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125

소통과 거짓말 - 미치광이라 할 수 있나, 이승원 감독 2015년작

학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여자는 회식이 끝나면 매번 남자 선생과 잔다. 때론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다른 남자 선생에게 사진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한다. 한 여자 선생은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다그치지만 그녀는 가만히 듣기만 한다. 수치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는 상실감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잠자리에 집착할 뿐이다. 그녀와 같은 학원에서 근무하는 남자 선생은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황당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옆집 사는 개가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 그의 어이없는 요구가 계속되자, 급기야 콜센터직원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그에게는 극한에 달한 불안을 덜어 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자신을 감추는 거짓말로 소통을 시도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두 사람의 대화는..

미쓰 리의 전쟁, 더 배틀 오브 광주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지상 감독 2015년작

1980년 5월. 3만여 명의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돼 살육 잔치를 벌였다. 이들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비무장의 시민을 총으로 쏴 죽이고, 대검으로 찔러 죽이고, 진압봉으로 때려죽였다. 정치인과 민주화운동가, 성직자와 지식인들은 계엄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취를 감췄다. 반면 구두닦이, 방직공, 다방 종업원, 공병수집상, 자개공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던 이들은 광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사투에 나섰다. "무기를 돌려줘야 해요, 계란으로 바위 깨기요."라고 설득하는 종교인, 교육자, 정치인에게 시민군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 쩌렁쩌렁 울린다. "뭐여. 이 호로 상놈의 새끼들이 설레발 까는 거여. 뭐여. 시방. 니미 교사고 목사고 나발이고 모두 독재 때 앞..

눈꺼풀 - 황금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 오멸 감독 2016년작

고요하고 쓸쓸한 섬 미륵도. 이곳에 한 노인이 살고 있다. 노인은 홀로 고행하면서 가시밭길 같은 마음을 다스린다. 억겁 동안 켜켜이 쌓인 인간의 업을 대신 짊어진 수도승처럼 혹독한 성찰로 자신을 이끌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적막한 섬을 깨우는 것은 전화다. 전화벨이 울리면 손님이 찾아온다. 노인은 그들에게 떡을 쪄서 먹인다. 먼 길을 가는 손님을 걱정하며 뽀얀 떡을 쥐어 보낸다. 첫 손님은 삼십 대 남자, 그다음은 쥐다. 노인은 이들을 담담하게 마중한다. 그다음 손님은 선생님과 학생 두 명이다. 노인은 오지 말아야 할 손님이 찾아온 것처럼 흥분한다. 평정심을 잃고 극도의 불안과 혼란에 빠지고, 급기야 분노한다. 노인은 돌부처의 머리로 쌀을 찧고, 부서진 절구통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파계다. 영화 은 줄거..

후쿠시마의 미래 - 죽음의 땅 체르노빌에서 상상한 우리의 미래, 이홍기 감독 2013년작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는 어떻게 변할까? 다큐 는 그 미래의 모습을 1986년 체르노빌 참사 현장에서 찾는다. 이 다큐는 원전 사고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했는지, 또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끊임없이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리는 세계에 경각심을 심어준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원전 인근 지역은 불모지가 됐다. 원전에서 200km가량 떨어진 곳마저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 수치가 나올 정도로 변했다. 불안에 떨던 일본인들은 시민조사단을 꾸려 체르노빌을 방문했다. 5년 내지 10년 후 후쿠시마 아이들과 우리의 건강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민조사단을 태운 버스가 체르노빌에 들어서자마자 방사능 경보..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 - 명량해전 직전 16일간 이순신은? 정세교, 김한민 감독 2015년작

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이순신은 천운이 아니면 어려웠을 명량해전에서 통쾌하게 왜군을 물리쳤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중 조선과 왜의 화의교섭이 결렬되자 왜가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재침한 전쟁이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때보다 조선에 더욱 많은 피해를 입혔다. 이순신은 이듬해 왜군과 마지막 전쟁인 노량대첩으로 7년간의 왜란을 끝냈다. 영화 은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고뇌하고 번민하지만 반대로 침착하고 신중한 장군의 내면을 잔잔하게 그렸다. 예를 들면 이순신은 수백 척의 함선과 수만 명에 이르는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노심초사하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내던지면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전장에서도 이순신의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는 변함없..

