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이 음악 좋다 54

이생강 - 듣는 이들의 마음 사로잡는 피리소리와 대금산조, 퉁소가락

대금, 단소, 태평소는 알아도 피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적다. 피리는 잘 알려진 악기 같지만 실제로 본 사람도,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드물다. 피리는 소리 자체가 요괴스럽다. 여릿하게 불면 정신을 나긋하게 만든다. 힘을 아주 빼고 불면 구슬프고, 힘 있게 내불면 가슴이 대차게 두드리며, 흥을 실으면 애간장을 녹인다. 죽향 이생강 선생의 피리소리는 듣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한밤중에 바람 소리처럼 평화롭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처럼 청아하다. 피리의 미세한 음 처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기교 때문이다. 이생강 선생은 곧고 청아한 ‘대금’ 연주로 잘 알려진 명인이다. 하지만 피리, 쌍피리, 단소, 소금, 퉁소, 태평소 등 모든 관악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타고난 예인이자 전설적인 연..

부모님 생각하며 듣는 노래

부모님의 말씀처럼 세상은 시끄럽고 불만에 가득 차 잔인합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예측할 수 없고,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하고 창백한 곳입니다. 온통 내일이란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두렵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뜻을 깊이 받들어 올바르고 당당하게 헤쳐 나아가겠습니다.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숨을 쉬고, 가슴속에 남긴 모든 것들을 선명한 빛으로 떠올리겠습니다. 굳센 팔로 세상을 포옹하고, 어둠 속에서도 맑고 온화한 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이 되겠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부모님. 부모님이 생각나는 노래 - 1부 김영임 - 부모은중경(부모님의 은혜) 억조창생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 들어보..

이지상 - 그리움과 연애하다, 가슴 도려내는 통증 뒤에는

애가 타고 사무쳤다. 아련한 그리움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애틋한 연정이 서정적인 선율과 어우러질 때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가수 이지상이 읊고 부르는 그리움이 어렴풋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움 가까이에는 어머니나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있었고, 멀리에는 평화로운 세상과 정의를 향한 그의 바람이 있었다. 노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콧마루가 찡해오는 그리움은 자기 성찰로 이어졌다. 이지상은 ‘당신 모습을 대못처럼 새겨 내 심장을 꾸욱 눌렀지(저물 무렵 중에서)’라며 자신에게서 비롯된 굴레를 속박했고, ‘날이 저문다고 모든 것이 저무는 건 아니니 이 완전하지 못한 세상에 휴식이 되리(황혼 중에서)’라며 마음속 다짐을 나직하게 털어놓았다. 왜 그리움이어야 할까?..

백정은 - Nocturne, 단비처럼 가슴 적시는 노래

영롱하고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마음을 바로잡는다. 뒤틀리고 불편한 세상을 살다 보면 위안을 받을 대상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술로, 스포츠로, 여행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제철 음식으로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어진다. 역시 음악이 좋다. 가슴을 적셔주는 음악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올해는 많은 죽음과 마주했고,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을 목도하면서 야수 같은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이었고, 오히려 더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대로 눌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희망이 없다면, 채찍질을 해서라도 추슬러 기운을 차려야 한다. 백정은 피아니스트의 노래를 듣는다. 심상을 꿰뚫는 리듬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올해는 ..

딕훼밀리 - 또 만나요, 행사 끝날 때 언제나 들리던 노래

1970년대 LP판이 돌아가고 시원스러운 반주가 시작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렸을 노래 ‘나는 못난이’를 비롯해,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을 외치던 노래 ‘또 만나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말 한마디를 애절하게 쏟아내던 노래 ‘흰구름 먹구름’의 주인공이 딕훼밀리다. 딕훼밀리는 1970년대 초반 결성돼, 1971년 MBC 중창상, 1972년 플레이보이 그룹사운드 경연대회 우수상 가창상, 1973년 뉴스타배 보컬그룹 경연대회 우수상 개인 연주상(드럼), 1974년과 1975년 2년 연속 팝스 그랑프리 최우수 그룹상을 받았던 그룹사운드다. 이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 것은 1974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수록곡 와 이 크게 성공하면서부터다. 이 앨범에 실린 는 현재까지도 야간 업소에서 마무리 곡..

