치될 때부터 조작사건이라고, 보안사의 구타와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호소했지만 사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니덤은 편지를 받고 마음이 한량없이 무거웠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니덤이 휴먼라이츠가드와 처음 관계를 맺은 것은 1988년 사상의 굴레에 갇힌 월북 문인을 주제로 글을 기고하면서다. 그의 기고 때문인지, 월북 문인의 작품들은 다행스럽게도 서울올림픽을 두 달 앞두고 해금 조처됐다.


‘서울올림픽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구나.’


니덤은 무상함을 느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나이가 들어 삶의 허무를 자각하면 마음이 여간 쓸쓸한 게 아니었다. 


니덤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페덱스 상자를 열었다. 필시 자신을 못살게 들볶거나 뭔가를 부탁하는 서류가 틀림없었다. 


상자 안에는 문서 한 뭉치와 사탕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문서는 최근 니덤이 발표한 논문의 근거를 묻는 인터뷰 질문지와 논문의 잘못된 부분을 정리한 보고서였다. 


‘쯧쯧, 궁금하기도 했겠지.’


니덤은 혀를 차다 웃어버렸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당혹스러웠다. 그는 근래 앙부일구는 ‘중국이 만들어 조선에 보낸 해시계’라는 주장과 다소 상반된 논문을 발표했다. 조선의 과학기술이 동아시아에서 매우 뛰어났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이번에 한국 기자는 그걸 또 꼬투리 잡아 니덤을 괴롭혔다. 


‘당근과 채찍인가?’


니덤은 문서와 함께 배달된 사탕을 손에 들고 장난스럽게 쳐다봤다.


‘배려라고 해야겠지.’


니덤은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콤한 침이 입안 가득 고였다. 심박수가 증가하며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걱정되고 힘에 부칠 때 단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단맛이 입안에서 채 가시기 전이었다. 니덤은 행복에 잠긴 얼굴로 캐비닛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 두 개를 꺼냈다. 봉투는 노란 종이로 완전히 봉합돼 있었다. 그는 봉투를 검은색 보드상자에 담아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모서리 부분이 벌어지지 않게 꼼꼼하게 밀봉했다. 함부로 손대거나 봐서는 안 되는 물건처럼 비밀스럽게 다뤘다. 


창밖으로 꽃밭에 물을 주는 가정부가 보였다. 니덤은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후루루 불었다. 가정부는 니덤의 안위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이 상자를 이 주소로 보내줘요.”


니덤은 가정부에게 종이 쪼가리를 건내며 말했다. 가정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니덤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고였다. 


니덤의 얼굴에 암울스러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죽음과 싸우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순순히 받아들이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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