생 로랑 - 홀로 뛰어난 천재는 없다,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 2014년작

천재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용납될 수 있을까? 천재들은 여느 시대를 막론하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다른 고통을 겪었다. 그래도 천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 영화 을 봐도 그렇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주위 사람들을 항상 조마조마하게 만들었고, 자신의 재능을 보증삼아 갖가지 난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향락과 쾌락에 몰두한 천재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그의 성적 지향 또한 논외다. 얘기하고 싶은 점은 단 하나, 옷에 대한 이브 생 로랑의 열정이다. 영화 은 2014년 개봉된 영화 과 자연스레 교차됐다. 은 재미와 대중성을 추구한 영화였다. 표현의 수위도 거북하지 않은 수준에서 선을 그었다. 반면 은 인물과 예술성에 집..

버드맨 - 삶의 아픔에 눈을 뜨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2014년작

많은 사람들이 관습적인 성공을 인생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좋은 자리에 오르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고, 기성세대 또한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라고 설교한다. 왜 그런 것일까? 성공의 의미를 ‘채우는 것’에 두어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보다 오래된 생각을 비워내는 것이 우선이다. 틀에 박힌 사고를 먼저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이 들어갈 공간은 없다. 따라서 성공은 채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동시대 사람들의 빈곤함을 아는 것부터 시작된다. 명성이나 재물이 아니라 단순하게 즐기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가슴 깊이 느끼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행복도 ..

위플래쉬 - 최고란 명성인가 평판인가, 데미안 셔젤 감독 2015년작

사람들은 대부분 최고가 되길 갈망한다. 그러나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삶의 목표를 ‘최고’가 아니라 ‘최고가 되는 과정’에 둔다면 관계없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활화산 불구덩이다. 자신의 몸이 탈 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이다. 이 불구덩이로 뛰어들 자신이 없다면 최고이고 싶은 꿈은 접는 게 좋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멋진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은 어떻게 탄생될까? 훌륭한 뮤지션과 작곡가, 지휘자가 만나야 멋진 음악은 만들어지겠다. 그럼 훌륭한 뮤지션과 작곡가, 지휘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재주가 있으면 조금은 쉽겠지만 뼈를 깎는 각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명검도 대장장이가 뜨거운 쇳덩이를 꾸준하게 두드리고 다듬어야 만들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내기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 멋지고 웃기게 계급적인 영화, 매튜 본 감독 2014년작

영화 는 재밌고 명랑하다. 단 아이들과는 금물이다. ‘세상을 구한다면 뒤로하게 해 줄게요’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게 내뱉는 스칸디나비아 공주의 대사로 이유는 대신하겠다. 영화란 알기 쉬우면서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 비비 꼬거나 색다른 아이디어를 장착해야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와 감독도 많지만 좋은 영화는 그럼에도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레스토랑 출입문 잠금장치를 하나하나 걸면서 ‘매너가(철컥) 사람을(철컥) 만든다(철컥)’고 얘기하며 매너 없는 것들을 빼어난 격투 솜씨로 때려눕히던 콜린 퍼스가 자꾸 생각난다. 그는 정말 멋지고 섹시한 배우다. 또렷한 ‘왕(王)자근육’, 탱탱한 ‘엉덩이’ 한 번 노출하지 않지만 무척 관능적이다. 폭력적이고 끔찍한 현장에서도 신사도를 잃지 않고, 생..

폭스캐처 - 재벌가 ‘똘아이’의 충격 실화, 베넷 밀러 감독 2014년작

영화 는 미국 최고의 재벌 ‘듀폰가’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다룬다. 이 살인사건은 실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듀폰가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대화는 상식을 초월한다. 듀폰가의 상속자 존 듀폰은 돈이면 다 되는 사람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돈으로 해결한다. 그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도 안 되면 분노한다. 사람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사회에서 존경받기 위해 레슬링팀 ‘폭스캐처’를 꾸리지만, 끝내 레슬링 코치를 죽이고 만다. 이유는 얼토당토않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 그러나 레슬링 코치는 자기 신념대로 일을 열심히 했을 뿐, 단 한 번도..