전기뱀장어 - 너의 의미, 풍부한 감성과 포용력

기타 소리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린다. 연한 쪽빛 하늘이 보이고, 쭉쭉 뻗어 있는 아름드리나무 사이에서는 청명한 빛이 쏟아진다. 보얀 기름이 흐르는 소년의 목덜미가 파란 하늘처럼 풋풋하다. 소녀의 앳된 뺨은 앵두처럼 붉다. 조금만 건드려도 웃음이 까르르, 감성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밴드 ‘전기뱀장어’의 앨범 에 수록된 노래 ‘술래잡기’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감상이다. 이 노래는 어린 시절 첫사랑의 기억을 한 편의 시처럼 담아낸 곡이다. 기분이 산뜻한 노래다. 밴드 구성원들의 얼굴은 평범하고,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음악은 가뿐하다. 나른한 한숨을 자고 난 뒤 몸이 개운해진 느낌, 하얀 벽지로 깨끗하게 도배된 방에 들어가는 느낌, 땀을 잔뜩 흘린 뒤 샤워를 하는 느낌이랄까. 전작 앨범은 톡톡 ..

메리고라운드 - 선물, 대중을 선택한 재즈

메리고라운드. 실력파 재즈뮤지션들이 만나 새롭게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은 감칠맛이 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달콤하고 시원한 청포도 사탕을 빨아먹는 느낌이다. 사무치게 외로움이 느껴질 때 함께 하면 그 외로움이 사뭇 덜어질 듯싶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악기소리도 좋다. 피아노와 기타, 드럼, 베이스 소리가 보컬의 목소리와 섞이지만 악기들이 개별적으로 제 몸을 터는 소리가 들려, 듣는 재미가 있다. 현란한 전자음에 지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편안한 휴식과 맑은 악기 소리가 잠자기 전까지 귓가에 쟁쟁거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즐겨 들을 음악이다. 뿅 가는 가사다. 예를 들면 노래 'Our Song'의 가사는 "어릴 적 나의 꿈속엔 파랑새가 살고 있었네. 내..

르네이스(Renasce) - Good Bye, Never Stop, 청춘을 향한 연가

시작은 폭발적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비바람처럼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지지대는 목소리는 전자음과 대항하듯 곤두섰다.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워 마치 악기 소리 같았다. 그러다 서정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투명하고 섬세한 무늬를 가진 새 한 마리가 하늘을 유영하다 날개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무척이나 기묘하고 센 일레트로니카+하드록이었다. 이 음악의 제목은 '굿바이(Good Bye)'다. 굿바이는 힘들었던 오늘은 잊고 굳센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내용의 곡이다. 이 노래는 일렉트릭 기타가 전반적으로 하드록 스타일을 연출하며 달팽이관을 흥분시키고, 반대로 몽환적인 보컬의 목소리가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적정한 평온을 유지하게 만든다. 뒤이어 '네버스탑(Never Stop)'이라는..

레비파티(Levi Party) - Empathy, 아름다운 리듬과 폭발적인 감성

섬세하고 예민한 곡조다. 투명하리만큼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따뜻한 감성을 배가시키는 정확한 테크닉도 놀랍다. 그런데 웬일인지 불쑥 격정에 사로잡힌다. 감성의 파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별의별 아픈 상처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적이 드문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떼 지어 흔들리 것처럼 마음을 동요시킨다. ‘네오 클래식’을 추구하는 레비파티(Levi Party)의 ‘코스모스(KOSMOS)’ 앨범은 음악의 서정을 파고들었다. ‘이유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이 첫 곡부터 마지막까지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머릿속에 납덩이가 든 것처럼 무거울 때가 있다. 살다보면 괴로운 고통을 겪고, 피가 마르는 현실과도 마주한다. 나이가 들면 모르지만, 청춘은 혼자 위로할 수 없는 상황과도..

