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249

이흥덕 작가 - 미술 고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표현하는 것

수척해진 마음을 어루만지며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아옹다옹 다투며 공멸해 가는 인간 군상을 목격한 까닭이다. 몇 번이나 농담을 늘어놓으며 헐벗은 마음을 중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왼쪽으로 눈동자를 돌린 한 소녀의 ‘잔상’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두운 숲 속에서 벗어나려고 종일토록 걸어 다녀도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으스스한 소리로 되돌아오는 산울림처럼.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는 터널을 지나 넓고 밝은 곳으로 나왔다. 하지만 쉽사리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비스듬하게 뻗은 도로 사이에 펼쳐진 배추밭 가로줄 이랑이 정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멀리 보이는 자..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 -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사람

원시적인 소리였다. 경쟁과 질투가 가르쳐주는 세속적인 지혜와는 다르게 근원적인 야만성을 품은 울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도시의 공포감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같은 전율이었다. 강렬한 북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가슴을 조여 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려는 듯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적인 리듬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간과 공간을 끊어내며 심장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나는 연습실 한편에서 몸을 쑥 내밀고 북을 치는 광경을 지켜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문근성 고르예술단 예술감독은 별 얘기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떠한 얘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열정과 노력이 보이느냐..

방효성 작가 - 사유하는 몸으로서의 행위예술가

방효성 작가는 행위예술가다. 그 연장선상에서 회화와 설치미술을 병행하며, 매체의 다양성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오브제를 해석하고 형상화한 언어들과 우발적이고 독창적인 행위예술로 풀어내는 미적 욕구는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며 독특하면서 따뜻하다. 2005년에 방효성 작가를 만났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쉐마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소식도 들었고,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2023)’라는 퍼포먼스도 사진으로 봤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왕성한 활동으로 노장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방효성 작가는 197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80년대 초반까지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이 시절의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시적 표현들은 ‘드로잉..

문경식 정광훈추모사업회장 - 운동가는 그래야 해

정광훈. 고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두툼하게 열린 가슴’이다. 피 터지는 시위 현장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와 위트로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도대체 저분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늘 궁금했었다. 문경식 추모사업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넉넉하고 낙관적인 분이다. 안된다고 타박하지 않았고, 실망하는 법도 없었다. 힘든 상황이 닥칠 때도 ‘쉬운 일이면 우리에게 오겠냐. 어려우니까 온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를 북돋아줬다. 기술이 좋은 분이셨다. 1970년대 티브이가 보급될 당시 못 고칠 가전제품이 없을 정도로 재주가 좋았다. 돈을 엄청 벌었지만 농민운동한다고 다 접었다. 보통사람들처럼 돈을 벌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

최대선 화가 - 세상의 아름다움을 희구하다 미술가가 되다

원색적인 팝아트에 익숙해져서일까? 순간적으로 매료시키는 구상 미술에만 현혹돼 왔을까? 전시장에 가득 찬 고요한 열정이 어색하지만 흥미롭게 마음을 뒤흔든다. 분명한 것은 위대한 화가의 미술만 주류를 구성하는 것도,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미술사적 해석의 틀로만 작품을 이해하려는 것도 우매한 감상법이다. 정확한 데생력과 색채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미술도 있지만 마음속에 색다른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미술도 존재한다. 최대선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그는 유다른 표현력과 예사롭지 않은 인내심으로 작품에 묵직한 기품을 담아낸다. 자신만의 독특한 비구상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면서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통찰하려고 애쓴다. 그가 비구상 작품을 시작한 이유도 오랜 연습과 통찰의 과정 중에 발현됐다. ‘..

지형범 영재로드맵컨설팅 대표 -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정말 비정상일까?

‘영재’라고 불리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진 않았다. 목표를 성취하는 데 아이큐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역사에서 위대한 발명과 발견은 대부분 영재의 천재성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뤄졌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영재든, 영재가 아니든 누구나 사회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며, 영재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그에 알맞은 교육과 사회적 환경이 요구된다. 지형범 영재로드맵컨설팅 대표도 상위 2%의 지능을 가진 아이들이 모두 뛰어난 성과를 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지능이 높아도 스스로 계발하지 않거나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남다른 두각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명문대학에 다니거나 의대, 치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멘사 회원 중에 10~15% 정도다. 비율로 보면 80~90%..