강남 1970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나요? 유하 감독 2015년작

묵직한 영화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숙연했다. 화려한 액션과 자극적인 대사가 난무하는 조폭영화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두 청년의 삶이 남긴 메시지가 너무도 강해 가슴이 찡해왔다. 시커먼 터널 안에서 빛이 쏟아지는 터널 끝을 바라보며 손짓하던 청년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고통과도 중첩됐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앞만 보며 달려온 것일까. 영화 은 물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욕망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욕망의 대상은 모두 다르고,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도 같지 않다. 삶의 행복은 ‘가치 있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달려 있다. 욕망의 대상이 그릇되거나, 자신만의 문제로 국한하거..

존 윅 - 돈이면 다 된다는 재벌에게, 데이비드 레이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2014년작

영화보다 배우가 궁금했던 영화가 키아누 리브스의 주연작 이었다. 존 윅은 키아누 리브스가 한국 나이로 50살 때 개봉됐다. 50살은 이미 부모와 사별했거나, 모시던 부모의 임종을 서서히 준비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부모 외에도 가슴 아픈 사별을 네 번이나 겪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가까이했던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시달려 끝내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화 에 함께 출연했던 친구 리버 피닉스의 죽음을 목도했다. 리버 피닉스는 약물중독으로 고생하다 심장발작으로 돌연사했다. 키아누는 또 출산 예정이었던 딸과 약혼녀였던 제니퍼 사임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제니퍼 사임은 만삭의 상태에서 태명 ‘에바’라고 불리던 그의 딸을 사산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고, 제니퍼 ..

아메리칸 셰프 - 욕망의 한계 알면 목표도 분명해진다, 존 파브로 감독 2014년작

직장을 옮기거나 직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계기가 있지 않으면 안정된 생활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삶의 의미를 그저 돈 버는 것에서 만족하는 이유도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찬물 더운물 가리겠느냐는 식이다. 그러다 삶은 어느덧 종지부를 찍는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일하면서 얻는 만족과 결실을 타인과 나누는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적당한 여행과 맛난 음식, 일상의 자잘한 쾌락에 몰두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살면서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고민은 적다.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

타임 패러독스 - 조작된 공포에 짓눌린 세계, 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감독 2014년작

지적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은 환호할 영화다. 영화가 꽤 복잡하고 생각을 요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것 같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들어가 관람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재밌다. 잠시 '왜'라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가 바로 다. 이 영화에서 범죄예방본부는 현재 일어난 범죄를 막기 위해 과거로 수사관을 잠입시켜 악당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이 조직은 특수한 타임머신을 이용해 템퍼럴이라는 요원을 투입하고, 과거에서 범죄자를 죽이도록 한다. 하지만 이 조직은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커다란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지 않으면 해체돼야 할 운명에 놓이는 것 같다. 범죄예방본부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뉴욕을 초토화시키는 폭파사건처럼 세상을 뒤흔들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조직..

상의원 - 예나 지금이나 대우 못받는 기술자들, 이원석 감독 2014년작

기대가 많았다. 옷의 정치적 의미를 신랄하게, 그것도 왕실과 사대부, 그리고 옷을 만들던 사람들의 삼각관계가 서로 얽히고설켜 서로 죽고 죽이는 역사극을 예상했다. 예상과 달랐다. 영화 은 코믹 요소를 가미한 스토리로 힘을 쭉 뺐다. 대중적이고 가벼운 소재로 감정을 이완시켰고, 섹시한 코드까지 접목해 시선을 자극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끔했다. 중전 박신혜와 왕 유연석의 아우라는 멋졌고, 한석규와 고수가 서로를 이해하지만 적이 되는 과정은 두 사람의 표정연기 만으로도 설명됐다. 평소 무겁고 진중한 사극이 별로인 팬들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시시각각 다른 한복이 스크린에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복이 이렇게도 화려하고 다양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영화 , 처럼 정통 사극을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당신은 사랑이 있나요? 진모영 감독 2014년작

국화는 맑은 눈을 가진, 나이 든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76년을 부부로 살아온 두 노인은 국화꽃을 닮았다. 학식이 높고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노인은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타인을 향한 배려와 이해, 이타심이다. 행복은 어쩌면 너무 쉽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아등바등 다투며 산다. 꼭 부부의 얘기만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 서로를 깎아내리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겠다. 그러다 보니 행복은 저만치고,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다는 푸념만 가득하다. 두 노인의 삶은 물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굴레, 그것을 알면서도 물질을 찾아 헤매는 ‘야성의 인간상’..

