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밥줄이야기 39

밥줄이야기(2009년 문체부 문학 부문 우수도서) 언론보도

밥줄이야기는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문학 분야 우수교양 도서입니다. 이 책은 정직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우리 이웃의 삶을 통해 청소년에게는 노동과 땀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어른에게는 오늘을 사는 희망과 나눔의 의미를 알려줍니다. 경향신문 - 모든 밥벌이는 신성하다 [책과 삶]모든 밥벌이는 신성하다 ▲밥줄이야기 이동권 | 알다 “때를 밀 때는 팔이 아니라 몸의 힘으로 밀어야 하고 리듬을 잘 타... www.khan.co.kr 서울신문 -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에도 펴질줄 모르는 인생…서글픈 밥줄 [밥줄 이야기] 이동권 지음, 알다 펴냄, 소설가 황순원은 그의 장편소설 ‘일월’에서 봉건시대였던 조선시대의 천민계층인 백정들이 일제시대 전후로 벌였..

책/밥줄이야기 2021.11.15

김다미 학생의 서평과 광동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의 만남

광동고 1학년 학생 6명이 찾아 왔습니다. 아이들이 참 똑똑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노동의 소중함과 가치를 잘 알고 있어서 별다른 얘기가 필요 없었지요. 서로 웃고 격려하며 얘기를 마쳤답니다. 저자인터뷰 수업 2010년 보고서 추신) 대안학교 학생들도 찾아와 얘기를 나눴는데, 사진 자료가 없네요. 조금 서운해도 참아주세요!!! [서평] 밥줄이야기를 읽고, 보여 지는 것과 다른 것 김 다미 (광동 고등학교 1학년 9반) 나는 고등학생이 된 후로 직업의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적성의 맞는 직업을 찾아서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기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직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모습..

책/밥줄이야기 2021.11.14

고은 시인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추천이 띠지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

2쇄를 찍을 때 고은 시인의 추천이 띠지로 들어갔다. 당시 훌륭한 선생님께서 책을 추천해 주셔서 너무 놀랐고 기뻤다. 10년이 지난 뒤 나는 또다시 놀랐다. 고인 시은의 미투(Me Too movement)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추천사를 써 주었다. 사진은 목동 방송회관의 PD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강연 때의 모습이다. 이정희 의원은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국민입법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추천사 "이 책에서 그려낸 얼굴, 깊이 간직하고 싶어요." 통곡해야 할 비극을 일상으로 바꾸어 사는 사람들.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어 시작했겠느냐"고 되묻는 사람들. 십 년 이십 년 그 일로 먹고사는 인쇄노동자의 말에, 도려줄 말을 찾지 못했습니..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31. [3쇄에서 삭제한 이야기] 밴드 마스터 - 돈 있는 사람들의 밤 생활을 서민들은 몰라요

성인주점에서 노래 반주하는 사람들 경쾌한 반주를 따라 부드러운 기타 멜로디가 시작되면 빛이 없는 암흑은 환희에 넘치는 별천지가 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재능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 접대하는 일이 많은 샐러리맨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한국 남자들은 ‘성인주점’에서 놀아야 제대로 접대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운 부탁이 필요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찾게 된다. 성인주점에는 기자나 정치인도 많이 간다. 은밀한 뒷거래 뒤엔 질펀한 술자리와 망측한 희롱이 빠지지 않는 법. 그러한 사실은 가끔씩 ‘여기자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만천하에 드러나곤 하지만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가 ..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30. [책에 없는 이야기] 텔레마케터 - 따지고 욕하면 스트레스 받아요

전화만 보면 숨이 막혀오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가르친다. 어떤 만남보다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게 하며 더 넓은 세계와 조우하게 만든다. 거기가 바로 자신을 성찰해야할 지점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 여고 졸업을 앞둔 신입 텔레마케터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와 출근카드부터 찍는다. 매의 눈으로 뒤통수를 쳐다보는 팀장과 오늘은 피하고 싶다. 계속되는 하루 한 건. 저조한 실적에 지각까지 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숨이 가쁜 게 낫다. 신입은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ㄷ자 모양으로 설치된 자리에 앉아 오늘 돌릴 전화번호 명단을 살핀다. ‘어제 어디까지 전화했더라.’ 신입은 전화 돌릴 준비를 마치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힘든 하루가 될 것이다. 신입은 고객에게 전화..