한도숙 시인 - 그것은 모두 투쟁의 불씨

비애를 맛봤다. 농민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을 아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다. 한도숙 시인(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계급보다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 더욱 밀착했다. 아무래도 시인이 농민이어서 그럴 테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밥쌀 수입은 안된다’고 외치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끌어안으면서 강요된 농정과 예속을 과감히 거부하라고 부르짖고 말았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가슴에 진 시퍼런 멍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것은 모두가 투쟁의 불씨가 된다. “읽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저는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거로 생각됩니다. (웃음) 고맙고요. 우선 백남기 회장님의 쾌유를 빕니다. 또한 가족들에게도..

나운하 가수 - 갑질, 이해는 하는데 ‘야’, ‘너’는 못 참겠더라

글을 쓰는 재주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글을 잘 쓴다고 모두에게 감흥을 주는 건 아니다. 마음 없이 머리로만 써서 그렇다. 사람을 움직이는 글은 역시 마음에서 우러난 글이다. 노래도 똑같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목소리에 마음을 담아내지 않으면 감흥을 주지 못한다. 감동적인 무대는 진심 어린 마음과 노래 부르는 재주가 합쳐져야 만들어진다. 가수 나운하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무엇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노래를 들려준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심각하면 심각한 대로, 곡의 분위기에 맞게 감정을 담아낸다. 어떤 노래라도 열심히, 주의 깊게 하려는 그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털털한 외모와 다르게 천성이 곱고 정이 많은 성격이 자연스레 작용했다. “오랫동안 부르다 보니 노래의 맛을 알게 됐다...

김국희 배우 - 알잖아요? 버텨야 한다는 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털털한 성격, 생글생글한 표정과 시원스러운 목소리는 누가 봐도 딱 연극배우다.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래도 배우가 천직인 듯싶다. 아니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마음이 따뜻하니, 선생님을 해도 좋았겠다. 살면서 배우 김국희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한효주 같은 외모에 신민아 같은 몸매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녀가 내로라하는 인기 배우들 틈에서도 여러 작품에 계속해서 콜을 받고 있는 이유다. 진지하고 능글맞은 그녀의 연기는 한순간에 관객을 압도할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김국희는 대학로가 공인하는 할머니다. 그녀만큼 할머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동료 배우들의 중론이다. 배우에게 이미지가 굳어지..

김지운 감독 - 조선적 입국 국가가 책임져야

다큐멘터리 는 재일동포 연극인 김철의를 좇는다. 가 뒤좇는 것은 '연극인' 김철의가 아니다. 연극인으로 보자면 김철의는 종횡무진이었다. 그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8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2010년에는 일본에서 젊은 연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다큐가 따라잡는 것은 '재일동포' 김철의다. 김철의는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조선적'이다. 김철의의 꿈은 조부모의 고향인 제주에서 자신의 작품 '하늘 가는 물고기, 바다 나는 새'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국 방문은 번번이 무산됐다. 잠시 조선적에 대해 알아보자. 1947년 일본 정부는 외국인 등록령을 발효하고, 재일동포 60여 만 명의 국적을 조선으로 표시했다. 이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노현희 배우 - 꽃 대신 라면이 좋아

노현희가 SBS 드라마 에서 마동희로 분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눈치 없고, 현실 감각 부족한 모태솔로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역시 배우였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감칠맛 나는 노처녀 연기였다. 시작부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노현희에게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이다. 노현희 배우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비롯해 드라마, 스크린, 무대를 오가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오랫동안 배우로서 보여준 행적보다 성형과 이혼이라는 키워드에 저당 잡히고 말았다. 는 노현희가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작품이다. 이후 노현희는 ‘성형 아이콘’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에 당당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따로 운동하거나 건강..