김오키 -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인간의 자유 권리 평화

애절한 슬픔이 매절 스며 있다.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질 않는 노래다. 그토록 진지하고, 엄숙하고, 고독한 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 탄식하듯, 공기를 굴려내는 소리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러닝 타임 11분 55초. 입술을 잔주르며, 미간을 찌푸리며, 음 하나하나를 귀에 꽂았다. 처음에는 짧고 굵은 마디가 계속되며 치달아오르다 서서히 낮은 음조로 읍소한다. 그 순간 가난한 현실에서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으며 애처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애환이 가슴을 통통 친다. 그러다 음악은 땀과 피와 먼지가 엉킨 채 격정을 향해 솟구친다. 그 어떤 즐거움조차 느낄 수 없는 고통이 세상에 대고 질러대는 통곡의 소리다. 현실의 아픔 앞에, 영혼의 불멸성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오키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정성하 - The Milky Way, 마음속 찌꺼기 씻어 내는 천재 기타리스트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걷는다. 백일홍은 청아한 아침이슬을 머금고, 풀벌레들은 줄기를 잘근 씹으며 식사 중이다. 멀리서 들크무레한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온몸이 가뿐해진다. 샤워를 막 마치고 난 느낌, 후드득 쏟아지는 빗줄기에 마음속 찌꺼기들이 쓸려가는 것 같다. 정성하의 연주곡 'The Milky Way'가 주는 감상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튕기는 그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을 상쾌하고 후련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타를 칠 때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눈, 그 투명한 눈빛이 참 좋다. 정성하의 모놀로그(MONOLOGUE)는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4번째 정규 솔로 앨범이다. 이 앨범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니 명불허전이다. 그의 노래는 생동감 넘치고,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

송영주 - Tale Of A City, 고목나무에 핀 흰 꽃 같은 재즈피아노

재즈피아니스트 송영주는 고목나무에 핀 흰 꽃을 떠오르게 한다. 재즈의 불모지인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태어난 그녀가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송영주는 시선을 끈다. 그녀의 음악은 쓸쓸하기 그지없을 때나 강렬하게 몰아칠 때나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 그녀는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감정으로 음악의 멋을 살려낼 줄 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재즈 음악을 귀에 속속 감기도록 탈바꿈시키는 매력. 세계가 그녀의 음악에 주목하는 이유겠다. 송영주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재즈에 매력을 느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그녀는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를 펼쳤다. 재즈뿐만 아니라 클래식, 가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곡가, 편곡가로서도 활동했다...

아시안 체어샷 - 화석, 옛사랑에 대한 병적인 열망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다. 한꺼번에 터진 눈물처럼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진다. 옛사랑과 만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소나기처럼, 절망과 슬픔이 스며든 일상에, 자책과 회한에 휩싸인 마음에, 욕망과 피곤이 흐르는 도심에 후득후득 쏟아진다. 아시안 체어샷의 노래 화석(Petrifaction). 옛사랑에 대한 병적인 열망이 몽환적인 음색을 탄다. 음습한 도시의 축축한 습기에 실려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영영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을 향한 사모곡 같다. 이별의 아픔이, 간절한 울부짖음이 절절하다. 리듬은 귀에 잘 감긴다.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리듬은 호흡과 같아서, 편안하거나 정교하지 않으면 듣는 이들의 마음을 빼앗기 힘들다. 이 노래는 듣는 감동도 있고, 따라 부르는 화락도 있다..

에이치오(HO) - 칙칙폭폭(Chic-Chic Pok-Pok), 꿈과 낭만의 기차여행

기차여행이 생각난다. 종착지가 어디든 상관없다. 꿈과 낭만을 싣고 가족, 친지, 친구, 연인과 함께 기차를 타고 떠나고 싶다. 이 계절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내려앉은 산으로 떠나는 기차여행이라면 더욱 좋을 듯싶다. 빡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드는 노래 한 곡 소개한다. 프로듀서 팀 간테 사운드(GanTe sound)의 리더 에이치오(HO)의 디지털 싱글 '칙칙폭폭(Chic-Chic Pok-Pok)'이다. 간테 사운드는 힙합 듀오팀 간테를 시작으로 활동한 음악 프로듀서 팀이다. 이들은 CF, 음반, 뮤지컬, 로고송 등 음악에 장르와 틀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음악을 흡수하고 제작해왔다. 이 노래는 에이치오와 박정현, 사운드 그래비티 등 다수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 노신이 공동 프..