책/밥줄이야기 2021.04.08

[책을 읽고] 투명인간, 우리이웃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 허은미 작가

짧은 글로 사물의 중심을 표현하는 데 익숙한 나에게, 어느 날 두툼한 원고가 배달되었다. 처음엔 그 방대한 양에 질려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나는 필자가 들려주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어디서나 눈에 띄고, 어디서나 목소리가 들리는 잘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투명인간’처럼 우리의 시야와 의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어온 이웃들이다. 그렇게 아무도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이동권 기자는 3년여의 세월에 걸쳐 기록해왔다. 원고를 읽다 보니 몇 달 전, 환경에 대한 원고를 쓰느라 쓰레기차..

책/밥줄이야기 2021.04.08

[책을 읽고] 우리 이웃의 생생한 삶의 현장 - 강성률 광운대 교수

내가 이동권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여름경으로 기억된다. 편집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조각가 구본주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는데, 삼성화재에서 매우 자의적인 기준으로 보상금을 책정해 예술인들이 일일 시위를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 본 그는 매우 다정다감하면서도 수수해 보였지만, 너무나 진지하게 사건을 다루는 모습 속에서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지만 ‘한 고집’할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후 우리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만났던 것 같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 현장에서도 만났고, 친일 예술인들을 특집으로 다룬 인터뷰 때문에도 만났다. 만날 때마다 소주를 마셨던 것 같다. 술기운을 빌려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자주 보지는 ..

책/밥줄이야기 2021.04.08

[책을 읽고] 부끄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본 세상 - 이정무 <민중의소리> 편집국장

‘기자’ 이동권의 책은 직업 열전을 방불케 한다. 도부(屠夫), 때밀이, 밴드 마스터, 무명가수, 숙박업 종사자(일명 조바), 감단직 노동자, 안마사, 노점상, 로프공, 무당, 우편배달부, 포장마차, 바텐더, 교도관, 누드모델, 경기보조원(일명 캐디), VIP운전기사, 제빵기사, 배전선로 기술자, 산불감시원, 사회복지사, 미화원, 인쇄노동자, 마방 사람들, 정신병원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직업들이 있었나 물어보지만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그러저러한 이웃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시원시원한 사진들과 함께 이어지는 이웃들의 열전은 누드모델, 밴드마스터, 숙박업종사자처럼 뭔가 들여다보는 쾌감을 기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교도관이나 정신병원 사람들처럼 ‘별취미군...’ 하는 헛웃음을 낳게 하기도 한다. ..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9. 해외 관광객 전용 버스기사 - 해외관광객 유치 활성화 맞나요?

한국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 여행은 여러 가지를 배우게 한다. 어떤 만남보다 강렬한 인연을 만들어주고 아늑한 행복을 선사한다. 대개의 사람은 딱 거기에서 여행의 의미가 머물러 있다.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갑자기 징그럽게 느껴지는 날이면, 서울 바닥을 돌아다니다 인구과잉을 실감하는 날이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이 숨 가쁘게 생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물론 도로의 먼지까지 들이마시는 삶을 마다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떠나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 때는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지경이다. 불편한 곳에서 새우잠을 자게 되더라도, 이마에 시커먼 땀이 맺히고, 종아리가 퉁퉁 부어오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8. 정신병원 사람들, 사무관·의사·간호사 - 정신병원은 혐오시설이 아니다

지역이기주의에 멍든 국립 서울병원 사람들 우리의 정체는 인간, 몸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생명체다. 우리는 그 뚜렷한 암시를 따라 서로를 껴안으며 살 수 없을까. 정신병원은 영화나 소설에서 불길한 징조가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한 여인이 성에가 얼어붙은 창살을 잡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온몸이 묶인 한 사내가 창밖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전기충격 치료를 받으면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고, 환자들끼리 성관계를 맺거나 괴상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등골을 오싹하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정신병원에 대한 ..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7. 마방 조교사·관리사 - 좋은 말을 훈육한 자, 그랑프리를 거머쥐다

