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34

거친 물살을 타고 짜릿한 스릴 만끽하는 내린천 래프팅

아주 사소한 욕구마저 꺾어버리는 여름이다. 여름에는 물소리 우렁찬 계곡에 앉아 시원한 수박을 먹는 것도 좋고, 금빛 모래 반짝이는 백사장에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로 몸 부대끼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레저스포츠도 그만이다. 습하고 더운 열기가 몰아치는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윗옷을 훌떡 벗고 즐기는 목물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는 콸콸거리며 쏟아지는 강물에 몸을 맡겨 보자. 고무보트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내려오는 맛이 제법이다. 거기에 담청색으로 물든 하늘과 청록의 물결로 넘실대는 숲, 올올하게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배경으로 어우러지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행은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원..

간단한 산행과 함께 즐기는 여름가을 계곡 여행

습하고 더운 열기가 몰아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기분도 찝찔하다. 찜통더위는 추석이 되기 전까지 이어진다. 더운 날에는 계곡을 따라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맛이 제법이다. 담청색으로 물든 하늘과 청록의 향연이 한창인 숲을 바라보면서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무더위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날아가버린다. 세차게 흘러내리며 부서지는 계곡물, 총천연색 빛을 발산하는 폭포,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 청량한 바람, 타들어가는 갈증을 해갈해 주는 차가운 약수가 일품인 계곡 여행지 여섯 곳을 소개한다. 설악산 - 십이선녀탕과 구만동계곡, 천불동계곡, 미천골계곡, 공수전계곡 내설악에 있는 십이선녀탕은 탕수동계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려한 풍광과 변화무쌍한 자태를 뽐내는 설악산의 진면..

최영장군 묘역 - 이성계도 존경한 명장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푸르다. 연둣빛 신록들이 번지고 시원한 바람은 짜릿한 기쁨을 전한다. 청잣빛 하늘은 답답한 가슴을 풀어준다. 하얀 깃털 구름은 벌써부터 길안내를 하겠다고 멀찌감치 앞장선다. 사람들은 여행을 한가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폄훼한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초록빛 나무가 없는 곳 없고, 스쳐가는 신선한 바람이 피부에 닿지 않는 곳 없다. 일상이 곧 여행이다. 꼭 먼 곳에, 돈 들여가는 것이 여행은 아니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최영장군묘는 ‘고양동누리길’에서 고양향교, 중남미문화원, 선유랑체험마을, 벽제관지와 함께 꼭 둘러봐야 할 고양의 명소 중 하나다. 하지만 감안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길 곳곳이 꽤 을..

철원 고석정 - 가볍고 유연한 풍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을 계절이다. 물론 전망 좋은 호수나 바다가 낫겠다. 하지만 돈도 많이 들고, 한나절을 투자하기도 수고스럽다. 또 너무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은 사람들에게 떠밀려, 편안한 식사조차 신경 쓰인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철원 여행을 추천한다. 철원이라고 하면 ‘멀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철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서울에서 의정부, 포천을 지나면 바로 철원이다. 인근에 대진대학교가 있어, 강남역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도 있다. 철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한탄강 줄기와 고석정을 만난다. 고석정은 수려한 풍광과 의적 임꺽정의 활약지로, 나름 지역에서 유명하다. 1인당 4,000원을 내고 즐기는 통통배 유람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시간이 된..

흥국사 - 천년고찰이 주는 기쁨

태양이 뒤통수를 간질이는 계절이 왔다. 이 계절에는 어딜 가나 별천지요, 선경이다. 호들갑스러운 마음만 다스리고 떠난다면 장소는 그다음 문제다. 피곤하고 잡다한 일을 해치우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책무라고 해도, 가끔씩은 충전이 필요하다. 많은 돈 들이지 않고 서울 근교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바로 천년고찰 ‘흥국사’다. 서울 인근에 이렇게 오래된 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롭다. 흥국사는 661년 신라시대 문무왕 원년에 세워졌다. 당대 최고의 고승인 원효 스님이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하던 중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된다’는 이름의 흥성암을 창건했다. 이후 1686년 조선 숙종 12년에..