안대천, 김서진 연희집단 The광대 - 밀당이 뭔지 아는 정말 광대

일품이다. 참으로 볼만하다. 몸도 날렵하고, 기예도 출중하며, 감성도 풍부하다. 영상만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보면 감동의 도가니겠다. ‘연희집단 The광대’는 이름 그대로 전통예술을 우쭐우쭐 제 몸처럼 부려재낀다. 재인들이 다 모였다. 정말 광대다. 기성을 터뜨리고, 흥을 돋우며 훌떡훌떡 판을 휘젓고 다닌다. 이 맛에 연희극을 즐긴다. 아직도 우리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옛날엔 세상에 버려진 살덩이로 태어나 광대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재기와 솜씨, 기교의 영역을 넘어 우리 전통을 지키는 책무를 스스로 인지해야만 가능하다. 연희집단 The광대, 안대천 대표와 김서진 연출가가 연희에 몸을 담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안대천 대표의 뜻은 소박했다. “연희가 좋은..

김애리 작가 - 3년 정도만 ‘뻔뻔함의 아이콘’으로

당찬 여자다. 통번역회사와 스토리텔링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는 CEO. 삶의 양상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밥벌이는 열심히 하니, 이것만으로는 당차다고 할 수 없다. 김애리 작가가 당찬 이유는 따로 있다. 김 작가는 퇴근 후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책을 읽고 쓰는 일을 20대 내내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30살이 되기 전에 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크고 작은 공모전에 도전해 당선된 이유다. 여전히 그녀는 해마다 평균 100여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있다. 그녀의 꿈은 어릴 적부터 줄곧 ‘책과 함께 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쨌든 어린 시절 꿈은 이뤘다. 어른이 된 뒤에는 어떤 직장이나 어떤 조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자유와 행복을..

정해영 심리치료사 - 세월호 유가족 분통 트이도록 도와야

혼란의 시대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우리나라호’는 목적지 없는 항해 중이다. 애초부터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발 빠른 대책 수립, 철저한 진상규명이 뒤따랐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무능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정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아픈 마음조차 위로해주지 못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가는 곳마다 ‘멘붕’이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넋두리는 보통. 이제는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묻는 시민을 연행하고, 해경 해체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정부를 보면서 희망 없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또 어렵게 세운 민주주의도 훼손됐다며 두려움까지 표현한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언론통제, 친기업 정책, 권력기관 강화, 복지정책 후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

아트사우루스 - 리어카 끌고 도심 싸대는 여자들 왜?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예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젊은 예술가 4명이 뭉쳤다. 사회적 예술가 집단을 표방하고 나선 ‘아트사우루스’다. 아트사우루스는 보영사우루스(미술), 바니사우루스(미술), 유현사우루스(미술), 이음사우루스(글)로 구성돼 있다. 이 이름은 본명 뒤에 ‘사우루스’를 붙인 것이다. 아트사우루스는 스스로 “유명하지도, 이력이 화려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만큼은 뚜렷하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사회 인식에서 비롯한 주견이다. 이들은 ‘지금’을 논하지 않는 예술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고민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라는 이름의 퍼포먼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이름으로 넌지시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다. 이들이 던진 질문은..

장우석 박승현 - 철가방 들고, 중고 오토바이 타고 31개국 누빈 청년

삶에 여행이 요구될 때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다. 위만 바라보고, 갈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생활에 얽매이고,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놓지 못해서다. 게다가 이런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떠나는 ‘관광’과 성격이 다르다. 야자수와 산호초가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파타야 해변이나 설산과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 바이칼 호 같은 명소로 떠나는 눈요기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거리에서 전혀 다른 삶과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정이며 준비할 것, 따질 것 없이 그대로 떠나는, 고단하고 궁핍한 생활 또한 각오해야 하는 모험에 가깝다. 어떤 이들은 이런 여행을 일탈로 간주한다. 풍요와 안정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자신을..