사람보다 말(馬) 많고 말(言) 많은 마방(馬房) 사람들 경마장을 누비는 말 뒤에는, 마권을 손에 쥐고 가슴을 조리는 사람들 뒤에는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키우고 훈육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사나운 겨울바람이 하얀 찹쌀떡처럼 매끄러운 냄새를 풍겼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은 대개 그렇지만 모든 것들이 졸고, 졸리는 듯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 빛이나 바람 소리, 기름처럼 번들거리는 사람의 흔적들을 찾기 마련이다. 때론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데, 이런 것들을 입 밖으로 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소박한 호기심에서 기인한다. 하염없이 의미를 추구하고 사색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곳일까’ 떠올려보는 단순한 궁금증인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곳은 마방..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6. 미화원 - 생계형 직업으로는 힘들어요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들 대지가 썩어가고 하늘이 병들어가는 세상. 그것을 고민하고, 그것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순된 존재가 바로 인간. 어둑어둑한 골목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팔짱을 낀 채 모퉁이를 돌아가던 한 아주머니가 초등학교 정문 옆에 우산을 버리고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 뒤였다. 잠시 후 그 아주머니는 파수병처럼 주위를 살피다 푸른색 철문을 꽝 닫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쓰레기봉투를 아끼기 위해서겠지만 왠지 모르게 ‘얌체’ 같아 보여 마음이 씁쓸했다. 아마도 이 우산은 학교에서 일하는 미화원이 치울 것이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 대학가는 청춘의 기운으로 들썩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여학생들의 얼굴은..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5. 산불감시원 - 산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묵묵히 산불을 감시하는 사람들 변덕스러운 산들바람을 따라 걷다 보니 영혼 깊은 곳에서 자유롭고 맑은 입김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사소한 실수로 타버린 산을 되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최소한 이삼십 년. 공연히 눈꺼풀이 깜박거리고 떨린다. 따뜻한 늦가을. 나뭇잎이 더욱 거칠게 메말랐다.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부스럭’하고 부서진다. 나뭇가지도 삭정이처럼 말라비틀어져 금방 ‘뚝’ 소리를 내며 꺾인다. 논두렁을 태우다 작은 불씨라도 날아오면 석유를 끼얹은 장작불처럼 거세게 타오를 것만 같다. 나뭇가지 위에 엉거주춤 서서 나를 바라보는 다람쥐 한 마리가 또렷하고 귀여운 꼬리를 휘저으며 모습을 감춘다. 나무 꼭대기에 점잖게 걸려 있는 주황빛 태양은 산등성이를 뒤덮고, 소리 없이 불어오..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4. 제빵·케이크 기사 - 위생적으로 만들어요

고객이 불신에 마냥 억울한 사람들 행복한 날을 축복하기 위해 케이크를 자르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달콤한 빵을 입에 넣는다. 언제나 일상은 그렇게 되풀이되는데 그 순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신용이 아니라 오직 돈으로만 지불되고 있구나. 생일날 환희의 정수는 뭐니 뭐니 해도 ‘케이크’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와 비슷하다. 제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들어 죽어야 할 운명, 어여쁜 케이크도 생일잔치가 끝나면 한순간에 일그러져야 할 운명. 어쩌면 가장 무상한 것이 가장 아름다우며, 사멸을 연상하는 것 자체가 더욱더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것 같다. 우리의 청춘이, 젊음이 아름다운 것도 마찬가지다. 케이크 상자를 노란색과 빨간색 리본으로 묶어 내놓으면 일요일의 연미복처럼 더욱 화사한 느낌을 준다..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3. 간호사 - 딸처럼 사랑으로 대해주세요