태릉-강릉 숲길 - 50년 만에 개방된 1.8km를 거닐다

육감적이다. 아랑곳없이 너털웃음이 난다. 신묘하고 청월한 느낌보다는 산자락이나 인적이 뜸한 곳에서 밀회를 즐기는 기분이다. 50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에서 느낀 감상이다. 태릉은 문정왕후의 묘, 강릉은 명종과 인순왕후의 묘다. 명종(1534~1567)은 34살에 승하한 문정왕후의 아들이지만, 이 두 묘지 사이의 숲길 1.8km는 반세기 동안 끊겨 있었다. 이 길이 개방됐다. 일 년에 딱 두 번, 태릉-강릉 숲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개방일은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숲길은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곳곳에 정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숲길을 걷는 감흥을 충분히 떨어뜨릴만한 했다. 하지만 신명이 없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연의 ..

인월 - 전국 최대 규모의 달집태우기

달이 떴다. 시커먼 구름을 뚫고 나온 정월 대보름달. 달을 보면서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언제나 젊고 아름답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늙음을 모르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쾌락을 모르는 절제가, 이별을 모르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삶 또한 타인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월대보름에 달집을 태우는 인월을 찾았다. 전통행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도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달집을 만든다. 지역 주민들은 생소나무를 쌓아 올려 커다란 달집을 세웠다. 불길이 약하면 흉년이 드니 나무 사이사이마다 짚과 잔가지, 솔잎도 채워 넣었다. 불만 당기면 한꺼번에 타오를 기세다. 달집 무게는 10톤, 높이는 20미터에 이른다. 젊은 남자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

지리산 둘레길 - 어울릴 것에만 어울리는 무구의 미학

겨울은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여름, 가을 전성기를 구가한 뒤 성찰의 시간을 보내면서 정결하게 소생할 봄을 기다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류를 구한 선지자라도 어찌 부끄러운 적이 없었겠나. 고난과 고행의 겨울처럼 혹독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기에 새로운 날도 개척할 수 있었다. 입춘을 지나 우수에 이르면 따뜻한 봄기운이 살랑거리며 얼어붙은 계곡물이 민낯을 드러낸다. 수척한 마음을 녹이듯 포근하게 봄이 다가온다. 하지만 요 며칠 추위가 다시 찾아와 심중을 할퀸다. 아직 봄은 멀었나 보다. 그러나 마음속에 들어앉은 봄기운을 물리치긴 힘들다. 몸을 움직이자. 선한 마음대로 살기 어려운 세상,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도 지척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명상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홀로 걷는 자적이 필요하다. 산마루 넘어..

조계사 - 국화에서 삶을 읽다

국화는 맑은 눈을 가진, 나이 든 남자와 비슷하다. 고고한 자태, 지혜의 빛으로 넘치는 미소, 어떤 욕망에도 초연해 보이는 말솜씨가 국화에서 읽힌다. 국화는 강건한 인생의 상징이자 고결한 마음의 표상이다. 그래서 국화는 고인의 삶을 위로하는 추모의 의미로 쓰이고, 사람들은 만추가 되면 국화와 같은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국화는 삶을 담아낸다. 계절의 종착점에 이르기 전, 가장 화려한 때 원숙과 겸손을 품었다. 봄에는 국화의 뽀송뽀송한 속살이 태동한다. 봄볕을 맘껏 구가하며 하늘을 향해 머리를 내밀며 삶의 희열을 인식하고 탐욕의 업을 시작한다. 여름이 되면 어리석음과 성냄에 이끌리고, 사랑과 욕망에 눈을 뜨며 꽃망울을 내민다. 그 욕망의 집착은 갖가지 벌레를 부르고 거칠게 잎을 키운다. 하지만 사나운 비바..

지리산 화개재 - 메마른 감성 일깨우는 트래킹

소슬바람이 땅에 닿는 소리를 듣는다. 하얀 눈을 재촉하는 샛노란 목엽의 소멸을 본다. 붉은 열매 뚝뚝 떨어지는 산매자나무 아래에서 생의 열정을 마시고, 저녁이면 부엉이 울었을 준봉에 서서 속세의 소음과 먼지로부터 격리된 미지의 평온을 감지한다. 산과 만나는 기쁨은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알록달록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을 때,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울어대는 물소리를 들을 때,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는 순간을 목격할 때, 그 자체가 쏠쏠한 기쁨이다. 흐르는 물소리 벗 삼아 좁지만 탁 트인 산길을 걷는다. 아름드리나무가 두 팔을 벌려 기꺼이 환영한다. 언제나 그렇듯 나무는 아름답다. 나무는 서로 의지하고 부대끼면서 스스로 산이 된다. ‘함께’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몸소 ..