일곱난쟁이 - 친구에게 이득 볼 생각인가요? 보리스 알지노빅, 하랄드 시페르만 감독 2014년작

는 누구나 다 아는 동화 를 새롭게 각색해 일곱난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백설공주는 들러리란 얘기다. 그런데 난쟁이들의 캐릭터 특성이나 유머러스한 상황, 이야기 구조가 직설적이진 않다. 초등학교 3학년은 돼야 웃고 즐길만하겠다. 는 여느 동화와 마찬가지로 선악구조다. 버림받은 왕비가 '델라모타'가 마녀가 돼 로즈 공주를 비롯해 왕국 전체를 얼려버린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로즈 공주를 향한 진실한 사랑의 키스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그 대상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다. 이러한 설정은 아이들에게 금수저 물고 태어나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귀족에 대한 쓸데없는 환상을 심어주지 않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화도 여전히 현실이고 교육이다. 계급을 타파한 이 영화의 인물 설정은 아이들에게 사..

퓨리 - 뒤집어보면 전쟁광 미국이야기, 데이비드 에이어 2014년작

영화 는 패전에 몰린 독일군과 미군의 지상전을 그린다. 적군에 대한 분노와 승리에 도취돼 인간성이 말살돼 가는 현실로 전쟁의 참혹한 속성을 드러낸다. 철저하게 파괴된 도시, 팔다리를 잃고 신음하는 병사, 구멍 뚫리고 불에 타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 영화 속 전쟁터는 딱 지옥이다. 군인들은 동료애와 헌신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에만 혈안이 된 참황을 버텨내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 “닥치는 대로 다 죽여 버려. 남은 한 놈까지 다 쏴버려.” 특히 8주 동안 군생활을 해봤고, 탱크 안을 한 번도 본적 없이 전장에 투입된 신병 ‘노먼’의 갈등과 고뇌는 진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고,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인간이 인간을 죽이도록 강요당하는 과정은..

빅매치 - 머리 아프고 가슴 답답할 때 보는 영화, 최호 감독 2014년작

영화 를 보고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 영화를 보러 갔을까.' 지쳤나 보다. 몇 개월 동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웃음도 많이 잃었다. 어둡게 드리운 그림자처럼 분노도 겹겹이다.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는 몸도 떨려왔다. 어떤 때는 뜨겁게 데워지지 않은 마음이 부끄러워 숨어 버리고도 싶었다. 휴식이, 잠시 생각을 멈출 시간이 절실했다. '이 나라가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성공했다.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천재 악당이 돈과 쾌락을 위해, 자신의 영민함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 목숨을 담보로 벌인 게임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기분이 꽤 나아졌다. 가끔 피식 웃음도 나왔고, 긴장감도 스며들었다. 챔피언만을..

혼스 - 당신의 속마음은 무엇인가요?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 2013년작

찬찬히 들여다보면 꽤 흥미로운 영화다. 는 우리 사회가 내세우는 종교, 도덕, 철학, 윤리 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의식적으로 올바르고, 선량하고, 어질고, 마땅한 언행을 요구하고, 가르치며, 따라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불신, 혹은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색을 그대로 내보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주인공 이그는 삶에서 감정과 본능의 힘을 중요시했다. 첫사랑 여인 메린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다. 하지만 이그는 메린이 살해를 당한 뒤, 알리바이를 입증하지 못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의심과 경멸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망가뜨린다. 모든 사람이 이그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지만 친구인 변호사 리 만큼은 그의 무죄를..