박성환 - 손 The Hand, 신념과 서정의 힘

연두색 배경에 앙상한 나무가 그려진 박성환 밴드의 2집 앨범. 자필 사인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흐른다’와 함께 받아 들었다. 이 음반을 보고 있으니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디딤돌을 함께 놓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느껴진다. 박성환 밴드의 2집 앨범 ‘기억’을 소개하려면 박성환의 솔로 앨범 ‘시절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절가’는 집회에 나가서 노래 부르는 가수, 소위 민중가수들 앨범 중 가장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앨범으로 꼽고 싶은 음반이다. 2001년 당시 이름 꽤나 있던 인디락그룹 ‘프로다칼로’의 리더 김현이 프로듀서를 맡은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앨범에 수록된 전곡은 모두 수준급이다. 전곡을 리플레이하면서 듣고 다닐 정도로 특별한 추억을 남겨준 음반..

누에바 만테카(Nueva Manteca) 재즈뮤지션 -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온 길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에서는 모르면 간첩인 라틴재즈 밴드 '누에바 만테카(Nueva Manteca)'. 1983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돼 지금까지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권위 있는 라틴비트 매거진에서 1990년대에 '유럽 최고의 라틴재즈 그룹'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평가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들은 다른 그룹과 차별되는 독특한 스타일, 연주력, 그리고 레퍼토리를 제공해 라틴재즈 분야에서 세계 최고 실력자로 등극했다. 누에바 만테카의 음반이 미국 라디오 플레이리스트에서 정기적으로 상위 랭킹에 오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누에바 만테카는 순수한 재즈와 쿠바 뮤직 사이의 시너지를 창조한다. 단순히 최근에 나타난 많은 여타 라틴재즈 밴드 중의 하나가 아니라, 독특한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자..

아이리쉬 커피(Irish Coffee) - A Day Like Today, 비운의 록밴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아이리쉬 커피(Irish Coffee)'는 귀한 커피다. 아이리쉬 커피는 1971년 데뷔해 1975년 해체될 때까지 명곡이 가득한 한 장의 앨범 'Irish Coffee'를 남겨두고 사라졌다. 키보드 주자 '폴 램브래치트'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팀을 해체했다. 이들의 앨범은 3천 장만 발매돼 희귀앨범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이리쉬 커피는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오르간과 키타로 몽환적인 리듬을 연출한다. 절제되고 무거운 사운드가 서로 뒤엉키며 신묘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특히 리드보컬의 목소리는 묘비와 같이 강렬하다. 뭔가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절규하는 사내의 음성 같다. 이들의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은 'A Day Like Today'이다.

한태주 - 물놀이, 순수한 친구 같은 흙피리 소리

도시가 주는 허무에 질릴 때 한태주의 흙피리 연주를 들는다. 갈피를 못 잡고 정신이 뒤엉켜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한태주의 음악은 뭔가에 전전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잠시 빠져나와 풍만한 자연을 만나게 한다. 일종의 위안처럼 가슴속을 비우게 만든다. 마치 어린 시절의 순수, 마음을 위로해주는 편안한 친구 같다. 한태주의 첫 오카리나 창작연주곡 앨범을 구매할 때가 2002년이었는데, 그가 벌써 삼십 대 후반이 됐다.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 성년이 돼 더욱 깊고 평화로운 연주로 애절한 도시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마저 그만두고 청정 자연이 숨 쉬는 지리산 자락에 들어가 살았다. 그는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고 연습해 2002년 첫 창작앨범 '하늘연못..

끌로드 치아리(Claude Ciari) - La Playa, 추억의 어쿠스틱 기타 '안개 낀 밤의 데이트'

끌로드 치아리(Claude Ciari)는 라디오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첫 발자국', '물 위의 암스테르담', '첫사랑의 언덕' 등이 쓰이면서 국내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끌로드 치아리는 11살 때 큰아버지가 인도 여행에서 사다준 기타가 인연이 돼 음악인의 길에 들어섰다. 13살 때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함께 미군부대 무대에 올라 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이후 그룹 참피온스의 리드 기타를 맡아 정식으로 프로 연주가가 됐다. 그는 19살 때 어쿠스틱 솔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Hushabye'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며, 이듬해 불후의 명곡 'La Playa'(안개 낀 밤의 데이트)를 발표해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됐다. 이 앨범은 1966년 프랑스의 레코드 대상인 ACC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La Pla..