봉원사 - 연꽃에 취하다

천년 고찰 봉원사. 경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소리와 한여름의 열기를 소리 없이 받아낸다. 부처의 온화한 미소처럼 대자대비의 향을 살라 탐욕과 욕망을 다스리고, 순백의 자아를 투영시킨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생각이 들어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렇다고 머리를 깎고 사문(불문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이 될 수도 없는 노릇. 세상에서 좋은 일을 닦고 부지런히 살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활짝 핀 연꽃이 청정한 빛을 뿜어낸다. 경외심을 일으키는 깨끗한 화색(花色)에 마음이 매료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부정적인 카르마(업보)가 정화되는 기분이다. 돌로 만들어진 연꽃 모양의 물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약수를 한 식기 마시니 술과 고기, 온갖 인스턴트 음식으로 망가진 ..

순천국제정원 - 격조 높은 정원과 정원문화의 향연

인간의 힘은 위대했다. 자연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의 힘. 하지만 그 힘의 근원은 자연에 있다. 시간의 풍해를 견디고, 환경의 변화를 이겨내면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자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신작로를 따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헤치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다. 미련 없이 떠나 자연과 동화되는 나그네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순천국제정원 관람은 순진한 기쁨을 포식하고 마음껏 휴식을 취하며 눈과 가슴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전 세계가 산업화의 후과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이 낳은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다. 자연생태계는 교란되고 파괴됐으며, 갖가지 자연재해를 만들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과 생태로 옮겨가고 있다. 조금 더 불편하고 부족하게 살더라도..

커피커퍼 -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농장과 커피박물관

초록빛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대관령에 도착했다. 대관령은 계곡부터, 숲, 농장, 오솔길까지 가는 곳마다 천연의 아름다움으로 넘친다. 구불구불한 대관령 길을 바라보면 ‘숙명’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제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지고 있어도 인간은 모두 똑같은 결말을 맞는다. 날짐승은 날다가 죽고, 기는 짐승은 기다가 죽고, 걷는 짐승은 걷다가 죽는다. 삶이라는 길을 따라 쉼 없이 죽음에 다가서는 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숙명. 어느 누가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가슴을 쫙 펴고 상쾌한 공기를 들여 마시니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각박한 인간사를 달래주는 것은 역시 자연이 최고다. 강원도 옛 대관령길을 오르다 보면 중턱 왕산골에 이색적인 박물관이 있다.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농장과 커피박물관이 들..

부산 - 추천 ‘하루 부산국제영화제 즐기기’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한다. 맘먹고 영화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영화만 본다고 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없다. 영화 두어 편 보고 나면 머리와 눈을 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영화들이 머리에서 뒤섞여 버리는 역효과가 나고 말 것이다. 또 부산에 온 이상, 부산을 둘러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할 독자들을 위해 ‘하루 부산영화제 즐기기’ 코스를 추천한다. 부산행 첫 기차가 서울역에서 5시 15분에 출발한다. 이 기차를 타면 7시 49분에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에 도착하면 먼저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시장역에 내려 ‘부산의 맛’이라고 불리는 돼지국밥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여행은 시간에 쫓기듯 둘러보면 남는 게 없..

부산 - 세월이 내려앉은 보수동 헌책방 골목

활자에 빠질수록 스스로 무지함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서점을 찾는 날이 많아졌다. 지식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서점에서 자양분을 얻어 왔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불안한 마음에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뭐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메몰 돼 버렸다. 뭔가 좀 까다롭고 어려운 세상이 됐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들려 영화 삼매경을 계획 중이라면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아가 보자. 카메라를 들고 사진도 찍어보고, 멋진 골목길 계단에 앉아 차도 마시면서, 지식의 향연에 푹 빠져보자.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았다. 국제시장 뒷골목을 걷다 국제시장을 돌아나가면 헌책방 ..