헝거게임: 모킹제이 - 민중이여 단결하라,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2014년작

영화 시리즈에 푹 빠진 '헝거족'들이 많다. 한 가닥 희망조차 없는 민중의 삶에 동화되고, 비인간적인 착취와 학대를 자행하는 지배계급에 분노해서다. 특히 스스로 살점을 떼어낼 정도로 처절한 살인게임은 영화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절체절명의 궁지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은 삶의 희원을 충족시키는 매개였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력이 주는 환희였다. 그러나 3편 는 1편 , 2편 와 사뭇 달랐다. 1, 2편은 게임이라는 형식의 유희와 환락에 치중한 반면, 3편은 전쟁이라는 폭력과 고통에 중점을 뒀다. 그래서 한층 더 내러티브에 집중했고, 진중했으며, 연기, 음악, 배경, 상황 등 모두 요소를 혁명이라는 화두로 결집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야기 전개는 직관적이었다. 큰 고민 없이 묵직한 주제..

액트 오브 킬링 -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죽여라, 조슈아 오펜하이머2012년작

따가운 햇빛에 말라 절명한 것 같았다. 한없이 입을 벌린 검은빛의 물고기가 너무나 슬퍼 보여 눈물이 났다. 저들은 사람을 죽여 강에 던졌다. 땅에 묻은 시체들은 부패하고 분해돼 강으로 스며들었다. 강은 죽은 이들의 영혼이 모이는 곳이 됐고, 죽은 이들은 물고기로 환생했다. 영화 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기가 막힌 상황극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살인마의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사람을 죽여도 죄가 되는지 몰랐고,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짐승을 인간으로 구환한다. 꾸민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논픽션 다큐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65년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노조원, 지식인, 화교 등 100만 명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죽였다. 잡아다가 죄를 시인할 때까지 고문했고, 죄가 없어..

봄 - 그토록 엄숙하고 고결한 사랑이여, 조근현 감독 2014년작

생각과 달랐다. 그저 그렇고 그런 얘기일 줄 알았다. 목탄을 드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병세가 깊은 유명 조각가와 아이 없는 조각가의 아내, 가난하고 순진한 누드모델과 날마다 그녀를 폭행하는 누드모델의 남편. 줄거리만 보면 딱, 돈 좀 있는 부잣집에서 펼쳐지는 '욕정의 거사'였다. 부끄러웠다. 왜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이 영화에 접근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세상은 더럽고, 추하고, 차갑고, 냉정한 곳이라고 단정 지으며 살지 않았는지 성찰이 필요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도 다소 선입견의 원인을 제공했다. 1960년대는 가난이 일상이었고, 하얀 쌀밥과 고깃국이 흠모의 대상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부자에 대한 질투와 욕망이 더욱 처절하고 직선적으로 표출되곤 했었다. 영화 은 정곡을 찔렀다. 종내 그..

박스트롤 - 희망 없는 현실 까대는 애니, 그레이엄 애나블, 안소니 스타치 감독 2014년작

등장인물부터 보자. 박스트롤. 몸집이 작고 생김새가 귀여우며, 치즈 마을 지하에서 발가벗은 채 박스를 쓰고 다니는 몬스터들이다. 반대로 악당의 두목은 어마어마하게 육중하다. 그의 부하들은 멍청하기 그지없다. 악당은 치즈를 먹을 때마다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 장면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되겠다고 느낄 정도로 징그럽게 묘사된다. 몬스터들은 너무도 순진해 저항할 줄 모른다. 악당에게 끌려가 노예로 일해도 찍 소리 한 번 내지 못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지하의 유일한 인간 '에그'가 나선다. 에그를 돕는 건 당차고 똘똘한 소녀 '위니'다. 에그가 지하에서 몬스터들과 살게 된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다. 에그는 잡혀간 몬스터를 구출하기 위해 지상에 올라온다. 하지만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끔찍했다. 에그는 ..