환자, 보호자, 의사들에게 냉대받는 사람들 사람의 목숨을 다투는 일에 체면과 상황이 무슨 대수더냐. 가는 마음이 고약하면 되돌아오는 마음도 고약한 것을. 수술실로 가는 길.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팽팽하다. 환자 A씨는 반쯤 실실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옆으로 하얀 옷을 입은 병원기사와 순한 인상의 간호사가 동행한다. “별일 없겠지?” “잠깐 주무시고 나오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간호사가 간곡한 어투로 A 씨를 안심시킨다. 복도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들이 멀리서 “저 남자 성격이 못됐어.”라고 쑥덕거린다. 심장병 병동 보호자들은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근심이 많다. 하룻밤 사이에 생사가 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 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A 씨는 짜증을 내거나 ..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2. 경기보조원 - 고객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요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 기쁨을 말하는 동안은 그만큼 성숙하지 않는다. 사랑이 있고, 주위가 내 것으로 넘칠지라도 기쁨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 기쁨이 삶에 미치지 않고 표현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은 성숙한다. 호방하게 솟아오른 푸른 언덕에서 향긋한 바람이 풀풀 불어왔다. 잘 가꿔진 정원처럼 인위적인 정취는 지울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일종의 ‘휴식’과 같은 편안함이 가득 차올랐다. 그 기분은 사방이 탁 트인 초원을 거니는 ‘산책’이나 파릇파릇한 잔디밭을 뛰노는 ‘피크닉’에서 느낄 수 있는 미완의 ‘청량감’그대로였다. 연둣빛 잔디밭 사이사이에는 전자동 카트(Cart)가 오가는 좁은 도로가 오솔길처럼 뻗어 있었다. 커다란 나무 밑에는 골퍼나 갤러리들이 따가운 햇볕을 피하거나 피곤한 다..

책/밥줄이야기 2021.04.08

021. 인쇄노동자 - 인쇄도 예술이에요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는 사람들 신문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구한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이 귀중한 토양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 탄생하는지 아는가. 그 가치와 소중함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리라. 밤이 꽤 깊었다. 이따금씩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한 빛이 없었다면 무섭게 짓누르는 어둠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반시간쯤 지나자 거리 끄트머리에서 쉴 새 없이 지나가던 자동차 불빛도 뜸해졌다. 세상이 점점 암흑이 돼간다. 털이 북슬북슬한 고양이 서너 마리가 쓰레기봉투를 찢다 몸을 낮췄다. 인기척 때문이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고양이들은 다시 노란 눈을 번득이며 쓰레기봉투 입구에 주둥이를 집어넣었다. 거리에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고양이들에게는 무덤덤한 일상에 ..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20. 감단직 노동자 - 우리는 하인, 머슴이 아니에요

건물의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 건전한 정신과 태도가 실존하는 증거는 언제나 마음이 불안하고 양심의 가책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편하게 쉬고, 일하며, 삶을 찬미할 수 있는 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어서다. 가까운 지인은 아파트 경비원이다. 언제나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입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넉살 좋은 할아버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조금은 변했나 싶었지만 웬일인지 더욱 인사성이 밝아졌다. 아파트 주민들의 목소리가 드세진 까닭이다. 2007년 무렵이었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시행돼, 경비원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액의 70%를 지급할 때부터다. 이전에는 임금이 50여 만 원에 불과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3분의 1가량의 경비원을 해고하면서 임금인상분..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9. 로프공 - 18㎜ 외줄이 밥줄이에요

고층빌딩에 매달려 청소하는 사람들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영화에만 매몰된 채 깊은 행복감에 빠져버리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이 우리 이웃의 노고에 대해 얼마나 애쓰고 생각해 줄까. 거무스름한 먼지가 구름처럼 도시 하늘을 뒤덮고 있다. 메뚜기 떼처럼 지나다니는 차들이 일으키는 먼지와 매연이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빌딩들도 이것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매일같이 별의별 먼지들이 달라붙어 버섯처럼 커져간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건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빌딩들은 가끔 로프공들의 손을 빌려 목욕을 한다. 먼지가 쌓인 상태에서 비가 내리면 건물 외벽이 블랙커피 색으로 변하면서 더욱 많은 먼지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청소할 시기를 놓친 빌딩 외..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8. 사회복지사 -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이에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덕망은 쌓인다. 하지만 경박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우리 이웃과 함께 동화돼 살아가는 것뿐이다. 깡마른 나무에 불꽃이 탁탁 튀자마자 순식간에 벌건 불길이 치솟았다. 기름을 약간 부어놓았는지 불은 금방 나무에 옮겨 붙었다. 군고구마를 손질하던 한 젊은이는 손잡이가 달린 불쏘시개로 나무를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바람을 넣어 불을 지폈다. 행인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따뜻한 숄을 걸친 한 아주머니도 훈훈한 기운이 싫지 않은지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몸을 녹였고, 시장 모퉁이에 서서 마른기침을 내뱉던 한 노인도 군고구마통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7. VIP 수행비서·운전기사 - 안전과 보안이 최우선이에요

