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북적북적 책세상 9

포천 - 토박이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이 들려주는 ‘포천’ 이야기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이 경기도 포천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기록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책 『포천』이다. 이 책은 참으로 흥미롭다. 도시 여행 정보 그 이상의 감흥과 권태로운 일상에서 모처럼 벗어나는 유를 선사한다. 재지와 달관을 촘촘히 땋은 단문과 시적 언어, 풍부한 사료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책임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수이나 시인이고, 교육자이나 철학가의 면모를 풍긴다. 공간의 감미로움을 씹고, 서정의 애달픔을 변주하고, 지성의 창날을 번뜩이는 내면의 심상과 진실성이 예사롭지 않다. 음악을 만들고, 후학을 양성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왔던 흔적들이 글에서 묻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책은 저자의 안목과 성찰, 미의식이 담긴 결과물이자 저자가 바라보는 현실이 그대로..

황야의 이리 - 무기력과 이성의 상실에 대응하는 자세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렵다. 상대방의 기질과 걱정거리를 잘 알아야 하고, 취향의 문제도 걸린다. ‘내가 읽어보니 좋았다’고 무작정 추천했다가는 상대방의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두루 정서가 통용되는 책은 왠지 추천이 꺼려진다. 가볍고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으나 가슴에 꽂히는 한방이 없다. 그럴 때는 고전을 추천하고, 읽어보길 권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는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다. 헤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이 소설로 치유한다. 먹고사는 문제, 보통이 아니다. 사람의 욕망 또한 거대하다. 소유와 쾌락의 욕구를 끊어내기 위한 몸부림에 내내 지쳐가며 사는 것이 삶이다. 동시에 자신의 정..

싯다르타 - 오랜 애욕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왕자로 태어나 아버지와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티 없이 맑은 정신으로 아트만(참다운 자아)의 존재를 구했다. 그는 온갖 부귀영화와 왕의 자리를 내어놓고 사문들 곁에서 고행하는 삶을 택했다. 넓적다리와 뺨엔 살이 빠지고 윤기 없는 털이 자라났지만 휑하고 까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지혜와 자비의 덕망이 이글거렸다.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과 정열적인 여인의 자태는 그에게 모두 비웃음으로 번지는 것이었고, 생로병사에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장사를 하고 몸을 팔고 사냥을 하는 모든 속세의 삶이 머무를 가치가 없이 거짓이며, 자신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위해 모두 위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속세의 맛은 쓰고 인생은 고통이었다. 비로소 그는 텅 빈 마음으로 평정을 구하고 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살며 사랑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다

빌딩 모퉁이에 서서 비를 본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어둡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우중충하고, 나뭇잎도 가는 빗방울에 힘없이 흔들린다. 모두 외롭고 어두워 보인다. 비마저도 고독하게 한 방울씩 추적추적 떨어진다. 하지만 비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하나로 뭉쳐 대지에 스며든다. 근원적 외로움에 시달리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치유의 ‘테라피’가 무엇인지 알려주려는 것처럼. 세상엔 홀로 있지 않는 것이 없다. 맘을 나누는 친구도, 몸 아파 낳은 자식도 인간으로서 혼자다. 그러나 삶의 과정에 사랑을 대입시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서로를 관계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 인식하면서 ‘홀로’가 아니라 ‘함께’가 된다.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 비는 이러한 지혜를 몸소 보여준다. 행복의 ..