나를 찾아줘 - 농간과 기만의 결혼생활,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작

섬뜩했다. 무서웠다. 으스스한 오한이 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은 그렇게 끔찍한 위선 덩어리였다. 오랜만에 작은 탄성을 지르며 스크린에서 빠져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게 됐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사랑하고, 아껴주며, 항상 옆에 서 있는 배우자의 진심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영화 는 겉으로 보이는 부부의 모습과 진실이 완벽하게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 관계는 늘 달콤하고 감동적인 시간만을 주지 않는다. 한때는 수정처럼 순수한 빛으로 타오르기도 하지만 갑자기 화산재로 돌변해 평화로운 숲을 덮치기도 한다.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다. 환희나 행복, 꿈이나 눈물, 아니 인간적이라고 불리는 모..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 드라큘라와 수니파의 시원, 개리 쇼어 감독 2014년작

무료한 일상을 흥미롭게 바꿔주는 자극제로 충분했다. 대담한 선과 훈훈한 액션, 감동적인 스토리에 매료됐다.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바닥으로 내리 꽂히고, 그 충격에 수많은 병사들이 나자빠지는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영화 은 드라큘라의 시원을 밝힌다. 좋은 가문에 덕망 높고 용맹했던 그가 왜 사람의 피를 빨게 됐고, 태양과 십자가에 민감해졌는지, 이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중세는 사회적으론 봉건제도가, 사상적으론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과학 이론마저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당하던 시절이다.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잣대로 선과 악을 판가름한다. 그 어떤 선의도 교회의 뜻과 다르면 무시해 버린다. 드라큘라가 ..

제보자 -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한다, 임순례 감독 2014년작

줄기세포란 무엇일까? 단지 난치병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과학기술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다. 줄기세포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상품이자 국력을 상징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미국이 그랬고, 소련이 그랬듯이 우수한 과학기술은 돈을 벌게 했고,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렸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건도 일어났다.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제3의 만능세포'로 알려진 STAP 줄기세포의 존재를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해 화제가 됐지만, 논문의 데이터가 부정확하고 결함이 있어, 논문은 철회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AV영화 제작사가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오보카타에게 19억 원의 출연료를 제시한 것을 계기..

카트 -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부지영 감독 2014년작

영화적으로 평가하면 혼내주고 싶다. 영상은 이렇고, 플롯은 저렇고, 연기는 어떻고, 음악은 그랬고 등으로 평가는 할 수 있지만 영화 는 진심, 감독과 배우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배울 게 있어 좋은 영화다. 우리 주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 영화가 알려 줄 것이다. 물론 잘 만들었다. 감동은 기본이고 몰입도도 있다. 무거운 주제를 위트 있는 대사와 상황으로 가볍게 풀어낸 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영화다. 영화 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그렸다. 고객은 청결하고 말끔한 곳만 드나드니,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생활하..

옥수수섬 - 어쩔 수 없는 미물, 게오르게 오바슈빌리 감독 2014년작

영화 은 융통성이 없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영상은 지난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수양을 쌓는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감동은 크다. 마음속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온한 안식을 준다.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느끼게 한다. 이 영화 감명 깊다. 짱짱한 내러티브와 긴장감으로 무장한 영화만 재밌는 건 아니다. 덧없다. 의지할 곳이 없다. 태양은 뜨겁게 타오르고, 생의 열정은 흘러넘쳐 반짝반짝 빛나는데 이상하게도 진정 마음을 놓고 쉴 곳이 없다. 어렸을 때 꿈꿨던 따뜻하고 정겨운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술꾼이 되고, 방랑자가 된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하거나 아니면 세상을 바꿔보기 위해 마음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삶의 기쁨을..

부재하는 사람들 - 부재에서 비롯된 비참한 삶, 니콜라스 페레다 감독 2014년작

그들은 없었다.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잊힌 사람이었다. 부재한 그들은 분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기대하지 않았다. 부자들에게 천대 받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외롭고 처연한 삶이지만 누군가에게 지배되거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살았다.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역사는 부재가 아니라 과잉에서 나왔다. 그들의 부재도 역시 자본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됐다. 영화 은 자본주의가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통렬한 상처다. 그들은 폐가와 다름 없는 오두막에서 산다. 그 집은 재개발로 곧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곳에 갈 곳 없는 노인이 들어와 살았고, 어느 날 젊은 청년도 그 곳에 들어온다. 풍경은 느리고 고요하다. 다큐멘터리처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