VIP 모시는 사람들 생활에서 기분을 전환하고 일상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 아니라 소박한 기쁨이다.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이라 해도 무엇이 문제이랴. 두 시간이 지났다. 승용차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신문을 보고, 잠을 자는 것도 지겨운 일. 박기범 씨는 날이 어두워지자 담배를 꺼내 물고 밖으로 나와 가슴을 펴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주차장 한편에 있는 팔걸이의자에 앉아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들였다. 박 씨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두 다리를 가지런히 쭉 뻗어 위아래로 엇갈아 흔들었다. 하지만 VIP 운전기사 경력 10년에 생활교양은 기본. ‘누구 집 운전기사가 이상하더라’는 소리가 나올까 봐 몸단속을 했다. 박 씨는 한때 이런 환경이 적응이 안 돼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6. 배전선로 기술자 - 전선 잘못 만지면 죽어요

전봇대에 오르는 사람들 왜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될까.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다. 당신은 정녕 이 빛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가. 어스름한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 불빛이 하도 고와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뾰족한 전주에 볼품없이 매달린 작은 백열등이었다. 낮에 보았을 때는 메마른 나무 돌기처럼 보기 흉한 전구에 불과했다. 녹슨 철 기둥에 매달린 간판과 나란히 걸려 있어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밤에는 달랐다.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암흑과 같은 지하실에서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웠고, 시원한 밤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금빛 반딧불처럼 신비로웠다. 늦은 밤,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검고 깊게 뚫려 있는 이 좁은 길을 환하게 내리쪼이는 ..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5. 자동차 영업사원 - 최고로 멋진 직업이에요

잡상인 취급받는 사람들 말을 잘해서도 아니고 수완이 좋아서도 아니라 마음이다. 정성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둡고 칙칙한 마음을 씻어주는 따뜻한 노래처럼 모든 일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을 더없이 좋아했다. 생김이 어떠하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면이 성숙함으로 꽉 차 있어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예를 들면, 목소리는 가늘지만 신중하고, 눈은 활력이 없어 보이지만 맑으며, 돋보이지 않지만 주위 사람을 돕는 성정을 지닌 인물이다. 나는 언제나 이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고결한 상대였다. 설사 만난다고 하더라도 천방지축인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늘 꿈속에서..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4. 우편배달부 - 결혼 못 한 노총각 많아요

인간의 정을 배달해주는 사람들 모두가 잠든 새벽 힘든 몸 일으켜 오토바이를 탄다.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차 한 잔 할 시간도 없이 달리고 달려 우리 이웃에게 기쁨과 슬픔, 환희와 절망을 전한다. 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스러운 일꾼인가. 깊은 잠에 떨어졌다. 자리에 눕자마자 이렇게 쉽게 잠에 빠진 것은 오랜만이었다. 허리가 아파 뒤돌아 눕거나 흘러내린 이불을 다시 덮기 위해 잠깐 잠에서 깼을 뿐, 사나운 지진에 유리창이 산산조각 부서진다 해도 밀물처럼 밀려드는 잠은 물리치지 못했으리라. 새벽녘에는 보리밭에서 흙을 돋우는 농부와 마을 어귀를 따라 길게 뻗은 수로가 나타나는 짤막한 꿈을 꾸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처럼 한꺼번에 빛이 쏟아지면서 나타나는 이미지였지만, 어찌나 또렷..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3. 교도관 - 우리가 악당인가요?