용문사 - 우산 들고 찾아가도 되는 곳

하늘이 차갑고 쓸쓸하다. 오랫동안 비가 내린 탓인지 담청색으로 맑게 물든 하늘이 그립다. 또 태풍이 올라온다고 한다. 마실 한 번 다녀오기 어렵게 됐다. 이런 날에는 가까운 서울 근교에 들려 우산을 쓴 채 편안하게 들릴 수 있는 '피크닉' 정도가 안성맞춤이다. 용문사로 올라서는 길목마다 사람들이 많다. 1983년부터 용문산 관광단지로 조성되면서 연일 자연을 만끽하러 온 사람들로 넘치는 관광명소가 됐다. 특히 가을에는 발 밑에서 부서지는 낙엽소리와 만색으로 펼쳐진 단풍들이 세상살이의 온갖 시름마저 잠시나마 잊게 한다. 산사로 난 길을 따라 20여분 올라가다 보면 용문사 대웅전 앞마당에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는 땅을 아우르고 하늘을 받들고 있는 듯 키가 60미터에 달한다. 나이는 천..

화천 - 빙어낚시를 떠나다

이리저리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말라버린 도시의 영혼을 울리며 짐승 같은 소리를 낸다. 하늘은 해를 감추고, 가릴 것 없는 앙상한 가로수들은 단조로운 황무지의 개미집처럼 쓸쓸함을 연출한다. 녹슨 철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콘크리트 조각처럼 마음마저 얼어붙은 이 겨울에는 차라리 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한겨울 눈을 기다리며 떠나는 빙어낚시. 고작 우리의 소멸이 아주 작은 자연의 일부일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품고 떠난다.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집착할 필요도, 소유할 필요도 없다. 하늘이 구름을 바라보듯, 바람이 먼지와 섞이지 않듯 그대로 받아들이며 떠난다. 거짓말처럼 여로에 오르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은 메마르고 ..

율포해수욕장 - 수채화 같은 바다에서

청정한 빛이 감도는 바닷가 작은 마을은 삶의 욕망에 지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푸른 심연을 보여준다. 바다에 내려앉은 회색 빛 구름 무리, 작은 목덜미 구부린 채 수평선을 향해 날아가는 갈매기, 갯바위에 붙어 작은 거품을 내뿜는 석화, 은빛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고깃배, 어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청신한 바람 등 바다의 숭고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이 잠시나마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욕망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면 함께 껴안고 가야 할 모든 것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적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잣대와 눈으로 삐뚤어진 열정을 불태우면서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름다운 것들을 사악하게 파멸시킨다. 우리는 탐하지 않아야 자연의 일부가 되고 아름답게 변할 수 있..

태국 - 정열의 향 피우는 나라

택시는 방콕 시내를 달려 아마리아트리움호텔에 섰다. 호텔은 4성급 호텔이라서 깨끗하고 호젓한 편이었다. 내가 만약 배낭여행을 왔다면, 카오산로드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첫 여정을 시작했겠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이번 여행은 뭔가를 배우거나 깨닫기 위한 출발이 아니었다. 그냥 이 나라를 느끼고 쉬면 됐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방콕의 거리에는 불상을 모셔둔 자그마한 제단을 많이 볼 수 있다. 태국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를 믿는, 세계에서 가장 독실한 불교국가다. 공양은 꽃, 과일, 음료가 대부분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금박의 불상이 많다. 신도들이 공양의 의미로 금지를 불상에 붙인 것이다. 맥없이 호텔방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갔다. 호텔 문을 나서자..

추암 - 고요함, 자연으로부터 얻은 안식

추억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며 추암으로 떠났다. 아직 내겐 젊음이 번져 있어 그곳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나 특별한 아름다움 같은 것은 선사받지 못하겠지만 조금이나마 삶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평화로 채워지길 기대했다. 신선한 공기만큼 건강에 좋은 것이 있을까? 파도를 따라 흔들리는 바람의 숨결에 핏빛 기운이 뺨에 돌았다. 뭔가에 쓸려 다녔던 마음도 한층 가벼워 하늘에 닿았다. 휴식을 취할 필요 없이, 안식은 이미 나에게 충만해 있었다. 끊임없는 걱정들이, 일종의 정신적인 피로가 사라졌다. 자연은 경솔한 나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안식을 선사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어버이 같은 자연의 숨결에 의지하며 얘기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자연은 나를 조용..