이승연, 알렉산더 어거스투스 작가 - 두려운 도심의 수많은 십자가들

붉은 십자가. 정교한 패턴과 영기로운 옷매무새. 엄숙하고 성스럽다.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강해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청량감이 밀려온다. 은유의 미학이랄까. 저절로 고개를 끄덕여진다. 숭고한 종교 윤리와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 돈의 권능, 생활과 동떨어진 예술 앞에 많은 민중은 무력감을 느껴오지 않았나. 이승연, 알렉산더 어거스투스(Alexander Augustus) 작가는 ‘한국의 종교와 미래’를 주제로 2100년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 혹은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할 수 있는 아트 오브젝을 선보였다. 작품은 종교를 대변하지만 계율을 강제하거나 청교도적이지 않다. 금기 혹은 절대 선을 향한 강요도 없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인용한 성경구절을 엮어 기독교의 현실적인 도구와 수행 과정을 형상화했다. 수많은..

박정민 사진가 - 4대강 기록하다

인간이 바꾼 지구 환경의 대표적인 예는 강이다. 이명박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댐을 만들고, 보를 만들고, 물길을 새로 뚫었다. 강을 바꾸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늘 생겨, 처음 생각했던 예산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바뀐 강은 한 나라 경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 특히 환경파괴는 심각했다. 강과 강 주위에 서식하는 모든 생명들이 죽음 직전에 내몰렸다. 녹조가 일어난 지역의 물속 생태계는 거의 몰살당했다. 또 보의 상하류 흙은 파였고, 지형도 변해 생태계는 교란됐다. 한마디로 한 나라의 공적자금을 탕진했지만 얻는 것보다 잃은 게 많은 사업이었다. 4대강 사업은 불도저식이었다. 공사 길이 634km에 이르는 4대강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넉 달 만에 ..

정현진 사진가 - 뒤늦게 깨달은 행복 '아타락시아'

사람들마다 다르다. 같은 장면을 봐도, 머릿속 저장 공간에는 모두 다른 게 들어가 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보고, 그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정현진 작가는 누구나 한 번쯤은 봐왔을 풍경을 기록한다. 그의 작품을 쭉 둘러보면 우리 동네, 우리 이웃, 언제 어디선가 봤을 익숙한 곳의 이미지다. 하지만 샅샅이 기억 속을 들춰내 대조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의 작품은 특별하게 보지 않았던 풍경, 그래서 아예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은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놀랍다. 낯설지 않은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움. 정 작가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특징이다. 마치 어떤 노력 없이도 휴식 같은 만남이 유지되는 친구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효율을 따진다. 의미를 담아내지 않거나 응당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소모적이고..

이상락 소설가 - KBS 라디오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작가

KBS 라디오에서 방송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의 원고를 집필하는 이상락 소설가를 만났다.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는 2004년 10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상락 소설가는 1985년 장편소설 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창작집 , 장편소설 , , , , , 소년소설 , 콩트집 등이 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의 삶을 지배한다. 역사는 현세를 사는 우리들에게 생각, 언어, 의식, 생활습관 등 거의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간섭할 뿐만 아니라 특히 어떤 대국적(大局的)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해석된 역사’는 주요한 텍스트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는 힘이 세다. ..

이원주 가수 - 정말 외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노래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로 쓸쓸함이 뻗어오는 날에는 음악을 듣는다. 물론 자연의 품에 파묻혀 시원한 바람, 따사로운 햇볕, 들썩이는 파도와 친구가 되는 것이 더욱 좋다. 하지만 일상에 뻣뻣한 고독이 들이닥친다고 당장 떠날 수 없는 게 현실. 이럴 때는 언제나 곁에서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악이 최고의 명약이다. 마음이 수척하다면 잔잔하면서 격정적인 음악이 좋겠다. 나아가 여운이 남고 몽환적인 음색이라면 더욱 근사하겠다. 음악에 깊이 동화되면 일종의 중독, 환각 등 말초적 쾌락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각이 둔해지고 형태가 무뎌지는 느낌, 평화와 고요만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착각에 빠져든다. (놀랍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원주의 음악에서 그런 쾌락이 느껴졌다.) 가끔 이런 감각적 쾌락을 육체적 쾌락..