새비지 로즈(Savage Rose) - 세상의 아픔을 씹는 울림

새비지 로즈(Savage Rose)의 음악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격정적인 목소리로 사납게 마음을 후벼 판다. 섬세한 선율을 따라 슬픔에 넘치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새비지 로즈는 1967년 클래식 작곡가로 유명했던 토마스 코펠(Thomas Koppel)과 소설가로 명성을 날렸던 앤더스 코펠(Anders Koppel) 형제, 1966년 최우수 재즈 드러머 알렉스 리엘(Alex Riel)과 신인 여가수 앤니세트 한센(Annisette Hansen)을 주축으로 결성된 덴마크 그룹이다. 그 당시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새비지 로즈는 첫 데뷔 앨범 한 장으로 이들을 재치고 북유럽 최고의 밴드로 우뚝 섰다. 이어 1969년 In The Plain,..

아브락사스(Abraxas) - Moje Mantry, '한'이 느껴지는 아트록

아브락사스(Abraxas)는 1986년 결성된 폴란드 출신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이다. 이들의 노래는 격정적인 한 편의 영화 같다. 때론 강렬하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아름답게 삶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읊조리면서 아주 특별한 사색으로 인도한다. 우리네 '한'이 담긴 음악처럼 절절하고 깊어 국내에서도 마니아 층이 있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아브락사스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그노시스파의 신이다. 머리에는 수탉의 벼슬이 있고, 허리 아래는 뱀이다. 오른손에는 방패, 왼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

신데렐라(Cinderella) - Nobody's Fool, 추억으로 인도하는 작은 소품

1986년 신데렐라(Cinderell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록그룹의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다. 아름다운 것도 아닌, 그렇다고 장중하거나 특별한 기교가 돋보이는 사운드는 아니었지만 그들만의 음색과 멜로디가 꽤 마음에 들었다. 1988년 그들의 두 번째 앨범 Long Cold Winter를 들은 뒤에는 신데렐라만의 정형화된 음색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 이때만 해도 데프 레퍼드나,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본 조비, 판테라 같은 그룹이 널리 알려지고 있을 때였다. 신데렐라는 본 조비가 오프닝 공연에 데리고 다녔던 신인 그룹 중 하나였다. 그 당시 본 조비는 실력 있는 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는데 그중에서 탁월한 보컬과 기타, 피아노 실력까지 겸비한 신데렐라의 멤버 탐 키퍼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

에디 히긴스(Eddie Higgins) - It Never Entered My Mind, 편안하고 듣기 쉬운 재즈

에디 히긴스(Eddie Higgins)는 재즈 피아노의 거장이자 재즈 피아노의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재즈 전통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에디 히긴스는 1960년대부터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았다. 간결하고 고고한 피아노 터치로 재즈 음악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였다. 그는 재즈클럽 '런던 하우스'에서 12년 동안 하우스 트리오를 이끌었으며, 당대 최고의 뮤지션인 오스카 피터슨, 스탄 게츠 등과 협연해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가장 듣기 편안한 스탠더드 재즈 연주로 꾸준한 인기를 구가했다. 어떤 유형의 음악이든 아름답고 깊게 풀어내는 음악적 해석력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2009년 사망하기 전 그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 명곡 집 'Christmas Songs Ⅱ'가 발매됐다. 이 앨범은 그만의 온화한 음악적..

장 필립 리키엘(Jean-Philippe Rykiel)& 라마 규메르(Lama Gyurme) - Rain of Blessings, 평안으로 인도하는 음성

거대한 대지, 세상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티베트 초원 위에 평안의 비가 내린다. 증오와 타락이 스며든 일상에도, 자신만을 쫓아 사는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에도, 높은 곳을 향해 내달음치는 세상의 욕망에도, 폭력과 살인이 흐르는 도심 한편에도 평화와 무소유의 빛이 만발한 평안의 비가 지칠 줄 모르고 내린다. 이 비는 마치 거대한 포용과 자비의 의식처럼 갈라지고 메마른 상처를 치유하고 달랜다. 그대 느끼는가? 핏발 서린 대지를 쓰다듬는 목소리가? 장 필립 리키엘(Jean-Philippe Rykiel) & 라마 규메르(Lama Gyurme)의 노래 'Rain of Blessings(축복의 비)'는 신비롭고 고요한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뉴에이지 앨범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라마 규메르(테벳 승려)가 읽는 듯이 부르는 ..