밥줍기 - 소확행 여행의 즐거움

전국 방방곡곡에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산과 들엔 녹음이 번지고 청자, 백자와 같은 하늘이 뒤덮여 만취한 가을을 선사한다. 밤과 대추가 무르익고, 한가롭게 흔들리는 코스모스 길목이 가을의 정열을 불태운다. 3년 만에 인원 제한 없는 가족모임이 가능하고, 여행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어 더욱 기대되는 가을이다. 세상엔 정말 사소한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밤줍기 여행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시베리아의 청정수 바이칼호나 알래스카의 거대한 빙하산으로 떠나는 여행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적은 비용과 부담 없는 시간으로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하면 한가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넋두리처럼 푸념한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통영 - 사색 넘치는 고장, 떠나는 자의 즐거움

항아리 외형처럼 굽은 항구와 넓은 바다, 둥그스레한 공원과 곳곳마다 우뚝 솟아오른 조각상들을 바라본다. 세상은 암갈색 욕망을 불태우며 날뛰고,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고 표독스럽게 외치고 있는데 통영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은 양 푸르디푸른 곡선을 따라 제 맘대로 생겨나 평화롭게 서 있다. 이런 곳에서 어찌 성내고 욕하며 시시비비에 휘말리고 현혹될 수 있을까? 다시 삶의 투쟁 속에 돌아가기 전까지 마음을 다스리면서 고요하고 소박한 사색에 스르르 빠진다. 통영이여. 가만히 놓아주소서. 혼자 있다는 것은 평온한 것. 그리운 눈빛으로 속삭이며 흠씬 달아올랐다가 아름다운 청춘의 초상들을 떠올리며 조용한 참회의 광장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 청명한 바람을 따라 흐르는 한 점 구름이 되어 하늘로, 하늘로 번져 가..

담양 소쇄원, 맑고 깨끗한 선비의 숲

맑고 푸른 햇살이 남도의 시원한 바람을 타고 대나무 숲을 쓸고 지나간다. 녹음으로 번진 산천은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구성진 가락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어제는 우중충한 먹구름이 비를 몰고 다니면서 습한 바람을 쏟아낸 탓에 괜히 몸과 마음이 시렸지만, 오늘은 대나무 잎사귀들이 햇볕에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어 마음이 한층 밝고 편안해진다. 참으로 소박하고 서정적인 날씨다. 나는 먼 여정을 마치고 정겨운 고향에 돌아와 야릇한 정취에 푹 빠진 사람처럼 전원의 향수에 젖었다. 가정을 꾸리고 그 속에서 안주하길 바라며, 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길을 열심히 달리다 잠시 쉴 때 찾아오는 환희를 순간 만끽했다. 자연의 생동감을 향유하는 느낌, 이 세상 어느 ..

제부도 - 바다와 포옹하는 섬

내가 제부도에 들어갔을 때는 하루 내내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조금 때였습니다. (해할 현상은 썰물 때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영이 해상으로 노출돼 바다를 양쪽으로 갈라놓은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이다. 우리나라에는 진도, 여천, 무창포, 해간도, 제부도 등 해저 지형이 복잡하고 조차가 큰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바다 사이로 잠겼을 시멘트 길을 따라 제부도로 들어갔다. 이미 밤이 깊어 바다인지, 길인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도시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방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했을 때와 같은 추억이 떠오르게 했다. 그 아찔함과 포근함. 한 움큼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은 그 느낌. 그러나 제부도를 향해가는 차창 밖에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깊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영혼들이 가득..

보성녹차밭 - 녹차밭의 정결한 엉킴처럼

녹차밭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청풍(淸風)이 길을 안내하는 청자 빛 하늘 아래로는 하얀 깃털 구름이 흐르고, 그 밑으로는 오종종하게 펼쳐진 능선마다 흐르는 냥 마는 양 연둣빛 물결이 연방 넘실거리며 신천지를 연출했다. 정갈하고 아름답게 수 놓인 새색시 치마폭처럼 부드럽지만 아무렇게나 휘갈긴 명필의 붓놀림처럼 힘이 넘쳤던 녹차밭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색을 불렀다. 보성녹차밭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회색 빛 구름이 밀려왔다.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모처럼 떠난 여행길, 우산 하나 준비할 틈 없이 재촉해 온 여정을 생각하니 지나가는 소나기였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가지런히 펼쳐진 능선을 따라 갈라지고 메마른 논밭의 호된 고통을 생각하며 맘을 고쳤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승봉도 - 길이 아름다운 섬