재소자들과 함께 절반의 징역을 사는 사람들 세상이 아무리 잔인해도 유순하고 정직한 마음은 통한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마주 보고 있는 교도관과 재소자. 이들 사이의 창살이 인간을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었으면. 교도소에는 두 가지 진실이 존재한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다. 서로 진술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교도관이나 수감자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은 교도관이, 내일은 수감자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돼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공교롭게도 교도소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산교도소 교도관들이 수감자들을 상습적으로 집단 폭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용소 내의 인권유린을 감시하는 CCTV는 무용지물. 수감자가 폭행당하는 장면이 녹화된 자료들은 모두 교도관들에 의해 삭제된 상태였다. ..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2. 조선족 식당아줌마 - 말투는 달라도 같은 동포예요

외국인이라고 차별받는 사람들 사랑해라는 말을 같이 쓰는 우리 동포들이 조국을 찾아와도 진정으로 껴안아줄 사람이 없네. “아저씨.” 식당에서 억센 한국말이 들려왔다. 한 여자가 창밖으로 몸을 젖혀 한 사내를 부르는 소리였다. 그녀는 큰일이 난 사람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계속 “아저씨.”를 외쳤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그가 식당에서 뭔가를 먹고 계산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약간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틀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어두운 하늘처럼 푸르무레한 냉기에 잠겨있다. 그는 여자와 몇 마디를 나눈 뒤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흔들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뛰어나와 사내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돈을 받아 들고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식당에서 만난 조선족 아줌마 정연숙 씨..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1. 시각장애인 안마사 - 손을 꼭 잡아주세요

결리고 쑤시는 육체를 풀어주는 사람들 기나긴 노력에도 대답이 없어 낙심도 하고 험난한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세상에 떠밀려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억울한 일이 되는구나. 새하얀 눈이 휘날린다. 바람에 날리는 하얀 벚꽃 같아 잠시 마음이 훈훈해진다. 꽃가게에는 계절을 잊은 장미들이 만발했다. 풍성한 꽃잎이 하나둘씩 벌어지면서 풍성한 향기를 늘어뜨린다. 어둠이 땅에 깔리자 거리를 뒤덮은 네온사인들이 형형색색의 빛을 쏟아낸다. 그것이 그렇게 멋지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날은 묘하게 가슴을 울린다. 아니, 이날의 거리 풍경은 모든 것이 인상 깊고 뜨겁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축복인가. 수수께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10. 무당 - 무당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에요

길흉을 점치고 굿 하는 사람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버리는 세상. 이렇게도 억울하고 서글픈 누명을 쓰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대나무, 그 끝에 매달린 하얀 천이 연방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밑으로는 어린아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드러낸 채 뛰놀았고, 하얀 털이 곱상한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휘저으며 그 아이를 뒤따랐다. 조금 큰 아이들은 긴소매를 팔락거리며 잔심부름에 여념이 없고,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앉은 평상에는 노인들이 둘러앉아 특별한 소식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뭔가를 주시했다. 겉으로만 보면 분명 잔칫집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신중하고 무거워 웃을 때도 입을 가려야 할 정도였다. 북적북적한 마당을 지나 태평소 가락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단아한 한복..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09. 포장마차 주인 - 포장마차요? 쉽게 보지 마세요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사람들 기차가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면 객실에도 어둠이 깃든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 힘들어한다면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삶도 점점 야만적이고 살벌하게 될 것이고. 거대한 쇼핑센터가 밀집한 동대문. 이곳의 밤은 한낮처럼 부산하다. 도로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밀려드는 자동차들이 가득하고, 상점 앞에는 싼값에 좋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건너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포장마차들은 의류 상가를 기점으로 빙 둘러 진을 치고 있다. 이곳의 밤풍경은 다양하다. 쇼핑을 끝낸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을 유인하는 포장마차 아주머니들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

책/밥줄이야기 2021.04.07

008. 트럭 노점상 - 길 위에서 삶의 희망을 팔아요

길 따라 물건 파는 사람들 치열한 삶의 현장과 마주치면 한층 더 겸손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집으로 가는 길, 가슴이 훈훈해지는 이유도 당차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노고 때문이리라.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만이 활달하게 장난을 치며 걸어 다닐 뿐, 어깨를 잔뜩 움츠린 어른들은 길을 물어도 못 들은 척 상대도 해주지 않을 표정이다. 서서히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다. 잠시 내리다 그칠 비가 아니었다. 점점 옷이 축축해지자 자연스럽게 입가가 실쭉해졌다. 트럭 짐칸에 야채나 과일, 생선, 화장품 등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돌아다니는 행상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걸은 탓이다. 첫날, 정말 많이 걸었다. 집에 들어와 간신히 차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잠자..

책/밥줄이야기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