겨울 가고 나면 따뜻한 고양이 - 치유의 방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생생히 떠올리고, 곱씹고, 쓰다듬고, 위로해야 아문다. 되새김질 없이 겉 부위만 닦은 상처는 언젠가 다시 터지고 만다. 며칠 사이에 낫지 않을 상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소용없다. 세월이 약이라고 믿는 낙관은 금물이다. 노력 없이, 성찰 없이 낙관하는 건 어리석은 인간이나 하는 짓이다. 그건 오히려 영혼에 대한 방관에 가깝다. 길상호 작가는 오랜 시간 관조하고 자성하면서 곪고 덧난 상처를 치유했다. 출혈이 심할지라도 돌아앉아 외면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대화의 상대는 대부분 자신이었지만 자신을 이입한 고양이도 있었고, 가족처럼 지낸 고양이도 있었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반짝반짝 생살이 돋은 것 같은데 통증은 여전한 듯했다. 진물이 터져 나올 때까지 상처를 꾹꾹 누른 흔적..

나무에게 배운다 - 지혜로 삶을 성찰하는 니시오카 쓰네카즈의 잠언록

우리가 처한 삶은 친절하기도, 다정하지도 않다. 언제나 냉정하고 혹독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거나 현실을 바꿔가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면서 대충 살거나 자포자기해버린다. 무엇이 달라서일까. 그 비밀이 바로 책, ‘나무에게 배운다’에 담겨 있다. ‘나무에게 배운다’를 보면 스스로 숲이 돼 편백나무를 기르고 자작나무를 가꾸는 기분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성인과 만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집은 나무로 지어도 콘크리트 빌딩보다 오래가고, 어떤 집은 일 년도 되지 않아 비바람에 쓰러지고 만다. 똑같은 나무로 지었는데 무엇이 달라서일까. 이 책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

[단편영화 시나리오] 도와줘

등장인물 연우1 : 수줍고 겁이 많은 성격.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혼자 살고 있음. 한중 : 사악하고 악랄한 범죄자.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인물. 미자 : 저질스러운 언행과 폭력을 일삼는 한중의 여자친구. 연우2 : 연우1과 동일 인물 S#1 프롤로그 천천히 화면이 열리면 한 남자(연우)가 사자석상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다. 그 옆으로는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쌩쌩 지나간다. 카메라가 연우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연우는 서서히 손을 펴기 시작한다. 그 손바닥에는 이름 모를 꽃(스펀지)이 있다. 연우는 다시 주먹을 쥔다. 카메라가 서서히 빠지면, 연우는 사자의 목을 감싼 채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복선) 화사한 꽃이 화면에 가득하다. 이 꽃들 사이로 제목이 나온다. ..

[창작동화] 죗값

홍동이라는 이름의 도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무술 솜씨에 대범함까지 겸비하고 있어 장군감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욕심 많고 성정이 난폭한 데다 하늘의 두려움을 몰라 훗날 도적이 됐다. 어찌나 성품이 흉폭한 지,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다. 으슥한 산속에 부잣집 딸로 보이는 아리따운 여인이 걷고 있었다. 그는 여인을 가로막고 서서 큰 칼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가진 것을 다 내어 놓거라." 아가씨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며 말했다. "저는 아랫마을에 사는 연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빈농의 딸입니다. 드리고 싶어도 드릴만한 것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귀한 집 딸년 같은데 빈농의 딸이라고?" 홍동은 널찍한 포대기를 꺼내 연분을 보쌈했다. 연분도 딱..

[창작동화] 황금바위

선비가 산속을 헤매다 황금바위를 발견했다. 원한 관계에 휘말려 가족을 모두 잃고 쫓겨 다닐 때였다. 황금바위는 지치고 야윈 선비에게 자신의 몸을 털어 맛있는 음식과 치료약을 주었다. 선비는 황금바위의 도움으로 점점 원기를 회복했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황금바위님. 고맙습니다. 황금바위님 때문에 이렇게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별말씀을요. 대신 저를 보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전 죽고 말 거예요. 혹시 제가 죽게 되면 사람의 피를 제 몸에 발라주세요. 그래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답니다. 꼭 저와 약속을 지켜주실 거죠?" 선비는 황금바위와 약속하고 길을 떠났다. 그는 장터를 지나다 임금님이 내린 공고문을 보았다. 지금 공주의 병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고 있다..