원시의 향연이 무르익은 땅, 미지의 굴곡처럼 뻗어있는 길이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들녘을 따라 청신한 기분을 선사해주는 바닷바람이 불을 스치고 지나가자 이름 모를 애상이 엷은 파도처럼 가슴속에서 흐드러지게 일렁인다. 동서남북 어딜 보아도 이리저리 뒹구는 파도소리, 인정과 사랑에 젖게 하는 바닷물결, 수평선 끝없이 펼쳐진 해원을 따라 타오르는 낙조,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회 한 접시가 잃어버린 꿈과 낭만을 달래준다. 오랜만에 자연의 은빛 품 안에 안길 수 있는 여정이었다. 나는 푸른빛 물결 위에서 은빛 보석이 반짝이고, 부드러운 뭉게구름이 신기한 풍광을 연출하는 승봉도에서 잠시 갈매기가 된듯한 자유를 만끽했다. 온갖 관계에 얽혀 이해득실과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는 것이 세속의 삶인지라 매양 거기에 얽매이..

안면도 자연휴양림 - 피톤치드(Phytomcide)에 빠지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족히 100년은 됨직한 거대한 적송(赤松)으로 둘러싸인 숲이다. 세월의 풍해(風解)를 이겨낸 적송들이 꿋꿋한 절개를 상징하듯 단호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어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장중한 현장감이란 게 이런 것인가! 이렇게도 경이로운 것인가! 나는 적송 숲을 거닐며 오늘도 다짐한다. '내 마음이 내 주인이 되고, 내 마음이 내 길이 되며, 내 마음이 내 사랑의 근원이 되리라고...' 녹음이 우거진 적송 숲에서 피톤치드(Phytomcide) 향이 났다. 숲을 헤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미련 없이 찾아온 나그네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피톤치드를 호흡하거나 피부에 노출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웰빙이니, 릴랙스니, 유산소 운동 같은 단어는 잊어버려야 한다. 가..

계룡산 - 생기와 약동 넘치는 산

점퍼 안으로 차가운 기운이 파고들었다. 옷깃을 바짝 세워도 지독한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옷깃에 파묻고, 서울역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산으로 떠나는 마음이 차가운 바람에 위축되면서 자꾸만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찾아왔다. 뭔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마음의 병 같기도 했다. 나는 '산으로 향하는 마음은 갈증을 채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창 밖으로 어둑어둑해진 태양이 벌겋고 푸르스름한 광경을 연출했다. 네온사인도 하나둘씩 불을 밝히며 도시의 밤을 준비했다. 기차는 정각 7시가 되자 출입문을 닫고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플랫폼은 사막처럼 조용하고 적막했다. 플랫폼에 서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앙코르 와트 - 크메르 왕조의 심장을 보다

세계사의 한 자락을 호령했던 거대한 왕국으로 떠났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기쁨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법.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은 따스한 비를 맞고 활짝 피어난 꽃처럼 하나같이 싱그럽고 환했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새벽 6시 잠이 덜 깬 얼굴로 인천공항에 도착. 출국 수속을 밟고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대부분 담요를 덮고 깊은 잠에 빠졌다. 5시간 50여분을 날아 방콕 돈므앙국제공항(Don Muang Airport)에 도착해 간단히 식사를 하고...(방콕 여행은 나중에 얘기하겠다.)... 방콕에서 버스로 4시간 30여 분을 달려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했다. 캄보디아는 북쪽으로 태국과 라오스, 동쪽으..

대통령별장 청남대 - 이도저도 아닌 욕망의 향연

가볍게 날아오르는 새들의 맑은 울음으로 충만한 하늘.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물감을 산더미처럼 풀어놓은 듯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드는 색채로 물든 나무. 젊은 날의 청초한 방랑으로 유혹하는 미완의 정취가 상쾌한 바람을 타고 내 마음속으로 불어온다. 마치 절대자의 구원처럼 내 불안한 영혼에 위안을 베푼다. 쓰레기더미 같은 절망을 몰아내고 소리 없이 희망을 선사한다. 그래, 눈을 감고 한순간이라도 이 기분을 느끼자. 자연의 숨소리를 주시하자. 어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삶을 대해보자. 그러면 내 삶과 운명에 우울한 절망이 찾아와 외톨이가 되거나 악의 수렁에 빠져 좌절하게 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