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와카마츠 코지 5

⑤와카마츠 코지 - [리뷰] 더렵혀진 백의, 1967년작

핏빛 성찬으로 인도하는 민중혁명 수척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간호사들을 죽이는 한 남자. 그는 피를 보고, 피가 묻어난 자리를 보고, 낭자한 피의 흔적을 본다. 여자들의 얼굴이 차츰차츰 새파래지는 것을 보면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며 미칠 듯이 통곡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그는 바다의 희망을 노래하며 또 방아쇠를 당긴다.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핏빛 성찬'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혁명'. 피와 진땀, 소름과 격정 없이는 혁명도 이룰 수 없음을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깨끗하고 고상함으로 위장한 간호사들(국가권력)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혁명의 길에는 메마른 이야기조차 소모적인 법. 또 이 과정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코지 감독은 바삭바삭하고..

④와카마츠 코지 - [리뷰] 벽속의 비사, 1965년작

혁명가의 기만과 성장 제일주의에의 종말 아파트 벽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수험생. 그에게 있어 창문 너머로 몰래 엿보는 세상은 애정 어린 기쁨이자 음란한 취미생활이다. 협착한 세계관에서 나오는 증오와 혹독함이야말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재단하기 위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필요로 하는 대상. 수험생은 이 영화에서 선악을 판가름하고 형벌을 가하는 주체로 나선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수험생이 망원경으로 투시하면서 들려주는 일본은 기발하고 참신하면서도 로망 포르노식의 표현법을 제대로 살린다. 이 영화는 이 학생의 '병적인 관음증'으로 기만적인 혁명가의 일상과 성장 제일주의가 판치는 일본 사회의 무력함을 고발한다. 주제의식을 극도로 부각하는 이런 연출기법은 시퍼런 칼을 들고 설치거나 핏발을 세우고 말싸움을..

③와카마츠 코지 - [리뷰] 가라 가라, 두번째 처녀, 1969년작

돌아선 혁명가와 국가권력의 자화상 오해를 무릅쓰고 한 소녀의 죽음에 전적으로 수긍해야 함을 느낀다. 그토록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했던 소녀.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택한 죽음. 길가에 쓰러진 꽃을 세워주고 싶은 마음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녀의 죽음 앞에서는 한 없이 힘이 빠진다. 돼지처럼 서로의 육체를 탐했던 9인의 남녀를 죽인 소년의 날카로운 칼끝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옥상에서 펼쳐지는 죽음의 전주곡은 차라리 탐스럽고 영롱하다. 소년이 보여주는 '자아의 과잉'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거울처럼 반사하면서 스스로 생명을 처단하는 기계가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독약이 된다. 소년은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다. 스스로 '혁명가'라는 '자아의..

②와카마츠 코지 - [인터뷰]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예술은 자심과 매우 가까운 벗이다. 벗이 괴로울 때는 얼굴만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처럼 예술은 작가의 심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서로 다른 생활을 하고, 서로 다른 보금자리에 있다 해도 자기 의지와 어긋나지 않게 벗은 행동한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을 만나기 전, 마음속에서 몽실몽실 피어났던 근심도 이러한 이유였다. '로망 포르노'에 심취한 그의 예술세계처럼 거침 없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큰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추측은 예상을 빗나갔다. 표정에는 공손함과 친절함이 배어 있었고, 주름살에는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명랑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끔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는 매우 어리숙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으며, 배꼽을 잡고 웃다가도 가만히 생각에 잠길 때에는 ..

①와카마츠 코지 - 그는 누구인가?

와카마츠 코지(Wakamatsu Koji) 감독은 1963년 영화계에 입문해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일본이 1960년대와 70년대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영화 내용과 형식 면에서 정치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한 시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영상미학을 구축했으며 저항과 진보, 개혁과 혁명의 대명사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코지 감독은 성을 통해 권력 시스템을 파괴하는 '로망 포르노' 장르를 개척했다. 파시즘, 사디즘, 마조히즘, 폭력 등으로 일본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해부했으며, 도발적이고 노골적인 영상으로 우경화에 매몰된 정치권에 극렬히 저항했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그를 열렬히 지지했고 마니아가 됐다. 그는 일본 독립영화의 정신적인 지주로 불리고 있으며, 해외 영화계에서도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