미셸 폴라레프(Michel Polnareff) - Goodbye Marylou, '5월의 노래' 원곡자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가슴에 붉은 피 솟네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5월의 노래'는 샹송 가수 미셸 폴라레프의 노래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를 개사한 곡이다. 미셸 폴라레프는 명곡 'Holiday'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는 'Goodbye Marylou'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미셸 폴라레프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수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음악가, 레오 폴라레프의 아들로 태어나 5살 때부터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고 음악적 소양을 키웠다. 하..

르네상스(Renaissance) - Ocean Gypsy, 방랑의 길을 나서다

르네상스(Renaissance) 음악은 연회나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회상의 길로 인도한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방랑하는 사내의 음악 같다. 작은 문을 지나 꼬부라진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아무 생각 없이 나지막한 주택가 지붕 위를 맴도는 한 무리의 비둘기를 따라 걸었다. 건너편 저 너머로 검푸른 성당이 보인다. 좁은 골목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녹슨 아치형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혹한 형벌을 감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 이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일은 잠시 놓아두고 텅 빈 지난날의 일들을 떠올리며 기다란 의자 한 귀퉁이에 앉아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르네상스는 영국출신의 프로그래시브 아트록 그룹이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

켈리 라이첼(Keali'i Reichel) - mele a ka pu'uwai, 하와이언의 열정

누군가 편안하게 들을만한 노래를 추천해달라고 말한다면 나는 첫 번째로 켈리 라이첼(Keali'i Reichel)을 소개한다. 그는 하와이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음색과 음악성을 가진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모래밭에 누워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을 맞는 듯 싱그럽다. 새로운 것만 쫓으며 살고 있는 우리 삶에서 바쁜 일상의 흐름을 한 단계 늦춰준다. 마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려주기라도 한 듯하다. 켈리 라이첼은 국내에 소개된 적도 없고, 음반도 수입되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이 CF 광고 사용되면서 국내에서 마니아들이 생겼다. (나도 하와이 여행에서 구입한 앨범을 듣고 그를 알게 됐다.) 그의 노래에..

닉 드레이크(Nick Drake) - Five Leaves Left, 고독한 영혼의 노래

닉 드레이크(Nick Drake)는 자연과 교감한다.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음을 나눈다. 그의 음악은 포크, 재즈,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중얼거리는 듯한 보컬과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아주 잘 어울린다. 닉 드레이크는 뛰어난 음감을 소유한 아티스트이자, 파워풀하고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다. 그는 데뷔 앨범(Five Leaves Left)을 발표하고 1974년에 죽었다. 불과 그의 나이 26세. 첫 앨범이 유언장이 됐다. 그가 주검이 발견될 당시 침대 옆 탁자에는 항우울성 약이 있었고,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고독하고 아름다운 영혼이다.

조안 바에즈(Joan Baez) - Donna Donna, 우리로부터의 평화

조엔 바에즈(Joan Baez)의 음악은 따뜻하다. 하룻밤의 위안 같다. 하룻밤의 쉼을 위해 따뜻한 삶의 안식처로 향하는 지친 영혼을 끝내 포옹한다. 반전 평화 가수의 상징인 조엔 바에즈는 1960년대부터 인권과 반전에 대해 외쳐왔다. 한국 비무장지대(DMZ)에서 '반전을 위한 평화 콘서트'를 추진했지만, 지병을 이유로 공연이 무산되기도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여전사' 가수의 맨 앞 대열에 조안 바에즈를 세운다. 그녀는 60년대 저항운동의 찬가로 불리는 'We Shall Overcome', 'Poor Wayfaring Stranger'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으며, 국내에서는 'The River In The Pines', 'Donna Donna', 'Mary Hamilton' 등으로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카약(Kayak) - Nothingness, 추억을 속삭이는 프로그래시브록

카약(Kayak)은 마음을 축축하게 적신다. 아름다운 멜로디, 리듬에 충실한 선율, 가슴을 적시는 서정성 등으로 넘쳐나 한층 짙게 깔린 그리움이나 추억, 사랑을 경건하게 되씹게 한다. 카약의 노래는 말이 필요 없다. Nothingness', 'Irene', 'Sad to say farewell' 등 일단 들어봐야 한다. 떨리는 목소리와 애절한 피아노 선율,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여음구 등은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얀 비단으로 수놓인 카펫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듯한 음률을 느껴보시길 빈다. 네델란드 아트록의 간판스타 카약은 1970년대에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맞는다. 그 당시 네덜란드에는 어스 앤 파이어, 포커스 등의 그룹이 활동했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