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홍원석 화가 -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이동권 2022. 9. 25. 22:55

홍원석 화가


푸른 어둠 속에 잠겨있는 홍원석 작가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졌다. 순간순간 미소 짓게 만드는 쾌활한 그림 속에서 경건하고 엄숙한 메시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이내 전시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세상의 질서에서 잠시 물러나 작은 시인이 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화가이기 이전에 작은 시인이 되어 세상의 참혹한 진실들과 ‘응수’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는 세상과 싸우면서 잘도 견뎌온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 ‘낯선 6월’에는 월드컵의 열광에 묻혀 매스미디어에서조차 소외됐던 ‘효순이, 미선이’의 영혼이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작품 ‘낯선 축제’에는 환경오염이 부른 낯선 생명체들의 위협이 묵시록처럼 펼쳐져 있다.


그의 그림은 현실과 마주 서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저 주의 깊게 관찰하고 복종하다 보면 얻어지는 것이 많다고 가르치지만 그는 다르다. 간곡하고 깊은 울림으로 ‘깨어라’라고 속삭인다. ‘세계화’를 외치는 속물들의 내면을 발가벗기면서.

홍원석 작가에게 있어 어둠은 검은색이 아니라 푸른색이다. 짙푸른 하늘과 강물로 밤을 뒤덮고 다시 푸른 그림자로 반사된다. 거칠고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격한 밤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상념들을 끊임없이 불러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색’은 화가의 유희이자 다양한 메시지 전달 수단 중의 하나. 그에게 ‘푸른색’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어요. 어릴 때 아버지께서 저를 태우고 달렸던 밤하늘이 블루 빛이었죠. 그때 기억을 살려 작업을 했어요. 저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을 작품으로 보여주자, 그런 의도였습니다.”


그의 말과 그림은 참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굳이 설명하자면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던 ‘유년기’와 직접 차를 운전하게 된 ‘지금’에 와서 느끼는 괴리감은 실로 크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통해 이 간극을 좁혀보려고 했다. 불모의 땅으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절한 보호막을 치고 싶은 것이다. 기가 막힌 대유법이 아닐 수 없다.


“잃어버린 유년시절의 꿈과 희망들을 그림 속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제 안에서 꿈틀거리고 저를 자극시키는 것들을 캔버스로 끌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의 작품에는 환한 불빛을 내뿜고 달려가는 자동차가 항상 등장한다. 작가가 유년시절의 기억이나 야간운전을 할 때 느꼈던 몽환적인 이미지들을 조합해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마치 시인이 작은 발코니에 앉아 우울한 세상을 관망하면서 써 내려간 서사시 같다.

그렇다고 만날 속으로만 끙끙 앓지 않는다. 가끔은 감상자에게 직설적으로 대화를 청한다. 작품 ‘낯선 여행’에 등장하는 ‘FTA 결사반대’ 같은 문구로 빗장이 걸려 있는 세상을 향해 초인종을 누른다. 또 불행한 세상으로 내모는 현실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대우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나 물 위를 걷고 있는 ‘우주인’, 유전자 조작으로 거대해진 ‘과일’, 환경파괴로 변이된 ‘슈퍼 메뚜기’ 등이다.


그가 이러한 이야기를 그림에 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보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 때문이다. 과연 그의 꿈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일 것이다. 그는 “매스미디어에 길들여진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지내거나 소외된 것, 또 소중한 것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