최승윤 화가 - 반대는 항상 적절한 비율로 공존해야 한다

역동적이다. 무한한 에너지들이 밖으로 튕겨 나간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 조명들이 뒤엉켜 부서지는 색감처럼 가슴을 바짝바짝 태우며 뻗어나간다. 혼란한 세상일들이 겹겹이 쌓이고 어지럽게 중첩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에너지는 외부의 어떤 압력에 포위된다. 대립되지 않는 일대의 조화에 감싸이고, 참고 버텨내고 이겨내는 힘에 저지된다. 숙련된 자세 그대로, 모든 시련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감내한다. 최승윤 작가는 을 얘기한다. 은 현상적으로만 보면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 의미 같다. 아니면 완벽하게 고요한 상태나 어떤 움직임이 급격한 충격에 멈춘 것 같다. 하지만 정지와 시작은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고 부적절한 조합이다. 정지와 시작, 두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판이하게 다르..

박성우 조수빈 국가대표 댄스스포츠 선수 - 경제적 뒷받침 필요하다

사뿐사뿐 발걸음을 쭉 내딛으며 빙글빙글 회전하는 춤사위가 눈부시다.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밀착한 채 몸을 휘고 흔들며 무대를 누비는 모습은 환희다. 시종일관 생기에 찬 얼굴과 움직임에서 우리 조상들의 ‘족도환무’(신명 나고 즐겁게 추는 춤)를 떠올린다. 우리 민족은 주악과 가무를 즐겼고, 이에 능했다. 군사독재 시절 댄스스포츠는 ‘사교춤’으로 불렸다. 그 당시 사교춤은 희롱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나 즐기는 쌍스러운 춤이라고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면 놈팡이, 제비, 꽃뱀, 조폭, 건달, 사기꾼 등이 들락거리던 카바레에서 추는 춤으로 인식됐다. 완벽한 ‘편견’이었다. 한편으로는 술에 취한 남녀가 농염한 색소폰 소리에 맞춰 흐느적거리듯 춤을 추는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되면서 사교춤을 ‘불륜’의 대명..

정지아 소설가 - 君君臣臣父父子子의 세상이면 좋겠다

세상이 어지럽다. 머리가 쑤셔온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오한이 나고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 과거 빛바랜 사진 속에서 마주했던 경악과 공포가 떠오른다. 푼더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얼굴에 감돌던 죽음의 그늘부터 인간성마저 짓밟아버린 이데올로기의 갈등, 붉은 머리띠 동이고 팔뚝질을 해대는 청년들의 시위까지 우리나라 역사 속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꼭 과거의 일이지만은 않다. 세상은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양면적이고 정교한 혼란에 휩싸여 흘러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과하리만큼 불안과 부조리를 감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첩된 부정과 비민주성에 몸서리를 친다. 일련이 사건들이 겹겹이 쌓이고 과중되면서 올바른 말,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 ‘종북’과 ‘빨갱이’로 몰렸고,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4인놀이 국악인 - 윤서경 이영섭 신현석 이재하, 시나위 되살리겠다

어지럽다. 안녕하지 못하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어깨가 축 처지고 광란할 뉴스 천지다. 안팎으로 민중의 원성과 한탄이 끊이질 않는다. 숨 가쁘게 한 해를 달려와서 그런지 피로와 무력감도 쌓인다. 마음속에 가득 들어찬 음울함을 덜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음악이다. 음악은 우울함은 덜어내고, 희망은 쌓아내는 묘약이다. 그 옛날 거리를 뛰어다니며 불렀던 노래들이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시린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기약 없는 날일지라도, 희망을 지우지 않는 한 희망은 계속된다. 마음이 몹시 마르고 야윌 때는 정겨운 음악이 좋다. 빨랫방망이 소리처럼 방정맞아도, 고향의 사투리처럼 억세도 다정하게 들린다면 그만이다. 신명난 국악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류지선 화가, 전주교대 교수 - 앞으로의 과제는 '어떻게'

새로운 생명은 과거의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다. 과거의 토대 없이 현재와 미래가 있지 않다. 과거를 잃어버리는 순간, 아예 새것이 되거나 자신을 속여야 산다. 삶도 그렇다. 살면서 자신을 발견해가고, 최선의 것이 되기 위해 변화하는 과정, 그 싸움이 삶이다. 류지선 작가도 더욱 멋진 하나의 상을 위해 연방 전이 중이다. 류 작가는 매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변했다. , , , 등 그림만 보면 이어지지 않을 계보를 따라,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닌 것 같은 다양한 화력을 펼쳐 왔다.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이나 성찰이 아니라면 힘들다. 또 그림에서는 완성한 듯, 완성하지 않는 듯 붓을 놓아버리는 시원한 면도 읽히고, 마무리가 의문이 드는 그림, 주제에만 천착한 그림도 보인다. 그에게 ..

조새미 작가 - 세 번의 비평적 극장 너머 소통의 과제

반짝반짝 빛난다. 기묘한 모양의 크고 작은 오브제들이 은박지에 싸여 바닥, 천장, 벽에 놓이고, 매달리고, 붙어있다. 본래의 곡선과 색상, 재질과 질감이 가려진 채 획일화된 은빛 풍경을 연출한다. 겉으로만 보면 오브제들이 은박지에 싸여 있어 익숙하다. 호일로 싼 분식점 ‘김밥’을 보는 느낌.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사유하면 낯설다. 나무, 플라스틱, 철재, 종이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은박지 안에서 맨얼굴을 내보이고 싶어 꿈지럭거리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획일화된 풍경은 오히려 본질을 부정하고, 실체를 파괴한다. 조새미 작가가 은박지로 오브제를 감싼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우선 작업을 하면서 새로운 결과물을 계속 타진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가장 자신감 넘치고, 만족스러운 성과 그 너머의 결과에 ..

장현상 감독 - 청춘은 아름답다, 네버다이 버터플라이

젊음은 아름다운 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런수런 소리를 내고, 새벽 기운이 뻗질러 생기가 넘치며, 고혹적인 향과 빛깔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제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든다. 마찬가지로 젊음도 잠시 화려한 한때를 구가하고 나면 윤이 사라진다. 그래서 더욱 청춘은, 젊음은 아름답다. 가장 무상한 것이 가장 아름답고, 사멸을 연상하는 것 자체가 더욱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영화 는 아름다운 ‘청춘별곡’이다. 힘겹지만 활력이 넘치고 시끌시끌하다. 웃음에 겨워 미칠 지경이다. 마음속에서 젊음의 순수가 다시 살아나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손가락이 오글거리던 때가 있다. 그것이 미처 순수인지조차 모르며 꾸밈이 없던 때. 성적은 엉망진창, 사랑은 헛수고, 주..

최준영 교수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교수는 아주 특별한 대중 강사다. 학식이 높아서도, 강사료가 비싸서도, 대단한 것을 가르쳐서도 아니다. 강의를 듣는 청중 대부분이 모질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인문학을 매개로 강의를 펼쳐왔으며, 최근에는 힘겨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그의 경험을 듣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그를 초청강사 1순위로 꼽고 있다. 최 교수는 거리의 인문학자, 거지교수, 페이스북 논객으로 불린다. 그에 대한 수식어는 그 자체로 그를 대변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노숙인과 교도소 수형인, 그리고 여성 가장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는 강의할 때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한다. 감추고 싶은 과오든, 용서를 ..

최위안 감독 - 지적 유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볼 영화

낭만은 우리 시대에 유효하다. 한때 낭만은 이성과 합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획일적이고 제도화된 사회, 가치와 의미보다는 물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 문화에 잠식당한 현대인들에게 낭만은 유쾌한 삶의 지평을 열어주는 매개다. 좀 부족하면 어떠한가, 좀 망가지면 어떠한가. 좀 공상하면 어떠한가. 영화 는 우리가 한때 풍미했을 낭만을 한 부부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최위안 감독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질식당하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손편지를 건네고, 어느 누구도 얘기하지 않은 부부의 내면세계를 밖으로 덩그러니 내놓는다. “지적인 영화다. 지적 유희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정도 볼 만한 영화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고 하면 애들 영화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